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고인돌 질마재길 2코스] 복분자 풍천장어길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고창 고인돌 질마재길 2코스] 복분자 풍천장어길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고창 고인돌 질마재길 2코스] 복분자 풍천장어길

[고창 고인돌 질마재길 2코스] 복분자 풍천장어길

0m    18395     2020-09-08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고인돌공원길
063-560-2454~8

전북 고창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길 1,680개. 고창에 잠들어 있는 고인돌이다. 이곳에서는 500년, 1,000년의 역사는 자랑할 것이 못 된다. 무려 3,000년. 의자만한 것부터 작은 집만 한 것까지, 고인돌들은 말없이 흘러간 시간을 내보인다. 길가의 바위도 함부로 볼 수 없는 곳. 이곳의 바람은 미당을 키우고 소금을 익히며 사람들의 발길을 고창 깊은 곳으로 안내한다. 고창 고인돌 질마재길은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에서 가장 고인돌이 빽빽하게 자리한 고창에서 100리 조금 넘는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이다. 강둑을 따라 고창의 풍요로움은 소리 내 흐르고 아기자기한 시골마을의 길들은 모두가 같은 듯 보여도 걷다보면 그 맛이 다르다. 원평마을, 그리고 계산마을을 지난다. 서로 가까운 마을이지만 원평마을은 호수를, 계산마을은 인천강을 옆에 둔다. 인천강은 고창의 젖줄. 주변 산이나 구릉에서 흘러내린 물들은 이곳으로 녹아들 듯 합쳐져 강줄기를 이룬다. 고창의 복분자도, 풍천장어도 이 물줄기로 자란다. 옥천 조씨 지평공파의 영당 덕천사에서는 인천강 위로 춤을 추듯 날아드는 두루미를 볼 수 있다. 두루미를 비추는 인천강은 잔잔하기가 호수와 같다. 강을 따라 걷는 길은 평탄하고, 풍경은 고즈넉해 산책 나온 듯 가볍다. 할매바위가 나타난다. 강가에 드리운 커다란 바위. 90도로 강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절벽이라 부르는 것이 나을 성 싶다. 이 바위의 그늘 아래 앉아 강태공들은 인천강의 시간을 낚았다 한다. 씨알 굵은 물고기들이 덥썩덥썩 미끼를 무는 바람에 낚시명당으로 유명했다. 지금은 줄 하나에 의지한 채 절벽을 오르는 사람들만 눈에 띈다. 암벽 등반 고수쯤 되면 고창 할매바위를 지나치기 힘들다. 할매바위 아래 인천강은 이제 그들의 모습을 비추며 말없이 흐른다. 이곳에서1km 정도 걷자 아산초등학교가 나온다. 할매바위를 정복하려 찾은 외지인들은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텐트를 친다. 그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익숙한지 자신들의 놀이에 푹 빠져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학교를 돌아 오르는 나지막한 뒷산.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처럼 사람의 모습을 한 바위가 학교를 내려다본다. 오똑한 콧날과 훤한 이마, 머리 위로 몇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있어 얼핏 보고 지나쳐도 사람 얼굴이다. 이름은 병바위. 술 취한 신선이 집어 던진 병이 거꾸로 세워져 지금의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병보다는 사람 머리처럼 보인다. 몸을 돌리자 바위 얼굴이 쳐다보는 듯하다. 그 길로 내려와 인천강과 사이 좋게 길을 간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두어 개 지난다. 강 흐르는 소리조차 고요해 여행자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만 들려온다. 연기마을 입구에서 한숨 돌린다.

[고창 고인돌 질마재길 3코스] 질마재길

[고창 고인돌 질마재길 3코스] 질마재길

0m    20834     2020-09-08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고인돌공원길
063-560-2454~8

전북 고창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길< 1,680개. 고창에 잠들어 있는 고인돌이다. 이곳에서는 500년, 1,000년의 역사는 자랑할 것이 못 된다. 무려 3,000년. 의자만한 것부터 작은 집만 한 것까지, 고인돌들은 말없이 흘러간 시간을 내보인다. 길가의 바위도 함부로 볼 수 없는 곳. 이곳의 바람은 미당을 키우고 소금을 익히며 사람들의 발길을 고창 깊은 곳으로 안내한다. 고창 고인돌 질마재길은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에서 가장 고인돌이 빽빽하게 자리한 고창에서 100리 조금 넘는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이다. 연기마을 입구에서 분청사기요지까지는 금방이다. 경사진 언덕에 추수를 끝낸 논처럼 외로운 터, 과거에는 도공들이 서로의 재주를 겨루며 접시 하나, 대접 하나 손수 만들던 곳이다. 지금은 질마재에서 불어 내려오는 바람만 스쳐 지나간다. 쓸쓸한 과거의 흔적을 돌아 나가면 산림경영숲 쉼터가 나타난다. 연기마을 입구에서 다 돌리지 못한 숨을 돌리고 목도 축인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축축한 나무 기운이 묻어난다. 흐르던 땀이 바람에 가시면 몸은 한결 가뿐해진다. 길을 나선 지 얼마 안 돼 '소요사 입구'라고 써 놓은 표지판을 만난다.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걸어가니 소요산에 기댄 듯 앉은 암자가 보인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1,000년 전까지만 해도 소요산 자락에 8만 개의 암자가 있었다 한다. 지금은 소요사뿐이다. 산사는 작지만 엄숙해 저절로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게 한다. 암자를 나서면 미당이 노래하던 그곳, 질마재이다. 바람만 넘는다던 길이 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변한 것이, 미당의 「질마재 신화」는 정말 신화가 되어버린 듯하다. 고갯마루에서서 내려다 보면 사방이 시원하다. 산자락에 터를 잡은 올망졸망한 농가들, 그리고 그들이 삶을 일궈 내는 들판이 펼쳐진다. 시야가 좋으면 변산반도도 눈에 들어온다. 내려오는 길도 마찬가지로 거칠 것 없는 말끔한 도로. 국화마을로 들어간다. 이름처럼 모든 집 담에, 지붕에 국화가 소담하게 그려져 있다. 국화를 닮은 마을 사람들의 얼굴도 그려져 여행자를 반긴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사람 사는 마을이다.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은 쉼터 하나가 전부. 마을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까 마을 안에서는 조심한다. 가을이면 300억 송이의 국화가 국화 그림과 어우러진단다. 미당의 '국화 옆에서'가 눈앞에 그려질 만하다. 마을 지척에 폐교를 개조하여 만든 미당시문학관에 들른다. 옛 학교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은 원래 하나였던 듯 잘 어울린다. 미당이 남긴 아름다운 시구가 둘 사이를 끈끈하게 잇는다. 이곳에서 10분이면 미당생가도 볼 수 있다. 미당이 기억하는 옛 추억은 이곳에서 쌓인 것. 마루에 앉아서 미당을 키웠다던 바람과 만난다. 여행자의 8할도 바람으로 채워진다. 좌치나루터는 미당 생가 아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장에 갈 때 들고나던 곳이다. 이곳에서 인천강을 건너고 질마재를 넘어 저녁 찬거리를 장만했단다. 배가 다니던 분주함은 이제 기억과 흔적으로만 남았다. 인천강을 훌쩍 넘어 바다로, 바다로 걷는다. 짭짤한 소금 기운이 갯벌의 모습과 함께 몸으로 스민다. 10km의 해안선을 따라 널찍한 갯벌이다. 서울 밥상이든, 강원도 밥상이든 그 위에 오르는 바지락은 모두 이곳에서 나올 터. 갯벌을 가로지르며 경운기 한 대가 달리자 갯벌체험 온 아이들이 꺅 소리를 낸다. 하전갯벌 학습체험장에선 옷이 진흙투성이가 되어도 혼내는 사람 아무도 없다. 구르고 뛰며 아이들은 갯벌만큼 넓어진다. 갯벌을 지나면 백제시대부터 재래소금 생산지로 알려진 검당포가 나온다. 검당은 검단선사가 이곳 장사현에 들어와 첫 포교를 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 선운사가 세워지기 전 이곳은 바다만 있고 논과 밭이 적어 모두가 어렵게 살았다 한다.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밤만 되면 산에서 내려오는 도적떼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검단선사는 도적들과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후손까지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며 소금 만드는 법을 일러준다. 시간이 지나자 마을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빛을 보기 시작했고, 고마운 마음에 소금을 만들어 선운사에 공양하기 시작했다. 옛 이야기 속의 풍속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데, 선운사검단선사보은염선재라 하는 축제가 그것이다. 심원면 사람들이 모두 참여해 그 규모도 상당하다. 이곳에는 지금도 소금을 구웠던 벌막과 소금샘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소금전시관까지 세워져 옛 소금 만드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고창 고인돌 질마재길 1코스] 고인돌길

[고창 고인돌 질마재길 1코스] 고인돌길

0m    19746     2020-09-08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고인돌공원길
063-560-2454~8

전북 고창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길 1,680개. 고창에 잠들어 있는 고인돌이다. 이곳에서는 500년, 1,000년의 역사는 자랑할 것이 못 된다. 무려 3,000년. 의자만한 것부터 작은 집만 한 것까지, 고인돌들은 말없이 흘러간 시간을 내보인다. 길가의 바위도 함부로 볼 수 없는 곳. 이곳의 바람은 미당을 키우고 소금을 익히며 사람들의 발길을 고창 깊은 곳으로 안내한다. 고창 고인돌 질마재길은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에서 가장 고인돌이 빽빽하게 자리한 고창에서 100리 조금 넘는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이다. 산등성이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선사의 시간들 고창하면 고인돌, 고인돌하면 고창. 그래서 시작은 고인돌박물관이다. 고인돌에 대해 부족하다 싶으면 이곳에서 기초 지식을 탄탄하게 쌓고 가야 가는 길이 즐겁다. 길가에서 문득문득 마주치는 고인돌과 아는 체를 하기 위한 준비단계. 됐다 싶으면 사람 보는 게 고인돌 보기 보다 힘들다는 고인돌유적지로 출발한다. 박물관에서 유적지가 훤히 보이지만 느긋하게 한가로운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10분이 조금 넘는다. 한국판 왕들의 계곡은 산등성이부터 시작이다. 언덕에 발을 들이자 듬성듬성 놓인 고인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 고인돌을 마주치면 바짝 놀라지만, 차차 엄청난 수의 고인돌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곧 시들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하나 둘러보다간 이곳에서 지는 해를 맞이할 터, 산책하는 기분으로 언덕을 오른다. 탐방로를 따라 언덕을 돌고 돌며 풀숲에 앉은 고인돌을 본다. 3km 남짓되는 고인돌 탐방로 위로는 선들선들 바람이 분다. 이곳에서 원평마을로 난 길과 매산재를 지나는 길을 놓고 고민을 한다. 동양최대고인돌을 보려면 조금 더 걷더라도 매산재 길을 선택한다. 이길에는 동양최대고인돌 뿐만 아니라 생태연못과 생태습지가 있어, 도보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오베이골 생태연못에는 어리연꽃, 수련, 노랑 꽃창포 등 갖가지 식물들이 자란다. 쑥부쟁이와 억새밭 자생지이기도 한 습지식물의 보고, 오베이골 습지도 마찬가지이다. 지나가는 길로 물잔디, 네가리, 검정말, 왕버들나무 등 습지식물들이 반긴다. 습지식물의 생소한 모습이 신기하다. 식물들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어느새 운곡저수지가 나타난 것도 모른다. 저수지가 보이는 길은 호젓하다. 늘 바람이 먼저 지나가는 길이다. 저수지 위로 안개가 맺히는 날엔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듯 몽환적이다 텃새 날아가는 소리와 야생동물 발자국 소리만이 맴돈다. 길가로 동양최대 고인돌이 불쑥 나타난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보아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의 풀이 우거졌어도 그 거대한 시간의 흔적은 흔들림이 없다. 거뭇거뭇한 표면은 비와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3,000년을 이어져 단단한 갑옷 마냥 반질하다. 운곡저수지는 여행자 옆을 마냥 따라온다. 용계리 청자도요지가 슬쩍 길옆으로 나란히 선다. 이곳은 고려 초기 청자를 빚어내던 곳. 고운 흙이 있고 바다가 지척이라 청자를 만들어 개성이나 중국으로 보내기에 좋은 위치이다. 지나치며 바라본 터만 봐도 얼마나 많은 도공이 청자를 만들고 부스며 시간을 보냈는지 짐작이 된다. 용계리 청자도요지를 지나 남으로 돌아선다. 운곡저수지를 둘러가는 길이라 물은 계속 여행자를 비춘다. 물그림자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원평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고인돌유적지에서 바로 왔으면 한참 전에 지나갔을 곳이지만, 대신 쌓인 시간만큼 묵직한 고인돌과 저수지를 끼고 흐르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았다.

고창고인돌박물관

고창고인돌박물관

15m    22668     2020-10-15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고인돌공원길 74

고창고인돌박물관은 청동기시대의 각종 유물 및 생활상과 세계의 고인돌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상설전시관은 전체 전시공간에 대한 관람정보와 상징전시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주제전시실의 전시내용을 압축해서 상징전시로 전시내용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적극적인 관람 욕구를 유도하고 관람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상징물 옆에는 안내데스크 및 정보검색 시스템을 설치하여 관람객을 위한 사진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관3층에 마련된 체험공간에서는 불피우기, 암각화 그려보기, 고인돌만들기 등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또한 원형움집의 내부를 1:1 실물크기의 모형으로 만들어 직접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전시관 외부의 넓은 야외공간은 고창 청동기인의 생활상을 체험해 볼 수 있는 테마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선사인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선사마을과 고인돌의 덮개돌을 운반해 볼 수 있는 고인돌 끌기 체험마당과 대표적인 묘제 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마당으로 구성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도산서당

도산서당

781m    17205     2020-11-11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1길 4

도산서당은 정면 4칸 측면 4칸으로 기둥은 원주를 사용하였으며, 기단은 화강석을 거칠게 다듬어 사용하였고, 주초는 자연석 주초를 그리고, 처마는 홑처마로 되어 있다. 지붕은 와가이며 와구토로 마감하였고, 연못은 조선식 연못으로 되어있다. 이 서당은 17세기경 세워진 조선시대 건물로서 원형이 잘 보존된 채 남아있어 조선시대 서당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정면3칸 측면 3칸의 와가로 지붕은 막세로 마감하였으며, 기둥은 원주를 사용하고 기단은 화강석을 다듬어 한줄로 쌓았으며, 주초는 화강석 호박주초이다.외삼문은 솟을 대문으로 대문양측을 창으로 사용하고 있다.

도산서당은 당호를 만수당이라하여 "섬뜸서당"이라고도 불려지고 있다. 고창읍 도산마을에서 동쪽으로 약 50m떨어진 가운데 위치한 이 서당은 17세기경 진사 오도항이 이곳에 서당을 세우고 강학하던 곳으로, 그 후 1862년경 진서 김영길(호 만수당)이 매수하여 후진을 양성하여 오던 중 김영길의 장손 김재종이 1907년 이곳에 새로운 강당을 건립하고 만수당이라고 이름하였다. 경내에 있는 김영길이 증손인 김정회(호 보정)가 본가앞에 있던 것을 해방후 만수당 동편으로 이건하였다.

고창장 (3, 8일)

고창장 (3, 8일)

2.9 Km    11524     2020-08-20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동산5길 24
063-560-8100

고창읍의 장날은 3일과 8일. 읍내를 가로지르는 고창천을 사이에 두고 장터가 길게 펼쳐진다. 채소전을 비롯하여 가축전, 어물전, 잡화전, 과일전 등으로 나뉘어져 열리고 있는 고창장은 한때 전북 서북부 지방의 대표적 장터로 손꼽힐만큼 규모가 컸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현대화 되어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무와 땅콩, 배, 청결미 등이 고창의 특산물. 고창 무는 맵지 않고 시원한 맛으로 널리 정평이 나있다. 땅콩 역시 약 600ha 의 경작지에서 생산되는데 이 곳 특유의 사질 양토는 땅콩을 재배하기에 더없이 좋다. 이 밖에도 풍천 장어 등을 장터에서 구입할 수 있다. 특히 복분자술은 정력 보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제철이 아니라 살수가 없다. 고창 수박도 전국적으로 이름난 특산물이다. 매년 7월에 고창 수박축제가 개최되기도 한다. 고창장 구경 후 가 볼만한 곳으로는 선운사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고창읍 내에서 30분 거리인 선운사 동백림은 현재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되어 있다. 매년 4월 20일 경 이곳에 가면 활짝 핀 동백꽃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아울러 매년 5월 5일에는 고창문화원 주관으로 동백꽃 축제인 '동백연'이 열리기도 한다.

인천가든

인천가든

3.2 Km    20190     2020-05-22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원평길 9
063-564-8643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곳으로 아산면 삼거리에서 선운사 방향으로 3~4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30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어 온 맛집으로 운곡호의 맑은 물에서 잡은 민물새우와 직접 기른 각종 유기농 채소를 넣어 만든 깔끔하고 담백한 민물새우 매운탕이 이 집의 별미다. 또한 얼큰하고 쌉쌀한 메기매운탕과 감칠맛 나는 송사리매운탕도 이 집만의 별미다.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으며, 각종 장류와 젓갈은 직접 담그는 등 정성이 깃든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운곡습지 및 고인돌군 (전북 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

13m    0     2019-08-27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고인돌공원길 74

운곡습지는 산지형 습지로서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고 생태적으로 우수한 자연환경이 보전된 지역이다. 과거 운곡습지는 계단식 논으로 개간되어 경작이 이루어지던 경작지였으나, 폐경 등 인위적인 간섭이 배제되어 현재는 생태계의 놀라운 회복과정을 거쳐 본래의 산지습지로 자연 복원되고 있어, 폐경지와 같은 유휴 농지의 습지복원 사례로 그 가치가 높다. 운곡습지는 2014년 국가지정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되어 고창 고인돌 유적과 함께 생태와 지질, 역사문화를 한번에 탐방할 수 있는 지질명소라 할 수 있다.

고인돌은 큰 바위를 이용하여 무덤을 만드는데 사용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기술과 사회현상을 파악하고 우리나라 선사문화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고창 고인돌군 밀집 지역 인근에 위치한 고인돌 채석장에서 어떻게 큰 바위를 채굴하고 이동했는지에 대한 과학적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채석장은 약 23곳에서 확인되었는데 쐐기구멍으로 추정되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채석 흔적들이 보인다. 한편 고인돌 축조에 사용된 석재는 유문암, 유문암질 화산력응회암, 데사이트(석영안산암) 등이 사용되어 왔다.

<출처 : 전라북도지질공원>

김정회고가

685m    17096     2020-02-28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1길 16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에 있는 김정회가 살았던 조선 후기 고택으로 일제강점기 때 대학자이자 서예가인 보정 김정회(1903-1970)가 살던 옛 집이다. 조선 개국공신 김사형(金士衡)의 후손으로 학자이며, 예술가인 보정(普亭) 김정회(金正會, 1903∼1970)는 기우만(奇宇萬)에게 한학을 배우고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문하에서 서화를 배워 사군자를 잘 그렸는데, 그 중 난초와 대나무 그림은 매우 유명하다.

김정회는 상류 사회 출신이었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었으며, 덕행으로 주위 사람들을 계도하였다. 타계한 후에도 사람들은 김정회의 두터운 덕망을 기리고 있다. 유학자로도 명성이 높아 성균관대학교의 전신인 경학원(經學院)에서 경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김정회 고가는 현재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사당 등 4동과 정자, 화장실 등 모두 6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용마루를 얹은 팔작지붕의 남향 건물로, 나중에 동, 서쪽에 각각 1칸씩을 덧붙였다. 안마당보다 높이 자리 잡고 있는 안채의 양식은 다른 집에 비하여 특이하다. 주초는 자연석을 이용한 덤벙주초이며, 기둥은 두리기둥이고, 처마는 홑처마이다. ‘만수당(晩睡堂)’이라고 쓴 편액이 있다. 기단의 네 모퉁이에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를 받기 위한 돌확이 놓여 있다.

동쪽에 창문이 두 개 있다. 안채 서쪽으로는 ‘수정(水亭)’이라 쓰인 편액이 걸린 사각 정자가 있으며, 뒤뜰에 연못으로 보이는 웅덩이가 있다. 안채 뒤편의 복분자밭 너머에는 사당이 있다. 사당 대문은 솟을대문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서, 축대의 높이는 약 250㎝ 정도이다. 조선 후기에 지은 전형적인 상류 계층의 가옥 형태를 볼 수 있으며, 이중 용마루를 가진 팔작지붕, 홑처마, 그리고 안마당보다 높이 자리 잡고 있는 안채의 가옥 양식이 일반적인 고가와 비교했을 때 색다르게 보인다.

전봉준 장군 생가터

1.6 Km    17525     2020-07-03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당촌길 41-8

동학농민혁명의 핵심 인물이자 지도자였던 전봉준 장군은 1855년 12월 3일 이곳 고창읍 죽림리 63번지 당촌 마을에서 서당 훈장을 하던 전장혁의 아들로 태어나 13세 무렵까지 살았다. 당시에는 서당, 안채, 사랑채 등이 있었으나 동학농민혁명 기간 중 모두 소실되었다. 그는 오척 단신의 작은 체구 때문에 녹두라는 별명을 얻어 일명 녹두장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동학농민혁명 지도부는 1894년 3월 20일(음)에 동학농민혁명 발상지인 무장기포지에서 4,000여명의 농민군이 모인 가운데 갑오동학농민혁명운동 최초의 봉기선언문인 창의문을 발표하고 조직적인 항쟁에 들어감으로써 전국농민전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봉건적 지배세력에 의한 수탈과 억압에 반대한 민족운동이며 제국주의적 외세 침략에 맞선 국권수호운동으로 갑오개혁의 도하선이 되었으며 보국안민의 기치를 높이 세운 최초의 민중항쟁이었다. 남향으로 동쪽부터 부엌, 큰방,윗방, 끝방 순서로 되어 있으며, 부엌은 앞뒤로 두 짝의 널문을 달았고, 큰방과 윗방은 장지문을 통하며 연등천장이다. 끝방은 곳간으로 사용되었으며, 끝방 앞쪽은 담을 둘러 땔감을 두었다. 두 방 앞은 툇마루를 놓았고, 대문 동쪽에 화장실이 있다. 집둘레의 돌담은 돌 사이에 회를 넣어 굳히고 짚으로 이엉을 엮어 덮었다.

화강서원

2.0 Km    1730     2020-09-17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1길 68-34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에 있는 서원. 근현대의 유학자 전우(田愚)[1841~1922]를 주벽으로 하며, 1970년 전우의 문하에 나아가 19년 동안 수학한 유영선(柳永善)[1893~1961]을 추배하였다. 유영선이 1924년에 건축한 4칸의 현곡정사(玄谷精舍)를 기반으로 1955년 유림이 창건하였고, 그 다음해 용암사(龍巖祠)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운곡서원

3.1 Km    2171     2020-09-17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운곡서원길 337

<1766년(영조 42) 고창 모양 당산에 창건되었다. 김제(金濟)·김주(金澍)·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843년(헌종 9)에 자손이 세거하는 운곡으로 이건 하면서 주자를 모시게 되었다. 1868년(고종 8) 조령으로 사우가 훼철되었고 강당만 보존되어 오다가 1900년(광무 4) 사우가 복원되었으며 1981년 아산호 축조로 서원 주위에 거주하는 자손들은 이주하고 서원만 남아있으며 전북 고창군내 거주하는 네 분의 선생 후손들이 매년(음력) 3월 9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