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단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사직단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사직단

사직단

0m    33757     2019-06-05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길 49

* 신에게 제를 올리던 곳, 사직단(社稷壇) *

갑오년(1984) 이후 광주의 여제와 함께 폐지되었으며, 한말에는 사직단을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하기도 했었다. 동물원이 들어서면서 그 자취가 없어졌는데, 1993년 광주시가 사직단을 복원, 1994년 광주 향우회 회장(최기영)에 의해 1백년 만에 사직제가 부활되었다. 사직단은 국토의 신과 오곡의 신, 두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다. 국토와 오곡은 민생의 근본이므로 삼국 시대부터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사직단을 설치하여 친히 왕이 나가서 제사를 올렸다. 지방에서는 성주가 제주가 되었으므로 광주 목사가 매년 제사를 주관하였다. 사직단은 종묘와 함께 신성시되어 종사(宗社)라고도 했다. 사직제는 매년 맹춘(정월) 상신일에 기고제(그해 풍년을 비는 제), 중춘(음력6월), 중추(음력 8월) 상무일, 납일(음력 12월 8일)걸쳐, 네 차례 거행되었으며, 가뭄에는 기우제, 비가 많이 오면 '기정제', 눈이 오지 에 않으면 '기설제'를 지냈다. 또한 사직제는 혈제(血祭)라 하여 제수에 돼지머리나 양머리를 날것으로 봉헌했다.

* 사직단이 있는 사직공원에 대하여 *

사직공원의 터는 원래 사직단이 있던 곳이다. 1894년 제사가 폐지되고 1960년대 말에 사직동물원이 들어서면서 사직단은 헐리고 말았다. 그 뒤 사직단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자 1991년 동물원을 우치공원으로 옮기고 사직단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직공원은 각종 수목 및 화초들의 조경이 잘 되어 있으며 특히 매년 4월 15일을 전후해서 벚꽃이 만발, 광주시는 이 무렵이면 밤에 전등을 가설하여 시민들이 밤에도 벚꽃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시민들이 가장 즐겨찾는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사직공원(광주)

사직공원(광주)

15m    41866     2018-07-24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길 49

* 신에게 제를 올리던 곳, 사직공원(광주) *
사직공원의 터는 원래 사직단이 있던 곳이다. 사직단이란 삼국시대부터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여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이 장소는 조선 태조 3년에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사직단을 설치한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
1894년 제사가 폐지되고 1960년대 말에 사직동물원이 들어서면서 사직단은 헐리고 말았다. 그 뒤 사직단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자 1991년 동물원을 우치공원으로 옮기고 사직단을 복원하여 1994년 4월 100년 만에 사직제가 부활했다.
사직공원은 각종 수목 또는 화초들의 조경이 잘되어 있으며 특히 매년 4월 15일을 전후해서 벚꽃이 만발, 광주시는 이 무렵이면 밤에 전등을 가설하여 시민들이 밤에도 벚꽃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사직공원의 볼거리 *
공원 내에는 1993년 복원된 사직단과 광주방송총국(KBS), 경찰충혼탑, 양파정(양림동에 살던 정락교씨가 지어서 광주시에 기증한 것), 사장(射場)인 관덕정,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팔각정이 있다. 각종 수목과 화초를 이용한 조경이 잘 되어 있으며, 오색찬란한 광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타워가 있다.

관덕정의 각궁

관덕정의 각궁

68m    28945     2019-01-21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길 49

정신과 신체를 동시에 건강하게 해주는, 관덕정의 각궁 궁술은 무사뿐만이 아니라 선비들도 반드시 익혀야 할 필수 요건이었다. 이러한 활이 요즘에는 생존이나 방비기능은 완전히 상실했고, 스포츠와 취미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광주에도 스포츠와 취미로서 활의 명맥을 이어주는 곳이 있는데, 사직공원에 있는 활터 관덕정이 그것이다. 관덕정의 사범이자 전남에서는 유일하게 활을 만들고 있는 권태은 씨는 호라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경북 예천이 고향으로 3대째 활을 만들고 있는데, 광주에 자리를 잡은 것은 23년 전이다. 경상도에서 활을 만들면 팔러나가는 곳이 대부분 전라도이므로 아예 광주로 옮겨와 활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권씨의 이야기다. 옛날에는 활의 재료와 쓰임새에 따라 무척 다양했지만 요즘에는 각궁만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해 주고 있다.

* 전통이 실려있는 각궁이란? *

후궁·장궁(長弓)이라고도 한다. 각궁의 모양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가 있다. 크게 2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전쟁이나 사냥에 쓰인 것은 궁간상(弓幹桑)·뿔·힘줄·아교·실·칠 등 6가지로 만들고, 운동이나 오락으로 쓰인 것은 궁간상·참나무·대·벚나무·뿔·힘줄·아교 등 7가지로 만들었다. 강(强)·중(中)·연(軟)의 구별이 있어서, 남녀 누구나 자신의 힘에 맞는 것을 쓸 수 있었다.

최승효가옥

최승효가옥

168m    26908     2019-08-06

광주광역시 남구 양촌길 29-4

* 한말 전통가옥에 대해 알 수 있는, 최승효 가옥(崔昇孝家屋) *

최승효 가옥은 양림산 동남쪽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전통가옥이다. 건물은 동향으로 지었으며, 정면 여덟 칸, 측면 네 칸의 매우 큰 규모로 이루어져 있다.건물의 구조를 살펴보면 일자형 평면의 팔작(八作)집이면서도 우측의 경사진 부지를 자연 그대로 이용하여 1퇴(退) 공간의 반지하층을 구성하여 율동감을 주었다. 좌측으로도 1퇴(退)를 개방공간으로 주어 비대칭의 평면과 입면을 형성하여 단조롭지 않게 하였다. 서향인 뒤쪽은 너비 60m의 마루를 두르고 미닫이 창문을 만들어 서쪽의 빛을 일단 차단시키고 있으며, 미닫이 창문 때문에 방이 어두워지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벽면 윗부분에 띠판창을 두었다. 연등천장인 대청을 제외하고는 다락을 두었는데 이곳에 독립운동가 등을 피신시켰다고 한다. 다락 외부벽에는 완공을 두어 다락안의 채광을 돕고 있다. 기단은 우측의 반 지하 부분을 제외하고는 1cm 정도 높인 뒤 2단 원형 주초석을 써서 모양을 살렸다.

* 최승효 가옥의 의의 *

이 가옥은 원래 독립운동가 최상현(崔相鉉)의 집이다. 당시 다락에 독립운동가들을 피신시켰다고 한다. 또한 이 가옥은 1920년대의 지어진 것으로 한말 전통 가옥의 이해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건축사적 의의가 큰 집이다.

[문화재정보]
지정종목 ; 시도민속자료
지정번호 : 광주민속자료 제2호
지정연도 : 1989년 3월 20일
소장 : 최승효
시대 : 일제강점기
종류 : 가옥

양림동 선교사 묘지

양림동 선교사 묘지

245m    34761     2019-01-21

광주광역시 남구 제중로 77

* 광주지역 선교사를 기리는 묘역, 선교사 묘지 *

양림동 선교사 묘지는 광주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하고 개화의 새 물결과 일제 치하에서 구국 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던 23인의 선교사가 묻혀 있는 곳이다. 광주광역시 양림동은 전라남도 최초의 선교사로 광주에서 활동하던 배유지 목사와 클레멘트 오웬의 주된 선교지였다. 배유지 목사는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하였고, 글레멘크 오웬은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선교 및 의료봉사 활동에 헌신하였다. 현재 광주광역시에는 배유지 목사를 기념하기 위한 선교기념비와 클레멘트 오웬과 그의 할아버지를 기념하기위해 건립한 오웬 기념각 등의 문화재가 있다.

* 선교기념비와 오웬기념각 *

양림동 선교기념비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배유지 목사가 광주에서는 처음 예배드린 곳을 기념하기 설립한 비이다. 1982년 12월 6일 대한예수교 장로회 전남노회가 세운 것으로 자연석 화강암제에 음각으로 되어 있다. 오웬기념각은 광주기독병원 간호전문대학 안에 있으며 현재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배유지(E.Bell) 목사와 함께 전라남도 최초의 선교사로 광주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클레멘트 C. 오웬(Clement C.Owen:1867∼1909. 한국명 오원 또는 오기원)과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William)을 기념하기 위하여 1914년에 건립한 건물이다.

광주광역시립 사직도서관

광주광역시립 사직도서관

255m    27669     2018-05-15

광주광역시 남구 제중로 56

* 시민을 위한 도서관으로서의 도약, 광주광역시립도서관
1981년 무등도서관이 최초로 개관한 이래, 1989년 사직도서관이 개관하였고, 1997년 산수도서관이 각각 운영되었다. 각각 운영되던 도서관을 1998년 4월에 통합하여 시립도서관으로 명칭을 개칭하였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광주광역시시립도서관은 급변하는 정보화 시대에 이용자의 정보욕구를 충족하고 쾌적한 독서환경을 위하여 정숙한 도서관환경을 만들어 나가면서 필요한 모든 자료를 고루 갖추고 이용자에 대한 서비스 질 을 높여서 시민들이 필요한 적정 정보를 쉽고, 빠르고,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 도서관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스마트폰으로 도서를 검색 대출할 수 있다고? 「유비쿼터스 도서관 서비스 지원 시스템」
도서관에서는 광주 시민은 물론, 전남 지역민에게도 독서욕구 충족과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55만 3천여 권의 도서와 2만 2천여점의 비도서, 그리고 1만여점의 전자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또한 21세기 도서관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유비쿼터스 도서관 서비스 지원 시스템」을 산수도서관과 무등 어린이도서관에 구축하여 도서관 이용을 희망하는 모든 시민이 집이나 직장, 그리고 지하철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직접 도서를 검색하고 대출과 반납이 가능하는 사업을 지난해 말부터 운영하고 있다.

효자 광주 정공엄지려

효자 광주 정공엄지려

262m    33536     2018-09-28

광주광역시 남구 서서평길 24

* 정엄의 효심을 기리는 효자 광주 정공엄지려 *
정엄(鄭淹)의 정려(旌閭)는 석조로 된 정려이다. 정려각 내에는 비(碑)와 함께 견석상(尤石像)이 1추(樞) 있다.
 
효자 정엄은 1558년(明宗戊午年)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동부승지를 지냈다. 모친 섬기기에 효성을 다하였고 병환 중이실 때에는 밤에도 옷을 벗지 않고 모친을 돌보았으며, 상을 당해서는 장례 절차를 성대히 하였으나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니, 그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1611년 국가에서 정려(旌閭)를 명하였다. 이 후 정려각이 퇴락되어 1975년에 석조로 재건하였다.
 
* 정려각 내 비에 적힌 내용 *
비신(碑身)에는 『贈嘉善大夫司憲府大司憲兼(증가선대부사헌부대사헌겸) 弘文館提學豫文館堤學同知(홍문관제학예문관제학동지) 經筵春秋館義禁府事五圍都總管(경연춘투관의금부사오위도총관) 世子左副賓行通政大夫承政院同副承旨兼(세자좌부변행통정대부승정원동부승지겸) 經筵參贊官春秋條選官知製(경연춘추관의춘추소선관지제) 敎楊村鄭先生旌閭碑(고양촌정선생정려비)』 라고 쓰여 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

우일선 선교사 사택

315m    27806     2019-01-29

광주광역시 남구 제중로47번길 20

* 한국 근대 건축의 흐름 이해에 도움이 되는 저택, 우일선 선교사 사택 *

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양림산 기슭에 동향으로 세워진 2층 벽돌 건물로 광주에 현존하는 양식 주택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미국인 선교사 우일선(Wilson)에 의해 1920년대에 지어졌다고 전해올 뿐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현재 내부를 개조하여 대한예수교 장로회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 근대 건축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평면 정사각형으로 1층은 거실, 가족실, 부엌, 욕실 등이 있고, 2층은 사생활공간으로 침실을 두었다. 지하층은 창고와 보일러실이다. 동향인 점은 한국의 전통적인 방위관을 받아들인 것이라 해석된다. 크기는 정면 10.6m이다. 구조는 벽이 두께 55mm의 회색벽돌로 네델란드식으로 쌓아져 있고 내부는 회반죽으로 마감했으며, 고막이부분은 화강석을 쌓아 처리했다. 개구부는 모두 반원형의 아치로 만들었다. 창문 외부는 열개창, 내부는 오르내리창의 이중창으로 되어 있다. 1층과 2층을 구별하기 위하여 벽돌로 돌림띠를 두어 외벽에 변화를 주었다.

* 우일선 사택의 유래 *

우일선과 그의 가족은 이 주택에서 살면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1986년 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남노회유지재단에 이를 넘겼다. 우씨 가족은 전남노회재단에 주택을 넘기면서 선교활동 장소로 사용하라는 조건으로 싼값에 팔았다.

양림동 펭귄마을

양림동 펭귄마을

332m    16     2019-06-18

광주광역시 남구 천변좌로446번길 7

양림동 주민 센터 뒤에 펭귄모양의 이정표를 따라 좁은 골목길을 들어가면 70,80년대 마을이 전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무릎이 불편한 어르신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펭귄 같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은 과거에 화재로 타 방치되어 있던 빈집을 치우고 버려진 물건을 가져와 동네 벽에 전시하기 시작했다. 마을 담벼락 에는'그때 그 시절 살아있음에 감사하자' 고 새겨 놓았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펭귄 주막은 주민들의 사랑방, 조그맣지만 필요한 물건들이 다 있다. 공방 앞에는 마을 소식지도 붙어 있다.

[출처 : 광주문화관광]

광주 경찰충혼탑

광주 경찰충혼탑

344m    23964     2018-12-18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길 49

*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당시 순국한 경찰관을 위로하는 탑 *

경찰충혼답은 광주 사직공원에 위치해 있는 탑으로 높이가 약 14m에 이른다. 광주공원 입구의 계단을 한참 오르다 보면 나타난다. 이 탑은 여순 사건과 한국전쟁 등 당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광주, 전남출신 순국 경찰관 3,196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경찰충혼탑은 원래 1956년 전남도청 앞 상무관 정원에 건립되었는데 시간이 지나 탑이 붕괴 위험에 처해졌고, 이것을 1981년 10월 23일 현재의 위치(사구동 177번지)에 이전 건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경찰충혼탑이 있는 광주 사직공원 *

사직공원은 광주시의 제1호 공원이다. 옛날에는 성거사가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의 신사가 있던 곳인데 현재는 현충각과 광주시립 박물관, 시민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현충탑을 중심으로 한 공터는 노인들의 휴식처로 애용된다. 사직공원은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1974년 새로 설립한 광주시립 국악원과 조선조 이래의 생활도구를 전시한 민속관이 광주시립박물관에 병설되어있다.

남평문씨 쌍효문

242m    23324     2018-11-01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안길 9

* 문장갑, 장섭 형제의 효심을 기리는 곳, 남평 문씨 쌍효문 *

쌍효문은 자식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고 널리 선양하는 유적이다. 남평 문씨 쌍효문은 현재 내부의 좌측문을 개조하여 관리자 김재선 씨가 거주하고 있다. 내부에는 정려기(程閭記) 외에 12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효자 문장갑(文章甲) (1798-1832)과 문장섭(文章燮)은 형제로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한 인물이었다. 부친의 병환에 지성으로 2년 동안을 한결같이 간호하였으며, 임종에 당하여서는 단지수혈(斷脂輸血) 하는 등 정성을 다했다. 마침내 상을 당하자 예제(禮制)대로 장사, 향당(鄕堂)의 효자로 칭해지면서 국가에서는 명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 남평 문씨 시조 문다성의 탄생일화 *

남평 문씨의 시조 문다성(文多省)에 관해서는 탄생에 관련된 일화가 있다. 472년(신라 자비왕 15) 남평현(南平縣) 동쪽에 장자지(長者池)라는 큰 못가에 큰 바위가 솟아 있는데 그 위의 석함 속에 피부가 맑고 용모가 아름다운 갓난아이가 들어 있었다. 이를 기이하게 생각한 군주가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그런데 불과 5세에 문사(文思)에 저절로 통달하고 무략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총명하여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달아 문(文)을 성으로 삼게 하고 이름을 다성(多省)으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대장군(大將軍)을 거쳐 삼중대광벽상공신(三重大匡壁上功臣)으로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져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관향을 남평으로 하였다.

양림의 개비

262m    29643     2018-09-28

광주광역시 남구 서서평길 24

* 조선시대 충견의 석상, 양림의 개비 *
광주시내 남구 양림동에 양촌(楊村) [1558년 명종 13년(무오년)에 문과 급제]의 효행 정려가 있으며 정려 앞에 석상이 있다. 여기를 양림동 일대주민들은 속칭 '개비'라고 부른다. 지금으로부터 약 4백년 전에 한양 천리를 달려 조정에까지 주인의 심부름을 하였던 충견의 석상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 개비는 광주 정씨인 양촌이, 자신이 길렀던 명견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양촌공이 죽은 뒤, 후손들이 그의 정려 앞에 세웠다.

* 영특하고 충직한 개의 이야기 *
석상의 개는 양촌이 써주는 상소문이나 조정에 보내는 문서를 보자기에 싸서 목에 걸고 가 전달하는 심부름을 사람 이상으로 해 냈다고 한다. 양촌은 개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 전대에 엽전을 따로 넣어서 목에 걸어주며 한양까지 가고 오는 길에 밥을 사먹도록 했는데, 이 개는 주막집 아낙이 주는 밥을 먹고도 돈을 너무 많이 가져가면 주막집에서 떠나지 않는 등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영특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교통이나 통신 수단이 불편하여 비둘기 발목에 쪽지를 매달아 편지를 띄우기도 하고, 또 말을 타고 가도 10일 이상이나 걸렸다. 따라서 이개의 간단한 서신 심부름은 시간과 경비를 줄이는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렇게 조정을 드나들며 주인의 심부름을 충실하게 해 오던 개는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전주 부근의 강변 다리 밑에서 새끼 9마리를 낳고 한 마리씩 집으로 물어 나르다가 9번째 마지막 새끼를 물어오면서 그만 지쳐 길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양촌은 애견이 새끼를 낳을 때가 된 것도 모르고 심부름을 보냈다가 죽게 되자, 개의 모양을 한 석상을 세우고 충견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 넋을 위로했다고 한다.
석상의 크기 - 넓이 1.8㎡, 길이 8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