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딸숯불곱창마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할머니딸숯불곱창마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할머니딸숯불곱창마을

할머니딸숯불곱창마을

10.9 Km    20190     2023-01-09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오가중앙로 141
041-334-9999

꼬들꼬들한 곱창구이에 소주 한 잔 생각나게 하는 곳. 1960년대 초부터 삽교 지역을 중심으로 돼지곱창을 깨끗이 손질하여 연탄불에 구워 먹던 곱창구이와 갖가지 양념을 듬뿍 넣어 조리하는 곱창전골이 있으며 이 맛은 오돌오돌, 꼬들꼬들, 쫄깃쫄깃한 맛과 구수하고 담백함이 특징이다.

솔뫼성지

솔뫼성지

11.0 Km    38969     2023-03-27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솔뫼로 132

"솔뫼"는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땅 "내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1821년 8월 21일 한국 최초의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탄생하셨으며 박해를 피해 할아버지 김택현을 따라 용인 한덕동(현 골배마실)으로 이사갈 때인 일곱살까지 사셨다. 뿐만 아니라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 종조부 김한현(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1846년 순교)에 이르기까지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골배마실에서 신학생으로 간택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가 1845년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돼 그 해 10월 귀국한다. 귀국 후 용인 일대에서 사목을 하다가 1846년 9월 국문 효수형을 받고 새남터에서 26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그리고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때 성인 품위에 오르게 되었다. 솔뫼 성지의 소나무 그늘 아래에는 김대건 신부 동상을 비롯하여 기념탑이 세워져 있으며, 아래쪽으로는 개인과 단체 100여명이 피정을 할 수 있는 피정의 집이 있다. 또, 최근에 김대건 신부와 솔뫼성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기념관과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기념과 성당을 신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문수사(서산)

문수사(서산)

11.0 Km    23092     2023-12-11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문수골길 201

문수사의 확실한 창건연대 기록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창건연대를 알 수 없지만 1973년에 극락실전 내에 안치된 금동여래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서 고려제 29대 충목왕 2년(1346)이란 기록이 있어 고려 때 창건된 사찰로 추정된다. 한편 발원문 발견 시에 생모시, 단수포, 쌀, 보리 등 600여 점이 함께 발견되기도 하였다. 조용한 산사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봄철에는 주위의 산과 목장에 벚꽃과 야생화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 문수사 극락보전 극락보전은 주심포식과 다포식을 절충한 아름다운 건물로 충청남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앞칸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앞면과 뒷면의 기둥 사이마다 2개의 공포를 배치했으며 옆면에는 공포를 두지 않아서 맞배지붕 건물의 일반적인 옆면 설계방식을 따르고 있다. 내부에는 중앙에 불단을 배치하고 그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달았다.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아서 의식을 행할 때나 도를 닦는데 도움이 되게 하였다. 극락보전은 조각 수법이 매우 수려하고 웅장하며, 여래상을 비롯하여 삼세불상과 나한상·각종탱화 등 많은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 문수사금동여래 좌불상 극락보전 내에 봉안된 금동여래좌불상으로 앉은 높이 70cm, 무릎 폭 50cm이다. 이 좌불상은 고려 제29대 충목왕 2년(1346)에 조성관 단아한 금동불좌상으로 장곡사금동약사불좌상(보물)을 비록산 고려 후기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계란형의 갸름한 얼굴, 가늘고 적정한 눈, 오뚝한 콧날, 미소를 머금은 단정한 입 등 섬세한 표현이 단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균형 잡힌 체구에 하품중생인의 손모습 등 신체는 현안 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신체의 특징 뿐 아니라 적절하게 가해진 옷주름 왼쪽 팔꿈치의 Ω자형 주름과 가슴의 승각기와 띠매듭 등 모든 점에서 장곡사불상과 동일한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조성연대도 같고 또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같은 조각가의 작품이거나 혹은 동일 유파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

최영장군 사당

최영장군 사당

11.1 Km    20382     2023-07-17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대안리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는 고려 공민왕 때 최영 장군이 1316년에 출생한 영지이다. 노은리 삼봉산정에 있던 무민공의 사우는 어느 때 철거되었는지 기록이 없고 1995년 말 삼봉산정에 사당을 재건축하였다. 최영은 어려서부터 기상이 영민하고 남다른 용맹과 지모가 있어 문무를 겸비한 비범한 인물이었다. 공민왕 이후 각종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뛰어난 장군이자 고려 정권의 핵심에 있었으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실각하고 죽음을 당한다. 홍성군에서는 1995년 문화제 행사시 제1회 최영 장군 영신제를 갖고 1996년 이후에도 영신제를 올려 최영 장군의 넋을 달래고 있다.

성삼문선생유허지

성삼문선생유허지

11.2 Km    1     2024-01-09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매죽헌길 403-12

이곳은 성삼문(成三問)의 외조부 박담(朴膽)의 고택이 있던 곳이며, 성삼문이 출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1676년(숙종 2) 사인(舍人) 이량(李湸)과 유생들이 성삼문 등 사육신의 절의와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성삼문의 탄생지에 사우를 건립하였다. 1685년(숙종 11)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하위지(河緯地), 유응부(兪應孚)를 추가 배향하였다. 1692년(숙종 18) 조정에서 녹운서원(綠雲書院)이라 명칭하고 사액하였다가 1712년(숙종 38) 노은서원(魯恩書院)으로 개칭하였다. ‘노은’은 민진후(閔鎭厚, 인현왕후 오빠)와 송시열(宋時烈)이 노산(魯山)의 ‘노’자와 은의(恩義)의 ‘은’자를 따서 동네 이름을 노은이라 했던 데에 기인한다. 1687년(숙종 13) 노은서원 옆에는 별사(別祠)를 건립하여 성승(成勝, 삼문의 아버지)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후 1784년(정조 8)에 성승은 별운검(別雲劒)으로 단종복위운동에 참여했던 점이 인정되어 신원된 후 제향되었다. 그러나 노은서원은 1864년(고종 1) 대원군의 서원 철폐시 훼철되었다. 당시 유생들은 사육신의 위패를 매안한 다음, 그 위에 단을 쌓아 ‘노은단(魯恩檀)’이라 하고, 매년 음력 10월 15일 제향을 올렸다. 1945년 광복이 되자 홍성고적현창회에서 삼문을 개축하고 정화하였다. 유허비는 노은단에서 남쪽으로 30m 거리의 마을 앞에 있다.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김진상(金鎭商)이 썼으며, 전액은 유척기(兪拓基)가 썼다.

홍성 한솔기마을

홍성 한솔기마을

11.3 Km    17343     2023-12-11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매죽헌길 351-26

홍성군 노은리의 한솔기마을(한솔기마을 농촌체험마을)은 충절의 상징인 최영장군과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이 태어난 마을이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진 녹색 휴양촌으로, 식사와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농어촌인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한솔기마을에서는 숙박과 함께 다도예절, 자연염색, 소원북만들기, 곶감만들기를, 농산물심기, 수확체험을 비롯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숙박을 이용하여 1박2일 농촌 체험 행사를 즐겨도 좋고, 당일 나들이 코스로 방문해서 마을 주변에 있는 문화유적 최영장군사당, 정삼문선생 유허지 및 사당, 노은단, 홍성노은리고택 등을 둘러 보면서 내포문화숲길을 즐길 수 있다.

덕숭산

덕숭산

11.3 Km    38115     2023-12-05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충남도청 신도시와 예산 덕산온천 인근에 해발고도 495.2m로 솟아있는 덕숭산은 호서의 금강산이라 할 만큼 아름다워 인근 가야산(678.2m)과 함께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산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는 예산군 제1경으로도 선정된 수덕사가 있다. 수덕사는 많은 문화재, 미술품을 간직한 천오백년 고찰로 템플스테이도 할 수 있다. 수덕사가 유명하다 보니 덕숭산 또한 수덕산이라고도 한다. 또한 이 산은 기암괴석이 풍부하여 바위들이 사람의 두개골이나 노적가리, 사나운 짐승이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형상을 지닌 절묘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절경으로는 원효봉과 석문봉, 해태바위 등이 있다. 문화재는 수덕사 외에 정혜사, 만공탑, 여승당, 보덕사 등이 있으며, 관광지는 덕산온천 외에 충의사(매헌 윤봉길 의사 유적) 등이 있다. 따라서 덕숭산은 사찰 산행과 온천 산행을 겸할 수 있다. 주변에는 가야산 외에 용봉산, 용봉산자연휴양림, 해미읍성, 덕산향교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홍성 노은리 고택

홍성 노은리 고택

11.4 Km    15     2024-01-30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최영장군길 11-26

1670년대에 지었다고 전하며, 지금은 연고가 없는 개인의 소유가 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집에서 조선 현종 13년(1672)부터 숙종 2년(1676)까지 4년간 성삼문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하였다고 한다. 또 성삼문의 둘째 딸이 제사를 올렸다고 전하기도 하여 이 건물은 그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처음 지을 당시에는 문간채·안채 등이 갖추어진 집이었으나, 지금은 문간채가 남아있지 않다. 약간 높은 대지에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ㅁ자형으로 지었다. 본채는 북쪽은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나머지 동서남쪽 부분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과 앞면이 사다리꼴 모양인 우진각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벽은 옛날대로 흙벽을 유지하고 있으며, 건물의 일부가 허물어졌으나 중요한 부분은 잘 남아있다. 일부 개조된 부분이 있지만 조선 시대의 특징 있는 구조 양식과 주거생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전통가옥으로 중요하다. 또한 이 마을에는 성삼문의 위패를 모신 노은단과 노은서원유허비 등이 있으며, 도지정 전통문화 보존 마을로 관리되고 있다. 엄찬고택은 1고주(高柱)5량(樑) 가구에 만도리 양식의 “ㅁ” 자 평면구조를 지닌 전통가옥으로 조선 후기 1670년(현종 11)경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대지 면적이 120평 건축면적이 61.4평으로 되어 있다. 본 건물은 성삼문 선생이 병자사화(丙子士禍)로 부친인 성승 장군을 비롯한 형제와 자녀 11명이 참형으로 절손되자 둘째 딸이 아들 엄찬과 함께 선생의 생가지인 이곳 노은동에 내려와 친가의 묘역 등을 관리하기 위하여 건축하고 기거하였다.

용봉사(홍성)

11.4 Km    20978     2023-03-28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용봉산1길 109

홍성군 홍북면 신경리 용봉산의 북쪽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용봉사는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문 고찰의 하나이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 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로 속해 있다. 용과 봉황이 있는 산에 있는 사찰, 용봉산의 용봉사라는 그 이름조차 범상치 않다. 이 절은 확실한 청건연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없으나 각종 유물에 의해 백제 말 혹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찰은 용봉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절의 이곳저곳에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유물은 2개가 있는데, 고려초로 추정되는 마애불과 조선후기 1690년에 조성된 영산회괘불탱으로서 이들 성보에 의해 사찰의 격이 높아 보인다. 더욱이 이 사찰의 창건시기를 백제시대로 소급해도 좋을 것으로 여겨지는 석조가 있는데 이것은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사찰의 앞쪽에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마애불이 위치해 있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사찰 경내에 부도 또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이처럼 용봉사에는 홍성 지역의 사찰 중에서 불화, 불상, 부도, 석조공예품 등 종류가 다양하고 내용이 풍부한 성보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고찰이다. 그러나 세상 인심은 이렇게 좋은 명당자리를 그냥 둘 리가 없어, 조선후기에 명문가로 유명한 평양 조씨가문에서 묘자리를 쓰려고 절을 폐사시켰다고 한다. 현재의 용봉사는 옛 절터에서 벗어나 오늘도 여전히 용봉이라는 이름값을 하며 그 위용을 자랑하지만, 이곳에 해악을 끼쳤던 집안은 그후 손이 끊겨 제사를 잇지 못한다고 한다. 이 또한 불가의 인연법과 깊이 연관된다 할 것이다.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11.5 Km    0     2023-11-24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신경리

높이 4m의 암석에 양각으로 된 홍성 신경리 마애 석불(洪城新耕里磨崖石佛)은 홍북면 신경리 서편에 있는 용봉산 계곡에 위치한 용봉사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서 약 50m 지점에 이르면 돌출된 암반에 조각되어 있다. 주변의 지면이 깎여나가서 기단이 없어졌고 주각(柱脚)만이 노출되어 있으며 주간(株間)에 간대(竿臺)가 있고 간대 중앙에는 간주(竿柱)를 받는 직경 약 32cm의 둥근 구멍이 있으며 지주는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마애 석불은 감탄사를 연발할 만큼 정교하며, 암면에 불상 윤곽을 따라 감형(龕形)을 이루면서 조각한 입상과 머리는 머리는 소발에 육계가 있고 보안(寶顔)은 풍만한 편으로 이마에는 백호(白毫)자리가 있다. 가는 눈과 미소 지은 입, 어깨까지 길게 내려온 귀가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이다. 얼굴에 비하여 하체로 내려갈수록 신체와 선이 약화되어 있으며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쭉 펴서 다리에 붙이고 왼손은 굽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있다. 불상의 배면에 조각한 광배는 전면을 유선형으로 움푹하게 파낸 다음 신광의 가에는 3줄의 음각선을 새겨 두 개의 돌기선을 나타내었고, 두광도 동일한 수법으로 2줄의 원형 돌기선을 조각하였다. 석불의 몸높이 210cm, 머리 높이 56cm, 얼굴 높이 40cm, 어깨 폭 67cm이다. 이 불상은 조각 양식으로 보아 백제 말에 건립된 마애불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하단에는 별석으로 된 연좌대가 있는데 대좌의 옆면은 복엽의 연판을 조각하였고 상면에는 두발을 돌출시켰다. 마애불의 정상부에는 별석의 지붕형 개석이 있는데 전면 저부에 3개의 연화문을 음각하였다. 조식(彫飾)된 연꽃은 끝이 약간 반전된 단판 8엽에 중방(中房)이 있다. 불상 밑의 지형은 한단 낮고 평탄한데 주위에서 고식의 와편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