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향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부안향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부안향교

14.7 Km    16800     2024-01-30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당간지주1길 15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ㆍ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1414년(태종 14)에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0년(선조 33)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 각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명륜당과 만화루, 양사재, 동재, 서재, 홍살문, 하마비가 있다. 부안향교에서는 부안의 문화재를 관광자원화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부안 문화재 야행] 프로그램 중 [야숙 : 향교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다.

서외리 당간지주

14.7 Km    1661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부안군청 인근에 있는 당간지주이다.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둔다. 이 깃발을 꽂아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의 양쪽에 서서 이를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드물게 당간이 남아있으나, 대개는 두 지주만 남아있다. 이 당간지주는 당간과 당간지주가 모두 남아 있는 경우로 네모난 받침돌 위에 당간지주를 세웠고, 그 사이에 놓인 당간은 방형기단 위에 지주를 세우고 몇 토막의 화강석주를 철 띠로 연결한 특이한 형태이다. 높이가 7.45m에 이르나 정상에 끊긴 흔적이 있어 원래는 훨씬 더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인근에 부안향교, 서림공원, 서림공원유아숲체험원, 혜원사가 있다.

원평장 (4, 9일)

원평장 (4, 9일)

14.7 Km    7156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6길 39-8
063-540-3614

김제 원평공설시장은 조선 선조 때부터 장이 형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동학혁명 때는 농민군의 활동이 원평장터를 중심으로 번성하였다.

쌍용사(김제)

14.9 Km    19174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1길 70-11

쌍용사는 김제시 구성산에 자리한 한국불교 태고종 사찰이다. 법성(속명 김용진)은 신도들로부터 흠앙을 받아가며 1955년 쌍용사를 중창하였는데, 이 절은 대가람을 이룩한 영험도량으로 이름이 났다. 법성은 1945년부터 전국 명산을 돌며 산신 기도에 열중하다가 병마에 시달리는 중생을 구제하고자 구도의 길로 들어섰다. 한편, 쌍용사 내에 위치한 구성산 쌍룡사 안내문에는 창건자를 김금남(속명 김옥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곳은 조선 최고의 역모 사건인 기축옥사 때 죽은 정여립 문중의 사당터였다고도 하며, 지금도 그 당시 사당의 용마루가 남아 있다. 쌍용사에는 대웅전과 연화탑, 염불전, 산신각, 명부전, 칠성각, 용궁각, 요사, 사천왕문이 있다. 석조 조각품도 많은데 석탑과 미륵입불상, 약사여래불, 미륵좌불, 연화교 연꽃석등, 연두석, 석등, 창건비, 중창비, 용두석 등 마치 석불 전시장을 보는 듯 하다. 쌍용사는 민족 토속신앙인 당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는 사찰로 불교와 토속신앙이 공존하는 곳이다.

학선암

14.9 Km    18146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구성3길 522

학선암은 김제시 금산면 구성산 중턱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창건은 분명하지 않지만, 통일신라시대 말에 함월스님에 의해 이루어졌다거나 혹은 고려 초기인 988년(성종 7)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데, 그에 관한 확실한 문헌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조선 중기에는 진묵 일옥(1562~1633)스님이 머물렀다고 한다. 근대에는 1913년에는 윤문주 스님이 중창했고, 최근에는 1980년 도웅 스님이 주석하면서 수행도량으로서 모습을 갖추었다. 1992년에 인법당을 고쳐 지었고, 이듬해에는 요사를 중건하고 칠성각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학선암이 자리하고 있는 구성산은 높지는 않지만 제법 가파른 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되고, 송곳바위와 넓은 김제평야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등반을 겸하기에 좋은 곳이다.

두곡서원(김제)

15.0 Km    1535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9길 31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립 교육 기관이다. 두곡서원은 1634년(인조 12)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몽주, 강원기, 함부림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2년(고종 9)에 훼철되었다. 1901년 유림에 의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향사를 지내오다가 1970년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신문, 4칸의 영모재, 숭의문 등이 있으며, 사우에는 정몽주와 강원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영모재는 강당으로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된다.

설화공원

15.0 Km    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농생명로 100

전라북도 완주군에 자리잡은 행정안전부 지방자치인재개발원 주변으로 숨겨진 설화공원이 있다. 공원을 산책하며 가벼운 운동을 하기에 좋은 곳으로 설화공원을 따라 광석제까지 약 2km가 소요된다.

조만영의벌떡순대국

조만영의벌떡순대국

1.5 Km    2     2024-04-30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남북로 151

조만영의벌떡순대국은 김제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순댓국 전문점이다. 점심시간에는 웨이팅이 필수일 정도로 많은 손님이 찾는 곳이다. 회전율이 높은 식당인 만큼 자리에 앉자마자 밑반찬이 세팅된다. 부추무침, 깍두기, 새우젓, 고추, 양념장 등이 차려진다. 셀프바도 마련되어 있어 부족한 반찬은 리필해서 먹을 수 있다. 음식은 포장해 갈 수도 있다.

법인정사(김제)

15.1 Km    15459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선비로 1126-26

김제에서 금구 경유 전주로 가다 금천저수지 조금 못 가서 오른쪽 편에 대화리 삼받실 마을 초입에 있는 법인정사는 1991년 6월 김진영 스님이 마을 초가집을 사서 개조해 불당을 모시고 창건했다. 포교당처럼 큰 법당에 석가모니 부처님과 대세지보살, 약사여래, 관세음보살을 모시였다.

정읍 전봉준 유적

15.1 Km    18512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조소1길 20

이곳은 녹두장군인 전봉준(1854~1895) 선생이 동학운동을 일으킬 당시 거주하였던 집이다. 고종 31년(1894) 갑오 동학 혁명 당시 전봉준이 살았던 오두막집으로 흙담 4칸 집이다. 그런데 서편으로 한 칸을 근래에 붙여 지은 것으로 원래는 방 1칸, 광 1칸, 부엌 1칸으로 당시 우리나라 가난한 농민들이 살았던 전형적인 가옥 형태이다. 이 고택은 기리 보존하기 위하여 정읍시에서 1974년에 크게 수리한 집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안채(초가)는 높이 15㎝의 잡석의 축대 위에 세워졌다. 일반적으로 부엌은 서쪽에 위치하여 이에 이어서 큰방과 윗방이 배치되는 것인데 이 집은 이 순서를 무시하고 있다. 끝방은 살림살이 등을 넣어두는 용도로 사용된 것 같다. 큰방과 윗방은 장지로 칸막이가 되어 필요한 경우 터놓을 수 있으며 천장은 두 가지 다 연동 천장이다. 그리고 두 방의 전면에는 퇴를 놓았으며 대살문으로 드나드는 끝방 전면에 반쪽에는 짧은 담을 두르고 이곳에 땔나무 등을 두었으나 이것이 본래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부엌의 전후벽에는 널문을 달아 필요한 때에는 잠글 수도 있도록 되었다. 대문의 동편에는 잿간을 겸한 변소가 있으며 출입문으로는 한 짝의 열매문을 달았다. 주위에는 흙담이며 짚으로 된 이엉을 덮었다. 전봉준의 공초록에는 이 곳에 와서 수년이 되었다고 했는데 촌로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 이웃 마을 양교리(양간다리)에서 옮겨온 것이라 한다. 갑오년 1월에 봉기한 후 안핵사 이용태가 내려와 동학교인이라고 지목되는 사람의 집을 모두 불질러 버렸는데 이 때 전봉준의 집도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 동안에 이론(異論)이 있었으나 1974년에 보수를 하면서 해체 작업을 하는 중에 밝혀진 상량문에 무인(戊寅) 2월 26일(고종 15년 1878) 세운 것으로 되었으니 어쩌면 전부 타지는 않고 남아 있는 폐옥을 보수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