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칼국수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오케이칼국수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오케이칼국수

오케이칼국수

11.1 Km    2     2022-10-25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고봉로770번길 26-4

오케이칼국수는 고양시 일산동구 설문동에 있는 칼국수 맛집이다. 식당 앞에 넉넉한 주차 공간이 있다. 내부는 입식과 좌식 테이블로 이뤄져 있다. 칼국수가 나오기 전에 보리밥과 김치를 먼저 내온다. 바지락 칼국수에 들어있는 바지락은 해감이 잘 되어 있고 면발이 통통하고 쫄깃하다. 면에 천년초가 들어가서 초록빛이 돌고 면발은 굵고, 구불구불하다. 팥 칼국수는 달지 않으며 부드럽고 되직하게 나온다. 테이블에 설탕을 비치해 놓아 취향에 따라 단맛을 조절하여 먹을 수 있다. 이 집의 대표메뉴인 들깨 칼국수는 고소한 들깻가루를 듬뿍 넣어서 국물이 걸쭉하고, 고소하다.

올리브영 고양동

올리브영 고양동

11.1 Km    0     2024-03-23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혜음로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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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정승묘

황희정승묘

11.2 Km    22493     2024-01-11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정승로88번길 23-81

황희정승 묘는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에 있으며 선생의 유적지로부터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황희는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개성에서 출생하여 27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록이 되었다. 이후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지내 두문불출이라는 용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태조의 적극적인 요청과 동료들의 추천으로 성균관학관으로 왕이 직접 벼슬을 내린 이후 여러 요직을 역임하면서 조선 태종대에 국가기반을 확립하는데 큰 업적을 남겼다. 세종대에는 18년 동안 영의정으로 관직생활을 하며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세종의 성세를 이룩한 인물로 조선왕조 전체를 통틀어 가장 명망 있는 재상으로 칭송받고 있다. 그는 1449년까지 국정을 운영하다 사퇴 후 반구정에 은거 생활하다 1452년에 졸하였다. 묘역은 3단으로 넓게 조성되었으며 묘 둘레는 34m, 높이 4m로 봉분의 규모는 큰 편이다. 묘는 다른 묘의 형태와는 달리 화강암 장대석을 이용하여 전면을 [ㄷ]자 모양으로 전방을 향해 3단의 호석을 쌓아 봉분과 연결시킨 특이한 봉분구조를 보인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밀착되어 있으며 그 정면으로 4개의 화창이 투각된 장명 등이 있다. 봉분 좌측에 묘갈이 위치하며 그 아래로 동자상과 문인석이 각각1쌍씩 서 있다. 묘역 아래 있는 원모재 앞 언덕에 신도비가 있으며 연산군 11년(1505)에 세워졌으며, 신숙주가 짓고 안침이 썼다. 비문이 마모가 심해 1945년 다시 세운 신도비와 함께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두리원 손두부

두리원 손두부

11.2 Km    2     2022-10-24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진천길46번길 22-11

두리원 손두부는 고양시 설문동에 있는 두부 요리전문점이다. 빨간 지붕에 손두부라는 글씨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어 지나는 길에도 찾기 쉽고 식당 앞에 넓은 주차장이 있어 주차도 편하다. 충북 충주에서 계약 재배한 콩으로 오전, 오후 하루 두 번씩 두부를 만들고 있다. 1인 1메뉴 주문이 원칙인 이곳은 다양한 맛의 순두부에 돌솥밥이 제공되는 정식과 2인분 이상 주문이 가능한 두부전골, 보쌈과 함께 즐기는 두부 요리가 있고 맛있는 김치와 함께 먹는 모두부도 별미다. 금방 만든 두부는 부드러우면서 맛이 진하고 무나물, 고추장아찌, 감자조림, 빈대떡 등의 밑반찬도 푸짐하다. 계절 메뉴로 여름에 즐기는 콩국수 맛도 좋고 두부보쌈은 인기가 많아 예약이 필수이다. 일산 가을배추로 직접 담그는 김장맛도 일품이다, 식사 시간엔 항상 대기가 있어 키오스크에 전화번호와 인원수를 입력하고 기다리면 카카오톡으로 알림이 온다.

메밀꽃이피었습니다 일산본점

메밀꽃이피었습니다 일산본점

11.2 Km    3     2023-05-12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고봉로 749

메밀꽃이피었습니다 일산본점은 메밀 요리 전문점이다. 유명한 개그맨이 성공적으로 창업을 이루어낸 음식점으로 알려져 있으며 창업 관련 도서를 출판하기도 하였다. 메밀을 전문으로 요리하며 대표적인 메뉴는냉메밀, 비밀메밀, 들깨메밀 등이 있다. 가게 내부를 살펴보면 메밀의 효능에 대해 알리고 항상 연구하는 자세를 볼 수 있어 고객들에게 맛에 대한 신뢰를 준다.

양주 온릉(단경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양주 온릉(단경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11.2 Km    33029     2024-04-09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호국로 255-41

장흥관광지 인근에 있는 양주 온릉은 조선의 11대 왕 중종의 첫 번째 왕비이자 중종반정 이후 공신들의 반대에 의해 폐출된 단경왕후 신 씨의 능이다. 2009년 지정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 왕릉 중 한 곳으로 사적에 지정되었다. 단경왕후는 신수근과 청원부부인 한 씨의 딸로 1499년(연산군 5년)에 성종의 아들인 진성대군과 가례를 올렸으나 1506년 중종반정으로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인 신수근의 누이가 연산군의 왕비였고, 중종반정을 반대해 반정 추진파에 의하여 살해당하였으므로 반정 공신들의 압력으로 7일 만에 폐위되었다. 능은 본래 친정 집안인 거창 신씨의 묘역에 묘를 조성하였으나, 1739년(영조 15년)에 복위되어 시호를 단경왕후라하고 신주를 종묘에 부묘하였다. 능호는 온릉으로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여 사후 추존된 왕비의 능제인 정릉[태조비 신덕왕후]과 사릉[단종비 정순왕후]의 예에 따라 새롭게 조성하였다. 진입 및 제향 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능은 정남 쪽을 향하고 있으며 능침은 능 뒤에 곡장을 두르고 문인석,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1쌍과 석호 1쌍을 배치하였다. 일반적으로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르고 석양과 석호는 각각 두 쌍씩 봉분 주위에 둘러 세우는데 온릉이 사후 추봉된 경우이기 때문에 이를 생략하거나 축소해 차등을 두게 된 것이다. 송추IC에서 차량으로 약 4분 소요된다. 인근에 장흥관광지(청암민속박물관, 가나아트센터, 두리랜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송암스페이스센터, 장흥자생수목원 등), 송추유원지, 일영유원지, 북한산국립공원, 국립아세안자연휴양림, 필룩스조명박물관, 회암사지 등이 있다.

성령대군묘

성령대군묘

11.3 Km    24498     2023-12-05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이종은 조선 태종의 넷째 아들로서 성녕군에 봉해졌다가 1414년(태종 14)에 대군이 되었으며 대광보국대부의 위계에 올랐다. 어려서부터 태도가 의젓하고 총명하여 부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14살 때 홍역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묘는 대자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데, 장대석 3단을 쌓았으며 주위에 호석(護石)을 둘렀다. 묘소의 좌우에는 석호와 석양이 세워져 있고 묘 앞에는 상석, 장명등을 두었으며 좌우로는 문인석을 배치하였다. 신도비는 팔작지붕 모양의 옥개석과 거북모양의 귀부를 갖추고 검은 수석으로 된 비신을 화강암 우주석에 넣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1418년(태종 18)에 세웠으며 비 전체 높이 300cm, 비신 높이 163cm, 폭 130cm, 두께 25cm의 규모이다. 비문은 변계량(卞季良)이 짓고 글씨는 성개가 썼다.

화석정

화석정

11.3 Km    28825     2024-01-11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화석정로 152-72

화석정이 있는 파주시 파평면 율곡 3리는 율곡 이이가 살았던 곳이다. 율곡리 임진강가 벼랑 위에 자리 잡은 조선시대 정자로, 정자에 서면 바로 밑을 흐르는 임진강을 굽어볼 수 있고, 서울의 삼각산과 개성의 오관산이 아득하게 보인다.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강 건너로 장단평야가 넓게 펼쳐져 많은 이들이 관광 장소로 찾는 곳이다. 세종 25년(1443) 율곡 이이의 5대 조부인 강평공 이명신이 세운 것을 성종 9년(1478) 율곡의 증조부 이의석이 보수하고 몽암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정자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당나라 때 재상 이덕유의 별장인 평천장의 기문 중에 보이는 화석(花石)을 따서 정자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이이가 다시 중수하여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시와 학문을 논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 그의 학문에 반한 중국의 칙사 황홍헌이 이곳을 찾아와 시를 읊고 자연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또한 왜구의 침공에 대비해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이이의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은 선조가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가던 중 한밤중에 강을 건널 때 이 정자를 태워 불을 밝혔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그 후 80여 년간 빈터만 남아 있다가 현종 14년(1673)에 이이의 증손인 이후지·이후방이 복원하였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정자는 1966년 경기도 파주시 유림들이 다시 복원하고 1973년 정부가 실시한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 유적 정화 사업의 일환으로 단청작업을 하고 주위도 정화하였다. 건물의 정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고 내부에는 이이가 8세 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팔세부시(八歲賦詩)가 걸려 있다.

한옥에서 하루를

한옥에서 하루를

11.4 Km    0     2024-03-29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방촌로1294번길 47
031-906-3939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한옥에서 하루를은 160년의 웃음과 추억을 오래된 한옥에 그대로 보존시켜 고즈넉하고 안락한 외할머니댁을 연상케 하는 고택이다. 절구통, 두부를 만드는 기구, 오래된 장독대와 우물, 농기구들이 있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온돌방 2개 침대방 1개와 함께 현대식으로 설비된 주방과 화장실은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바베큐와 불멍, 만화그리기, 양갱만들기, 모스액자 만들기 등 여러가지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묘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묘

11.4 Km    25730     2023-12-07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장흥자연휴양림 인근에 있는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묘는 일명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유명한 조선 후기의 천주교 순교자 황사영의 묘이다. 가마골이라 불리는 흥복산 자락의 황씨 문종 선산에 묘가 있어 가마골 황사영의 묘라고도 한다. 황사영 묘는 집안에서조차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1980년 족보를 확인하는 작업 중에 추정되는 무덤을 발굴하고 황사영의 것임을 확인했다. 1988년 10월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가 무덤 옆에 추모비를 세웠다. 당시 무덤에서 석제 십자가와 비단 띠가 들어있는 항아리, 그 안에 토시가 든 청화 백자합이 출토되었다. 황사영은 어린 나이로 초시에 합격하여 조선 정조가 친히 그의 손을 어루만지며 격려한 일이 있는데 명주로 만든 토시로 국왕이 만진 손목을 평생 감싸고 다녔다고 한다. 무덤에서 발견된 토시가 바로 그것으로 추정된다. 출토된 유물은 창원 황씨 판윤공파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2004년 한국교회사연구소에 기증하였고, 2009년에는 절두산 순교성지에 있는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황사영(1775~1801)은 남인계 가문 사람으로 본관은 창원, 자는 덕소, 세례명은 알렉시오이다. 황사영은 정난주 마리아와 혼인하였는데 그녀는 정약현의 큰딸이자 다산 정약용, 정약종의 조카이며, 고모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영세자로 신유박해 때 순교한 이승훈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신앙을 받아들인 황사영은 1801년(순조 1) 신유박해를 피해 충청북도 제천의 배론으로 피신 중에 이른바 [황사영의 백서]를 작성해 북경의 프랑스 선교사인 구베아 주교에게 전달하려다 발각되었다. 27세의 나이에 대역죄로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 당했고, 그의 어머니는 거제도로, 처는 제주도로, 돌을 넘은 외아들 황경한은 추자도로 유배당해 모두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백서는 당시 조선 천주교회의 전개 상황 및 사회상 등을 알려주는 초기자료로 신앙의 귀감으로 교회사적 평가를 받고 있으나 포교의 자유를 얻어내기 위하여 청나라의 간섭이나 서양의 무력 사용을 요청한 점은 민족사적 입장에서 외세를 끌어들이려 하였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다. 백서 원본은 원래 100여 년 동안 의금부 창고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을 1894년에 오래된 문서를 정리하면서 우연히 발견해 당시 서울 주교로 있던 뮈텔이 1925년 한국 순교자 79위의 시복 때 교황 피우스 11세에게 바쳐 현재 로마 교황청 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황사영 묘는 제주도, 추자도에 있는 그의 처, 아들의 묘와 함께 천주교 성지로 많은 순례자가 찾는다. 근래에 황사영 묘 앞에 있는 외벽이 특이하게 돌로 건축된 3층 식당 건물을 사들여 찾기 쉽도록 크게 황사영 순교자의 묘라고 현수막을 달아 놓았다. 그 건물 오른쪽 뒤편에 바로 황사영의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