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두천권역마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갈두천권역마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갈두천권역마을

갈두천권역마을

12.8 Km    0     2023-12-14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대기길 12-20

충남 태안군에 위치한 갈두천은 원북면의 대기리, 양산리, 장대리, 청산리 등 갈두천 일대 마을이 모여 이루어진 곳으로 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갖춘 명품 마을이다.갈두천은 주민들의 뜻을 한 데 모아 지역 여건에 맞는 지역 발전계획을 세우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그윽한 솔내음 속에 머물고 싶은 마을', '쾌적하고 활기 넘치는 살기 좋은 농촌마을'로 조성되었다. 3km의 갈두천을 가로수 및 야생화 식재, 태양광 가로등, 생태관찰테크 설치, 갈대숲 복원 등을 통해 자연친화적으로 정비해 생태학습장을 조성하고, 갈두천의 발원지인 장대1리 마을 야산은 생태연못과 정자 설치 등으로 권역의 명소로 개발될 전망이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신동국여지승람 등 역사서에도 나왔을 정도로 과거 사냥터로 유명했던 대기리를 차별, 활성화하기 위해 활쏘기 체험장을 건립하였다.

우리집펜션

12.9 Km    15954     2024-02-21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진산2길 144
041-675-5276

우리집펜션은 저수지가 바로 앞에 있어 민물낚시를 즐길 수 있으며, 야외수영장이 완비되어 있어 신나는 물놀이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또한 펜션인근의 진산바닷가(차량 2분거리)에서 갯벌체험을 즐길 수 있다. 아이들은 물론, 누구나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일곱개의 예쁜 객실에는 편안히 머무실 수 있도록 다양한 편의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야외에는 바베큐장이 준비되어있어 맛있는 바베큐파티도 즐길 수 있다.

신두사구 쉼터공원(신두사구 생태공원)

신두사구 쉼터공원(신두사구 생태공원)

12.9 Km    3     2024-08-01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신두해변길 201-122

신두리 해안사구는 태안반도 북서부의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규모는 해변을 따라 길이 약 3.4km, 너비 500m~1.3km이다. 사구의 원형이 잘 보존된 북쪽지역 일부가 2001년 11월 30일에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되었다. 독특한 지형과 식생이 잘 보전되어 있고, 모래언덕의 바람자국 등 사막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경관과 해당화 군락, 조류의 산란장소 등으로 경관적·생태학적 가치가 높으며, 규모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 신두리 해안사구 내에 위치한 신두리사구 쉼터공원은 탐방객의 편의를 위한 휴식공간이다. 공원에는 쉼터를 비롯해 잔디광장, 야외무대 등이 갖춰져 있다. 야외무대 뒤로 가면 신두리해수욕장을 조망할 수 있다. 공원은 태안신두리해안사구 여행의 기점으로 삼기 좋다. 공원이 신두리 사구센터와 태안신두리 해안사구로 이어지는 동선에 놓였기 때문이다.

장산모텔

장산모텔

13.0 Km    17049     2023-12-13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삼한길 4
041-672-3038

충청남도 태안군에 위치한 장산모텔은 붉은색 지붕이 달린 베이지색 선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각 객실은 아늑하고 소박하게 잘 꾸며져 있고 군더더기 없는 시설이 오히려 단아한 이미지를 준다. 각 객실은 위생과 청결에 항상 신경을 쓰기 때문에 침구는 잘 세탁해서 정돈해 놓고 있고 욕조가 딸린 욕실 또한 항상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다. 깨끗한 타월과 세면도구는 모두 제공이 되고 있고 헤어드라이어와 에어컨이 모든 객실에 구비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신두리 해안사구 고운 모래를 밟아보자.

우리나라 최대의 신두리 해안사구 고운 모래를 밟아보자.

13.1 Km    3023     2023-08-08

우리나라 최대의 해안사구인 신두리 사구는 빙하기 이후 1만 5천년전부터 형성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흙보다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사구의 언덕 위에 오르면 탁 트인 신두리 해수욕장의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모래사막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에뜨왈

13.2 Km    0     2024-01-04

충청남도 태안군 동백로 47-4

에뜨왈은 충남 태안군 태안읍에 위치한 수제돈가스 전문점이다. 매장은 규모가 넓은 편으로 모임 하기 좋은 장소이다. 치즈돈가스, 고구마치즈돈가스, 파돈가스 등 다양한 종류의 돈가스가 있으며 이 외에도 코돈부르, 생선가스, 카레돈가스덮밥 등의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든든한 한 끼 식사를 즐겨보자.

레인보우캐슬리조트

레인보우캐슬리조트

13.2 Km    5     2024-05-10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몽대로 333-7

레인보우 캐슬 리조트는 충남 태안군 남면에 자리 잡고 있다. 리조트에는 7개 동에 다양한 유형의 14개 객실이 마련되어 있다. 부대시설로는 개별 바비큐 시설, 족구장, 수영장, 아로니아 체험장 등이 갖추어져 있다. 리조트 주변에는 몽산포해수욕장과 달산포해수욕장이 위치하고 있어 연계 여행에 나서기 수월하다.

CLUB 596

CLUB 596

13.2 Km    0     2023-09-21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몽대로 360-9

CLUB 596은 충남 태안군 남면에 있다. 태안군청을 기점으로 자동차로 15분이면 도착한다. 이곳은 태안의 농촌과 해변 사이에 위치했다. 이 덕분에 시골의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다. 아울러 바닷가의 짠내가 코끝을 간질인다. 캠핑장은 드넓은 잔디밭 위에 글램핑 5개 동을 배치했다. 객실을 띄엄띄엄 띄어 놓아 프라이빗한 캠핑을 만끽할 수 있다. 객실 내부는 침대, 소파, 테이블, 에어컨, 선풍기, 냉장고, TV, 취사도구, 조리도구 등을 갖췄다. 외부 전용 데크에는 바비큐 시설을 구비했다. 전기와 무선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며, 관리소에서 화로를 빌릴 수 있다. 캠핑장에서 도보 2분 거리에 해변이 있어 해수욕을 즐기기 좋다. 캠핑장 인근에 몽산포해변, 달산포해변, 청포대해변 등 관광지가 많고, 해산물 전문 음식점도 많다.

팜카밀레

13.9 Km    38425     2024-09-20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우운길 56-19

팜 카밀레란 농원(Farm)이라는 영문의 이름과 허브를 대표하는 카밀레(Kamille)와의 합성어로서 말 그대로 허브를 가꾸고 향기를 전달하는 농원이라는 뜻이다. 국내 최초로 허브차를 수입, 제조 판매해온 (주) 허브라가 다년간의 허브차, 허브 용품의 제조 및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오픈한 1만 2천 평 규모의 국내 최대 허브 관광농원이다. 팜카밀레에는 어린 왕자 정원, 로즈 가든, 케이크 가든, 라벤더 가든, 키친 가든, 캐머마일&세이지 가든, 이벤트 가든, 로맨틱 가든, 워터 가든, 애니멀 가든 등 다양한 테마의 허브 정원과 정원을 한눈에 관망할 수 있는 숙박시설, 농원에서 수확한 원료를 이용하여 만든 허브 관련 제품들을 직접 느끼고 체험하며 구입할 수 있는 허브 숍 등이 있다. 또한 농원에서는 다양한 허브와 인근의 지역에서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원료를 이용하여 만드는 건강하고 예쁜 음식들도 맛볼 수 있다.

※ 반려견 동반 여행 정보
-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거나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
- 애견 펜션, 애견 수영장, 애견훈련시설도 이용 가능

이종일선생생가지

이종일선생생가지

14.0 Km    17802     2024-05-30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옥파로 199-7

이종일 선생의 생가터는 태안보훈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종일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애국지사이다. 선생의 생가는 1979년 3월 1일 원북면 반계리에서 태안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이었던 박춘석에 의해 발견됐고 1986년에 복원되었다. 나무로 지은 초가집과 복원할 때 지은 사당, 낮은 돌담이 있다. 이종일선생생가지 내 주요 시설로는 초가집, 사당, 옥파이종일기념관, 체험관이 있으며 체험관에서는 태극기 만들기 체험을 운영한다. 선생은 1858년 11월 6일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 89번지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총명한 재질과 뛰어난 학구력으로 한학에 전념했고 16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2년 수신사 박영효와 함께 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와 그곳의 개화된 문물을 접한 후, 개화의 의지가 불붙었다. 그 뒤 정2품 중추원 의관이 되었으나 쇠퇴기의 국운을 통탄하며 취임 10여개월 만에 관직을 내려놓고 구국운동에 뛰어들었다. 기울어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민중 계몽과 인재 양성이 중요함을 느끼고 신문 발행과 교육 사업에 모든 정열을 쏟았다. 1919년 2월 3.1운동의 계획을 듣고 그 자리에서 민족 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것을 수락하고, 직접 독립선언서 원고를 인쇄하여 국내외에 배포하였다. 대한협회, 자강회, 조선국문연구회 등 구국 단체를 조직하여 정신 개조를 주장하고 근면과 노력을 강조하였으며, 한글 맞춤법 연구에 이바지하다가 1925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