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Km 2024-12-31
서울특별시 용산구 회나무로44길 10 라쿠치나
02-794-6006
남산 하얏트호텔 정문 앞에 위치한 라 쿠치나는 1990년에 오픈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5개의 파트로 나눠진 주방에서 각 파트를 대표하는 주방장들이 엄선한 메뉴가 제공되며, 주메뉴로는 바닷가재 스파게티와 지중해식 해물모둠 스파게티, 양 갈비 숯불구이 등이 있다. 레스토랑 지하에 700병의 와인을 소장한 초대형 와인셀러가 있어 각국의 유명한 와인을 즐길 수 있으며, 소믈리에와 함께 와인을 고르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 밤이면 테라스 쪽 테이블에서는 남산 서울타워의 야경을 감상하며 분위기 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다.
3.1Km 2025-03-20
서울특별시 강남구 강남대로96길 5 (역삼동)
슈터스클럽은 저렴한 가격으로 도심에서 사격을 할 수 있는 실내 사격장이다. 140평으로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실내 사격장이기도 하다. 공기압 실감 반동 권총, 단발 소총, 볼트액션 저격소총, 소총 120발 연발 사격 등 다양한 종류의 에어 소프트건을 구비하고 있다. 사격장과 함께 다트와 양궁시설도 갖추고 있어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다. 연중무휴로 사격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며 예약은 받지 않고 바로 방문하면 된다. 슈터스클럽 사격장과 함께 에어소프트건을 구매할 수 있는 건샵을 맞은편에 운영도 하고 있다. 수도권 지하철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130m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방문이 용이하다.
3.1Km 2025-04-21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 211 (신사동)
중국어로 ‘모든 일이 뜻대로 되다’라는 뜻을 가진 루위는 프리미엄 중식 레스토랑으로, 다양한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맛집이다. 인근 압구정과 가로수길 일대 맛집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다양한 룸을 보유하고 있어 강남에서 상견례, 소규모 돌잔치, 부모님 생신잔치, 송년회 같은 단체모임 등 각종 모임 장소로 주목받고 있으며, 재방문하는 단골 고객층이 매우 두터운 곳이다. 루위의 대표메뉴는 겉은 바삭바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한 북경오리이다. 육즙이 풍부하게 나오면서 씹는 식감이 독특한 보양식이다. 북경오리는 하루 전 예약 주문이 필수이다. 이외에도 중식 소안심 스테이크, 불도장, 황비홍 라즈윙, 조연중새우 등이 있다.
3.1Km 2025-01-09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 211 동현빌딩
명인등심 압구정 본점은 특등심(1++등급)을 취급하는 한우 전문점이다. ‘한우 특등심이 좋은 집’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2009년 청담동 뒷골목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안정적으로 운영 중이다. 경상북도 안동시의 대형 목장에서 ++ 한우를 직거래로 공급받아 늘 좋은 퀄리티의 원육과 식재료를 사용하여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한다. 대표메뉴는 한우 특등심이며, 신선하고 쫀득한 한우 육사시미를 매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한정으로 판매하고 있다. 또한 강원도 횡성에서 온 된장과 막장의 조화에 밥을 넣어 묵직하게 끓여낸 시골된장죽도 이곳의 또 다른 별미이다.
3.1Km 2025-03-17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호국지장사는 670년 풍수지리설에 뛰어났던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도선국사는 9세기 사람이나 7세기보다는 9세기 후반에 창건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도선국사는 이곳이 칡덩굴이 엉켜있고 약수가 나는 명당이므로 갈궁사라 했다고 전한다. 그 후에는 폐허가 되다시피 한 갈궁사를 고혀 공민왕 때 보인스님이 중창하고 절 이름을 고쳐 화장암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 의하면 1577년에 선조의 생조모인 창빈 안씨(昌嬪 安氏)의 묘를 부근으로 옮기면서 이 절을 능침 사찰로 삼고 이름을 화장사로 바꿨고, 이후 1663년에 중수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뒤 1862년에는 운담과 경해 두 스님이 중건하였다. 1870년에는 운담과 경해 두 스님이 경파루를 새로 지었으며, 1878년에는 주지 서월스님과 경해스님이 대방 등을 수리하였다. 1896년에는 칠성각을 새로 지었고, 1920년에는 주지 원옹스님과 명진스님이 큰방을 수리하였으며, 1936년에는 주지 유영송 스님이 능인전을 중수하였다. 한국 전쟁 이후에는 이곳에 국립묘지가 들어섰고, 1983년에는 호국지장사로 다시 사명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