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테마공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가야금테마공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가야금테마공원

가야금테마공원

0m    2     2023-08-22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기찬랜드로 19-10

가야금산조기념관은 유수한 역사를 지닌 가야금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갖가지 가야금 관련 유물과 자료를 전시한 국내 유일의 기념관으로 가야금산조에 대해 생소한 초보자들도 쉽게 접하고 체험할 수 있는 국악의 산 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가야금산조를 창시한 악성 김창조선생을 선양하고 영암이 가야금산조의 본향(뿌리)으로서 역사성을 고취하기 위해 기념관을 조성하였다. 전시관에는 각종 국악기와 음향, 영상자료, 가야금산조 관련 6 대류파 기증품을 언제든 관람할 수 있고, 250여 명이 관람할 수 있는 산조공연장은 가야금 연주와 국악행사를 치를 수 있다.

영암 장천리 선사주거지

영암 장천리 선사주거지

10.1 Km    18407     2023-05-17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선사주거로 308

* 선사시대의 집터, 영암 장천리 선사주거지 *

장천리 선사 주거지는 서호면 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500m 떨어진 장천리 괴음마을 앞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다. 1984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발굴조사를 통해 움집터 11기, 굴립주건물 1기, 고인돌 4기가 조사되었다.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원형내지 지름 4.3∼5.2m의 움집터로 형태는 원형 내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깊이는 20~30cm 정도로 삭평이 심한 편이다. 바닥은 점토를 깔거나 단단하게 다진 흔적이 있으며, 다른 송국리형 집터와는 달리 집터 시이의 중복도 심한 편이다. 화로터나 출입구가 없는 것이 특색이다. 굴립주건물은 1칸 ·3칸 규모이나 긴변의 칸 사이에는 보조기둥을 설치하고 있다.

* 장천리 선사주거지의 출토 유물 *

집터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항아리형, 사발형의 민무늬 토기, 갈돌, 화살촉, 삼각형돌칼, 가락바퀴, 턱자귀, 끌대패날 등의 석기류가 있다. 이들 출토유물과 움집터는 한반도 서남부지역에서만 보이는 특징을 가진 것으로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던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이다.

군자서원

10.3 Km    1686     2023-12-09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행정길 65-1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군자서원은 1820년 행정사로 창건해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됐으나, 1962년 재건했으며 2009년 강진향교 유림의 발의로 서원으로 승격됐다. 양산김씨 김양(?~1569)선생과 김호광(1600-1624), 김신광(1608~1666)을 추모하고 배향하기 위한 서원이다. 현존하는 건물은 강당, 신실, 내삼문, 외삼문 등이다. 군자서원은 추모, 강학, 교화 등 서원 고유의 기능을 활발히 담당하고 있는 곳으로 매년 전국의 유림 인사를 초청해 강회, 시회, 상읍례 등 강학 예절을 실시하며 어린 학생들과 주민들이 참여하는 음악회, 유교아카데미, 강연회, 서원스테이, 유물전시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김완장군묘소 및 신도비

10.7 Km    16717     2023-10-30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조선 중기 명장 양무공 김완(1577∼1635) 장군의 묘소이다. 원래 해남면 동북선산에 있던 것을 숙종 44년(1718) 지금의 장소로 옮겨왔다. 묘전에는 묘비·상석·향로석 등을 설치하였고, 문인석·망주석·동자석을 각각 쌍으로 하여 양옆에 세웠다. 묘역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세운 신도비(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는 순조 5년(1905)에 세운 것으로, 묘를 이장하면서 세운 것으로 보인다. 신도비의 글은 박세채가 글을 짓고, 최석정이 전서하였으며, 조명교가 글씨를 썼다. 묘소의 하단에는 김완 장군이 아끼던 말의 묘인 준마총이 있다. 양무공 김완 장군은 광해군 7년(1615)에 과거급제하여 고산진절제사 등을 거쳐 황해도 병마절도사에 올랐다. 이후 여러 공이 인정되어 죽은 후 병조판서로 벼슬이 높여졌다. 임진왜란 때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복남 장군 아래에서 용맹을 떨쳤고, 인조 12년(1624)에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신북장 (3, 8일)

신북장 (3, 8일)

10.8 Km    9725     2023-12-20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황금동로 78
061-470-2604

신북장은 광주 방면에서 국도 13호선 신북면에 위치하였으며 매월 3, 8, 13, 18, 23, 28일에 장이 열린다. 현재 6,222m²의 부지에 104동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예전에는 전통시장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았지만 현재는 도시의 발달과 유통시장의 변화로 인해 쇠퇴하였다. 하지만 현재도 그 명맥을 유지하며 5일장이 서고 있다. 거래 상품은 지역에서 생산하는 곡물류, 산지 부산물, 채소류 등이다.

영팔정

영팔정

10.9 Km    17801     2023-09-05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하정길 8

영팔정은 고려 말∼조선 초 문신인 하정 유관(1346∼1433)이 주위 경치에 감탄하여 아들 맹문에게 시켜 조선 태종 6년(1406)에 지은 정자이다. 처음에는 모산리의 ‘모’ 자와 호인 하정의 ‘정’자를 따서 ‘모정’이라고 불렀으나, 훗날 율곡 이이·고경명·남이공·유상운 등이 주변 경관을 팔영시(八詠詩)로 읊어서 ‘영팔정’으로 바뀌었다. 숙종 15년(1689)에 영의정을 지낸 유상운이 건물을 고친 것 외에는 수리한 내력이 알려져 있지 않다. 정자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내부는 방이나 벽체 없이 사방이 개방된 정사각형 평면이며, 마루는 우물마루이고 오른쪽에만 난간을 설치하였다. 정자 안에 제영문·기문 현판과 동계책이 보관되어 있다. 제영문은 이이·고경명· 유상운 등의 《저산팔경》 《저산정기》 《상계문》과 주련 4개가 있다. 현판의 글씨는 남구만이 썼으며 현존하는 《저산동약》은 지방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주목된다. 양팔정은 배움의 장소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으며, 마을 사람들이 모임을 갖던 건물로 그 역사적 가치가 크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현황 : 전남기념물 지정연도 : 1987년 1월 15일 시대 : 조선 종류 : 누정

영암내동리쌍무덤

11.2 Km    16340     2024-01-26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내동리쌍무덤은 영산강 하류에 있는 내동리 서쪽의 구릉 중간부에 있다.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지표상에 드러난 고분의 외형과 규모를 통해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높은 지점으로 확인되었다. 1호분과 2호분은 봉토가 거의 맞닿아 있는데 그 사이에 오솔길이 나 있다. 1호분은 가장 큰 분구를 가지고 있는데 봉분의 규모가 56m나 되는 긴 타원형을 이루고, 2호분은 방형 또는 원형이다. 3호분은 1호분과 동쪽으로 인접해 있는데 1호분과 2호분에 비해 규모가 작다. 이 고분군은 본래 4기였으나, 4호분은 민묘(民墓) 조성으로 훼손되고 3기만 남아 있다. 쌍무덤은 1호분과 2호분을 통칭하는 것으로 구릉 끝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쌍무덤을 마을주민들은 풍수지리적인 면에서 [매화낙지(梅花落地)]라고도 부른다. 내동리쌍무덤에 대한 성격과 구조는 정식 학술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인근에 있는 초분골고분의 발굴 조사로 봉토 내에 독무덤이 묻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마한 시기의 지배 계급 무덤으로 생각되며 내동리쌍무덤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산서원

11.3 Km    1924     2023-09-22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박산죽현길 107-56

조선 중기에 활약한 청련 이후백(1520 ~ 1578)은 조선을 대표하는 청백리의 표상이다. 이율곡은 이후백의 청빈에 대해 "이후백은 벼슬에서 직무를 다하고 몸단속을 청간(淸簡)하게 하였으며, 지위가 육경에 이르렀으나 빈한하고 소박하기가 유생과 같았다. 또 뇌물을 일체 받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그 결백함에 탄복하였다.”라고 이후백의 청빈에 대해 적었다. 퇴계는 또 '이후백 같은 공정한 마음은 비할 사람이 없다”라며 청렴결백함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이후백은 이순신 장군의 강직한 공직자관에 영향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청련 이후백 사후 선조 23년(1590년) 강진읍 서산리 월남마을에 그를 제향하기 위해 '서봉서원'이라는 명칭으로 창건하였고, 1694년 10월 10일에 서원으로 등록되었으며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철폐되었다가 1924년 본향인 호남 사림의 발의로 현재의 작천면 박산으로 옮겨 ‘박산서원’ 이라고 개칭하였다. 박산서원은 수암산 북동쪽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입구에 단풍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가을이면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차량으로 약 10분 거리에 수암서원이 있다.

옴천사(강진)

11.3 Km    18934     2023-02-28

전라남도 강진군 옴천면 장강로 1445-14

강진 옴천사(구, 만연사)는 강진 옴천면 정정리 산정물에 위치한 사찰로 후삼국시대 송악에 고려 태조 왕건 부친의 터전을 잡아주고 후삼국 통일의 성주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신 신라 4대 고승 가운데 한 분이신 도선국사께서 영암 도갑사, 광양 백계산 옥룡사와 모친을 모시고 계셨던 광양 운암사와 비슷한 시기에 국사께서 창건하셨다던 설이 있는 옛 목암사터에 1960년도 안순희 스님께서 만연암을 창건하고 정진수도하던 도량이다. 스님의 입적 후 이곳 지명을 따라 옴천사로 개칭하여 대한불교 선각종 총본산으로 많은 스님들이 옛 목암사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열심히 수도정진하며 불사를 계속하고 있다. 옴천사의 옛 지명인 목암사가 이곳에 있었다는 근거는 많은 구전으로 전해왔고 지명으로도 우리나라에서 옴자가 들어가는 지명은 강진 옴천면이 유일한 것으로 봐서 이곳에 큰 가람이 있었다는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원래 이 옴은 범어“AUM”의 음역자로서 헤브라이어의“아멘”과 같은 뜻의 불교의 신성어이다. 그래서 반야심경의 첫 소리는 '옴(AUM)'으로 시작해서 '사바하(SVAHA)'로 끝나며, 진리의 형성을 뜻하는 창조·유지·파괴로 해석된다. 이는 옴천이 신성한 지역으로 조용하고 맑은 물이 있어 고승들이 불경을 외우고 참선할 수 있는 최적지라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옴천은 이른 바 절터골이었던 인근 성전 월출산 기슭의 배후에 있으며, 사동이나 좌척마을 등 곳곳에서 사찰의 흔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절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현 옴천사 회주이신 정암 스님께서도 안순희 스님께서 이곳 옛 목암사터에 만연암을 건립하실 때 이곳이 사찰이었음을 증명하는 많은 유물이 나왔다고 전해들었으며, 옴천사 인근에 조선시대 전라 병영성이 복원되었다. 지금의 옴천사는 여러 가지 설과 증거들로 봐서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목암사가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도선국사의 기가 서려있는 옴천사로 새롭게 태어나 “사람은 훌룡한 것 좋은 것만을 상대하는 일은 아니다. 훌룡하고 좋은 것이라면 나 아니라도 사랑해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오히려 지고 지순한 사랑이란 다른 것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 문제가 있는 것,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일때 의미가 있다.”라는 도선국사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현대 사회의 각박한 세상에 사는 중생과 국태민안을 위해 정진하는 사찰이 옴천사이다.

야미야미팜

야미야미팜

11.5 Km    4     2023-07-27

전라남도 영암군 지소길 34

남도 여행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친환경 농법 마을에 위치한 야미야미팜을 소개한다. 야미야미팜은 영암의 황토에서 친환경으로 생산되는 멜론과 수박을 아이템으로 그동안 폐기되던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한 푸드 업사이클링을 통한 애기메론 장아찌, 메론 도시락, 메론 디저트만들기의 다양한 체험 뿐 아니라 맑고 깨끗한 1급수가 흐르는 마을에서 체험할 수 있는 재미난 프로그램들도 개발 중이다. 농촌체험의 진수를 느껴볼 수 있는 야미야미팜의 체험은 5월말부터 10월까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