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손칼국수 본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강화손칼국수 본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강화손칼국수 본점

강화손칼국수 본점

0m    0     2024-01-11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남로 678

강화손칼국수 본점은 인천 강화군 양도면에 있다. 주차장은 음식점 바로 앞, 뒤편에 마련되어 있다. 이 음식점의 대표 메뉴는 바지락칼국수, 바지락 얼큰, 칼제비, 칼제비 얼큰이다. 칼제비는 칼국수, 수제비, 바지락이 들어있다. 칼국수에는 단호박 채 썬 것, 바지락, 야채가 들어있다. 반찬으로는 배추김치와 순무김치가 나온다. 바지락얼 큰의 맵기는 매운 라면 정도의 맵기이다. 식당 인근에는 자동차 15~20분 거리에 강화 루지, 동막해변이 있어서 연계 관광이 가능하다. ※ 반려동물 동반 불가

등나무가든

등나무가든

10.0 Km    22285     2023-01-09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해안동로 76
032-937-4000

초지진 근처에 횟집촌이 형성되어 초지진 앞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활어들을 맛 볼 수 있다. 이 곳에 위치한 등나무회집은 20년간 한자리에서 신선한 회로 미식가의 입맛을 돋워준 전문 횟집이며, 이 집의 맛깔 나는 음식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여러차례 알려진바 있다. 그리고 회와 장어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으로 담쟁이 넝쿨로 한껏 멋을 낸 붉은 본채 건물과 유럽식의 3층짜리 별채 건물, 기와를 얹은 사랑채가 있어 단체손님을 받기에도 적격이다.

백련사(강화)

10.1 Km    35514     2023-11-17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고려산로61번길 270

인천광역시 강화군 고려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416년 고구려 장수왕 때 창건됐다. 전설에 따르면 삼국시대 한 인도의 승려가 절터를 물색하다가 고려산 정상에서 다섯 색의 연꽃이 만발한 연못을 발견하고 이 다섯 색의 연꽃을 꺾어 날린 다음 꽃이 떨어진 자리에 절을 세웠다. 그중 하얀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절을 짓고 이름을 백련사라 했다고 한다. 그 후 확실치는 않으나 조선 순조 6년인 1806년 서산대사의 제6대손 천봉후인 의해당 처활대사의 사리비와 부도탑을 건립했다는 기록이 있다. 1906년 극락전과 삼성각을 중수하고 지금 남아있는 건물로는 극락전, 삼성각, 칠성각, 범종각, 요사 등이 있다. 보물로 지정됐던 백련사 철조아미타여래좌상은 보물로 지정된 그해 도난당했다. 팔만대장경이 한때 이곳에 봉안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경내에 470년과 350년 된 느티나무와 100년 된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는다.

석모도 미네랄 온천

석모도 미네랄 온천

10.2 Km    67007     2024-01-29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삼산남로 865-17

보문사, 민머루해수욕장, 석모도수목원과, 휴양림 인근에 위치한 석모도 미네랄 온천은서해바다를 바라보며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석양을 감상하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해풍과 햇빛이 그대로 몸으로 전해져 몸과 마음의 안정을 취하기에 좋다.

김포 덕포진

김포 덕포진

10.2 Km    24572     2023-11-23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덕포진로103번길 130

김포 덕포진은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에 자리한 조선시대의 전략적 요충지로, 소규모 군사기지인 돈대와 포대, 파수청이 있었다. 돈대는 주변 관측이 용이하도록 높은 땅에 설치한 기지이다. 포대의 경우엔 아군의 포격에 편리하도록 구축된 축성물이며, 파수청은 탄약고와 포대에 사용하기 위한 불씨를 보관하고 포병을 지휘하던 곳이다. 강화해협을 통해 수도 한성으로 진입하려는 외세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곳으로, 처음 세워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79년 강화의 광성보, 덕진진과 함게 축성되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격전지로써, 덕포진 앞의 해협이 매우 좁고 물살이 빨라 손돌목이라 부르기도하였다. 1970년 무렵 김기송 씨(현 문화 관광해설사)의 첫 발굴을 시작으로 1980년 발굴 당시 현장에서는 포대 15곳과 화포 6문 등이 발견됐다. 파수청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다가 2023년 복원공사를 진행했다.

꼬막한상

꼬막한상

10.2 Km    1     2024-01-12

인천광역시 강화군 해안남로 334 원적외선숯불장어

꼬막한상은 인천 강화군 길상면에 있다. 1층은 꼬막한상이고 2층은 유리로 된 카페와 한 건물로 되어있다. 이 식당의 특별한 점은 로봇이 서빙하는 것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꼬막 비빔밥이다. 꼬막 비빔밥은 비벼져 나오는 고추를 빼고 주문이 가능하다. 그 외 메뉴는 대구뽈탕, 꼬막 초무침, 꼬막 부추전이 있다. 꼬막 부추전은 평일만 주문이 가능하다. 메인 메뉴에는 밥과 반찬이 포함되어 있는데, 밥과 반찬이 필요하지 않을 경우 꼬막의 양을 더 준다. 재료가 소진되면 영업시간 전에 마감하는 경우가 있다. 부근에 캠핑장, 미술관, 골프장 등이 있어 연계 관광이 가능하다.

유리카페

유리카페

10.2 Km    2     2024-04-03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해안남로 334

강화도 루프탑 유리카페는 15m 높이의 루프탑 매장이라 가리는 것 없이 시야가 탁 트인 바다 전망과 반대편 길상산의 사계절 풍경을 보며 차를 마실 수 있다. 2층 건물과 4층 루프탑 모두 MPG공법의 고급 통유리 창과 유리박스로 인테리어 되어있어 강화도 경치를 보시며 커피 한잔 하기 좋은 카페이다. 다른 카페에는 없는 유리카페만의 시그니처 음료인 말차구름라떼, 허니라떼, 장미차를 맛볼 수 있으며, 다양한 맛의 5가지 크로플이 준비되어 있다.

완초장

10.2 Km    13843     2023-04-13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충렬사로22번길 8-1
032-932-9018

완초장은 왕골로 돗자리 등의 기물을 만드는 공예기술 또는 장인을 말한다. 1996년 5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기능보유자는 경기도 강화군 강화읍 신문리에 사는 이상재선생이다. 현재 가내수공업으로 꽃삼합, 폐백동구리, 보석함 등을 판매하고 있다. 완초장이란 왕골로 기물을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왕골은 논 또는 습지에서 자라는 1, 2년생 풀로서 키는 60∼200㎝에 이르며 완초, 용수초, 현완, 석룡초라고도 한다. 왕골제품으로는 자리, 돗자리, 방석, 송동이, 합 등이 있다. 왕골이 신라시대에 이미 사용되었음은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고려때에는 사직신의 신위에 왕골자리를 깔았으며, 왕실에서 주로 사용하였고, 중국에 보내는 증여품으로도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매우 귀한 제품으로 궁중이나 상류계층에서 사용하였고, 외국과의 중요한 교역품으로도 쓰였다. 현존하는 왕골제품을 통해 본 제작기법으로는 도구를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과 손으로 엮는 방법이 있다. 도구를 이용하는 방법 중 한 가지는 고드랫돌에 맨 두 가닥 실을 자리틀에 걸고 자리알을 두가닥 실로 엮는 노경소직(날줄이 겉으로 들어나 보이며 성글게 짜여진 기법)의 자리와 방석이 있으며 또 하나는 돗틀에 씨실을 촘촘히 걸어 긴 대바늘에 꿴 자리알을 넣으면서 바디로 눌러 다져서 짜는 은경밀직(날줄이 겉으로 들어나지 않으면서 촘촘히 짜여진 기법)의 돗방석과 돗자리가 있다. 손으로 엮는 방법으로는 왕골 4날을 반으로 접어 총 8개의 날줄을 정(井)자형으로 엮은 후 두 개의 씨줄을 엮어 만드는 8각, 원형의 방석이 있고, 삼합, 송동이(작은 바구니) 등도 모두 이 기법을 이용하여 만든다. 왕골제품은 역사가 오랜 생활문화유산으로, 한때 단절위기도 있었지만 1970년 이후 그 제작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지금까지의 왕골제품은 깔 것과 용기에 불과하였으나, 염색과 굵기의 조절이 용이하며 특별한 도구 없이도 다양한 기물을 창작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므로 전통적인 제작기법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이상재가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있다.

황토장인만찬

황토장인만찬

10.2 Km    39235     2023-03-15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해안남로 362
032-937-7768

황토장인만찬은 강화도에 위치한 한식 맛집으로 영양가마솥밥과 석갈비가 일품인 맛집이다.

강화 초지진

10.2 Km    53796     2023-11-16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해안동로 58

길상면 초지리에 위치한 초지진은 외적의 해상 침입을 막기 위해 효종 7년(1656)에 조성한 12개의 진보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초지진은 원래 안산의 초지량에 있던 조선 수군의 만호영을 현종 7년(1666)에 강화로 옮겨 강화수로 수비의 요새로 새롭게 축조한 것으로 군관 11인, 사병 98인, 돈군 18인, 목자 210명 등이 배속돼 강화해협을 수비했으며 초지돈대, 장자평돈대, 섬암돈대를 맡아 지휘했다. 병인양요(1866) 때는 이곳에서 프랑스 함대와, 신미양요(1871) 때는 미국 함대와 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고종 12년(1875)에는 일본 군함 운요호가 포격전을 일으켰던 현장으로 1876년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을 체결하고 외세에 문호가 개방된 이후 방치돼 허물어졌다. 1973년 초지돈대만 복원되었는데 높이 4m의 타원형으로, 포좌 3개소와 총좌 100여 개가 있으며, 조선시대 대포 1문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도 돈대 옆 소나무 두 그루와 성벽에는 신미양요나 운요호 사건 때 포탄에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강화도와 초지진에 대한 무료 문화해설 프로그램이 있다. 초지진 문화해설, 안내소에서 신청할 수 있으며,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은 휴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