성거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성거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성거산

0m    29070     2023-12-05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송전1길 98

천안 시가지를 중심으로 남쪽에 광덕산(699.3m)이 있다면 동북쪽에는 성거산(579.1m)이라는 명산이 자리 잡고 있다. 성거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분주할 때 직산면 산헐원을 지나다 동쪽의 산을 보고 신령이 있다 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고 ‘성거산’이라 부르게 하였다는 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천안의 특산물인 성환배, 성거, 입장 거봉 포도의 주산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진행하면 백제 도읍지였던 위례산성에 도달된다.

엽돈재가든

엽돈재가든

10.0 Km    0     2024-04-11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로 184 숯판매전시장

엽돈재가든은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있다. 예스러운 멋을 풍기는 외관과 토속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외부에는 항아리, 조각작품 등이 전시된 정원이 갖추어져 있다. 정자 앞에는 작은 연못도 있다. 대표 메뉴는 돼지갈비이며, 왕소금구이, 한우등심, 갈비탕, 냉면 등도 맛볼 수 있다. 북천안 IC에서 가깝고, 인근에 청룡사, 히든밸리 CC가 있다.

파라프라

10.1 Km    0     2023-11-29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상덕로 50

천안에 위치한 파라프라는 당일치기 글램핑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야외 바비큐 음식점이다. 매점에서 인원수에 맞는 고기 세트를 구매한 후 이용할 수 있으며 셀프 바에 진열된 기본 야채 반찬은 무료이다. 여름에는 워터풀에서 수영을 하며 BBQ를 즐길 수 있고 겨울에는 불멍과 함께 쉼을 느끼며 BBQ를 즐길 수 있다. 가족 단위로 방문하기 좋은 곳이며 애견 동반도 가능하여 애견인들에게도 인기가 좋다.텐트존과 카바나존으로 나뉘어 예약 가능한데, 텐트존은 4인에서 최대 8인, 카바나존은 2인에서 최대 4인까지 사용 가능하며 인원 추가는 현장에서 추가 결제 가능하다.

천안 노은정

천안 노은정

10.1 Km    23540     2023-04-05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도원리

노은정은 1689년 조선조 숙종 때 학자 김상기(본관이 안동이며 자는 정보, 호는 노은)가 건립한 천안시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이다. 주위 경관이 수려하고 아름다움이 뛰어난 곳으로, 정자를 건립한 김상기가 학문을 연마하고 후진을 위해 힘쓰며 영조의 스승 경한재, 군수 김광수 함께 도학으로 벗을 하며 지내던 곳으로 1853년 중수 이후 몇 차례 중수하였다. 노은정은 300년전의 우리나라 전통의 건축양식을 보여 주는 귀중한 건물로써 기둥은 둥근형이며 재질은 괴목 혹은 싸리나무라고도 한다. 마루는 우물 마루를 깔았으며 정자의 각 기둥에는 수침을 막는 돌기 등을 사용해 안전을 도모했고, 정자 주변은 수령 300년의 고목 등이 정자를 에워싸고 있다. 정자의 아래는 화강암이 지반으로 받들고 있으며, 그 아래에 있는 도영암삭성대에는 송우암선생의 친필이 각명되었다.

롯데하이마트 신방점

롯데하이마트 신방점

10.1 Km    0     2024-03-23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남부대로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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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흥타령춤축제

천안흥타령춤축제

10.1 Km    123742     2024-04-11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번영로 208 종합운동장
041-900-7020

*하기 대표 먹거리 정보는 전년도(2023년) 축제 내용으로, 2024년도 먹거리 정보는 업데이트 중에 있습니다.*

2003년 처음으로 개최한 천안흥타령춤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6년 연속 지역대표공연예술제로 선정되었으며, 2020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명예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었다. 매년 80만여명이 넘는 국내·외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이해룡고가

이해룡고가

10.2 Km    18340     2023-08-04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길 109-11

경기도의 제일 남쪽 끝인 차령산맥 줄기의 산간 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 후기 주택이다. 마을은 서운산의 남쪽 계곡에 계곡물을 앞에 두고 약간 경사진 곳에 작은 규모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의 제일 뒤쪽 약간 높은 곳에 집이 놓여 있고 집 뒤로는 경사진 언덕이 시작된다. 집은 ‘ㄱ’자형의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소위 튼 ‘ㅁ’자를 이루고 있으며 사랑채 앞으로 약간의 빈터가 있고 집 뒤 한 단 높은 대지에는 전에 후원을 꾸민 흔적이 남아 있다. 안채 마루 도리에 적힌 상량문에 가경(嘉慶) 2년 즉 정조 21(1797) 년에 집을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안채나 사랑채는 처음 지어진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안채는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 안방 2칸이 옆으로 이어지고 그 앞으로 부엌 2칸이 이어져 소위 곱은자집을 이루며 대청 좌측에는 건넌방 1칸이 있다. 건넌방 앞의 툇마루는 대청보다 한 단 높게 꾸미고 그 아래로 방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아궁이를 내었다. 사랑채는 건넌방과 이어져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ㅡ자형을 이룬다. 우측으로 2칸은 방이고 나머지 끝에 1칸이 마루가 되어 이 마루에서 뒤로 한 채 건넌방이 연결되며 앞에는 툇마루가 방과 마루를 이어준다. 방의 창문은 머름을 댄 띠살창으로 가공이 정교하다. 사랑채 우측으로 중문이 옆으로 이어지면서 행랑채가 되어 집의 앞쪽을 감싸도록 되어 있으나 행랑채 부분은 근래 벽돌 조로 개조되었다. 집 뒤 언덕의 후원에는 자연석이 군데군데 놓이고 약간의 평지를 이루어 자연스러운 맛을 남기고 있다. 2000년에 멸실되었으나, 2006년 11월에 복원하였다.

천안시청 봉서홀

천안시청 봉서홀

10.2 Km    0     2023-12-13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번영로 156 (불당동)

천안시청 봉서홀은 천안시청 내에 자리하고 있어 접근이 용이하며, 수준 높은 공연으로 시민들의 질 높은 문화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단순한 공연장이 아닌 지역 문화 예술 활동의 산실로서 천안시립 합창단, 천안시립 교향악단, 천안시립 무용단, 천안시 충남 국악 관현악단, 천안시립 흥타령 풍물단 등의 중심 무대가 되고 있다. 천안시청 봉서홀에서 연극, 음악, 뮤지컬, 무용 등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넓은 주차장과 저렴한 대관료 등으로 공연 주최 측이나 관람객 모두에게 만족을 주고 있으며, 다양한 연령층에게 맞는 공연과 모든 연령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가족 단위의 참여가 높다.

천안시민체육공원

천안시민체육공원

10.2 Km    1     2023-11-22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불당동

천안시민체육공원은 천안시 서북구 천안시청 앞에 자리한 체육공원으로, 인근의 천안종합운동장, 유관순체육관 등과 함께 천안 체육의 중심지이다. 이곳은 휴게공간, 풋살장, 족구장, 배드민턴장, 산책로, 잔디광장, 자전거 보관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시설은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이용하도록 개방하고 있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공원 및 잔디광장은 행사 등을 위해 대관할 수 있다. 취사 및 야영은 금지되어 있으며, 자전거 등 바퀴가 달린 장치는 이용할 수 없다. 주변에는 불당동 먹자골목, 봉서산, 불당2공원, 물총새공원 등이 있다.

바우덕이 묘

10.2 Km    20584     2024-02-01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용리

바우덕이 묘는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 자리하고 있는 묘로, 안성 남사당패의 우두머리 자리까지 오른 유일한 여성인 김암덕의 묘이다. 안성 향토유적으로 2001년 지정되었다. 바우덕이는 재주 좋기로 손 꼽혔던 안성 남사당패의 유일무이한 여성 꼭두쇠(우두머리)로 염불, 소고춤, 줄타기 등 온갖 기예를 익혀 뛰어난 기량으로 유명하였다. 5살의 어린 나이에 남성들이 주축을 이루는 남사당패에 맡겨져 성장했으며, 뛰어난 기량으로 15살의 어린 나이와 여자라는 조건에도 꼭두쇠가 되었다. 1865년 흥성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에 지친 노역자를 위로하기 위해 경복궁에 남사당패를 불러들였고, 이때 바우덕이는 경복궁에서 소고와 선소리로 뛰어난 공연을 펼쳐 고종과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3 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았다. 이후 경기도 일대에서 순회공연을 이어가다가, 계속된 유랑 생활 끝에 폐병을 얻고 1870년 23살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