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역사문화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10.6 Km    3     2023-05-30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10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은 사적 제195호인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 제17대 효종대왕의 영릉(寧陵)이 있는 경기도 여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3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 영상실, 카페,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세종대왕과 효종대왕 그리고 조선왕릉에 대한 이해를 돕고, 세종대왕께서 후손에게 남긴 훌륭한 업적들과 그 업적의 바탕이 된 애민정신을 느껴볼 수 있도록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꾸며져 있다.

<출처 : 세종대왕유적관리소>

신라컨트리클럽

10.7 Km    15922     2023-02-21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신라그린길 84

신라컨트리클럽은 여주시 북내면 덕산리에 있는 골프장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신라컨트리클럽은 정규 27홀을 갖춘 대중제 골프장이다.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코스와 그린, 2017년 클럽하우스 리모델링과 제2영동고속도로 개통으로 골퍼들에게 더욱 각광 받고 있다.

호암산장

호암산장

10.8 Km    23956     2023-07-02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문막읍 석지1길 322
033-734-3020

영동 고속도로 문막 IC에서 5분 거리인 남한강 줄기 섬강변에 위치한 호암산장은 섬강 건너편에 절벽과 수목이 어우러져 있어 봄에는 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절벽이 한 폭의 동양화 같으며, 눈 내린 절벽의 풍경은 가히 절경이다.

대법사(여주)

대법사(여주)

10.9 Km    20609     2024-04-29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안금3길 3-43

대법사는 대포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명성황후의 출생 일화가 전해진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자 경기도 전통사찰로 등록되었다. 고즈넉한 사찰 곳곳에 심어진 꽃나무와 연지가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대법사는 1971년에 창건됐으며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사찰이다. 하지만 원래 이곳은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진성여왕 때부터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 0.9m의 미륵입상을 조성해 미륵당으로 불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명성황후와 그의 아버지 민치록의 인연으로 유명해지게 되는데, 숙종 때 사찰 인근에 인현왕후의 오빠인 민진후의 묘를 쓰면서부터이다. 이 묘소를 관리하며 살아가던 명성황후의 부친 민치록은 꿈에 미륵불을 현몽하고 땅을 파서 미륵불을 발견한 뒤 법당을 새로 지어 불상을 봉안하고 부인인 한산 이씨가 정성으로 불공을 드려 낳은 자식이 바로 명성황후이다. 그 후 명성황후가 고종의 비로 책봉되자 미륵불이 있던 자리에 대웅전을 건립하고 원당사로 개칭하고 민씨 일가의 성원으로 번창하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으로 원당사는 사라지고 거의 폐사되어 흔적만 있던 것을 오늘날의 대법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절을 새로 창건한 대원스님 또한 꿈에 현몽한 대법사라는 서책을 보고 절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일주문, 대웅전, 지장전, 범종각, 국사당, 삼성각 등이 있다. 1971년 건축해 1989년 중수한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건물로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석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앞에는 석등, 삼층석탑, 약사여래 좌상이 있으며 뒤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9m에 이르는 미륵석불과 7층 석탑이 있다. 대웅전 옆 작은 석실에 명성황후와 연이 있는 미륵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소원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는지 닳고 닳은 외형이 그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절 입구의 국사당에 2개의 탱화가 걸려있는데 좌측에는 산신이 우측에는 보통 호랑이가 있지만 말을 탄 선비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민치록이라 한다.

여주 영릉(英陵)세종대왕)과 영릉(寧陵)효종,인선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11.2 Km    55180     2024-04-04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세종대왕은 조선 제4대왕으로 1418년부터 1450년 54세로 승하하실 때까지 32년간 재위하였다. 태조6년(1397년) 음력 4월10일(양력 5월15일) 조선조 제3대 임금이신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태종8년 (1408년) 음력 2월11일(양력 3월17일)에 충녕군에 봉해지고, 같은 해 2월 16일(양력 3월22일) 우부대언 심온의 딸(소헌왕후 심씨)과 결혼하였다. 태종12년(1412년)에 충녕대군에 진봉되고 스물두살 되던 태종18년(1418년) 양녕대군이 폐세자 됨에 따라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그 해 음력 8월10일 (양력 9월18일) 22세의 나이에 조선조 제4대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세종이 맏형인 양녕대군을 두고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여러 왕자중에서 가장 총민하고 현명하였기 때문이었으며, 대왕은 우리나라 역대 군왕 가운데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민족의 원형을 이루었던 우리 민족은 세종대왕 때에 이르러 국토·언어·문화·민족정신을 공통으로 하는 완전한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 영릉의 특징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낸 능의 하나인 영릉의 구조를 살펴보면 풍수지리설에 따라 주산인 칭성산을 뒤로 하고, 중허리에 봉분을 이룩하며, 그 좌우 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능역의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신도를 따라 정자각에 이르게 된다. 정자각의 동쪽에는 수복방과 비각, 서쪽에는 수라간이 있다. 봉분 둘레에는 12면으로 꾸민 돌난간을 돌렸으며, 난간석을 바치고 있는 동자석주에 한자로 12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하였으며, 앞에는 합장릉임을 알 수 있는 2개의 혼유석과 장명등을 놓고, 좌우에 망주석을 세웠다. 봉분 능침 주변에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를 서로 엇바꾸어 좌우로 각각 두 쌍씩 여덟마리를 밖을 향하여 능을 수호하는 형상으로 배치하고, 봉분의 동·서·북 3방향에 곡담을 둘렀다. 봉분앞 한층 낮은 단에 문인석 2쌍과 무인석 2쌍을 세우고 문·무인석 뒤에는 각각 석마(石馬)를 배치하였다.

* 전시유물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건립한 유물전시관인 세종전이 있으며, 세종전에는 세종대왕의 어진과 당시에 발 명하여 사용한 과학기구, 악기류와 세종대에 간행된 책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세종전 앞 야외유물전시장에는 해시계, 천상열차분야지도, 자격루, 관천대, 측우기, 혼천의, 간의 등 15점의 각종 복원유물들이 전시되어있어 세종시대의 과학기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 세종대왕의 업적
1) 한글창제
대왕은 궁중에 정음청을 두고 집현전 학사들을 지도하여 1443년(세종25년) 훈민정음 28자를 연구·창제하고 3년 동안 다듬고 실제로 써본 연후인 1446년 9월(음력) 에 이를 반포함으로써 민족적 주체성을 통한 우리 민족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오늘날 한글은 그 원리나 형태가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며, 익히기 쉽고 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로 평가되고 있다. 한글 창제의 더 큰 의의는 한문을 무조건 숭상하던 많은 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라와 백성의 앞날을 위하여 우리의 글을 만들어 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2) 학문창달
대왕은 특히 학문을 사랑하여 집현전을 부활하여 우수한 젊은 학자들로 하여금 학문을 강론하고 옛 제도를 연구하여 많은 서적을 편찬토록 하였다. 우선 경자자· 갑인자· 병진자 등 개량활자를 만들어 월인천강지곡·용비어천가·농사직설·고려사·삼강행실도·팔도지리지·석보상절·의방유취 등 귀중한 책을 간행하고, 경제육전을 반포하여 농업을 크게 장려하여 전제(田(전)제)와 세제를 정비하는 등 문물제도를 크게 개건하였다.

3) 과학의 진흥
대왕은 국민을 위하여 농업을 진흥하려는 데 뜻을 두고 한 평생을 천문, 지리 등 과학기술을 연구 보급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장영실, 이천 등 젊은 과학자들을 격려하여 천문관측기구인 대·소간의, 일성정시의, 혼천의, 시간을 재는 앙부일구(해시계)와 자격루(물시계)등 을 만들었다. 또한 측우기를 제작하여 서울과 지방에서 강우량을 측정토록 했으며 수표를 만들어 하천의 수위를 재게하고 외국의 역법(曆法)을 참작하여 역서와 천문도를 제작했다. 이리하여 천문·지리 등 과학기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4) 외치와 국방
대왕은 역대로 신사상과 신기술의 통로였던 중국의 명나라와의 교류정책을 적극 펼치는 한편 바다를 건너와 백성을 괴롭히는 왜구를 응징하여 이종무 로 하여금 대마도를 정벌하는 한편 3포를 개항하여 일본과의 선진관계를 도모하였다. 북방으로는 최윤덕으로 하여금 평안도의 야인을 평정케하여 4군을 설치하고 김종서로 하여금 함경도에 6진을 개척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우리나라의 국경을 확정시키는 등 국력을 강하하였다.

5) 음악의 정리
조선 초기 까지의 음악은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던 음악과 중국음악이 서로 혼합되어 무질서한 상태였으나 세종대에 이르러 정리하였는 데, 이는 아악의 부흥과 향악의 창작이었다. 대왕은 박연 등으로 하여금 각종 악기를 만들게 하고 특히 편경과 편종을 새로 제작하였으며, 악곡·악보 등을 종합 정리하여 바로잡아 아악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묘, 효종대왕릉
영릉(寧陵)은 17대 효종(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1618∼1674)의 무덤이다. 처음엔 건원릉의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현종 14년 (1673)에 여주 영릉 동쪽으로 옮겼다. 영릉은 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하지 않고 아래·위로 만든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이고, 경종과 선의왕후의 무덤인 의릉(懿陵)도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 효종대왕릉의 형태
조선왕조 왕의 무덤배치에 하나의 전환기가 된 형태로 무덤에는 병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왕릉 바깥쪽으로 나지막한 담을 쌓았고, 봉분을 감싸고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다. 돌 난간의 기둥 사이를 받치는 동자석(童子石)에는 십이방위 문자를 새겼다. 조선시대 왕릉의 형태를 보면 세조 때부터 병풍석을 세우지 않는 전통이 있었으나, 성종의 무덤인 선릉(宣陵)부터 십이지신상을 새긴 병석을 설치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영릉(寧陵)에서 다시 사라져 왕릉 배치에 있어 또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능에 갖추어진 석물은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2쌍, 상석 1좌, 망주석 1쌍,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 장명등 1좌, 무인석·석마 각 1쌍이다. 왕비릉에는 곡장만 없을 뿐 다른 배치는 왕릉과 똑같이 구성되어 있다.

* 대동법과 상평통보, 효종에 대하여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1619년(광해군 11) 5월 22일 태어나 1626년(인조 4) 봉림대군에 봉해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로 8년간이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그 후 풀려 나와서 1646년(인조 23) 소현 세자가 변사하자 뒤를 이어 왕세자에 책봉되고 1649년(인조 27) 5월 13일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효종은 즉위 후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화폐를 널리 보급하였다. 조선왕조가 당한 굴욕을 씻고자 청나라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659년 5월 4일 재위 10년 만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

남한강을 따라 흩어진 역사의 향기

11.2 Km    2934     2023-08-10

여주 남한강변을 여행하는 것은 긴 세월에 걸친 역사와 조우하는 일이다. 그 만남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운치 있어 더욱 오래 마음에 남는다.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무덤인 영릉과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또 다른 영릉, 남한강변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영월루와 신륵사, 고달사지와 파사성에 이르며 남한강변의 아름다움도 함께 누린다.

조선효종영릉재실

조선효종영릉재실

11.2 Km    20545     2023-10-18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寧陵)은 조선 제17대 효종대왕(1619~1659, 재위 1649~1659)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이며, 재실(齋室)은 제관(祭官)의 휴식, 제수장만 및 제기 보관 등의 제사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건물이다. 효종대왕릉은 1659년 경기도 양주군 건원릉(현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의 서쪽에 조성하고, 능호를 익릉(翼陵)이라 하였으며, 그 앞에 재실을 건립하였다. 이후 1763년 석물에 틈이 생겨 현 위치로 옮겨오면서 능호를 영릉으로 고치고 재실도 함께 옮겨왔다.

* 조선효종영릉재실의 구조와 역사적 의의 *

일반적인 조선시대 재실은 재방, 안향청, 제기고, 전사청, 행랑채(대문 포함), 우물 등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조선 왕릉의 재실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멸실되어 원형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이곳 영릉 재실은 조선 왕릉 재실의 기본형태가 가장 잘 남아있고, 공간 구성과 배치가 잘 되어 있다. 또한 경내의 재향과 관계있는 향나무와 느티나무, 회양목(천연기념물 제459호) 등의 고목도 함께 어우러져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공간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대표적인 조선시대 재실건축으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문화재 정보]
지정번호 : 보물
지정 연도 : 2007년 11월 29일
시대 : 조선시대
종류 : 가옥

아뜰리에안

아뜰리에안

11.5 Km    2     2023-07-02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지정면 원양2로 135
033-747-4125

강원도에서 느끼는 제주도! 제주도의 아뜰리에안을 강원도 원주시로 가져온 카페 아뜰리에안은 넓은 주차공간과 가게 앞뒤의 야외공간으로 가족 및 친구들과 함께 오기 좋은 카페이다. 카페 앞에 설치된 조명은 해가 저문 후 카페를 더욱 밝혀준다. 실내에도 화려한 장식장과 여러 장식품으로 꾸며져 새로운 포토스팟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주온천

여주온천

1.2 Km    34459     2023-12-08

경기도 여주시 강문로 864 여주온천

여주참숯마을캠핑장 부근에 위치한 여주온천은 삿갓봉 꼭대기에 위치한 여주 유일의 온천장이다. 지하 800m 암반에서 용출하는 각종 미네랄이 충분히 함유된 최고 수준의 온천수이며 마실 수 있는 약수온천이다. 1995년 온천을 발견하여 2005년 온천공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여주온천은 찜질방이 없는 중규모의 목욕탕을 갖춘 스파 시설로 객실도 함께 운영하였으나 지금은 스파만 운영하고 있다. 스파는 여탕, 남탕에 각 천연 옥 노천탕, 맥반석 사우나, 황토 사우나, 아로마 소금탕, 족욕 지압탕, 노천 황토방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산림욕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천연옥 노천탕과 야외 황토방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서여주IC에서 차량으로 약 17분 소요된다. 인근에 영녕릉, 명성황후 생가, 신륵사, 파사성, 여주박물관, 목아박물관, 여주곤충박물관, 황포돛배, 강천섬 등이 있다.

충주 비내오토캠핑장

충주 비내오토캠핑장

11.7 Km    2     2023-02-08

충청북도 충주시 학교말2길 50 강천초등학교

충주 비내캠프 체험학습장(충주 비내오토캠핑장)는 충북 충주시 앙성면 목미리에 자리 잡았다. 충주시청을 기점으로 35km가량 떨어졌다. 자동차를 타고 북부로와 앙암로를 번갈아 달리면 닿는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 안팎이다. 폐교를 리모델링해 감성적인 캠핑장으로 거듭난 공간이다. 수목이 우거진 캠핑장에는 파쇄석으로 이뤄진 일반캠핑 사이트 28면이 마련돼 있다. 사이트 크기는 가로 8m 세로 8m다. 2층으로 만들어진 원두막 캠핑 사이트 7면도 있다. 놀이터, 공원, 도사관, 교육관, 휴게실, 매점 등 부대시설도 알차다. 주변에는 수룡폭포와 봉황자연휴양림이 있다. ※ 반려견 동반 가능(소형견만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