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사(보령)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왕대사(보령)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왕대사(보령)

왕대사(보령)

12.1 Km    23717     2023-11-10

충청남도 보령시 절길 44

왕대사(보령)는 충남 보령 왕대산(123.9m) 북쪽 해안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여 왕대산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왕대사라는 명칭 또한 여기서 유래되었다. 왕대사마애불은 왕대사 서쪽 암벽에 음각으로 새겨진 벽화로, 천년의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풍화되어 흐릿해졌지만 미륵불 어깨 부분의 법의와 좌측 몸통 뒤에서 나오는 신광이 잘 표현되어 예술적인 가치가 높다 하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왕대사는 바위산을 뒤로하여 여기저기 온통 바위로 둘러싸여 있고,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에는 차곡차곡 쌓아 놓은 큰 돌탑들과 정갈한 돌담 위를 따라 쌓여있는 아기자기한 작은 돌탑들이 인상적이다. 왕대사는 대웅전 한 채와 사무실로 쓰는 건물 등 전체적인 구조가 아담하고 정갈한 분위기의 사찰로 절벽 위에 위치한 대웅전 앞으로 대천항과 서해 바다의 경관을 볼 수 있다. 왕대사(보령)는 국도 36호선에서 해안로, 절길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대천IC가 가깝다. 대중교통은 장항선 철도 대천역과 보령버스터미널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대천항, 보령해저터널, 대천 한내돌다리, 보령문화의전당 등이 있다.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12.3 Km    32855     2023-03-14

충청남도 서천군 서인로 89-16 성경전래지 기념관

* 아름다운 포구와 우리나라 최초 성경 전래지가 있는 마을,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전래지이자 서해안 유일의 해돋이와 해짐이를 볼 수 있는 마량포구는 주변에 마량리 동백나무 숲과 해양박물관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해돋이 축제에는 10만 이상의 인파가 몰려드는 서해안의 정동진이다. 또한 마량포구의 해짐이는 서해 어느 곳에서 본 해짐이보다 아름다우며 화려하다. 마량포구는 매년 해돋이 해짐이 축제, 자연산 광어축제 등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축제 기간에도 20만 이상의 인파가 이곳을 찾아들고 있다.

* 한국 성경 전래와 그 의의 *

1. 영국 함선의 마량진(馬梁鎭) 도래와 기독교적·문화적 의의 영국 함선의 마량진 도래와 성경 전수 : 순조(純祖)실록 권 19 [국사편찬위원회 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제 48권], 순조 16(丙子, 1816년)년 7월 19일 병인(丙寅)조에는 충청수사(忠淸水使) 이재홍(李載弘)이 충청도 마량진 갈곶 밑에 이양선 2척이 표류해 온 일을 다음과 같이 장계로서 보고하고 있다. 1816년 9월 4일과 5일(음 7월18일과 19일), 영국의 함선Alceste호(함장 Murry Maxwell)와 Lyra호(함장 Basil Hall)가 비인현 마량진 앞 갈곶에 도착했다. 이 배는 이 해 영국 정부가 중국파견하는 사신 암허스트(Jeffrey William Pitt Amherst)를 태우고 중국에 도착, 이들 일행을 광동에 내려놓고 대기하는 동안 본국 훈령에 따라 조선의 서해안일대를 탐험하면서 해도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이들 두척의 배가 마량진에 도착했을 때 마량진 첨사 조대복(趙大福)과 비인현감 이승렬(李升烈)이 문정(問情)차 두 배에 승선, 검사하고 몇 건의책과 문서를 받았는데 그 받은 책이 가운데 한 권이 성경이었다. 부연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9월 4일에는조대복과 이승렬이 몇몇 종자를 거느리고 리라호와 알세스트호를 차례로 문정하였고, 그 이튿날에는 새벽부터 어제의 그 조대복과 이승렬이 문정했는데 이날 그들은 선실에서 서가에 가득한 책들과 지구의 천구의 등을 보면서 신기한 태도를 보였다. 이승렬은 아담하게 정리된 서가를 보면서 그 중 책한권을 뽑아 갖기를 원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영백과사전 전질 중의 한 권이어서 주지 못하고 그 대신 다른책 한 권을 주었으며, 이승렬은 그 답례품으로 부채를 건네주었다.

해도 작성을 끝낸 이들이 출항하려 할때 첨사 조대복은 며칠 더 기다리면 조정의 답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리라호가 이미 출발했기 때문에 알세스트의 함장 맥스웰은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쉬워하는 첨사에게 맥스웰은 책 한권을 선물로 남기고 떠났는데, 그것이 성경이었다. 조대복은 아무런 선물도 받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영어성경]을 주려 했을 때 거절했다. 그러나 선실을 떠날 때 맥스웰이 다시 권했더니 사양하지 않고 감사한 표정으로 받았다고 한다. 첨사에게 성경을 준 장면에 관해 영국측 기록에는 “그는 어떠한 선물도 받으려 하지 않았지마는 우리의 친절에 무척 기뻐하고 어느 정도 속이 풀렸다. 우리가 성경을 그에게 주었더니 감사한 모양으로 받아 가지고 퍽 우정적인 작별을 고하였다. (한국최초성경유입기념사업회 발기인대회, 성경유입참고문헌 참고)”고 했다. 그러나 충청수사 이재홍의 장계는 그 표현이 다르다. 두 기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조선측 자료는 충청수사 이재홍이 두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이는 것이 책 세 권에 약간의 문서가 있었다고 한듯하다. 그러나 영국측 자료는 한 권의 성경을 당시 조대복에게 준 것으로 밝히고 있다. 당시 영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조선측이 자기들이 받은 것이 성경인 것을 알지 못했지만 영국측 기록에 의해 이 때 받은 것이 성경임을 알게 되었다.

2. 마량진 성경전수의 역사적인 위치

1816년 9월 마량진에 일시 정박한 영국함선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을 전해주고 갔다. 그 성경의 전수가 한국사 및 한국기독교사에서 갖고 있는 역사적인 위치는 어떤 것일까? 이 점은 한국에 기독교의 전래와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마량진 사건 이전에 조선에 성경이 전래되었을 가능성과 실제로 남겨진 기록의 유무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량진사건 이전에 성경이 조선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한다는 것을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성경이 소개되었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연구나 기록의 발견으로 봐서, 마량진 사건은 기록으로 확인된, 한국 최초의 성경전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최초의 이 성경 전수 사건은 그 뒤에 복음전파의 열매를 맺는 과정으로 연결되어 갔는가 하는 점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최초의 성경전수’에 값하는 영예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며, 다만 단회적인 역사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3. 성경 전수와 한국 기독교의 출발

19세기에 들어서서 몇 차례에 걸쳐 유럽 계통의 개신교 선교사가 한국을 찾았다. 1832년 충남 원산도를 찾은 독일인 칼 귀츨라프 목사와, 1865년과 그 이듬해에 조선에 왔다가 죽임을 당한 영국인 토머스 목사가 그 좋은 예다. 귀츨라프는 1832년 충남 원산도에 상륙하여 조선 조정에 교육을 청하였다가 거절당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한역성경을 주민들에게 나뉘주며 기독교를 전파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감자 심는법과 포도 재배법을 가르쳐 주고, 주기도문을 언문 번역하고 약 1개월만에 마카오로 돌아갔는데 이 때의 항해경험을《Journal of three voyages along the coast of China in 1831, 1832 and 1833》으로 남겼다. 그가 한역성경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는 이미 모리슨이 와서 성경을 한문으로 번역 출판했었기 때문이다. 토머스 목사는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천주교박해 정책이 추진되고 있을 때 두 차례나 한국을 방문, 이 땅에서 피를 흘린 영국 선교사다.

그는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중국 상해로 왔으나 그의 아내 캐럴라인의 죽음과 상해주재선교책임자 무어헤드와의 불화로 런던 선교회를 사임, 잠시 해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뒤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윌리암슨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1865년 9월 13일 한국에 와서 2개월 반 동안 한문 성경을 나뉘주고 복음을 전했으며 그 이듬해 1866년 8월에는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에 승선, 향도 자격으로 평양에 들어왔으나 9월5일 27세의 나이로 대동강가에서 피를 흘렸다. 그는 최후의 순간에 그가 가져온 한문성경을 조선인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가 조선에 왔을 때엔 중국에서는 이미 모리슨 역 성경과 문리 역 성경 등 몇종류의 번역성경이 있었다. 그가 죽음에 앞서 남긴 성경이 그 뒤 선교사의 도래 후에 그 자손들에 의해 선교사 마펫과의 접촉을 가능하게 했다는 전언이 있다.

한국의 개신교사가 시작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1865년 4월 5일 부활 주일에 조선에 입국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등 복음선교사들에 의해서라고 이해하고 있다.

서양의 복음 선교사가 도래하기 전에 성경이 조선어로 먼저 번역되고 번역된 성경이 용감한 한국인 선배 신자들에 의해 한반도 안으로 전래되어 개종의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는것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역사는 먼저 만주 지역을 통해 일어났다. 만주지역과 관련해서는 스코틀랜드 연합 장로교회 소속의 선교사였던 로스 목사와 매킨타이어 목사를 잊을 수 없다. 그 중 로스는 처음부터 만주의 우장·영구로 들어왔고 그 뒤에 봉천으로 옮겨 선교활동을 펴면서 조선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갖고자 동만주의 한만국경지대를 순례하기도 했다. 뒤에 매킨타이어와 합류한 그는 1870년대 중반에 만주에 왔던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등 조선인 청년들을 만나 조선어를 교습받은 한편 조선어성경 번역에 동참시켰다

.이어서 1879년에는 네 사람의 의주청년이 세례를 받게 되었으며, 그 뒤 1882년에는 성경번역과 출판에 참여한 김청송과 서상륜도 로스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8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성경번역 사업은 1882년 3월에는 누가복음서가, 5월에는 요한복음서가, 그 이듬해에는 사도행전이 각기 출판되었다.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최초의 성경이었다. 한국 기독교가 세계 선교사상 유례없는 성장과 발전을 하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된다. 바로 그런 역사에 마량진 성경 전수사건은 비록 묻혀 있어 큰빛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거름이 되고 한알의 밀알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전래지이자 서해안 유일의 해돋이와 해짐이를 볼 수 있는 마량포구는 주변에 마량리 동백나무 숲과 해양박물관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해돋이 축제에는 10만 이상의 인파가 몰려드는 서해안의 정동진이다. 또한 마량포구의 해짐이는 서해 어느 곳에서 본 해짐이보다 아름다우며 화려하다. 마량포구는 매년 해돋이 해짐이 축제, 자연산 광어축제 등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축제 기간에도 20만 이상의 인파가 이곳을 찾아들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사가 시작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1865년 4월 5일 부활 주일에 조선에 입국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등 복음선교사들에 의해서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 복음 선교사가 도래하기 전에 성경이 조선어로 먼저 번역되고 번역된 성경이 용감한 한국인 선배 신자들에 의해 한반도 안으로 전래되어 개종의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는것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역사는 먼저 만주 지역을 통해 일어났다. 만주지역과 관련해서는 스코틀랜드 연합 장로교회 소속의 선교사였던 로스 목사와 매킨타이어 목사를 잊을 수 없다. 그 중 로스는 처음부터 만주의 우장·영구로 들어왔고 그 뒤에 봉천으로 옮겨 선교활동을 펴면서 조선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갖고자 동만주의 한만국경지대를 순례하기도 했다.

뒤에 매킨타이어와 합류한 그는 1870년대 중반에 만주에 왔던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등 조선인 청년들을 만나 조선어를 교습받은 한편 조선어성경 번역에 동참시켰다. 이어서 1879년에는 네 사람의 의주청년이 세례를 받게 되었으며, 그 뒤 1882년에는 성경번역과 출판에 참여한 김청송과 서상륜도 로스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8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성경번역 사업은 1882년 3월에는 누가복음서가, 5월에는 요한복음서가, 그 이듬해에는 사도행전이 각기 출판되었다.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최초의 성경이었다. 한국 기독교가 세계 선교사상 유례없는 성장과 발전을 하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된다. 바로 그런 역사에 마량진 성경 전수사건은 비록 묻혀 있어 큰빛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거름이 되고 한알의 밀알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토모노야호텔&료칸 대천

12.3 Km    0     2024-02-21

충청남도 보령시 해안로 341 호텔

대한민국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갯벌을 품고 있는 서해안, 그 서해안의 최대 관광지인 대천에 위치한 토모노야 호텔은 전 객실 히노끼 욕조는 물론 바다를 바라보며 도심 속 피로를 풀 수 있다. 차량으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대천해수욕장에서 여러가지 체험을 즐기고 히노끼 욕조에서 쌓인 피로를 풀며 힐링하기에 적합한 숙소다.

서천 마량진항 해넘이·해돋이 축제

서천 마량진항 해넘이·해돋이 축제

12.4 Km    23466     2024-02-06

충청남도 서천군 서인로 58
041-952-9123

서천군 마량진항에서는 올 한해 열심히 달려온 우리를 위한 선물, 한 곳에서 해넘이와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다. 서면개발위원회는 12월 31일부터 1월 1일까지 서면 마량진항 일원에서 「서천 마량진항 해넘이·해돋이 행사」를 개최한다. 서해안에서 일몰과 일출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서천군 마량진항은 매년 한해의 마무리와 함께 새해의 소망을 기원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서천 동백꽃 주꾸미 축제

서천 동백꽃 주꾸미 축제

12.4 Km    270278     2024-03-12

충청남도 서천군 서인로 58
041-952-9123

먹거리 찾는 미식가도, 이른 꽃놀이를 찾는 관광객도 모두 함께하는 축제이다. 동백꽃이 한창 필 무렵, 주꾸미 잡이가 한창이다. 만발한 붉은 동백꽃 구경도 하고 통통한 주꾸미 요리도 맛벌 수 있다.

서천 자연산 광어 도미 축제

서천 자연산 광어 도미 축제

12.4 Km    108855     2024-04-25

충청남도 서천군 서인로 58
041-952-9123

5월, 서천의 앞바다에서는 자연산 광어와 도미 잡이가 한창이다. 성질 급한 자연산 광어는 운송 과정에서 신선도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도시민을 포구로 초대하여 신선한 자연산 광어 도미 축제를 개최! 광어회와 도미회를 맛보는 멋과 맛의 축제이다.
일몰과 일출을 동시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포구에는 5월이면 마량포구 수협 수산물 판매장 및 서면 홍원항 어판장으로 광어를 가득 실은 선박들이 하역 하느라 정신이 없다. 넙치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광어라고 부르는데 모래바닥이나 뻘밭에 엎드려 사는 물고기여서 동해안 보다는 서해안과 남해안에 많이 서식한다. 우리가 주로 횟집에서 맛볼 수 있는 광어회는 대부분 양식으로, 자연산을 맛보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자연산 광어는 횟집수조에 오래 견디지 못하고 운송과정에 스트레스를 받는 등 신선도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찍이 각망어업인 '삼각망어업'이 발달된 서천 마량진항은 20여 년 전부터 남해에서 기술을 도입하여 조업을 하게 된 것이 발단되어 지금은 전국 최대의 자연산 광어 생산지가 되었다.
축제기간에 오면 광어회와 매운탕을 저렴하게 맛볼수 있으며, 또한 주말과 휴일에는 맨손 광어잡기 체험과 광어 낚시 체험, 성경전래지 기념공원에서 보물찾기 등 다양한 체험거리를 즐길 수 있다.

마량 방파제

마량 방파제

12.4 Km    24131     2023-11-20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서인로 56
041-950-4114

마량방파제는 이름 그대로 마량포구를 보호하는 방파제로 큰 방파제(300m)와 작은 방파제(70m), 수중 방파제(120m), 등대로 되어 있다. 이곳의 어민들은 자연산 넙치를 잡고 있다. 봄이 되면 넙치들이 산란을 위해 갯벌의 연안으로 몰려들고, 이때를 맞추어 넙치를 잡는 것이다. 만과 곶이 잘 발달한 마량포구 일원은 경관도 좋을 뿐만 아니라 국내 최고의 품질과 맛을 자랑하는 서천김 양식장이 위치해 있고, 바다에 나간 어민들이 갓 잡아 온 싱싱한 해산물을 경매하는 어판장도 포구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12월 31일~다음해 1월 1일에 서천 마량진항 해넘이, 해돋이가 열려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 외에도 주변에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숲, 동백정, 춘장대해수욕장, 홍원항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마량포구

마량포구

12.5 Km    0     2023-09-13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서인로 56

서천군 서면 마량포구는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끄트머리에 있어 지형적 위치상 일몰과 일출을 함께 볼 수 있다. 그래서 마량포구에 위치한 마량리는 ‘마량포 해돋이 마을’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매해 연말연시에는 전국 각지에서 일몰과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마량포구 방파제는 고기가 잘 잡히는 포인트이며, 새벽에 마량포구 어판장에 가면 어민들이 갓 잡아 온 싱싱한 해산물을 경매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또한, 마량포구에서는 축제가 많이 열리고 있다. 1월 마량포 해돋이 축제, 3월 동백꽃 주꾸미 축제, 5월 자연산 광어 도미 축제, 6월 한산모시문화제, 7월 춘장대해수욕장 여름 문화 예술제, 8월 홍원항 전어·꽃게 축제 등 줄줄이 열려 볼거리,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마량포구 뒤편으로 가면 5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동백나무 7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는 동백나무숲이 있다. 여름철 저녁엔 LED 조명을 밝히는 조형물들이 있는 마량포구 광장에서 종종 작은 음악회가 열려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비인장 (4, 9일)

비인장 (4, 9일)

12.5 Km    14392     2023-03-09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비인로149번길 12
041-950-4125

서천군 북부의 큰 시장으로 겨울철에는 해산물 특히 해태의 거래가 많았다. 오늘날에는 농산물중곡물 그리고 해산물, 잡화, 일용품의 거래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북쪽의 모령군 간치시장과 나란히 큰 시장으로 상인과 사람들이 운집하는 시장이다. 비인장이 서는 비인면은 차령산맥(車嶺山脈) 말단의 산지에 위치하며, 면 중앙에 월명산(月明山:298m)이 솟아 있다. 또한 면내에 여러 개의 저수지가 축조되어 있어 산과 강, 저수지 등의 자연 여행지가 많다. 문화재로는 비인 5층석탑(보물 224), 비인향교(庇仁鄕校:충남기념물 129), 비인읍성(충남문화재자료 133), 성북리 성지(城北里城址), 장포리(長浦里) 성지 등이 있다.

비인해수욕장

12.6 Km    0     2023-04-18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갯벌체험로 492-24

비인해수욕장은 해변 길이가 2.5㎞이고 폭이 700m로 광활하다. 해송림에 둘러싸여 있는 건 큰 장점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 썰물 때면 2∼3㎞의 갯벌이 펼쳐진다. 덕분에 해수욕과 갯벌 체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선도리 갯벌 체험마을에서 직접 운영하는 갯벌 체험은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해수욕장 앞에는 다양한 음식점이 있어 각종 해산물을 취향껏 맛볼 수 있다. 부근에 동백꽃으로 유명한 마량리 동백숲,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마량포구, 서천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춘장대 해수욕장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