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국삼장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명국삼장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명국삼장비

명국삼장비

12.7Km    2025-03-16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명국삼장비는 충남 공주시 공산성 공북루 아래에 위치한 비석이다. 이 비석은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년(선조 31) 가을, 공주에 주둔하면서 왜군으로부터 방어해 준 명나라의 3장수 제독 이공, 위관 임제, 유격장 남방위의 업적을 기린 사은 송덕비이다. 본래는 공주 금강변 남안에 세워졌던 것을 공산성으로 옮겨왔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일부 글자를 훼손하고 공주읍사무소 뒤뜰에 매립하였던 것을 해방 후 다시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총 3개의 비석으로 되어 있으며 내용은 "명나라의 3장수는 정유년 이듬해인 선조 31년 가을, 공주에 이르러 군기를 엄히 다스리는 한편 주민들을 정성껏 보살펴, 공주민은 왜구의 위협하에서도 안전할 수 있었고 임진년에 비로소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주변에는 공산성 외에 무령왕릉, 송산리고분군, 공주산성시장, 은개골역사공원 등이 있다.

광수사

광수사

12.7Km    2025-03-25

대전광역시 유성구 학하서로63번길 26 (계산동)

광수사는 대한불교천태종 사찰로 1995년 지어졌다. 사찰에는 웅장함이 느껴지는 3층 높이의 대적광전을 비롯해 포대화상, 대자대비 관음보살상 등이 있다. 대적광전으로 향하는 길에 거대한 규모의 관세음보살 좌상과 드넓은 연꽃밭을 만날 수 있다. 광수사는 대전 유성구 연꽃 명소로 유명하다. 연꽃의 개화시기인 7~8월에 이곳을 방문하면 아름다운 연꽃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다.

국립대전현충원 보훈둘레길

국립대전현충원 보훈둘레길

12.8Km    2025-07-24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

국립대전현충원 내 보훈둘레길은 보훈가족과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걸으며 나라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조성된 둘레길이다. 현충원 묘역을 따라 조성된 이 길은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쪽빛, 보라 총 7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어 ‘무지개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숲 속 오솔길 형태로 조성돼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며, 노약자와 어린이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을 만큼 완만하다. 나무 그늘 덕분에 여름철에도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호국철도기념관, 소나무숲, 대나무숲, 전망대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황토한옥고마

12.8Km    2024-11-27

충청남도 공주시 미나리1길 18-4

천년을 기약하며 건축주가 직접 전 객실을 생황토와 편백으로 마감한 한옥 게스트하우스이다. 바로 앞에 공산성 터미널과 공산성이 위치하고 있고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과의 편안한 힐링여행, 행복한 추억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항상 준비하고 있다.

쌍수정사적비

쌍수정사적비

12.9Km    2025-03-16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쌍수정사적비는 공주 공산성 진남루 서쪽에 위치한 비석이다. 조선 인조 2년(1624) 왕이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에 머물렀던 사실을 기록한 비석으로 숙종 34년(1708)에 건립됐다. 이괄의 난과 인조의 피난에 대한 내력을 쓰고 공산성에 머무른 10일 동안의 행적, 그리고 공산성에 대한 내용을 적았다. 비신은 방형의 오석이며 너비와 두께는 거의 같은 크기이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76년 1월 8일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공산성 쌍수정

공산성 쌍수정

12.9Km    2025-05-07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쌍수정은 공주시 금성동의 공산성 서부 고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이 정자는 조선 영조 10년(1734)에 처음 세웠다. 인조가 이괄이 일으킨 반란(1624)을 피하여 공주로 잠시 피난 왔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다 1970년에 전체적으로 해체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쌍수정은 공산성 정문인 금서루와 쪽문인 진남루 사이에 있어 접근하기 용이한 편이며, 바로 밑에는 백제 추정왕궁지와 쌍수정 사적비가 있다. 공산성 쌍수정은 웅진로, 왕릉로 등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대중교통은 공주 시내버스 정류장을 거치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인근 관광지로는 공산성 외에 은개골역사공원, 산성시장 등의 관광지가 있다.

국립 대전 현충원

국립 대전 현충원

12.9Km    2025-06-16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 (갑동)

국립대전현충원은 지금의 국립서울현충원이 포화됨에 따라 1979년에 대전 유성구 서부에 조성된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 묘소이다. 약 100만 평의 대지 위에 14만여 위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영면하여 유가족 등 참배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품격 있는 안장 의식과 참배 행사를 거행하여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고 있다. 참배객을 위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과거에 쓰이다가 퇴역한 각종 전투기 및 야포, 열차 등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또한, 현충원을 둘러싼 계룡산 줄기를 따라 보훈둘레길을 조성하여 호국보훈의 깊은 뜻을 되새기며 한적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봄에는 꽃 명소로 가을에는 단풍 명소로 풍경이 아름다워 나들이 코스로 추천할 만한 곳이다. 국립대전현충원은 호남고속도로 지선 유성 IC가 가깝다. 그리고 대전 도시철도 1호선 현충원역에서 시내버스나 보훈모시미 셔틀버스를 이용해 방문할 수 있다. 주변에는 계룡산 국립공원, 유성온천, 대전월드컵경기장 등이 있다.

영은사(공주)

영은사(공주)

12.9Km    2025-03-16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길 59-22

영은사는 ‘공산지’에 의하면 조선 세조 4년(1458)에 지은 사찰이며 광해군 8년(1616)에는 이곳에 승장<僧將>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통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곳은 원통전과 강당 격인 영은사 관일루, 요사채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원통전 앞에 영은사 관일루가 배치되어 있다. 특히 이곳은 가을에 볼 수 있는 은행나무와 어우러지는 영은사의 풍경이 멋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공주시의 전경은 물론 금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공주 공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주 공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12.9Km    2025-07-09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로 280

공산성은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백제의 수도가 공주였을 때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의 백제 도성이었으며,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중요한 유적이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포곡형(包谷形)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石城)으로 고쳤다. 쌓은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또는 공산성으로, 조선시대 이괄의 난(1623)으로 인조가 피난한 이후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백제 멸망 직후에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으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이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4방에 문터가 확인되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있다.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있었는데, 993년에 동문터에는 영동루, 서문터에는 금서루를 복원하였다. 암문, 치성, 고대, 장대, 수구문 등의 방어시설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쌍수정, 영은사, 연지, 임류각지, 만하루지 등이 있다. 또한 연꽃무늬 와당을 비롯하여 백제 기와, 토기 등의 유물들과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성곽을 따라 걸으면 공주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백제문화제 기간에는 공산성 앞에서 금강신관공원까지 부교로 건널 수 있다. 금서루에서는 백제왕국의 위풍당당함을 ‘웅진성수문병근무교대식’으로 볼 수 있고, 금강신관공원에서는 밤풍경이 아름다운 공산성 감상이 가능하다.

염선재

염선재

12.9Km    2025-03-11

충청남도 계룡시 사계로1길 16 (금암동)

염선재는 절재 김종서의 7대 손녀이자 사계 김장생의 부인인 순천 김 씨의 재실로 1882년에 건립하였다. 순천 김 씨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17세에 사계 선생의 계배로 들어와 선생이 돌아가신 뒤 삼년상을 치르고 식음을 전폐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에 연산 유림들이 임금에게 글을 올려 광무 10년(1906)에 나라에서 효열의 정려를 내렸고 정부인에 봉해졌다. 정려각은 정려로서는 드물게 다포형식을 취하는 등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자손들이 부군인 김장생의 재실 ‘염수재’를 이어받아 ‘염선재’라 이름 하였다. 건물은 정면 4칸과 측면 2칸의 팔각지붕으로 조선 고종 19년(1882) 건립 당시에는 규모가 작은 제각이었으나, 1913년에 현재의 건물로 중측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