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큰회수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통큰회수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통큰회수산

1.0 Km    0     2024-01-05

충청남도 태안군 시장3길 15

통큰회수산은 충남 태안군 태안시장 내에 위치하고 있다. 수산물이 싱싱하고 푸짐한 양에 가격도 저렴해 단골이 많다. 활어회는 적절한 숙성 후 제공하고 있어 맛이 좋다. 또한 2018 전국오너&셰프 물회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셰프가 운영하는 곳으로 물회 맛도 최고 수준이다.

태안별빛캠핑장

태안별빛캠핑장

10.6 Km    1     2023-08-02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법산길 160-20

태안별빛오토캠핑장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해 있다. 파쇄석과 데크로 이뤄진 일반캠핑장 61면을 갖췄으며 파쇄석 사이트는 가로 10m 세로 8m, 데크는 가로 6m 세로 4m다. 또한 글램핑과 흡사하지만, 내외부가 모두 목재로 이뤄진 캠핑 하우스가 있다. 내부는 2층 침대를 비롯해 미니 냉장고, 선풍기가 있고, 외부 데크에는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했다. 무선인터넷은 불가능하지만 전기와 화로대는 이용이 가능하다. 개인 트레일러와 카라반 입장이 가능하며, 카라반 이용요금은 별도로 문의가 필요하다 캠핑장과 가까운 거리에 만리포해수욕장, 천리포항, 모항항이 있고 바닷가 부근이라 해산물을 파는 음식점도 많다

주벅배전망대

주벅배전망대

10.8 Km    1     2023-11-16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주벅배전망대는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배 모양의 전망대로 1층,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벅배전망대가 있는 주벅녀는 작은 바위밭을 연상시킬 만큼 먹빛 바위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굴과 조개, 해조류 등이 풍부한 곳이며 큰 기둥을 세워 어망을 설치하던 곳에서 비롯되었다. 어망의 정식이름은 ‘주목망’인데 말이 변하여 ‘주벅’이 된 듯하고 주벅녀는 주벅을 세웠던 바위를 뜻한다. 주벅배전망대 주변으로 데크 길이 있어 바다를 감상하며 산책할 수 있고 데크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물이 빠졌을 때 이용할 수 있다. 데크 길과 연결된 낚시터도 있다.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말로써, 바다와 산이 만나는 서산 지역의 특색을 갖춘 친환경 트레킹 코스인 서산아라메길 구도범머리길 구간에 포함되어 있어 트레킹을 통해서도 가볼 수 있다 (사진 출처: 서산시청 관광과)

우니메이카 태안점

우니메이카 태안점

10.8 Km    2     2022-11-15

충청남도 태안군 산간이길 158-24

우니메이카 태안점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 신덕리에 자리 잡았다. 태안군청을 기점으로 15km가량 떨어졌다. 자동차를 타고 서해로와 산간이길을 번갈아 달리면 닿는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20분 안팎이다. 캠핑장은 깊은 숲속에 위치하고 있어 요새 같은 느낌이다. 데크로 이뤄진 일반캠핑 사이트 15면이 마련돼 있으며, 사이트 크기는 가로 4m 세로 4m다. 사이트 간격이 무척 넓어 프라이빗한 캠핑을 만끽할 수 있다. 솔로 캠핑이나 미니멀 캠핑을 즐기는 캠퍼들이 열광할 만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게다가 개별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주변에는 만리포해수욕장과 만리포항이 있어 연계 관광에 나서기 수월하다. ※ 반려견 동반 불가능

부석사(서산)

부석사(서산)

10.8 Km    48052     2023-12-07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부석사길 243

서해안 도비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사찰은 677년(신라 문무왕 17)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1,500년 가까운 고찰이다. 그 뒤 무학대사가 중건하였고, 1984년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이곳에는 극락전, 요사채, 신검당, 안양루 등이 있으며 불상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하여 관세음보살, 대세지 보살, 지장보살 등 8좌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사찰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또한 사찰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찰이 있는 도비산은 정상의 해발고도가 352.8m로 높지는 않지만 서해안에 홀로 우뚝 솟아 주변이 잘 내려다보이는데, 특히 서해 낙조가 장관이다. 그리고 서산 아라메길 도비마루길의 경유지이기도 하여 이와 연계하여 관광하는 것도 좋다. 주변에는 그 외에 간월호, 천수만(철새도래지) 및 서산버드랜드 등이 있다.

풍전 저수지

풍전 저수지

10.8 Km    21127     2024-06-10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풍전1길 117
041-662-2064

이곳은 서산시가지와 가장 가까운 평지형 저수지로 다른 저수지에 비해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이곳은 본래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간월호로 흘러드는 둔당천을 막아 조성하였는다. 주로 잡히는 어종은 배스, 가물치, 풍어 등이고 이곳은 수초가 잘 형성되어 있다. 3~4월의 산란기에는 제방 우측 상류권과 제방 좌측 상류에 수초가 있낚시고 경치를 구경하기에도 좋다. 이곳 주변에는 서산중앙호수공원, 서산 서광사, 서산향교, 서산 둔당리 지석묘 등이 있다.

카페모월

카페모월

10.9 Km    0     2024-01-25

충청남도 서산시 관청터길 7-1

카페모월은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에 있다. 숲 속에 조성되어 있어 자연을 만끽하며 음료 등을 맛볼 수 있다. 통창으로 이루어진 카페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대표 메뉴는 아메리카노이며, 이 밖에 에스프레소, 카페라테, 카푸치노, 카페모카, 딸기 스무디, 레몬차, 백향과 차, 백향과 에이드, 자몽에이드 등도 판다. 해미 IC에서 가깝고, 인근에 서산버드랜드, 간월도가 있어 연계 여행에 나서기 쉽다. ※ 반려동물 동반 가능(목줄, 배변봉투 지참)

서산 꽃송아리마을

서산 꽃송아리마을

11.0 Km    17778     2023-11-20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한월당로 704

이 마을은 서산 금강산 동쪽 자락의 농촌체험마을로, 꽃과 소나무가 많다 하여 꽃송아리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 농경지에서는 감자, 마늘, 고춧잎, 벼, 고구마를 수확하는 농촌 체험을 할 수 있고, 체험관에서는 대나무통 마늘밥, 마늘과자, 감자옹심이, 감자수제비, 무릇고구마떡, 손두부를 만드는 향토 음식 만들기와 대나무 미니 화분 만들기, 짚풀공예, 제기 만들기, 연 만들기와 같은 농촌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다. 또한 마을 둘레길을 통해 산책하며 금강산 자락을 느껴볼 수 있다. 그리고 매년 정월대보름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서낭제를 지내고 있어 마을 전통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이곳은 주위에 금강산뿐만 아니라 팔봉산, 고남저수지, 양길리 서해 갯벌 등이 있다.

봄날

봄날

11.0 Km    4326     2023-01-31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지산철장길 37-7
041-663-3115

농가맛집 봄날은 신실한 농부 유환근씨와 채집농부 권태숙씨 부부가 땀흘려 생산하고 자연에서 채취한 건강한 식재료에 서산의 바다향이 가득한 해산물을 더해 차려낸 봄날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밥상을 제공하는 곳이다. 계절을 느낄 수 있는 3색 계절나물과 집게발이 크고 붉어서 서산에서는 '황발이'라 불리는 농게로 만든 게장, 직접 농사지은 토종박과 들깨로 만든 깻묵장 등 자연을 그대로 차려내는 음식점이다.

이종일선생생가지

이종일선생생가지

11.0 Km    17802     2024-05-30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옥파로 199-7

이종일 선생의 생가터는 태안보훈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종일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애국지사이다. 선생의 생가는 1979년 3월 1일 원북면 반계리에서 태안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이었던 박춘석에 의해 발견됐고 1986년에 복원되었다. 나무로 지은 초가집과 복원할 때 지은 사당, 낮은 돌담이 있다. 이종일선생생가지 내 주요 시설로는 초가집, 사당, 옥파이종일기념관, 체험관이 있으며 체험관에서는 태극기 만들기 체험을 운영한다. 선생은 1858년 11월 6일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 89번지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총명한 재질과 뛰어난 학구력으로 한학에 전념했고 16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2년 수신사 박영효와 함께 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와 그곳의 개화된 문물을 접한 후, 개화의 의지가 불붙었다. 그 뒤 정2품 중추원 의관이 되었으나 쇠퇴기의 국운을 통탄하며 취임 10여개월 만에 관직을 내려놓고 구국운동에 뛰어들었다. 기울어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민중 계몽과 인재 양성이 중요함을 느끼고 신문 발행과 교육 사업에 모든 정열을 쏟았다. 1919년 2월 3.1운동의 계획을 듣고 그 자리에서 민족 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것을 수락하고, 직접 독립선언서 원고를 인쇄하여 국내외에 배포하였다. 대한협회, 자강회, 조선국문연구회 등 구국 단체를 조직하여 정신 개조를 주장하고 근면과 노력을 강조하였으며, 한글 맞춤법 연구에 이바지하다가 1925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