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Km 2021-03-11
경기도 평택시 비전2로 19
031-656-7280
인천 연안부두에서 직접 공수해오는 신선한 조개, 매장에서 직접 제조하는 시원한 육수, 남녀노소 좋아하는 친근한 조개전골과 조개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
4.3Km 2025-08-01
경기도 평택시 비전2로 23 (동삭동)
돼지갈비육미촌 평택본점은 동삭동 법원 앞 도로변에 있다. 주차 공간은 따로 없다. 내부는 넓은 편이고 입식 테이블로 되어 있다. 기본 반찬으로 묵사발과 샐러드, 쌈 채소 등이 나오고, 치즈가 올라간 계란찜도 서비스로 나온다. 메뉴는 돼지양념갈비, 생통갈매기살, 한우생갈비살, 육회 등이 있는데 돼지 양념갈비는 푸짐한 양으로 유명하다. 식사 메뉴는 손으로 반죽한 면으로 만든 물냉면과 비빔 냉면이 있다. 점심 특선 메뉴로는 매운 등갈비찜과 갈비탕, 차돌 된장찌개, 한우국밥과 육회 비빔밥이 있다.
4.3Km 2025-07-31
경기도 평택시 비전5로 20-24 (비전동)
오롯이스시는 평택시 비전동에 있는 초밥집이다. 주문하면 락교와 장국, 샐러드를 준다. 이집은 후토마끼 맛집으로 유명한데 계란, 오이, 새우튀김, 우엉, 단무지, 연어, 참치가 아낌없이 들어있어 바삭하게 씹히는 맛과 고소한 맛, 부드럽고 상큼한 맛이 어우러져 조화롭다. 스시는 광어, 도미, 연어, 간장새우, 참치, 광어지느러미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개별로 나오는 우동도 국물이 시원하다.
4.4Km 2021-03-11
경기도 평택시 서재7길 2
031-657-9370
신선한 회를 공급받아 초밥을 만드는 곳이다. 대표메뉴는 광어초밥이다.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초밥 전문점이다.
4.4Km 2021-03-11
경기도 평택시 서재7길 2
031-618-2655
다양한 한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대표메뉴는 만두다.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한식 전문점이다.
4.4Km 2021-03-16
경기도 평택시 비전2로 73
031-655-3850
세련된 인테리어의 생선구이 전문점이다. 대표메뉴는 생선구이다.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한식전문점이다.
4.4Km 2021-03-11
경기도 평택시 비전2로 29
031-658-3300
다양한 해산물과 고기를 함께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한식전문점이다. 대표메뉴는 조개구이다.
4.4Km 2025-06-17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서원로 312
진아짬뽕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에 있는 중화요리 집이다. 명성만큼이나 오래된 정통 중화요리를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짬뽕이다. 짬뽕에 다진 생파가 올라간다. 짬뽕 고유의 매운맛과 향을 잡아주는 것이 진아짬뽕의 특징이기도 하다. 탱글탱글한 식감이 좋은 면은 다른 중화요리 집의 면보다 얇다. 진아짬뽕은 공도에서 양성으로 넘어가는 덕봉서원로에 있다.
4.4Km 2021-03-11
경기도 평택시 평남로 1063
031-654-5799
동삭해장국은 직접 농사지은 고추가루 및 좋은 식재료를 선별하여 직접 조리하기 때문에 건강하고 안전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메뉴는 선지해장국이다.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한식전문점이다.
4.4Km 2025-08-08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경앙사는 오진영 선생의 문인들이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노주 오희상을 비롯해 간재 전우, 석농 오진영 선생의 학덕과 절개를 기리기 위해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다. 매년 음력 3월 10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건물의 총 26㎡(8평)로 겹처마 맞배지붕의 한옥이며 홍살문, 삼문, 사당 등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현판 액자는 석농의 제자인 월헌 이보림 선생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여기서 경앙은 ‘산은 사람을 우러러보고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므로 천하만인에게 존경받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오희상 선생은 일찍부터 학문에 힘써 성리학의 일가를 이루었고, 정조 24년(1800) 세자익위사 세마가 된 후 여러 차례 벼슬을 하다가 사직하고 광주 징악산에 은거하면서 성리학 연구에 힘썼으며 사망 후엔 헌종 7년(1841)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전우 선생은 경전을 깊이 연구해 당대 최고의 학자라는 평을 들었으며 을사늑약 때 을사오적의 참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이를 전하지도 못하자, 다음을 기약하며 후진 양성에 힘을 썼다. 의병운동과 3·1 운동 등 항일운동이 거셌던 시기라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계화도에서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고 6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오진영 선생은 전우 선생의 제자로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각국의 공관과 정부에 부당함을 알리는 글을 보냈으며, 이수홍과 파리 만국회의에 보낼 공문을 작성하였으나 전달에 실패했다. 1938년 화양동 만동묘 철거를 반대하고 추담별집을 간행, 배포했다. 흰옷과 검은 갓으로 끝까지 항일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