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Km 2025-10-23
충청남도 청양군 남양면 만수로 1202-20
시원한 자연을 관망하고 넓은 자연경관이 그대로 살아있는 글램핑이다. 하루 종일 물소리, 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속삭이듯 자연을 품은 글램핑장은 밤이면 머리 위로 별들이 쏟아질 듯 보이며 밤의 숲에서는 이름 모를 풀벌레의 노래와 반딧불이 빛나는 곳이다. 부대시설로 대형수영장과 워터슬라이드가 있어 여름철 물놀이가 가능하며 조식 제공과 바비큐 무한리필 서비스가 있다.
19.6Km 2025-08-14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라면 소룡길 15-14
익산 아홉마디 풀향기 마을은 아늑한 남병산 산자락 아래 위치하며, 마을 어귀에는 소룡지가 있고 저수지 주위에는 오래된 왕버들이 자생하고 있는 산과 물이 조화되어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생태환경이 잘 보전되어 있는 마을이다. 2006년 농촌 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었으며 구절초 꽃 체험(꽃 차 마시기, 향주머니 만들기)을 비롯하여 계절에 맞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9.7Km 2025-03-18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성향교길 133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남포향교는 조선 태종 13년(1423) 웅천면 대천리에 창건되었으며 중종 25년(1530)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고, 1975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2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남포향교의 전체적인 배치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외삼문, 내삼문, 동재, 서재 등이다. 주변 관광 명소는 남포읍성, 옥마산, 남포 관아문, 보령시 옥마산 패러글라이딩 체험이 있다.
19.7Km 2025-03-17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성향교길 133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남포향교는 조선 태종 13년(1423) 웅천면 대천리에 창건되었으며, 중종 25년(1530)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고, 1975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향교 건물의 배치는 대성전과 명륜당, 서재를 갖춘 전학후묘의 배치 방식을 따르고 있다. 보통 향교에는 기숙사로 사용하는 서재와 동재가 있는데 남포향교에는 동재는 없고 서재만 있으며, 이마저도 향교를 관리하는 고직사를 겸하고 있다. 주변 환경으로는 남포향교 정면에 서면 옥서리 저수지와 남포 들녘,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로는 성주산 옥마봉이 우뚝 서 있다. 인근의 관광 명소는 옥마산, 남포읍성, 남포 관아 문, 보령시 옥마산 패러글라이딩 체험이 있다.
19.8Km 2025-03-19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27번길 30-5
구 강경노동조합은 1925년에 건립된 근대 건축물이다. 강경은 금강을 거쳐 서해와 연결되고, 내륙으로도 접근하기 쉬워 일찍부터 상권이 발달한 도시이다. 그러한 이유로 강경시장은 평양, 대구와 함께 전국 3대 시장으로 손꼽혔으며, 강경포구는 원산포구와 함께 전국 2대 포구로 불릴 만큼 각종 해산물과 공산품의 거래 및 이동이 활발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탈의 창구로써 1920년대에 이르러 내륙의 수산물 유통은 대부분 강경포구를 거쳐 전국으로 운송될 만큼 번성하였다. 당시 강경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수가 2,000~3,000명에 달하였고, 하루 약 200여 척의 배가 하역 작업을 할 만큼 활성화되었다. 강경노동조합 건물은 1925년 당시 조합장인 정흥섭이 개인 재산 5,000원을 들여 한식 목조건물로 조합 사무실을 지은 다음, 같은 해 10월 3일에 완공하였다. 당시 건물은 바닥 면적 70.08㎡의 2층 구조로 연면적 140.16㎡ 규모였고,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1층 전체를 개방하여 사무공간으로 사용하였다. 강경노동조합은 1953년에 전국부두노동조합 강경지부 연맹체제로 바뀌었고, 이후 강경연락소로 축소되었다가 결국 해체되었다. 강경노동조합 건물도 1935년 이후 본래 용도와 상관없이 공장, 창고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1940년대 사진 자료를 보면 건물 모습이 현재와 같은 단층 구조로 바뀌게 된다. 이는 노동조합의 쇠락과 연관 지어 이해할 수 있다. 강경노동조합은 국가등록문화유산인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강경 갑문, 강경 채운산배수지 등과 함께 근대 강경의 번성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