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성동헌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흥성동헌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흥성동헌

14.8 Km    14915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흥덕면 동헌길 4

흥성동헌은 선운산IC 인근 고창 흥덕면 소재지에 위치한 조선시대 관아 건물이다. 이 건물은 본래 흥덕객사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1983년 해체보수하는 과정에 상량문이 발견되어, 이를 통해 동헌이었음이 밝혀졌다. 상량문에는 흥성읍성의 동헌을 1807년(순조 7)에 이전하였다고 적혀 있다. 흥성은 흥덕의 옛 지명인데, 1914년에 무장면과 함께 고창군에 통폐합되었다. 흥성동헌은 홑처마지붕을 얹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그 규모가 아담하다. 건물의 양쪽 끝에는 온돌방, 정면 세 칸은 마루를 깔았다. 보통 국왕의 위패를 봉안하고 국왕이 있는 수도를 향해 예를 갖추는 정당과 함께 좌우에 여러 물품을 보관하는 익실을 따로 두는데 흥성동헌은 한 건물 안에서 모든 업무를 해결하였다. 1976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주변에는 서해 줄포만, 동림저수지, 선운산, 선운사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부안오디 하늘숲농장

부안오디 하늘숲농장

14.8 Km    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줄포면 선돌로 1377-13

부안오디 하늘숲농장은 오디(뽕나무 열매)와 약용식물을 재배하는 곳이다. 과거 농장대표인 조인환 씨가 콘크리트에 못을 박다 눈을 다쳐 실명위기에 처했으나, 오디를 먹고 시력을 회복했다는 내용이 방송을 타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안토시아닌과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오디를 저염장 등 조미료로 만들어 꾸준히 섭취한 결과 눈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방송에 출연한 한의사는 '오디는 시력을 강화해주고 머리를 검게 해준다'는 동의보감의 기록을 들어 그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농장은 직접 찾아오는 방문객에게 오디따기 체험기회를 제공한다. 맨손으로 오디를 따면 진한 오디 물이 손톱 밑을 까맣게 만들기 때문에 비닐장갑착용은 필수이다. 단순작업이지만 중간중간 달콤한 오디를 입에 넣는 재미가 쏠쏠하다. 즙이 풍부해 어느새 입술은 자줏빛으로 변한다. 농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오디즙, 오디발효액효소, 오디식초,​ 뽕잎차 등을 판매하기도 한다.

일곱식구 캠핑장

일곱식구 캠핑장

14.9 Km    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행단1길 153

일곱식구 캠핑장은 전북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자리 잡았다. 정읍시청을 기점으로 26km가량 떨어졌다. 자동차를 타고 정읍대로와 태산로를 번갈아 달리면 닿는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25분 안팎이다. 캠핑장에는 글램핑 7개 동이 마련돼 있다. 내부에는 침대, TV, 테이블, 개수대, 취사도구, 조리도구, 화장실, 샤워실 등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시설이 완비돼 있다. 오토 캠핑 사이트도 함께 운영 중이며, 카라반과 트레일러 동반 입장이 가능하다. 반려동물은 목줄과 배변봉투 등을 지참하면 함께 출입할 수 있다. 주변에는 내장산국립공원이 있어 연계 여행에 나서기 좋다. ※ 반려견 동반 가능(소형견만 가능)

남창농원

남창농원

15.0 Km    2     2022-10-31

전라남도 장성군 남창로 340-22

전라남도 장성 남창계곡을 끼고 있는 식당으로 닭백숙과 닭볶음탕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시원한 계곡을 즐길 수 있어 여름철에는 특히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주차장을 갖추고 있으며, 계곡 옆에 자리도 널찍하게 마련되어 있다. 과일, 간식류 등 포장된 음식을 반입할 수 있다. 단, 컵라면, 삼겹살 등의 취사는 안 되고, 외부 주류도 반입할 수 없다. 닭백숙, 닭볶음탕 등의 보양식을 판매하고 있어, 어르신들을 모시고 방문하는 가족 단위 손님들이 즐겨 찾는다. 별내리마을이 주변에 있어 연계 관광하기에도 수월하다.

줄포장 (1, 6일)

줄포장 (1, 6일)

15.0 Km    1109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줄포면 서빈3길 7
063-580-4612

옛날에 줄포는 부안군 남부의 농산물과 수산물이 거래되던 물산의 집산지였다. 전라남도의 법성포, 충청남도의 서천과 함께 남부 서해안의 3대 포구로서 조기잡이철에는 칠산어장과 위도근해어장에 많은 객주들이 모여 조기와 젓갈류의 집산과 매출이 활발했으나 곰소만의 매립으로 옛날의 영화는 찾을 수 없다. 줄포면 줄포리의 줄포장은 1·6일에 열린다. 조선 말기부터 객주의 활동과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던 장으로 곡물·어류·젓갈류의 거래가 활발하다. 그러나 교통의 발달로 부안과 정읍에 기능을 빼앗겨 현재는 크게 위축되었다.

고창 고색창연마을 [농촌전통테마]

고창 고색창연마을 [농촌전통테마]

15.0 Km    1813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1길 65

방장산이 마을 남쪽 방향으로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조망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덕화천이라는 하천이 흐르고 있다. 특히 오래된 당산나무 두 그루가 있어 매년 촌제라고 부르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고창 고색창연마을은 고창복분자와 기타 잡곡을 중심으로 한 밭농사와 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뒤로는 방장산이 있어 등산을 하기 좋고 양반 중심의 전통이 살아 있어 옛 선비들의 혼이 살아있는 마을 돌담과 전통가옥들을 만날 수 있다.

구암사(순창)

구암사(순창)

15.1 Km    24144     2024-05-21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

구암사는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서북단 노령산맥에 있는 사찰이다. 백제 무왕 37년(서기 636년) 숭제선사에 의해 창건하였고 1392년(태조 원년) 각운선사가 중창하였다. 구암사라 함은 사찰 동편 지점에 숫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고, 대웅전 밑에는 암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암사라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중요 문화재로는 월인석보(보물 제745-10호 지정. 1459년 세조 5년. 초간본)를 소장하고 있다. 월인석보는 세종대왕의 월인천강지곡과 세조의 석보상절을 합편한 최초의 불경 언해서로서, 한글 변천 과정과 인쇄 연구 등에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흥덕향교

흥덕향교

15.2 Km    16356     2024-02-02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흥덕면 흥덕향교길 28-12

1621년(광해군 13) 창건되었고 1675년(숙종 1) 당시 흥덕현 유림들의 숙원으로 숙종의 어명에 의해 중건되었다. 자연경사를 따라 앞쪽에는 강학공간인 명륜당, 뒤쪽에는 문묘공간인 대성전을 두어 전학후묘를 이룸으로써 향교 건축의 전형적인 배치양식을 따랐다. 이곳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의 4성(안자·증자·자사·맹자), 중국 송대의 4현(주돈이·주희·정명도·정이천), 한국의 18현(설총·안향·김굉필·조광조·이황·이이·김장생·김집·송준길·최치원·정몽주·정여창·이언적·김인후·성혼·조헌·송시열·박세채)을 배향하고 있다. 향교 진입로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흥덕 당간지주(불화를 걸던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좌, 우에 세우던 기둥)가 있는데 근처에 고려시대까지 갈공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유천서원(부안)

15.2 Km    1465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보안면 영전길 89-38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줄포IC 인근에 있는 유천서원은 1711년(숙종 37)에 건립되어 부안 출신의 조선 중기 문신이자 문학자인 동상 허진동(1525~1610), 역시 부안 출신의 조선 중기 학자인 죽계 김횡(1541~1590)과 화곡 김명(1545~1619) 등을 배향하였다. 그러다 1865년(고종 2)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99년에 복원되었다. 지금은 외삼문과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사당이 복원되어 있다. 주변에는 서해 줄포만, 곰소항, 변산반도국립공원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으며, 줄포시외버스터미널이 멀지 않아 대중교통도 비교적 편리하다.

장성원덕리미륵석불

15.2 Km    16865     2024-01-26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원덕리

장성 원덕사 경내에 있는 원덕리미륵석불은 돌기둥 모양으로 가슴 아래의 몸체를 먼저 만든 뒤, 그 위로 가슴부터 머리까지는 다른 돌을 얹어 조각하였으며 얼굴, 손, 옷 주름 등을 표현하였다. 머리에는 옥개석과 같은 8각의 넓은 보관을 쓰고 있고, 얼굴은 큼직한 사각형 모양이며, 큰 눈과 뭉툭한 코 그리고 두터운 입술 등의 표현이 석장승과 같은 토속적인 수호신의 표정을 짓고 있다. 석불이 있는 원덕마을은 갈재 남쪽 계곡의 수구에 해당하므로 장성의 북쪽에서 악귀를 막던 비보장승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입체감 없는 신체는 왼손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내린 모습으로 얼어붙은 듯 경직되었다.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앞면에만 주름이 표현되었는데, 가슴 아래부터는 반복적인 선으로 돋을새김했다. 근엄한 인상보다는 토속미 넘치는 친근한 인상을 주는 작품으로 모양이나 기법 등에서 볼 때 만들어진 연대는 고려말 또는 조선초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