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보은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보은산

보은산

0m    18572     2018-07-09

전남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

보은산(해발 439.0m)은 강진읍을 굽어보고 있는 강진의 진산이다. 멀리서 보면 소가 풀을 뜯어먹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 해서 우두봉이라 한다. 충혼탑에서 오르는 길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면 좌ㆍ우측에 천연 녹차나무와 리기다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강진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산으로 충혼탑에서 돌샘에 이르는 오솔길은 이른 아침 그윽한 솔내음이 그만이다.
강진읍 주민들이 새벽 4시부터 등산과 산책을 겸할 수 있는 운동코스로 하루에도 5백여명 정도의 주민들이 찾고 있고 이른 새벽 돌샘 약수물은 그 맛이 일품이다. 돌샘에서 약수를 한 통 담아 정상으로 올라가면 강진만의 비릿한 바다내음과 강진읍내가 한 눈에 펼쳐진다. 특히 봄철 보리싹이 돋아 오를때 가족과 함께 찾으면 더할 나위없는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 주변에 모란향내 그윽한 영랑생가와 금곡사, 다산 정약용 선생이 보은산방에서 머물렀던 고성사 등이 등산로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역사기행을 겸한 산행코스로 적격이다.
충혼탑에서 시작하여 약수터(돌샘)를 경유, 소나무 숲을 지나 우두봉 정상에 오르면 강진의 드넓은 갯벌이 펼쳐지고 뒷편 북쪽으로 국립공원인 월출산의 웅장한 위용이 눈앞에 다가서게 된다. 정상에서 일봉산, 산태봉을 거쳐 금곡사에 이르는 코스와 삼거리에서 돌샘을 거쳐 고성사를 경유하여 우두봉 정상에 오른 다음 군동면 파산리 장미산장으로 가는 코스가 있으며 경사가 급하기는 하나 위험한 곳은 없으므로 어린이와 부녀자들도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부드러운 길이다. 산행시간은 3시간 정도 소요됨으로 가족과 함께 오전 산행을 한 다음 그 유명한 강진 한정식 집을 찾아 맛깔스런 음식을 즐겨 먹을 수 있어 가족산행으로 권장할 만하다.

강진향교

강진향교

690m    16018     2019-04-18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향교로 140

1398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서 창건되었다. 1613년에는 이 지역출신 입방자(入榜者)들이 의금(義金)을 내고 군수 정인(鄭寅)의 도움을 받아 사마재(司馬齋)를 건립하였으며, 1858년에는 군수 심의찬(沈宜贊)이 향교를 중수하였다. 1901년과 1919년에는 대성전을 중수하였으며, 1935년에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내삼문·외삼문·재실 등이 있으며, 대성전 안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과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소장전적은 판본이 65종 84책, 사본 7종 9책이 있다. 이 중 ≪청금록 靑衿錄≫·≪사마안 司馬案≫ 등은 이 지역 향토사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이 향교는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진영랑생가

강진영랑생가

1.5 Km    35543     2019-06-05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5

영랑 김윤식 선생은 1903년 1월 16일 이곳에서 김종호의 2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채준으로 불렀으나 윤식으로 개명하였으며 영랑은 아호인데 문단활동시에는 주로 이 아호를 사용했다. 영랑 선생은 1950년 9월 29일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80여편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60여편이 광복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쓴 작품이다.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거한 후 몇 차례 전매 되었으나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관리해 오고 있는데 안채는 일부 변형 되었던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하였고, 문간채는 철거 되었던 것을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에 복원하였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규모 : 생가일원(5,083㎡)

전남 강진군

전남 강진군

1.5 Km    19350     2015-02-05

전라남도 강진군

전라남도 서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은 장흥군, 서쪽은 해남군, 남쪽은 강진만, 북쪽은 영암군과 접하고 있다. 전체 면적이 500㎢이며, 총 인구는 39,483명(2015년 1월 기준)에 이른다. 1읍 10면 112개 법정리로 되어 있으며 군청소재지는 강진군 남성리이다.

* 자연환경
동.서.북의 삼면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줄기로 둘러싸여 비교적 높고,남서쪽에는 강진만이 자리잡고 있다. 중앙부에는 산맥이 동서로 가로질러 있으며, 그 사이에 평야가 분포한다. 군내 최대의 하천은 탐진강과 그 지류인 금강이며, 하천 연안에는 충적평야가 발달하였다.

* 역사
고대 - 삼국시대에 백제의 도무군과 동음현이 이 지역에 설치되었으며, 삼국통일 이후 757년(경덕왕16)에 도무군을 양무군으로, 동음현을 탐진현으로 개칭하였다.
고려 - 940년(태조23)에 양무군을 도강현으로 개칭하고, 1018년(현종9)에 영암군에 속하게 하였으며, 1172년(명종2)에 감무가 설치되었다. 탐진현은 처음 영암군에 속하였다가 후일 장흥부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 - 1417년(태종17)에 도강, 탐진 두현을 합쳐서 강진현으로 만들었으며, 현의 치소는 이후 1429년(세종11)에 도강의 송계로 옮겨졌다가 1475년(성종6)에 탐진으로 되돌아왔다.
근대 - 1914년에 현재와 같은 강진의 윤곽이 이루어졌으며 1936년에는 강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현대 -1983년에 신전출장소가 면으로 승격되었으며 1986년에는 마량출장소가 면으로 승격되었다.

* 문화
문화제 - 문화관광부지정 최우수축제로 선정, 국제적인 행사를 치루게 될 청자문화제는 한국예술사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문화 유산인 고려청자를 세계인에게 알리는 기회로 삼기 위해 오는 강진군 청자촌 일원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강진군과 청자문화제 추진위원회의 주관으로 개최되는 청자문화제의 주요 행사로는 청자전시판매, 청자가마기원제,청자빚기체험활동, 청자공모전, 청자 학술세미나, 고려전통문화체험, 도예작가 워크샵, 향토음식축제 등이 있다.

민속 - 민속놀이로는 땅뺏기놀이, 줄다리기, 다리밟기 등을 들 수 있다. 땅뺏기놀이는 이 지방 특유의 민속놀이로 1975년 호남지역 민속축제인 남도 문화제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 놀이는 6월 유두나 7월 백중에 행해진다. 두 마을의 농군들이 영기, 각각 청룡과 백호를 그린 덕석기를 자기편의 들녘에 꽂고 모심기에서 김매기 까지의 과정을 '농부가'를 부르면서 진행한다.
그것이 끝나면 각기 풍년을 기원하는 농악놀이를 한바탕 벌이고는 상머슴을 황소에 태우고서 마을로 돌아간다. 이 때 외길에서 이웃 마을의 농부행렬과 맞부딪쳐 길을 비키지 않으려고 싸움을 벌이는데 상대방의 덕석기를 먼저 넘어 뜨리는 편이 이긴다. 농토와 황소를 걸고 겨루는 이 싸움에서 이긴 쪽은 진쪽으로부터 황소와 함께 농토를 넘겨받아 그 해 수확을 차지하게 되고, 잇달아 세 번 이기게 되면 농토를 완전히 넘겨받게 된다. 이 놀이는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군동면 화산리에서만 행해지고 있다.

강진 영랑문학제 2019

강진 영랑문학제 2019

1.5 Km    22032     2019-04-19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5
영랑기념사업회 061-434-0103

강진이 낳은 20세기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 영랑 김윤식 선생에 대한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그의 높은 민족사상과 심오한 시심을 널리 알리고자 모란꽃이 만개한 봄을 맞이하여 문학제를 개최한다.

한반도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남도답사1번지 청자골 강진은 동ㆍ서ㆍ북면이 노령산맥의 힘찬 두 지맥으로 내달려 오다가 남쪽은 짙푸른 강진만의 해안, 북쪽은 천황봉을 분기점으로 영암군, 서쪽은 병풍처럼 둘러진 주작산과 석문산의 경계로 해남군, 동쪽으로는 수인산과 천태산을 경계로 장흥군, 남으로는 내륙 깊숙이 만입된 강진만 너머로 완도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어 사통팔달의 교통의 요충지인데다, 기름진 평야와 청정해역이 있어 산물이 풍부하고 인심이 후덕한 문림옥향이다.

강진 금곡사 삼층석탑

강진 금곡사 삼층석탑

1.5 Km    18159     2019-01-21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까치내로 261-21

이 석탑은 기단중심석의 전 후 측면에서 각기 1매씩의 판석이 유실된 상태였고 갑석에서도 부분적으로 파손되어 원형의 모습을 잃은채 보존되어 왔었다. 그러던중 1988년 6월 10일 부터 6월 23일 까지 약 2주간 해체 복원공사를 실시하였으며, 이때 3층탑신에서 세존진신사리 32과가 발견되어 이 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 석탑은 3층석탑으로서는 5m가 넘는 거탑이며, 그 형식면에서는 전형적인 고려양식을 고수하면서도 기단부 구성이나 옥개석의 우동마루 등 일부에서 약간 백제계 석탑의 분위기가 가미되고 있다.

조성연대는 고려초반기로 추정된다. 1층 옥개석은 4개의 석재로 결구하였고 비교적 두꺼운 편으로 처마 곡선이 밋밋하여 전각의 반전 또한 완만하다. 층급 받침은 통례(通例)와는 달리 6단이며 옥개석 상면은 1단 탑신에서와 같다. 2,3층 옥개석은 모두 두 개의 석재로 결구되었고 하면의 받침은 2층이 5단, 3층은 4단으로 줄었다. 3층 탑신 역시 각면 모서리에 모서리 기둥없이 편평하게 처리하였다. 상륜은 모두 유실되고 없다. 이 탑은 전반적으로 보아 단층 기단이면서 기단부나 탑신부 각 면에 모서리 기둥없이 편평하게 처리된 점이라든가 또는 층급 받침이 일률적이 아닌 6, 5, 4 단으로 된 점 등은 정형을 따르지 않고 있으나 탑의 각 부재에 있어서의 규율성, 전체적인 체감율 등은 매우 알맞아 안정감이 있다. 또, 1층 탑신이 두 개로 포개진 예는 광주 서5층 석탑(보물 제109호)이나 장성 내계리 5층 석탑(지방 유형 131호)등에서 볼 수 있어 이 탑의 조성연대는 고려 시대로 추정된다.

* 규모 - 총고 5.6m
* 시대 - 고려시대

금곡사(강진)

금곡사(강진)

1.5 Km    19171     2019-10-16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까치내로 261-21

강진읍에서 작천면으로 넘어가는 까치내재에 이르면 마치 중세시대 성벽을 마주하는 것처럼 거대한 석문으로 가로막혀 계곡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서는 그 흔적조차 짐작할 수 없는 금곡사라는 오래된 사찰을 발견하게 된다. 신라말 밀봉대사는 이 절을 지으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이름인 성문사라 했고 나중에 금곡사라 개칭했다. 이 사찰 금곡사라 한 것은 이곳에 금광이 있었기 때문이며 사찰 옆 개울가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이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금광이었던게 사실인 것 같다. 금곡사에는 백제계통의 고려양식인 보물 829호 삼층석탑이 있는데 1985년 복원작업을 하던 중 석가세존 진신사리 32과가 발견되어 세상의 이목을 받기도 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의 양이 일정한 약수터에서 풀로 만든 대롱으로 물을 빨아 먹으면 신경통이 사라진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아마도 임진왜란 때 왜구를 격파한 이 고장 출신 김억추장군의 전설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강진군도서관

강진군도서관

1.7 Km    16162     2018-10-30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남문길 10

종합 및 아동자료실, 디지털자료실, 시청각실, 문화교실, 청소년, 일반실, 24시간 열린방, 청소년 열람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전국 군립도서관 중에서 설립은 두 번째로 역사가 있는 도서관이다.

청자골종가집

청자골종가집

1.8 Km    28143     2019-07-19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종합운동장길 106-11
061-433-1100

※ 영업시간 11:00 ~ 21:00 강진의 청자골종가집은 남도 최고의 한정식집을 만들겠다는 취지에 맞게 음식 맛은 물론이고 전통한옥으로 된 고풍스러운 건물, 수려한 주변 경관, 넓은 주차공간까지 명가의 호칭이 오히려 부족할 정도이다. 건물을 신축하는 데만 4년이 걸렸다는 고풍스러운 전통한옥에 앉아 잘 꾸며진 정원을 바라보며 큰 상을 받으니 마치 사대부 양반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절로 마음이 흐뭇해진다. 돼지고기 편육, 산낙지, 장어구이, 참숭어알, 홍어찜, 굴전, 매생이국 등 각종 요리에 강진의 갯내음을 더하는 돈배, 토하, 밴댕이, 바지락 젓갈, 그리고 매실과 무장아찌 등 맛깔진 음식들이 강진 한정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강진시장  (4, 9일)

강진시장 (4, 9일)

1.8 Km    11259     2018-02-08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시장길 17-14
061-433-5513

강진군은 기후풍토와 지형적으로 수산물이 풍부한 곳인데, 특히 조기, 갈치, 김, 조개류 등의 산출이 많다. 이 중에서도 조개류로서 바지락과 고막은 이곳의 특산물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이것들은 강진의 장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다. 특히,강진만 일대에서는 바지락과 고막이 양식되고 있는데, 이 일대의 바다는 갯벌이 많아 바지락 양식의 천혜적인 최적지로 알려져 있다.
'강진 장어' 또한 오래 전부터 이름나 있는데, 특히 탐진강 하구쪽은 수심이나 수온 등이 장어가 서식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으로서 이 일대에서 잡히는 장어맛은 일품이다.

고성사(강진)

298m    18573     2019-02-27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고성길 260

고성사(高聲寺)가 자리한 보은산(報恩山)은 강진읍을 굽어보고 있는 강진의 진산이다.제일봉은 멀리서 보면 소가 풀을 뜯어먹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 해서 우두봉(牛頭峰)이라 한다. 고성사에 오르는 길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면 좌ㆍ우측에 천연 녹차나무와 리기다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강진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절로 가는 길은 충혼탑에서 돌샘에 이르는 오솔길로 이른 아침 그윽한 솔내음이 그만이다.강진은 봄철 보리 싹이 돋아 오를 때 가족과 함께 찾으면 더할 나위없는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주변에 모란향내 그윽한 영랑생가와 금곡사, 다산 정약용 선생이 보은산방에서 머물렀던 고성사 등이 답사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는 여느 어촌처럼, 사람들이 농업 반 어업 반의 생활을 이어가는 소읍(小邑)에 지나지 않았다. 먼 타지 소식이라야 어쩌다 광주나 목포, 여수를 갔다 오는 사람을 통해 듣는 것이 전부일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다산의 18년 동안 유배지였을까?이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이 옛날에는 금릉(金陵)이라 불렸다고 한다.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이 풍광좋고 살기좋은 마을 금릉의 여덟 가지 아름다운 자랑거리를 만들어냈는데, 백련사의 누각에서 굽어보는 구강포보다도, 무위사에서 올려다보는 월출산보다도, 제일 먼저 꼽은 것이 바로 고암모종(高庵暮鐘) 즉, 백성들이 아침저녁으로 듣던 고성사 종소리였다고 한다. 고성사는 <천불산화엄사사적비>에 1211년(고려 희종 7) 백련결사를 이끌었던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 1163∼1245)스님이 인근에 있는 만덕산 백련사(白蓮寺)를 중창할 때 함께 지은 말사라고 기록되어 있다.1799년(조선 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고성암(高聲庵)이라 되어 있다.

특히 1805년(순조 5) 가을 강진군에 귀양 온 정약용(丁若鏞)이 머물며 혜장(惠藏)선사와 교우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05년 다산정약용은 주역 연구 자료가 담긴 경함을 고성사(高聲寺)로 옮겼으니, 여기에는 그를 위한 혜장선사의 깊은 배려가 스며 있었고 이로부터 두 사람의 인연은 날로 깊어갔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칠성각·요사가 남아 있다. 이 중 대웅전에는 조선시대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목조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후불탱화로는 영산회상도와 지장탱화·감로탱화·신중탱화가 있다. 이 중 지장탱화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1933년 제작된 것이다. 칠성각에는 4점의 탱화가 모셔져 있다. 고성사 목조삼존불상중에 한 분은 십여 년 전, 일본으로 팔려갈 뻔한 기구한 운명을 맞기도 했다.도굴꾼들이 그때 돈 350만원에 일본에 팔아 넘기기로 하고 부처님을 부산까지 옮겼었다고 한다. 이틀만 늦었어도 영영 일본으로 가버렸을 텐데 다행히도 발각되어 다시 모셔지게 되었다. 고성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성보(聖寶)인 부처님마저 없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하지만 고성사는 일찍이 금릉팔경의 첫 번째로 꼽혔던 저녁 종소리를 잃었다. 3∼40년 전까지만 해도 들을 수 있었던 종소리가 언젠지 모르게 종이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진 것이다. 그때 종이 없어진 것을 가장 아쉬워 한 사람들은 강진의 백성들이었다고 한다.

강진이 발전하려면 고성사의 종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야 한다고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가장 잘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유서 깊은 절 고성사는 행정구역상으론 강진읍내에 있다.30리 밖 구강포 바다에 떠 있는 배에까지도 은은하게 울려 퍼졌을 종소리를 들으며 강진 사람들은 고성사를 마음의 안도를 얻는 영원한 귀의처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도 읍내의 연세 많으신 분들 가운데서는 강진의 대표적인 사찰로 고성사를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고성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다산 정약용에 얽힌 일화다. 고성사가 발전해야 강진도 발전한다는 말이 강진에는 스스럼없이 회자되고 있다 산신각 자리가 바로 다산 선생이 보은산방(報恩山房)이라는 초당을 짓고 기거했던 곳이라고 한다. 다산의 두 번째 기거처가 되었던 고성사. 지금의 산신각 자리가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보은산방(報恩山房)이라는 초당을 짓고 기거했던 곳이라고 한다.산세가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인 보은산, 꼭대기는 소의 머리에 해당하는 우두봉(牛頭峰)이고, 고성사가 자리잡은 곳은 소의 목 아래 방울을 다는 부분에 해당된다. 근래에 새로 주조한 종이 다시 강진 읍내에 울려 퍼지고 있다. 강진의 희망과 중생들의 발원을 담은 종소리가 도솔천의 그것보다 더 아름답게 들릴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남강서원

788m    2131     2019-02-19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향교로 128-2

조선 중기의 문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과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로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 1130~1200), 송시열의 문인인 손재(遜齋) 박광일(朴光一)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남강사(南康祠)라고도 한다. 남강서원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송시열은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인해 숙종 15년(1689)에 제주도로 유배 가게 되었다. 그때 강진의 성자포(지금의 남포)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려다 폭풍을 만나는 바람에 잠시 근처의 만덕산 백련사(白蓮寺)에 머물며 유생들에게 강론을 하였는데 그를 기념하기 위해 순조 3년(1803)에 세운 것이 바로 남강서원이다. 당시 강진의 향유(鄕儒)들이 도관찰사(都觀察使)였던 한용구의 승인을 얻어 정읍 노암서원에 모셔져 있던 송시열의 영정을 백련사로 옮겨 봉안하고, 영당의 액호를 남강이라 하였는데 백련사의 영당이 남강서원의 전신(前身)이다. 헌종 4년(1838) 향림들의 발의로 사당에 주자를 정위봉향(正位奉享)하였으며, 1901년 현재의 위치에 신단을 설단하여 주자와 송시열을 향사하는 한편 어필각을 건립하였고, 후에 박광일을 추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