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재카페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선은재카페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선은재카페

선은재카페

0m    1     2024-03-04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선은3길 25-15

부안군 석정문학관 근처에 있는 선은재 카페는 입구 돌계단을 오르면 멋진 소나무가 보이고, 소나무 뒤에 자리한 두 채의 한옥 사이로 떠 있는 달이 인상적이다. 두 채의 한옥 중 왼쪽으로 들어서면 통유리로 되어 개방감 있는 카페 내부가 보이고, 카페 외부의 야외공간에는 정자와 야외 테이블,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멍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낮에 와도 아름답지만,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저녁이 더욱 아름다워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커피의 맛도 뛰어나고, 오디 팥빙수와 흑임자 슈페너 등의 디저트도 맛있다. 신선이 쉬어가는 장소라는 뜻의 선은재 카페는 뛰어난 힐링 공간으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아리랑문학마을

아리랑문학마을

10.1 Km    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죽산면 화초로 180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 속 장소들을 재현한 아리랑 문학마을은 김제를 배경으로 민족의 수난과 투쟁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홍보관, 하얼빈 역사, 이민자 가옥, 내촌 외리 마을, 근대 수탈 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홍보관 1층 벽면에 12권짜리 대하소설 대강의 줄거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2층은 죽음도 불사하고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전진했던 김제 출신의 독립투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장면을 실감 나게 볼 수 있는 하얼빈 역사, 일제의 수탈에 고향을 떠나 타지로 갔던 사람들의 열악한 이민자 가옥, 근대 수탈 기관을 재현해낸 내촌이 재현되어 있다. 외리 마을의 촌락과 토지조사사업으로 조선의 땅을 빼앗는 데 활용되었을 망원경, 나침반, 카메라, 주판, 등사기 등이 전시된 죽산 면사무소, 주재소(일제강점기 순사가 근무하던 기관), 우체국, 정미소 등도 관람할 수 있다.

국립청소년농생명센터

국립청소년농생명센터

10.2 Km    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로 421

국립 청소년 농생명센터는 농업 생명 체험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이 생명을 연구하는 과학실험과 농업생산기술을 실제로 경험함으로써 자기가 지구생태계의 일부임을 깨닫고, 이웃과 함께 살아감을 느끼며, 자연 사랑의 마음을 키우고자 하는 청소년 체험중심의 교육장이다. 숙박형, 당일형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는 환경교육은 교과 학습 및 비교과 활동과의 연계를 바탕으로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학습자 스스로 학습 내용을 계획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유사한 학습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융합적 사고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미래를 위한 환경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읍 전봉준 유적

10.2 Km    18512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조소1길 20

이곳은 녹두장군인 전봉준(1854~1895) 선생이 동학운동을 일으킬 당시 거주하였던 집이다. 고종 31년(1894) 갑오 동학 혁명 당시 전봉준이 살았던 오두막집으로 흙담 4칸 집이다. 그런데 서편으로 한 칸을 근래에 붙여 지은 것으로 원래는 방 1칸, 광 1칸, 부엌 1칸으로 당시 우리나라 가난한 농민들이 살았던 전형적인 가옥 형태이다. 이 고택은 기리 보존하기 위하여 정읍시에서 1974년에 크게 수리한 집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안채(초가)는 높이 15㎝의 잡석의 축대 위에 세워졌다. 일반적으로 부엌은 서쪽에 위치하여 이에 이어서 큰방과 윗방이 배치되는 것인데 이 집은 이 순서를 무시하고 있다. 끝방은 살림살이 등을 넣어두는 용도로 사용된 것 같다. 큰방과 윗방은 장지로 칸막이가 되어 필요한 경우 터놓을 수 있으며 천장은 두 가지 다 연동 천장이다. 그리고 두 방의 전면에는 퇴를 놓았으며 대살문으로 드나드는 끝방 전면에 반쪽에는 짧은 담을 두르고 이곳에 땔나무 등을 두었으나 이것이 본래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부엌의 전후벽에는 널문을 달아 필요한 때에는 잠글 수도 있도록 되었다. 대문의 동편에는 잿간을 겸한 변소가 있으며 출입문으로는 한 짝의 열매문을 달았다. 주위에는 흙담이며 짚으로 된 이엉을 덮었다. 전봉준의 공초록에는 이 곳에 와서 수년이 되었다고 했는데 촌로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 이웃 마을 양교리(양간다리)에서 옮겨온 것이라 한다. 갑오년 1월에 봉기한 후 안핵사 이용태가 내려와 동학교인이라고 지목되는 사람의 집을 모두 불질러 버렸는데 이 때 전봉준의 집도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 동안에 이론(異論)이 있었으나 1974년에 보수를 하면서 해체 작업을 하는 중에 밝혀진 상량문에 무인(戊寅) 2월 26일(고종 15년 1878) 세운 것으로 되었으니 어쩌면 전부 타지는 않고 남아 있는 폐옥을 보수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제지평선축제

김제지평선축제

10.3 Km    163765     2024-05-02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벽골제로 442
063-540-3172

*하기 행사 내용은 전년도(2023년) 행사 내용으로, 2024년도 행사 내용은 업데이트 중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명예대표 문화관광축제 중 유일하게 전통농경문화를 주제로 개최하는 김제지평선축제는 우리나라 최고(最古), 최대(最大) 수리시설인 김제 벽골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지평선을 무대로 개최되는 대통령배 전국 농악경연대회를 비롯한 다양한 볼거리와 아궁이 쌀밥 짓기, 메뚜기 잡기, 벼 수확 체험 등 각종 농경문화체험프로그램 및 농특산물 태극기 퍼포먼스, 삼색 쌀 가래떡 퍼포먼스와 같은 이슈메이킹 프로그램도 현장에서 참여할 수 있다.

지평선 한우명품관

10.4 Km    4372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로 442
063-548-9595

지평선 한우명품관은 전북 김제시 벽제골로에 위치한 소고기구이 전문점이다. 이곳은 친환경 자연순환 농법으로 생산하는 지평선 한우를 사용하며 대표 메뉴는 꽃등심이며 한우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생갈비와 육회도 인기 메뉴다. 음식점 앞마당에 돌 길과 옛날 가구와 소품으로 한옥의 멋스러움이 더해진다.

김제 벽골제

김제 벽골제

10.4 Km    30203     2024-05-14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로 442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쌓아 만든 옛 저수지의 중수비와 둑이다.『삼국사기』에는 신라 흘해왕 21년(330)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만들었는데, 둘레가 1천8백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 지역이 신라 땅이 아닌 백제의 땅이었으므로 나중에 연도를 고쳐서 신라가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실제로 만들어진 때는 백제 11대 비류왕 27년(330)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후 신라 원성왕 6년(790)과 고려 현종 및 인종 21년(1143)에 고쳐 쌓은 후, 조선 태종 15년(1415)에 다시 쌓았다. 1420년(세종 2년)에 큰 폭우로 유실되었다. 지금 유적에는 일직선으로 약 3㎞ 정도의 둑만이 남아있는데, 1925년 ‘동진토지개량조합’에서 이 둑을 농사짓는데 필요한 물을 대는 통로로 고쳐 이용하면서 그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다. 둑의 북쪽에는 조선 시대에 벽골제를 다시 쌓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세운 비석이 있는데, 닳아서 글을 알아보기 어렵다. 1975년에는 저수지 물의 양을 조절하던 수문이 있던 자리 2곳을 발굴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대규모의 높은 수준의 측량 기술이 이용된 공사였던 것이 밝혀졌다. 벽골제는 단순히 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라는데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당시에 이미 이러한 저수지 축조가 가능할 정도의 고도로 발달된 토목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사에서도 획기적인 사실을 제공해 주는 유적이다. * 면적 - 187,473㎡

벽골제 농경문화 박물관

벽골제 농경문화 박물관

10.4 Km    29026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로 442
063-540-4993

벽골제는 김제시 포교리와 월승리 일대의 저수지를 이르며 약 2.6㎞의 제방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농업 국가로서 일찍부터 농사를 위해 수리 시설을 갖춘 조상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벽골제에 대한 연혁을 살펴보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330년(신라 흘해왕 21)에 공사를 시작해 790년(신라 원성왕 6)에 증축했다고 했고, 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고려 현종 및 인종 때와 조선 1415년(태종 15)에 개축했다고 했다. 이러한 곳에 자리잡은 벽골제 농경문화 박물관은 사적인 벽골제와 김제 만경평야, 수천년 농경문화의 가치를 선양하기 위한 전시교육공간으로 1998년 개관하였다. 사적 벽골제와 농경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김제 지역을 발견하며 조사연구 · 자료수집 · 보존관리 · 전시교육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농경문화, 생활민속, 벽골제언실, 동진관의 상설전시실 4개와 기획전시실이 운영되고 있으며, 실감콘텐츠 디지털영상관이 있다. 이외에도 식당과 매점 등의 편의 시설이 있다.

구파백정기의사기념관

구파백정기의사기념관

10.5 Km    18449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영원로 1049

백정기의사기념관은 항일 독립운동가 구파 백정기 의사의 조국 광복을 위한 희생과 고귀한 뜻을 새기고 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한 사당과 기념관이다. 이곳은 총 부지면적 20,850㎡으로 백정기의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의열사, 구파 기념관, 청의당, 의열문, 숭의문, 백정기의사 동상 등이 자리하고 있다. 구파 백정기 의사는 1896년 부안군 동진면 출신으로 1907년 영원면으로 이사 와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20년 경성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하여 1930년 북만주로 가서 활동하다가 1933년 상하이 홍커우 육삼정거사를 준비하였으나 사전 발각되어 실패하고 검거되어 일본 장기형무소에서 복역 중 1934년 순국하셨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의사 중 한 분으로 1946년 유해가 송환되어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구파 백정기 의사 순국 추모제가 열린다.

간재선생유지

10.8 Km    1540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계화면 양지길 12

부안 계화도 마을에 위치한 간재선생유지는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간재 전우(1841~1922)가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다. 전우는 1882년(고종 19)에 벼슬에 올랐으나 곧 사임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910년(순종 4) 경술국치로 일본에 강탈당하자 분개하여, 당시 섬이었던 계화도에 들어가 후학을 양성하고 도학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 지금은 1933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세워져 전우를 기리는 사당 계양사와 전우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는 유물관이 사당 맞은편에 있다. 유지 앞 바닷가 청풍대에는 전우의 숭고한 생애를 기리는 [중류지주(中流砥柱) 백세청풍(百世淸風)]비가 윤용구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주변에는 계화도 외에 계화도 양지항, 새만금, 청호저수지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