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포교당(경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하양포교당(경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하양포교당(경산)

하양포교당(경산)

9.7 Km    19365     2019-09-24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도리3길 12

예로부터 우리는 정토 신앙을 뿌리 삼아 불국정토를 이루어 우리가 소망하는 원을 빌어왔다. 그러나 번뇌와 욕망으로 뒤엉킨 업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수많은 뭇 중생들이 현세의 행복과 내세의 정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미타 부처님은 한량없는 광명을 지니시고 이러한 중생의 번뇌로부터 일어나는 무명과 무지를 일깨워 나고 죽음이 없는 열반의 세계로 중생을 인도하고자 큰 원력을 세운 불보살이다. 더욱이 말법시대의 근기를 가진 중생들에게 그 명호를 수없이 되뇌이게 만들어 중생들이 정토에 나도록 해주는 부처님이다.

경북 경산의 여여한 아미타도량인 은해사 하양포교당은 포교당으로는 그 터가 전국에서 다섯손가락에 들 만큼 1천여평의 드넓은 도심분지에 자리해 이 곳을 찾는 지역불자들에게 환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기도처를 제공하고 있다. 하양포교당은 지난 1971년 은해사가 일타스님 문중으로 발돋움하면서 경산 하양지역 포교의 최적지가 경산포교당이라는 판단 하에 말사로 편입시켜 지금까지 팔공산 장엄화장세계 미타도량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극락전을 비롯한 여러 불사를 통해 사격을 일신하고 있으며, 특히 꾸준히 이어온 어린이법회와 경북불교대학 등을 통해 지역불자들과도 호흡을 함께 하고 있다. "사람들 중에서 가장 높으신 이시여! 삼계(三界)에 비할 바 없으리이다. 그의 복되심을 찬양하고 그대를 따라 가까이 가리이다"『관음경』에 아미타부처님을 찬탄한 이 같은 게송처럼 하양포교당은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현세를 극락정토로 하루빨리 앞당기는데 정진을 다하는 도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창건배경 및 역사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말사인 하양포교당은 창건시기나 창건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 다만 조선 초기에 창건된 사찰로서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사찰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상실한 채 유생들의 객사(客舍)로 함께 쓰여져 오다가 1927년 지석담(池石潭) 스님이 사찰의 재건을 위해 중수했다는 사실만 전해져 온다. 지석담 스님은 사찰의 중수와 아울러 은해사에서 부처님을 모셔와 봉안한 것이 지금까지 극락전 본존불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예전의 기록이 전무한 관계로 하양포교당의 창건주라고 하면 중창주인 지석담 스님이 보통 일컬어지고 있다. 이후 주지로서 알려진 고승으로는 고봉, 현고, 보원, 동관, 유곡스님 등이 주석했으며 지난 2001년 주지로 부임한 성본스님이 쇠락한 사역(寺域)을 정비하고자 5평 남짓한 극락전을 34평으로 신축하고, 칠성각 중?보수, 설법전 부처님 봉안, 공양간 건립 등 사격을 일신하고 포교에 매진하고 있다.

퀸벨호텔

퀸벨호텔

9.7 Km    2185     2020-02-20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로 200
053-282-1000

대구 동구에 위치한 퀸벨호텔은 동대구권의 랜드마크 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또한 품격높은 호텔웨딩의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기존의 일반 호텔과는 차별화된 우아하면서도 격조 높은 객실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컨벤션 및 연회장은 결혼식, 돌잔치, 기업행사등 대형 행사부터 소규모 가족모임까지 다양하게 할 수 있다. 앞으로도 퀸벨호텔은 품격을 갖추면서도 고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늘 변화하는 최고의 호텔이 될 것이다.

영남제일관

영남제일관

9.7 Km    19840     2019-12-11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대구읍성은 1590년(선조23년)에 축성된 토성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파괴되어 그 후 140년간 성이 없었다가 영조 12년(1736) 4월 8일에 채석을 시작하고, 4월 25일에 본 성채를 이룩하고 6월 6일까지는 여첩을 완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서남북으로 4개의 정문이 있었는데, 그 중 남문을 영남제일관이라 칭하였다. 그 후 1870년 중수하여 성벽 위에 누각 4개를 세웠지만, 1906년 헐어버렸으며, 1980년 지금의 영남제일관을 중건하였다.

모명재

모명재

9.8 Km    17765     2019-05-24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525길 14-21

현재의 모명재는 1912년 경산 객사가 헐리자 그 재목을 사와 두사충의 묘소 앞에 지은 것인데 1966년 2월 건물이 낡아 중수하였다. 모명재는 네모 반듯한 대지에 남향으로 배치되었다. 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앞쪽에 모명재가 위치하는데,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 기와집이다.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고 앞쪽에는 반칸 규모의 툇마루를 두었다. 모명재라고 한 것은 고국인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뜻이고 대문에 달려있는 만동문 역시 '백천유수필지동(白川流水必지東)'이라는 말에서 따 온 것인데 이것 또한 그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순신 장군이 지어 보냈다는 한시가 새겨져 있는 대청기둥, 충무공의 7대손인 삼남수군통제사 이인수가 비문을 지은 신도비와 명나라에서 가져온 청석으로 다듬은 2점의 동물조각상이 있다. 뒷산 형재봉 기슭으로 두사충의 묘소가 있다.

망우당공원

망우당공원

10.0 Km    36406     2019-12-12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 곽재우 장군을 기리는 공원, 망우당공원 *

대구의 동쪽 관문에 자리 잡은 공원으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공을 기념하기 위해 "망우당공원"이라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 장군은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신출귀몰한 전략을 펴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장군은 붉은 복장에 백마를 탄 모습으로 전장에 나타나곤 해서 홍의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공원 내에는 말을 타고 장검을 찬 곽재우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동상 가까이에 망우당 기념관을 지어 장군의 유품을 보관해 두고 있다. 망우당공원에 들어서면 하얀 성벽 위로 번듯한 누각 하나가 맨 먼저 눈에 띈다. 영남제일관이다. 영남제일관은 조선시대에 축조된 대구읍성의 남문으로서, 일제 강점기 때 철거된 것을 1980년에 옛 모습을 찾아 이곳에 중건해 놓았다. 대구독립운동의 대표적 유적지인 조양회관도 공원 내에 있다. 조양회관은 3.1운동 이후 일본의 식민지정책으로 회유되기 쉬운 민중을 깨우치고 민족혼을 심기 위해 청년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일깨우던 공간으로 1922년 10월 서상일(제헌국회의원)이 중구 대신동에 건립한 것을 1984년 6월 9일 망우당공원 내에 이전 복원하였다. 공원 사방으로는 백일홍, 목련, 은사시나무 등이 동산을 이루고, 뒤쪽 절벽 아래로는 금호강이 흐르고 있다.

* 독립운동의 산실, 조양회관 *

이 지방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조양회관은 1922년에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로, 일제강점기에 청년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던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조양(朝陽)이라는 이름에는 '조선의 빛'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 회관에는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사에 관한 각종 사진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밥먹고갑시다

밥먹고갑시다

10.1 Km    24820     2020-02-04

대구광역시 동구 효동로6길 131
053-951-0385

※ 영업시간 11:00 ~ 21:30 (일요일 11:00 ~ 21:00) 동촌 유원지에 위치한 한식 전문점으로 재래된장으로 비벼 먹는 보리밥 전문점이다.

영영축성비

9.7 Km    33373     2020-01-14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영영축성비는 영조 12년(1736)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 도호부사인 민응수가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대구토성을 돌로 다시 쌓은 후 이를 기념하고자 세운 비이다. 비는 직사각형으로,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운 모습이다. 비문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2,145보(步)이며, 네 개의 문을 만들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군량, 전포 등을 갖춘 창고를 두었다. 석성의 공사기간은 6개월이며, 동원된 인원은 78,534명에 달한다. 성이 완성된 뒤에는 여러 장사들을 모아 활쏘기대회를 열어 상을 주었다 한다. 민응수가 비문을 짓고, 백상휘가 글씨를 썼으며 경상도 관찰사였던 민응수가 나라에 건의하여 영조 13년(1737) 대구 남문 밖 관덕정 터에 세워두었다. 그러나 광무 10년(1906) 대구 군수 박중양이 대구 읍성을 헐면서 달성 군청 부근으로 옮겨졌으며, 1932년 대구향교로 이전하여 보존되다가 198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대구부수성비

9.8 Km    34515     2020-01-15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조선 고종 때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였던 김세호(金世鎬)가 대구부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뒤,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대구부성은 영조 때 경상관찰사 민응수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는데 그 후 성이 훼손되어도 제대로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던 것을 김세호가 수리한 것이다. 누각의 이름은 동을 정해루(定海樓), 서를 주승루(籌勝樓), 남을 선은루(宣恩樓), 북을 망경루(望京樓)라 하였다고 한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의 내용은 1870년(고종 7) 봄에 수리를 시작하여 그 해 11월에 마쳤는데, 원래 보다 높이와 크기를 키워서 동서남북의 성벽(城壁) 위에 새로이 4개의 누각(樓閣)을 세웠다는 공사에 관한 내용과, 유공자에게 상을 내린 일이 적혀 있다. 고종 6년(1869)에 세운 비로, 관찰사 김세호가 직접 비문을 짓고, 당시 공사 책임관이었던 절충장군(折衝將軍) 최석로(崔錫魯)가 글씨를 썼다. 이 비는 본디 남문 밖에 세워진 것이었으나, 광무 10년(1906) 대구부성이 헐리면서 갈 곳을 잃었다가 1932년 대구향교 경내로 옮겨졌고, 1980년 영남 제1관문을 고쳐 세우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대구 고모령비

10.0 Km    36306     2020-01-20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지금은 경부선 때문에 산은 잘렸고 망우공원에서 파크호텔 팔현부락을 거쳐 고모역으로 이어지는 옛 고갯길이 이어져 있다. 이 곳에 가면 '비내리는 고모령'의 노래비가 있으며, 노래비 뒤면에는 노래비를 세운 사연이 적혀있다.

* 고모령에 얽힌 전설 *

옛날 고모령에는 남편 없이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다.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다"라고 하여 어머니와 어린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산을 쌓게 되었는데, 그 산은 현재의 모봉, 형봉, 제봉 이라는 3개의 산봉우리가 되었다. 동생과 형이 서로 높이 쌓고자 시샘을 하여 싸우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여 자식들을 잘못 키웠다는 죄스러움으로 집을 나와 버렸다.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 길이 지금의 고모령이며, 정상에 와서 집을 향해 뒤돌아 봤는데 그 이름이 뒤돌아 볼 고(顧) 어미 모(母)를 합쳐 고모라는 마을 이름도 이 곳에서 나왔다고 한다.

백불고택

10.0 Km    0     2020-04-03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 195-5
010-3507-5994

백불고택은 경주 최씨 광정공파(匡正公派) 자손 중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 선생의 종가(宗家)이다. 조선 인조 때 대암(臺巖) 최동집선생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지은 유서 깊은 경주 최씨 광정공파 종가는 대구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이 고택은 대구지역의 주택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안채와 사랑채 중사랑채, 보본당, 대묘, 별묘, 행랑채, 고방채 등이 담장 안에 균형있게 배치되어 있는데 조선시대 양반주택과 그 생활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대구에 있는 가장 오래된 조선 시대 고택으로서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고택이 자리한 옻골은 마을을 둘러싼 산과 들에 옻나무가 많이 자란다고 하여, 예로부터 ‘옻골’이라고 불렸다. 옻골은조선 중기의 학자인 최동집(崔東集)이 1616년에 정착한 뒤 400여 년간 자손 대대로 살고 있는 마을이다. 한옥 20채가 모여 있는 전통 한옥 마을이기도 하다

환성사(경산)

10.3 Km    18136     2020-03-27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환성로 392-30

환성사는 신라 흥덕왕 10년(835년)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하였으나, 고려말기에 화재를 당하여 소실된 것을, 1635년(인조 13) 신감대사가 중창, 1897년(광무 1)에 항월대사가 삼창하였다고 한다. 환성사에는 대웅전, 심검당, 요사채, 수월관, 산령각 등이 있다. 대웅전은 1971년 보물 제562호로 지정되었고 부속건물 심검당(尋劒堂>은 1975년 지방문화재 84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팔공산 능선 아래 대웅전이 남향으로 자리잡고, 그 앞에 수월관이 있고, 좌우로는 심검당과 요사채가 배치되어 있다.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환성사가 불 탄 사연은 다음과 같다.절이 날로 번창하여 매일 수백명의 사람들이 찾아오니 밥해대기도 힘든터에 이 절에서 대선사가 기념으로 일주문을 세우고 대웅전 앞에 연못을 파 수월관이라 했다하며, 만약 이 못을 메우면 절이 쇠할 것이라 예언했다 한다. 그 후 이 절에 게으른 노주지승이 오게 되었는데,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것을 귀찮게 여겨 어느 거지객승의 말을 듣고 연못을 메우니 다 메우자마자 절에 불이나 타버리고 그 후 찾아드는 신도도 없고 절도 쇄락하게 되었다 한다.

관란서원

10.3 Km    1764     2019-11-25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서원천로 268-21

관란(觀瀾) 이선생(李先生:諱 承會) 문집에 “금학산 아래에 맹구대(盟鷗臺)와 삼회당(三會堂)의 옛터가 있으니 이는 관란 이선생이 강론하던 곳이라고 전하여 오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곳이 지금의 관란서원 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관란서원은 1660년(현종 1)에 지방유림들의 공의로 이언적(李彦迪)의 도덕과 학문을 추앙하여 창건하였다. 그 뒤 1715년(숙종 41)과 1743년(영조 19)에 사당을 중수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0년 맹구대와 삼화당이 있던 자리에 건물을 복원하여 서당으로 활용하였다. 언제부터 서원으로 승격되었는지도 잘 모르나 유림에서 단비(檀碑)를 세우고 해마다 중구일(重九日: 9월 9일)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선생의 향사를 받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