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반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반줄

반줄

0m    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정1길 43-22

명상과 요가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이때만큼은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타인들을 지워버리고,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해야만 한다. 야외에서 진행하는 요가, 명상 등 원데이클래스가 메인 프로그램이지만 춤 명상 원데이클래스와 싱잉볼 힐링 세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몸과 자연이 교감하고, 사람과 사람이 교감하는 시간을 선물받는다.

요가와 명상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마음을 갈무리하기 위한 다도 시간을 갖는다. 매번 다른 종류의 찻잎을 준비하고, 체험생들은 주전부리를 챙겨와 차담을 나눈다. 다도는 각자의 도(茶)가 다 다르다는 것이 묘미다. 차 맛은 우리는 사람의 마음여유라 우리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오래 공들이고 예의를 갖추는 만큼 찻잎이 가진 본연의 가치가 드러난다. 재밌는 건 차를 우리기 전 주전자의 겉에 먼저 뜨거운 물을 적셔 붓질을 한다. 차가운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먼저 부으면 겉과 속의 온도 차 때문에 차의 향과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자연이 주는 고요함 속에서 몸과 마음을 잔잔하게 달래주는 명상과 요가는 반줄의 다도와 닮아있다.

돌돌파이

돌돌파이

10.0 Km    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신복6길 27-5

전주시와 글로우 서울이 함께한 도시재생 프로젝트 ‘MBC 빈집살래3’ 돌돌파이는 호주식 전통 파이의 맛과 한국식 파이맛까지 두 나라의 맛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미트파이 전문점이다. 대표메뉴로는 헤드셰프가 호주에서 한국대사관 요리사로 근무할 당시 즐겨 만들던 호주식 미트파이에 궁중식 갈비찜에서 영감을 바당 윤효선 파티셰가 만든 ‘궁중갈비파이’가 있다. 2시간 동안 정성으로 푹 고아낸 미트필링을 가득 넣어 풍부한 고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오리지널 미트파이’도 추천하는 메뉴이다.

백제가든

10.0 Km    15229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선화로65길 34-10
063-831-3002

30년 전통의 백제가든은 전라도의 향토적인 맛을 맛볼 수 있다. 민물매운탕, 토종닭볶음탕 등의 메뉴가 있으며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주변 관광지로는 익산문화원, 영등동유적, 익산식물원, 원광대학교박물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맛동순두부

10.1 Km    1420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97
063-835-8919

이곳은 100% 우리콩을 사용하여 두부를 만드는 집이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순두부백반이다. 미륵사지 유적, 익산토성, 금마저수지, 서동공원, 축구공원, 익산향교, 사자사지, 금마도토성, 아석정 등이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어 주변 경관을 즐기기에나 명소를 찾기에도 좋은 위치에 있다.

나무솥밥

나무솥밥

10.1 Km    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신복6길 13-2

‘MBC 빈집살래3’ 1호 집 나무솥밥은 돼지감자와 비트, 늙은 호박 등 흙에서 뻗어 나온 자연의 건강함을 가득 담은 ‘솥밥’과 마세 콩가루를 이용하여 콩의 영양분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전두부를 활용한 다양한 ‘두부요리’ 전문점이다. 셰프의 특별 레시피에 한식당을 10년간 운영하며 쌓아온 어머님의 손맛을 담아 매일 솥밥을 지어내며 깔끔하고 다채로운 자연의 맛을 선보인다. 익숙한 메뉴의 메인 재료를 두부로 바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두부요리들과 고소하고 영양이 가득한 콩비지가 함께 담김 총 5가지의 솥밥 항상이 대표메뉴이다. 나뭇잎을 연상시키는 전통적인 허브 묶음인 ‘스머지스틱’을 활용하여 솥밥 맛의 풍미를 더했다.

원조미륵산순두부

원조미륵산순두부

10.1 Km    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97

익산 미륵사지석탑 인근에 있는 전통 순두부식당으로 가족 단위 여행객들은 물론, 현지민들도 많이 찾는 사계절 맛집이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기본 반찬과 함께 당일 생산한 국내산 생두부나 순두부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순두부는 바지락이 들어가 있어 시원하고 칼칼한 맛을 자랑한다. 해물이 듬뿍 들어간 해물파전과 탱탱한 도토리묵 무침도 함께 먹기 좋다. 식사와 함께 인절미가 나와 두부가 나오는 동안 맛볼 수 있다.

익산문화원

10.1 Km    15724     2024-04-30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선화로 529

익산문화원은 지역사회 개발 및 향토 문화의 진흥을 위해 1991년 1월 17일에 설립되었다. 익산문화원은 청소년 여름문화학교, 시·군 농악대회, 전북 민속놀이 출전, 익산문화 유산지와 문화지 발간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외에 다양하고, 흥이 나는 활동에 직접 참여하여 배울 수 있다. 익산문화원의 구조는 1, 2층에 전시실, 3층 휴게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외에 연구실, 소품실(민속행사 소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익산문화원은 1957년 이리공보원으로 개원한 이래로 여러 차례 이전과 통합의 변천사를 겪었으며, 1995년 시·군 통합으로 이리문화원과 익산문화원이 통합하여 지금의 문화원이 되어 익산시 전통문화 전승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가람문학관

가람문학관

10.1 Km    2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가람1길 76 가람문학관

가람 이병기 선생은 익산 출신으로, 우리의 말글과 문화를 지켜내고 시조를 현대적으로 부흥시킨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이다. 가람문학관은 이러한 가람 선생의 현대시조 혁신, 국문학 정립, 한글 및 문화 수호 활동 등 수많은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 그 가치를 계승하고자 개관하였다. 가람문학관은 익산시민을 포함한 전국의 관람객들을 위한 힐링 공간이자 문화인의 교양 함양 공간이다. 주요 시설로는 가람과 마주하기(영상실), 가람의 시조 음미하기(가람실), 가람의 생애 되짚기(상설전시실), 가람 기억 가져가기(체험실), 천호산 말길(세미나실), 용화산 능둠(휴게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제 문화의 진향이 진하게 배어나는 곳

백제 문화의 진향이 진하게 배어나는 곳

10.1 Km    887     2024-01-18

사람들은 ‘백제’하면 부여와 공주를 떠올린다. 그러나 익산도 화려하게 꽃피웠던 백제문화의 흔적들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도시다. 다소 투박하지만 옛정취를 아직까지 간직한 소박한 시골 전경이 오히려 푸근해지는 익산에 피워진 꽃을 만나러 가는 여행이다.

이병기선생 생가

이병기선생 생가

10.1 Km    5183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가람1길 64-8

이 집은 국문학자이며 시조 작가인 가람 이병기 선생이 태어나 살던 곳이다. 조선 말기 선비의 가옥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안채, 사랑채, 헛간, 고방채, 정자 등이 남아 있다. 소박한 안채와 사랑채, 아담한 정자와 연못에서 선비 가옥의 면모를 잘 살필 수 있다. 슬기를 감추고 겉으로 어리석은 체한다는 뜻을 간직한 ‘수우재(守愚齋)’라는 사랑채 이름에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평생을 지조 있는 선비로 살아온 그의 풍취가 은은하게 느껴진다. 가람 선생은 우리 한글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여 일찍이 1930년대부터 조선어문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30년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위원과 ‘선어 표준어’ 사정위원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경남도 흥원경찰서로 끌려가 1년간 옥고를 치른 뒤 고향에 내려와 칩거하였다. 한편 해방 후에는 전북대학교,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국문학을 가르쳤다. 주요 저서로 ‘국문학전사’, ‘역대시조선’, ‘가람문선’ 등이 있다. * 이병기선생 생가 탱자나무(전라북도 기념물) * 탱자나무는 낙엽 활엽 소교목으로 4~5월에 꽃이 피고 9~10월에 탱자가 열린다. 호남과 영남지방에 주로 분포하며 강화도가 북한계선이라고 하나 강원도 양양지방에서도 자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탱자나무의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있어 울타리용으로 많이 식재되었다. 이병기선생 생가의 탱자나무는 흉고둘레 60cm, 높이 5m 정도이며, 수형과 수세가 좋은 편이다. 수령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으나 이병기 선생의 고조부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시기를 기준으로 보면 200년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