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공원(광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사직공원(광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사직공원(광주)

사직공원(광주)

1.2 Km    41866     2018-07-24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길 49

* 신에게 제를 올리던 곳, 사직공원(광주) *
사직공원의 터는 원래 사직단이 있던 곳이다. 사직단이란 삼국시대부터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여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이 장소는 조선 태조 3년에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사직단을 설치한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
1894년 제사가 폐지되고 1960년대 말에 사직동물원이 들어서면서 사직단은 헐리고 말았다. 그 뒤 사직단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자 1991년 동물원을 우치공원으로 옮기고 사직단을 복원하여 1994년 4월 100년 만에 사직제가 부활했다.
사직공원은 각종 수목 또는 화초들의 조경이 잘되어 있으며 특히 매년 4월 15일을 전후해서 벚꽃이 만발, 광주시는 이 무렵이면 밤에 전등을 가설하여 시민들이 밤에도 벚꽃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사직공원의 볼거리 *
공원 내에는 1993년 복원된 사직단과 광주방송총국(KBS), 경찰충혼탑, 양파정(양림동에 살던 정락교씨가 지어서 광주시에 기증한 것), 사장(射場)인 관덕정,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팔각정이 있다. 각종 수목과 화초를 이용한 조경이 잘 되어 있으며, 오색찬란한 광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타워가 있다.

이장우가옥

이장우가옥

1.2 Km    25678     2019-04-23

광주광역시 남구 양촌길 21

대문간, 곳간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로 배치된 기와집이다. 안채의 상량문에 ‘광무삼년을해이월십일축시(光武三年乙亥二月十日丑時)’로 기록되어 1899년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뼈대가 굵고 건실하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전통가옥이다. 안채의 평면 형태는 정면 여섯 칸에 좌우 퇴가 있으며, ㄱ자형으로 되어 우측면은 네 칸과 후퇴, 가구는 2고주 5량의 팔작지붕의 기와집이다. 세벌대의 다듬돌 기단 위에 원형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과 사각기둥을 세웠다. 보아지와 우미량이 있다. 대청은 2분합 겹문으로 안은 미닫이, 밖은 여닫이문을 설치하였으며, 대청의 문은 3분합 들어 열개문으로 되어 있다. 여닫이문을 고정시키기 위해 중앙에 문잡이 거북장식물을 두었으며 들어 열개문을 고정하기 위해서 참새 모양의 장식물을 장설에 두고 있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시도민속자료
지정번호 : 광주민속자료 제1호
지정연eh : 1989년 3월 20일
시대 : 대한제국
종류 : 가옥

광주광역시립 사직도서관

광주광역시립 사직도서관

1.2 Km    27669     2018-05-15

광주광역시 남구 제중로 56

* 시민을 위한 도서관으로서의 도약, 광주광역시립도서관
1981년 무등도서관이 최초로 개관한 이래, 1989년 사직도서관이 개관하였고, 1997년 산수도서관이 각각 운영되었다. 각각 운영되던 도서관을 1998년 4월에 통합하여 시립도서관으로 명칭을 개칭하였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광주광역시시립도서관은 급변하는 정보화 시대에 이용자의 정보욕구를 충족하고 쾌적한 독서환경을 위하여 정숙한 도서관환경을 만들어 나가면서 필요한 모든 자료를 고루 갖추고 이용자에 대한 서비스 질 을 높여서 시민들이 필요한 적정 정보를 쉽고, 빠르고,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 도서관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스마트폰으로 도서를 검색 대출할 수 있다고? 「유비쿼터스 도서관 서비스 지원 시스템」
도서관에서는 광주 시민은 물론, 전남 지역민에게도 독서욕구 충족과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55만 3천여 권의 도서와 2만 2천여점의 비도서, 그리고 1만여점의 전자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또한 21세기 도서관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유비쿼터스 도서관 서비스 지원 시스템」을 산수도서관과 무등 어린이도서관에 구축하여 도서관 이용을 희망하는 모든 시민이 집이나 직장, 그리고 지하철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직접 도서를 검색하고 대출과 반납이 가능하는 사업을 지난해 말부터 운영하고 있다.

광주향교

광주향교

1.3 Km    34285     2018-09-28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5

1398년(태조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서석산(瑞石山) 장원봉(壯元峰) 아래에 창건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호환(虎患)이 있어서 동문 안으로 옮겨 세웠다가, 1488년(성종 19)에 수해(水害)로 현감 권수평(權守平)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건물은 정유재란 때에 소실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그 뒤에 중건한 것이다. 1974년에 대성전을 보수하고 단청하였으며, 1976년에 동·서재와 1978년에 명륜당을 보수하고 1981년에 담장 등을 보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소장 전적은 189종 306책으로 주로 경서와 문집류이며, 필사본인 ≪관안 官案≫·≪광주유림안 光州儒林案≫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최승효가옥

최승효가옥

1.3 Km    26908     2019-08-06

광주광역시 남구 양촌길 29-4

* 한말 전통가옥에 대해 알 수 있는, 최승효 가옥(崔昇孝家屋) *

최승효 가옥은 양림산 동남쪽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전통가옥이다. 건물은 동향으로 지었으며, 정면 여덟 칸, 측면 네 칸의 매우 큰 규모로 이루어져 있다.건물의 구조를 살펴보면 일자형 평면의 팔작(八作)집이면서도 우측의 경사진 부지를 자연 그대로 이용하여 1퇴(退) 공간의 반지하층을 구성하여 율동감을 주었다. 좌측으로도 1퇴(退)를 개방공간으로 주어 비대칭의 평면과 입면을 형성하여 단조롭지 않게 하였다. 서향인 뒤쪽은 너비 60m의 마루를 두르고 미닫이 창문을 만들어 서쪽의 빛을 일단 차단시키고 있으며, 미닫이 창문 때문에 방이 어두워지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벽면 윗부분에 띠판창을 두었다. 연등천장인 대청을 제외하고는 다락을 두었는데 이곳에 독립운동가 등을 피신시켰다고 한다. 다락 외부벽에는 완공을 두어 다락안의 채광을 돕고 있다. 기단은 우측의 반 지하 부분을 제외하고는 1cm 정도 높인 뒤 2단 원형 주초석을 써서 모양을 살렸다.

* 최승효 가옥의 의의 *

이 가옥은 원래 독립운동가 최상현(崔相鉉)의 집이다. 당시 다락에 독립운동가들을 피신시켰다고 한다. 또한 이 가옥은 1920년대의 지어진 것으로 한말 전통 가옥의 이해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건축사적 의의가 큰 집이다.

[문화재정보]
지정종목 ; 시도민속자료
지정번호 : 광주민속자료 제2호
지정연도 : 1989년 3월 20일
소장 : 최승효
시대 : 일제강점기
종류 : 가옥

정자골

정자골

1.3 Km    21555     2019-04-05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로 105
062-673-7003

광주 봉선동에 위치한 '정자골'은 발효숙성 요리 전문점으로 돌솥 간장게장정식과 불고기정식이 대표메뉴이다.

오웬기념각

오웬기념각

1.3 Km    30213     2018-12-19

광주광역시 남구 백서로70번길 6

* 오웬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한 건물, 오웬기념각 *

기독병원 간호전문대학 내에 있는 오웬기념각은 배유지 목사와 함께 전남 최초의 선교사로 들어와 광주에서 순교한 오웬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미국 친지들이 보낸 기금 4,200 달러로 1914년에 세워진 연면적 434평방미터(부속건물 포함)인 양옥건물이다. 이 건물은 평면 형태로 보아 예배당 및 집회실로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되나, 지금은 기독병원 간호전문대학의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오웬은 1900년대에 광주에 들어온 양림동의 서양촌 외국인 중 1명으로서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선교 및 의료봉사 활동에 헌신하다가 과로로 1909년에 죽었다. 오웬은 생전에 그의 할아버지 기념병원을 지으려다 선교 활동이 급하다고 판단하여 먼저 할아버지 기념각을 지을 계획을 수립 하였으나, 그 계획이 추진되기 전에 사망하였다. 기념관 현판에 할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것도 이 때문이다.

* 건물 구조 및 건축양식 *

회색 벽돌의 2층 건물로서 평면 형태는 정방형이나 대각선상의 모서리에 위치한 설교단을 중심으로 좌우대칭 형태이다. 주 출입구는 북쪽과 서쪽에 똑같은 모양으로 있으며 동쪽과 남쪽에는 모서리에 조그마한 문으로 된 부출입구가 있다. 1층 바닥은 모서리의 설교단을 향하여 약 0.9/10의 경사가 져 있으며, 2층의 노대(balcony) 역시 설교단을 향해 1.2/10 경사져 있다. 벽은 길이 225mm, 나비 110mm, 두께 55mm의 회색벽돌을 사용하여 네델란드식 쌓기를 하였다.벽의 두께는 49cm로 공간쌓기를 하였으며 지면과 면하는 고막이 부분은 장대석의 화강석으로 축조하였다.1층과 2층 사이에는 벽돌의 허리 돌림띠를 두었으며 2B 두께의 붙임기둥을 설치하였다.

개구부에는 창, 문 모두 동일한 형태의 결원아치를 사용하였으며 하인방의 창대돌은 화강석으로 되어 있다. 또 정면의 작은 광창에는 창대 돌을 마구리 내쌓기한 벽돌이 지지하고 있다. 양쪽의 현관부분은 아치벽돌을 사용한 반원 아치로 key stone은 화강석으로 되어 있으며 porch의 천장은 나무널로 마무리되어 있다. 그리고 석조로 된 아치대를 받치고 있는 기둥에 커다란 원형 주철관을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지붕의 구조는 맨사드 지붕틀로서 평보를 내부에 설치된 2개의 기둥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굴뚝이 올라와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함석 잇기를 하였다. 실내의 바닥은 마루널을 설교단을 향하여 경사지게 깔았으며, 벽은 회반죽으로 마감하였다.

근현대를 넘나드는 100년 여행

근현대를 넘나드는 100년 여행

1.3 Km    4174     2016-09-27

지하철 1호선 남광주역에서 시작하는 여행 컨셉은 ‘근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100년 여행이다. 제일먼저 찾을 곳은 양림동 역사문화 마을과 오웬기념각, 이장우 가옥, 우일선 선교사 사택 등이다. 2층짜리 오웬기념각은 전남 지역 최초의 선교사로 광주에서 활동하다 순교한 클레멘트 C. 오웬을 기려 건립되었다.

효자 광주 정공엄지려

효자 광주 정공엄지려

1.4 Km    33536     2018-09-28

광주광역시 남구 서서평길 24

* 정엄의 효심을 기리는 효자 광주 정공엄지려 *
정엄(鄭淹)의 정려(旌閭)는 석조로 된 정려이다. 정려각 내에는 비(碑)와 함께 견석상(尤石像)이 1추(樞) 있다.
 
효자 정엄은 1558년(明宗戊午年)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동부승지를 지냈다. 모친 섬기기에 효성을 다하였고 병환 중이실 때에는 밤에도 옷을 벗지 않고 모친을 돌보았으며, 상을 당해서는 장례 절차를 성대히 하였으나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니, 그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1611년 국가에서 정려(旌閭)를 명하였다. 이 후 정려각이 퇴락되어 1975년에 석조로 재건하였다.
 
* 정려각 내 비에 적힌 내용 *
비신(碑身)에는 『贈嘉善大夫司憲府大司憲兼(증가선대부사헌부대사헌겸) 弘文館提學豫文館堤學同知(홍문관제학예문관제학동지) 經筵春秋館義禁府事五圍都總管(경연춘투관의금부사오위도총관) 世子左副賓行通政大夫承政院同副承旨兼(세자좌부변행통정대부승정원동부승지겸) 經筵參贊官春秋條選官知製(경연춘추관의춘추소선관지제) 敎楊村鄭先生旌閭碑(고양촌정선생정려비)』 라고 쓰여 있다.

광주공원(구동공원)

광주공원(구동공원)

1.4 Km    31003     2018-09-27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062-672-0660

* 시민들의 쉼터, 광주공원(구동공원) *
광주공원은 광주시의 제1호 공원으로 시민들이 즐겨찾는 휴식공간이다. 옛날에는 성거사가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의 신사가 있던 곳인데 현재는 현충각과 광주시립 박물관, 시민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주요 시설로는 복원된 사직단과 광주방송총국(KBS), 경찰충혼탑, 연파정, 전통국궁 수련장인 관덕정,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팔각정 등이 있다. 현충탑을 중심으로 한 공터는 노인들의 휴식처로 애용된다. 광주공원은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다. 각종 수목과 화초를 이용한 조경이 잘 되어 있으며, 매년 4월 중순이면 벚꽃이 만발한다.
* 광주공원의 역사와 유래 *
광주공원은 원래 나라의 안전과 풍년을 기원하며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렸던 사직단이 있던 곳인데, 1894년 제사가 폐지되고 1960년대 말에 사직동물원이 들어서면서 사직단은 헐리고 말았다. 그 뒤 사직단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자 1991년 동물원을 우치공원으로 옮기고 사직단을 복원하여 1994년 4월 100년 만에 사직제가 부활했다.

양림의 개비

1.4 Km    29643     2018-09-28

광주광역시 남구 서서평길 24

* 조선시대 충견의 석상, 양림의 개비 *
광주시내 남구 양림동에 양촌(楊村) [1558년 명종 13년(무오년)에 문과 급제]의 효행 정려가 있으며 정려 앞에 석상이 있다. 여기를 양림동 일대주민들은 속칭 '개비'라고 부른다. 지금으로부터 약 4백년 전에 한양 천리를 달려 조정에까지 주인의 심부름을 하였던 충견의 석상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 개비는 광주 정씨인 양촌이, 자신이 길렀던 명견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양촌공이 죽은 뒤, 후손들이 그의 정려 앞에 세웠다.

* 영특하고 충직한 개의 이야기 *
석상의 개는 양촌이 써주는 상소문이나 조정에 보내는 문서를 보자기에 싸서 목에 걸고 가 전달하는 심부름을 사람 이상으로 해 냈다고 한다. 양촌은 개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 전대에 엽전을 따로 넣어서 목에 걸어주며 한양까지 가고 오는 길에 밥을 사먹도록 했는데, 이 개는 주막집 아낙이 주는 밥을 먹고도 돈을 너무 많이 가져가면 주막집에서 떠나지 않는 등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영특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교통이나 통신 수단이 불편하여 비둘기 발목에 쪽지를 매달아 편지를 띄우기도 하고, 또 말을 타고 가도 10일 이상이나 걸렸다. 따라서 이개의 간단한 서신 심부름은 시간과 경비를 줄이는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렇게 조정을 드나들며 주인의 심부름을 충실하게 해 오던 개는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전주 부근의 강변 다리 밑에서 새끼 9마리를 낳고 한 마리씩 집으로 물어 나르다가 9번째 마지막 새끼를 물어오면서 그만 지쳐 길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양촌은 애견이 새끼를 낳을 때가 된 것도 모르고 심부름을 보냈다가 죽게 되자, 개의 모양을 한 석상을 세우고 충견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 넋을 위로했다고 한다.
석상의 크기 - 넓이 1.8㎡, 길이 80cm

남평문씨 쌍효문

1.4 Km    23324     2018-11-01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안길 9

* 문장갑, 장섭 형제의 효심을 기리는 곳, 남평 문씨 쌍효문 *

쌍효문은 자식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고 널리 선양하는 유적이다. 남평 문씨 쌍효문은 현재 내부의 좌측문을 개조하여 관리자 김재선 씨가 거주하고 있다. 내부에는 정려기(程閭記) 외에 12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효자 문장갑(文章甲) (1798-1832)과 문장섭(文章燮)은 형제로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한 인물이었다. 부친의 병환에 지성으로 2년 동안을 한결같이 간호하였으며, 임종에 당하여서는 단지수혈(斷脂輸血) 하는 등 정성을 다했다. 마침내 상을 당하자 예제(禮制)대로 장사, 향당(鄕堂)의 효자로 칭해지면서 국가에서는 명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 남평 문씨 시조 문다성의 탄생일화 *

남평 문씨의 시조 문다성(文多省)에 관해서는 탄생에 관련된 일화가 있다. 472년(신라 자비왕 15) 남평현(南平縣) 동쪽에 장자지(長者池)라는 큰 못가에 큰 바위가 솟아 있는데 그 위의 석함 속에 피부가 맑고 용모가 아름다운 갓난아이가 들어 있었다. 이를 기이하게 생각한 군주가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그런데 불과 5세에 문사(文思)에 저절로 통달하고 무략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총명하여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달아 문(文)을 성으로 삼게 하고 이름을 다성(多省)으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대장군(大將軍)을 거쳐 삼중대광벽상공신(三重大匡壁上功臣)으로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져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관향을 남평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