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나무집[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매화나무집[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매화나무집[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매화나무집[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6.0 Km    4869     2019-03-18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돌담길 86
010-7130-3002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 슬로시티 내에 자리한 매화나무집은 한옥체험 숙박시설이다. 아담하고 정겨운 명판 아래 대문에 들어서면 한옥에 기대 선 매화나무가 가장 먼저 객을 반긴다. 매화나무의 기둥과 가지를 잘 살린 한옥 건물의 용도는 투숙객을 위한 찻방이다. 찻방 안에는 옛 우물을 그대로 두어 숙박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숙박료에는 조식이 포함되는데, 이곳의 조식은 한옥처럼 정겨운 한식으로 차려진다. 뜨끈한 누룽지와 제철 식자재로 손수 만든 5가지 찬, 양계장에서 바로 가져온 달걀로 만든 달걀찜을 제공한다. 마당 한쪽에는 장독대가 있고 그 맞은편에 이곳 대표가 나고 자란 옛 한옥이 유적지처럼 자리한다. 방 안에 욕실과 주방시설을 갖춰 편의성을 높였다. 이곳 주인은 매화당 농촌교육농장을 함께 운영하는데, 숙박객에게는 체험료를 할인해 준다. 예약 시 문의하면 농장 산책과 더불어 달걀 얻기, 강아지와 10분 산책 등을 즐길 수 있다.

고택 한옥에서[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고택 한옥에서[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6.0 Km    14504     2019-03-18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돌담길 88-9
061-382-3832

한옥에서는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마을로 지정된 담양군 창평면 삼지내마을에 위치한 고택 한옥이다. 고택한옥에서는 아름다운 돌담길과 어우러져 옛 시골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15개의 한옥 객실이 준비되어 있다. 소쇄원과 송강정 등 문화재와 대나무 빼곡한 죽녹원, 전국의 아름다운 길에 매번 손꼽히는 메타세쿼이아 길이 모두 30분 이내에 위치하고 있어 다양한 관광이 가능하다. 널찍한 마당 정원을 가운데에 두고 빙 둘러 고택과 별채, 사랑채, 뜰안채가 자리하고 있으며, 별채와 사랑채는 여럿으로 몸을 나누어 손님을 맞이한다. 한 해 내내 꽃이 피고 지고, 가지가 풍성했다가 앙상해졌다가 그 모습을 달리한다.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인 다실은 널찍하고 탁 트여 있어 마음을 정화시킨다.

담양 창평 삼지내마을[슬로시티]

담양 창평 삼지내마을[슬로시티]

6.0 Km    76645     2020-01-31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돌담길 9-22

* 시간과 정성으로 만드는 달콤한 맛 체험 담양 삼지내마을 *

담양 창평면의 삼지내 마을은 2007년 우리나라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 중 하나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민의 삶과는 상대적으로 자연 속에서 먹거리와 지역의 문화를 경험하며 느리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 이곳에서는 전통 과자라 할 수 있는 한과와 쌀엿을 만들어 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 먹거리 : 약초밥상, 시골텃밭밥상, 죽순나물, 시장국밥
* 인근볼거리 : 죽녹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소쇄원 등

갑을원한옥카페

갑을원한옥카페

6.4 Km    17667     2020-05-27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돌담길 67
061-382-3669

※ 영업시간 11:00 ~ 19:00 담양 창평 슬로시티에 100년 한옥을 전통한옥카페로 새단장하였다. 7개의 룸과 넓은 잔디에는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어 담소 나누기 좋은 곳이다.

금호리조트 [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금호리조트 [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6.8 Km    36034     2019-03-18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옥리길 14-21
010-9510-7783

전라남도 화순군에 위치한 금호화순리조트는 온천레저타운 리조트다. 온천 휴양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220개 객실 전체에 온천수를 공급하고 있다. 연령별, 모임별로 다양한 이용객이 방문하는 만큼 다양한 객실을 구비하고 있다. 부대시설로 한식당과 커피숍, 볼링장, 당구장, 노래방, 슈퍼마켓 등 편의시설과 레저시설을 갖추고 있어 멀리 길을 나서지 않아도 완벽한 여행을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00% 천연 온천수로 즐길 수 있는 물놀이 시설인 화순아쿠아나에서는 스피드슬라이드, 아쿠아플롯트, 아쿠아플레이 등이 있어 온 가족이 함께 물놀이를 즐기기에 적합하다. 모든 객실은 한실과 침실로 되어 있으며 입실 시 선착순으로 배부된다.

전남 담양 창평 [슬로시티]

5.7 Km    30933     2020-10-26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돌담길 56-24

농촌지역으로 토마토, 딸기,시설채소등 도시근교 산업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쾌적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어 전원도시등 개발잠재력이 무한한 인심 좋고 살기 좋은 아름다운 고장이다. 창평(昌平)이라는 이름은 고려초부터 불리어져 지금에 이르고 그동안 文武百官을 배출한 선비고을로 충,효,예와 신의를 지켜온 고장으로 그 명성이 자자하였으며, 임진왜란때의 의병대장 제봉 고경명선생의 둘째아들 학봉 고인후11대 孫인 구한말 의병대장 녹천 고광순 의병대장이 태어난 의로운 고장이며, 현대에는 1906년 4월1일 사립 창흥학교를 창설 개교하여 신학문을 교육한 춘강 고정주, 국무총리,국회부의장, 각부장관 그리고 법조계의 연맥을 이어온 대법관과 언론계의 거목 고재욱, 최초의 공학박사 이승기, 최초의 여성 농업박사 김삼순의 고향이다. 조선시대에 임금님의 진상품으로 유명했던 창평 쌀엿과 한과, 천년의신비를 간직한 죽염, 죽염된장, 전통 떡갈비등 은 우리의 전통식품으로 창평의 자랑거리이다. * 역사 삼한시대 - 구계국(拘溪國) 백제시대 - 굴지현(屈支縣) 신라시대 - 757년(景德王16年)에 기양현(祈陽縣) 고려시대 - 940년(太祖23年) 창평현(昌平縣) 일명 명평 1144년(仁宗21년) 중앙지정관인 현령을 둠. 조선시대 - 1474년(성종5년)-창평현 철폐하고 광주목(光州牧)에 예속시켰다가 김유산(金有山)의 상소로 다시 1479년 창평현이라 하였음. 1758년(영조34년)민백록(閔百祿)이 창평현지(昌平縣誌)를 편저하였고, 1793년(정조17년) 창평현령(昌平縣令)인 조광존(趙光存)이 現 고서면 고읍리에서 現 창평면 창평리 82번지(창평면사무소)로 이전하였음,1895년(高宗32년) 5월26일 남원부 창평군(4등군수)이 됨 1896년(高宗33년) 8월24일 전라남도 창평군으로 9개면을 관할 일제강점기 - 1910년 국권침탈시대 - 창평군(昌平郡) 1914년 2월 28일 부령(部令)제11호(1913.12.29公布)로 창평군 (昌平郡)이 담양군(潭陽郡)으로 편입되면서 창평면(昌平面)으로 개칭됨 ※ 창평(昌平)이란 지명(地名)은 공자(孔子)께서 출생하곳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과 그 지형과 지세가 유사하다하여 명명하였다는 설(說)도 있음. 1990년 4월 1일부로 남면 외동리가 창평면에 편입됨

창평 남극루

5.7 Km    18393     2020-02-24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삼천리

1830년대 장흥고씨(高氏) 고광조(高光馹) 등 30여명이 그 종중의 노인들의 휴식소로 신측하였다고 일려지고 있다. 1919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남극루는 노인성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남극루의 이름의 유래가 되는 남극성이 장수한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즉 남극성은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이라 하여 이를 바라보면 장수한다고 전한다. 이름처럼 창평의 고씨들 30여명이 모여서 노인들의 편안한 여생을 기원하고 즐거이 지내시라는 의미를 담고 지어진 누정이 바로 남극루이다. 이전 창평 관아의 문루를 이축하여 지은 탓인지 웅장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정자에 올라 보면 월봉산의 주봉과 창평의 들녘이 눈에 들어온다.

무진고성지

6.2 Km    24212     2020-10-08

광주광역시 북구 무진성길 190

*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성터, 무진고성 *

무진고성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성터로 무등산의 북쪽 지맥인 장원봉(壯元峰 : 386m)을 중심으로 잣고개의 장대봉( 壯臺峰 : 350m)과 제4수원지 안쪽의 산 능선을 따라 이루어진 타원형 산성이다. 규모는 남북 길이 1,000여m, 동서 너비 500 여m, 둘레 3,500m에 이른다. 성의 이름을 무진고성이라 지은 것은 성을 쌓았을 때 광주를 무진주(武珍州)라 하였기 때문이다.성의 구축은 시내 방향의 능선 아래쪽으로 이루어졌으며, 성 안은 잣고개에서 제4수원지 안쪽 골짜기 속칭 도독골에 해당한다. 이 일대에서 발굴 조사 결과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무진도독(武珍都督) 때의 성이 북쪽 5리(北五里)에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곳을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1988년과 1989년의 발굴 조사에서 이러한 문제를 역사 기록과의 관계에서 규명하고자 하였으나 이곳이 무진도독성이라는 결정적인 자료는 발견하지 못하였다.성은 바깥 면만 돌로 쌓고, 그 안은 돌과 흙을 섞어 채웠는데 1988년~1989년 두 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신라 하대에 처음 쌓았으며 부분적으로 다시 고쳐 고려 시대까지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무진고성의 출토 유물 *

성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관(官), 국성(國城)등의 명문(銘文)이 있는 평기와 조각과 서조문(瑞鳥文), 귀면문(鬼面文), 일휘문(日暉文) 등의 막새기와, 그 밖에 순청자(純靑磁), 상감청자(象嵌靑磁) 등의 자기류가 있다. 특히 잣고개 남쪽 위층 건물지에서 출토된 서조문 숫막새 는 독특한 새(鳥)모양을 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으며, 귀면문 암막새는 역동적인 도깨비 문양이 잘 표현되어 있어 통일 신라와 큰 시대적 차이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출토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중기까지 사용된 성터로 추정된다.

* 남북 길이 1,000여m, 동서 너비 500여m, 둘레 3,500m

고택한옥에서

6.3 Km    0     2020-03-25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돌담길 88-9
061-382-3832

한옥에서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에너지를 채워드리려고 노력하는 고택한옥에서는 한국의 멋과 맛이 살아있는 전통가옥인 한옥으로 지어져있다.

임계서원

6.4 Km    2581     2019-11-27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대로87번길 23-12

삼현의 발상지는 경상북도청도에 소재한 자계서원(紫溪書院) 인바 이 서원은 조선 제18대 현종대왕(顯宗大王) 때 (서기 1660년 : 가락1615년)에 下賜한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臨溪書院은 경상북도 청도의 紫溪 書院 을 본따 湖南에 居住하는 후손 들이 三賢先祖의 神位를 모시고자 서기 1985년 7월에 착공 ~ 서기 1986 년 9월 에 준공하여 매년 봄. 가을 ( 봄 : 음력 3월 25일 . 가을 : 음력 9월15일) 2차례 의 제례를 봉향, 정신적인 구심 처로 삼고자 祭禮를 치르는 祠宇(祭閣)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광사(광주)

6.6 Km    23403     2020-10-20

광주광역시 북구 삼정로66번길 42-10

* 대승불교를 실천하는 사찰, 신광사 *

원래는 광주시 동구 지산동 조선대학교 교내에 있었는데, 1991년 북구 두암동 현재의 위치로 옮긴 대한 불교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이다. 새로이 대웅전, 삼성각, 반야당, 무설당, 일주문 등의 전각을 세웠다.신광사에는 객승과 94세, 89세, 75세 된 노인과 연고 없는 대학생, 여고생, 초등학생들을 보호하고 양육하면서 여법하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신광사는 국태민안과 호국영령을 위하여 매년 제를 올리고 있다.

* 신광사의 창건역사 *

1933년 광주 시내 최동열의 모친 김청재월 보살의 시주금으로 선암사 광주시 서방포교당으로 지산동에 창건되었다. 그 뒤 안혜운 스님이 인수하였다. 1964년 법당이 협소하여 법당과 선방을 중창하였고, 1974년 요사가 낡아 헐어지게 되자 요사와 강당을 중창하였다.근래에는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본사를 옮기고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전법도량으로서 절을 이끌어왔다. 그러던 중 1990년 조선대 교내에 있던 사찰 부지를 팔고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그 뒤 최경주(崔敬柱)스님이 절의 살림을 맡아 1992년 대웅전에 불상과 보살상을 봉안하였고, 요사채, 삼성각, 지하실 등의 대대적인 불사를 하였다.

무등산

6.7 Km    65974     2019-01-29

전남 화순군 이서면
061-379-3503

무등산은 무돌뫼(무진악), 무당산, 무덤산, 무정산, 서석산 등의 별칭을 갖고 있다. 무진악이란 무돌의 이두음으로 신라 때부터 쓰인 명칭이다. 무돌의 뜻은 무지개를 뿜는 돌이란 뜻이다. 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불려진 이름으로, 비할 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란 뜻이다. 무등산에는 수많은 볼거리가 많이 있는데, 어떤 것은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도록 우뚝 솟아있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가까이 가서야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무등산은 오르기에 가파르지 않다. 그래서 휴일이면 무등산의 경승을 즐기려는 인파가 끊이지 않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간편한 옷차림으로 산을 찾는다. 볼만한 풍경이 있는 구경거리는 서석대, 입석대, 세인봉, 규봉, 원효계곡, 용추계곡, 지공너덜, 덕산너덜 등이 있다. 전망을 즐기려면 중머리재, 장불재, 동화사터, 장원봉 등이 있다. 이 중 화순쪽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입석대, 규봉, 지공너덜, 장불재, 백마능선, 규봉암에서의 동복호 조망 등이 있다.

* 무등산의 구성
1) 새인봉
임금의 옥새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인괘봉이라고도 한다. 또 천제등을 향해 엎드려 있으므로 사인을 닮았다 하여 사인암이라고도 한다.
2) 서석대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줄지어 서 있다. 저녁 노을이 들 때 햇살에 반사되어 수정처럼 빛나기 때문에 서석을 수정병풍이라고도 했다고 전한다.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부른 것은 이 서석대의 돌 경치에서 연유한 것이다. 서석대의 병풍바위는 맑은 날 광주 시가지에서도 그 수려함을 바라볼 수 있다.
3) 입석대
석축으로 된 단을 오르면, 5~6각형 또는 7~8각형으로 된 돌기둥이 반달같이 둘러 서 있는데 이를 입석대라 부른다. 이런 절경은 다른 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어 온 입석대는 석수장이가 먹줄을 퉁겨 세운 듯, 하늘에 닿을세라 조심스럽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우람하기만 하다. 옛날에는 이곳에 입석암이 있었고 주변에는 불사의사, 염불암 등의 암자들이 있었다.
4) 규봉
규봉을 보지 않고 무등산을 보았다고 말하지말라 할 정도로, 한 폭의 한국화를 대하듯, 신들이 옥을 깎아 놓은 듯 무등산에서 가장 절경이 빼어난 곳 이 바로 이곳이다. 여기서 멀리 바라보면 동복댐의 물이 손에 잡힐 듯 눈에 선하다. 원래 규봉이란 절 입구에 우뚝 솟은 세 개의 돌기둥이 마치 임금앞에 나갈 때 신하가 들고 있는 홀 같이 생겨서 이를 한자로 취하여 규봉이라 한 것이다. 이 바위를 또 삼존석이라 부르는데 여래존석, 관음존석,미륵존석으로 불리우며 도선국사가 명명했다고 전한다. 또 규봉십대가 있는데 광석대, 송하대, 풍혈대, 장추대, 청학대, 송광대, 능엄대, 법화대, 설법대, 은신대 등이 그것이다.규봉에 는 두 바위 사이로 길이 나 있는데,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어 문바위라 한다. 이곳에는 김덕령장군이 문바위에서 화순 동 면 청궁마을 살바위까지 화살을 쏘고 백마가 먼저 도착하는지를 시험하였다가 화살을 찾지 못하고 백마가 늦었다하여 백마의 목을치니 그제서야 화살이 날아와 바위에 꽂혔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무등의 단풍은 규봉의 것을 제일로 친다.
5) 지공너덜
장불재에서 규봉쪽으로 가다보면 바위무리 바다를 만날 수 있다.이 너덜경은 지공대사가 법력으로 수많은 돌들을 깔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무등산의 대표적인 너덜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천연석굴 은신대가 있는데 보조국사가 좌선수도 했다하여 보조석굴이라고도 한다.
6) 장불재
광주시와 화순군의 경계가 되고 있는 능선고개로 해발 990m의 고갯길이다. 규봉과 입석대, 서석대로 가는 유일한 등산로이다.이전에 동복, 이서 사람들 이 광주를 오갈 때 지나던 고갯마루이다. 정상을 향해 왼편에 서석대,오른편 이 입석대이고, 이서면쪽으로 능선을 따라 돌면 지공너덜과 규봉에 다다른다.
7) 백마능선
장불재에서 방송시설이 있는 쪽으로 펼쳐진 능선인데 가을이면 억새의 흰 손이 바람에 흩날릴 때 마치 백마의 갈기처럼 보인다. 장불재에서 이어지는 고산초원지대이기도 하다.
8) 중머리재
증심사에서 지정 등산로를 따라 동쪽으로 약 3㎞ 올라가면 대피소가 있다. 이곳에서부터 가파른 고갯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중머리재이다. 산 위에 올라가서 편안한 능선이 이어져 있어 사람들이 휴식하기에 적당하다. 이곳을 통하여 더 올라가면 중불재로 가고 이어 입석대, 규봉을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