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만취당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영천 만취당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영천 만취당

0m    17722     2023-07-25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종동길 25

만취당은 건물은 조선 선조 때 성리학자인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 선생의 7세손이며 정조5년(1781년)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曺學臣, 1732~1800) 선생이 살던 집으로 만취당은 사랑채에 붙인 이름이다.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은 주택에도 영향을 미쳐 한 집안 내에서도 남녀의 처소를 안채와 사랑채로 분리하였으며 조상에 대한 제례를 중시하여 사당을 갖추도록 하였다. 이 집은 안채와 중사랑채 및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사당 뒤쪽에는 신주를 모셔다 제사드리는 별묘(別廟) 및 보본재(報本齋) 등이 배치되어 사대부 저택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집 뒤의 마을을 감싸고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은 선생이 손수 심어 이루어낸 것으로 전한다.

영천 홀스파크

10.2 Km    1     2023-04-07

경상북도 영천시 삼밭골길 107

영천 홀스파크는 전국 최대 말 테마파크로써, 깨끗한 자연속에서 말을 직접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며 안전하게 교감하고 체험 할 수 있는 곳이다. 갑갑한 도심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추억을 만끽할 수 있다.

우로지 자연생태공원

10.4 Km    0     2023-03-09

경상북도 영천시 언하공단로 91-12

우로지 자연생태공원은 대구와도 가까워 대구시민들도 찾는 힐링 공간으로 평범했던 저수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휴식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특히 철마다 다른 수생식물과 산책길, 팔각정자, 관찰 데크 등이 어우러져 도심 속 자연을 만끽하기 좋다. 봄에는 흩날리는 벚꽃을 볼 수 있으며, 여름이면 연꽃 단지에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난다.

그집국수

그집국수

10.6 Km    1     2022-11-08

경상북도 영천시 망정로 136

그집국수는 경상북도 영천시 망정동에 있다. 현대적인 외관과 깔끔한 분위기의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대표 메뉴는 잔치국수의 일종인 그집국수며, 비빔국수를 찾는 사람도 많다. 이 밖에 칼국수, 그집 라면, 그집 김밥, 우엉 김밥, 매콤 김밥 등을 판다. 재료 소진 시 조기에 영업을 마감한다. 동영천IC에서 가깝고, 주변에 영천 전투메모리얼 파크 체험권, 동의 참누리원 영천 한의 마을이 있어 둘러보기 좋다.

영천보성리암각화

10.7 Km    16492     2024-02-02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에 있는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영천보성리암각화는 거북 모양으로 생긴 큰 바윗덩이의 한쪽 측면에 7개의 그림을 새겨져 있다. 각화가 새겨진 면의 넓이는 최대 길이 337㎝, 최대 폭 130㎝로 원래는 이곳에서 100m가량 떨어진 하천변에 있었던 것을 마을 사람들이 도로변으로 옮겼다고 한다.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동굴 벽에 기호나 물건, 동물 등의 그림을 새겨놓은 것을 말하는데, 주로 농사의 풍요와 생산을 기원하던 주술 행위의 결과물로 보인다. 그림의 내용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나, 유형은 기하학적 문양을 새긴 포항 칠전리, 고령 양전동, 고령 외리 2동, 영주 가흥리 등의 암각화와 비슷하다. 이로 미루어 대체로 같은 문화유형의 산물로 추정되나, 각화의 세부 형식에서 조금씩 다른 점이 보이는 것은 서로 시대를 달리하거나 문화의 지역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시대를 정확히 규명하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청동기시대 말기이거나 철기시대 초기 단계의 것으로 추정하며 경상북도 지방 선사인의 생활 또는 사유 세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불굴사(경산)

불굴사(경산)

10.8 Km    24925     2024-03-26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불굴사길 205

불굴사는 팔공산 남쪽 기슭에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자연으로 이루어진 석굴 안에 부처님을 모셨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신라 신문왕 10년(690) 창건한 것으로 흥성기에는 50여동의 와가, 12개의 부속암자, 8대의 물방아를 갖춘 대사찰이었으나 조선 영조 12년(1739)에 홍수로 떠내려가 없어졌다가, 이후 전라도 송광사 노스님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불굴사 3층석탑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약사여래입상 부도 등이 있으며, 공양간을 지나 108계단을 지나 10분 정도 오르면 원효대사가 수도한 석굴이라 전하는 굴이 있는데 이를 원효굴 또는 홍주암이라 부른다. 석굴 속의 약수터는 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아동제일약수라는 글귀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구전에 의하면 이 약수는 장군수라고도 하는데, 김유신 장군이 이 물을 마시면서 삼국통일의 염원을 기도하였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특이한 것은 불굴사 주변에 우기가 있으면 불상의 얼굴 부분에 땀이 나고 특히 큰비가 오기 전에는 불상의 온몸이 흠뻑 젖는다고 찬다.

팔공산 자락 부처의 자비를 만나다

팔공산 자락 부처의 자비를 만나다

10.9 Km    1744     2023-08-10

경산시의 일부를 품고 있는 팔공산도립공원에는 정성껏 소원을 빌면 하나씩 들어준다는 갓바위라 불리는 관봉석조여래좌상이 있다. 그밖에 유서 깊은 불굴사, 선본사, 원효암 등 천년의 역사를 넘나드는 고찰이 남아 있어 불교 유적 답사를 제대로 즐겨볼 수 있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갓바위에 올라 가슴속에 품고 있는 소원 하나 빌어보면 어떨까?

자인향교

10.9 Km    2026     2024-02-02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교촌길9길 14

향교는 공자와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자인향교는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 공민왕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562년(명종 17) 경주 부윤 이정이 고려 때 문묘를 지은 터에 다시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이후 이춘복 등이 상소하여 1728년(영조 4)에 이건하였다. 1900년에 대성전을 짓고 1924년에 명륜당, 1926년에 다시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모성루, 동재, 내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남향한 경사면을 3단으로 층을 이루어 아래로부터 외삼문과 우측에 동·서재를 두고 정면에 명륜당을 두었으며, 그 뒤쪽에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을 설치하였다. 대성전 왼쪽에는 서무, 뒤로는 화계가 있다. 매년 봄·가을에 석전대제와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으며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고 기로연을 행사하고 있다.

송림(팔공산송림한옥마을)

송림(팔공산송림한옥마을)

11.0 Km    3     2023-01-11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갓바위로 67-7

송림 한옥마을’을 국민들에게 널리 조상의 얼을 되새기는 차원에서 송림 한옥마을 조성을 기획하고 구성하였다. 한복 체험과 다도, 예절교육 등 인성교육과 관련하여 인근 사찰에서 여름방학 교육을 통해 100여 명이 숙식을 하고 체험하기도 하였다.

남호서당

11.1 Km    1228     2024-01-12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남하새마을길5길 59-13

남호서당은 1786년(정조 10)에 병자호란 때 공을 세운 김시성(1602∼1676)을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남호사라는 사우로 처음 건립되었다. 1855년(철종 6)에 남호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1928년에 남호서당으로 다시 복설되었다. 서원은 강당인 금포당과 사당인 충렬사로 구성되어 있다. 금포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홑처마 집으로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마루를 두었으며,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구성되어 있다. 충렬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에 홑처마 민도리집이다. 김시성은 본관이 청도로 1636년(인조 14) 무과에 급제하고 이듬해에 익찬으로 임명되었다. 익찬 재임 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시종하여 무사히 심양에 다녀온 공로를 인정받아 귀국 직후인 1646년(인조 24) 황주판관에 임명되고, 이후 용천부사·강계부사·삼도통제사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