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영릉(英陵)세종대왕)과 영릉(寧陵)효종,인선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여주 영릉(英陵)세종대왕)과 영릉(寧陵)효종,인선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여주 영릉(英陵)세종대왕)과 영릉(寧陵)효종,인선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0m    55180     2024-04-04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세종대왕은 조선 제4대왕으로 1418년부터 1450년 54세로 승하하실 때까지 32년간 재위하였다. 태조6년(1397년) 음력 4월10일(양력 5월15일) 조선조 제3대 임금이신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태종8년 (1408년) 음력 2월11일(양력 3월17일)에 충녕군에 봉해지고, 같은 해 2월 16일(양력 3월22일) 우부대언 심온의 딸(소헌왕후 심씨)과 결혼하였다. 태종12년(1412년)에 충녕대군에 진봉되고 스물두살 되던 태종18년(1418년) 양녕대군이 폐세자 됨에 따라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그 해 음력 8월10일 (양력 9월18일) 22세의 나이에 조선조 제4대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세종이 맏형인 양녕대군을 두고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여러 왕자중에서 가장 총민하고 현명하였기 때문이었으며, 대왕은 우리나라 역대 군왕 가운데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민족의 원형을 이루었던 우리 민족은 세종대왕 때에 이르러 국토·언어·문화·민족정신을 공통으로 하는 완전한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 영릉의 특징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낸 능의 하나인 영릉의 구조를 살펴보면 풍수지리설에 따라 주산인 칭성산을 뒤로 하고, 중허리에 봉분을 이룩하며, 그 좌우 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능역의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신도를 따라 정자각에 이르게 된다. 정자각의 동쪽에는 수복방과 비각, 서쪽에는 수라간이 있다. 봉분 둘레에는 12면으로 꾸민 돌난간을 돌렸으며, 난간석을 바치고 있는 동자석주에 한자로 12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하였으며, 앞에는 합장릉임을 알 수 있는 2개의 혼유석과 장명등을 놓고, 좌우에 망주석을 세웠다. 봉분 능침 주변에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를 서로 엇바꾸어 좌우로 각각 두 쌍씩 여덟마리를 밖을 향하여 능을 수호하는 형상으로 배치하고, 봉분의 동·서·북 3방향에 곡담을 둘렀다. 봉분앞 한층 낮은 단에 문인석 2쌍과 무인석 2쌍을 세우고 문·무인석 뒤에는 각각 석마(石馬)를 배치하였다.

* 전시유물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건립한 유물전시관인 세종전이 있으며, 세종전에는 세종대왕의 어진과 당시에 발 명하여 사용한 과학기구, 악기류와 세종대에 간행된 책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세종전 앞 야외유물전시장에는 해시계, 천상열차분야지도, 자격루, 관천대, 측우기, 혼천의, 간의 등 15점의 각종 복원유물들이 전시되어있어 세종시대의 과학기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 세종대왕의 업적
1) 한글창제
대왕은 궁중에 정음청을 두고 집현전 학사들을 지도하여 1443년(세종25년) 훈민정음 28자를 연구·창제하고 3년 동안 다듬고 실제로 써본 연후인 1446년 9월(음력) 에 이를 반포함으로써 민족적 주체성을 통한 우리 민족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오늘날 한글은 그 원리나 형태가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며, 익히기 쉽고 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로 평가되고 있다. 한글 창제의 더 큰 의의는 한문을 무조건 숭상하던 많은 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라와 백성의 앞날을 위하여 우리의 글을 만들어 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2) 학문창달
대왕은 특히 학문을 사랑하여 집현전을 부활하여 우수한 젊은 학자들로 하여금 학문을 강론하고 옛 제도를 연구하여 많은 서적을 편찬토록 하였다. 우선 경자자· 갑인자· 병진자 등 개량활자를 만들어 월인천강지곡·용비어천가·농사직설·고려사·삼강행실도·팔도지리지·석보상절·의방유취 등 귀중한 책을 간행하고, 경제육전을 반포하여 농업을 크게 장려하여 전제(田(전)제)와 세제를 정비하는 등 문물제도를 크게 개건하였다.

3) 과학의 진흥
대왕은 국민을 위하여 농업을 진흥하려는 데 뜻을 두고 한 평생을 천문, 지리 등 과학기술을 연구 보급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장영실, 이천 등 젊은 과학자들을 격려하여 천문관측기구인 대·소간의, 일성정시의, 혼천의, 시간을 재는 앙부일구(해시계)와 자격루(물시계)등 을 만들었다. 또한 측우기를 제작하여 서울과 지방에서 강우량을 측정토록 했으며 수표를 만들어 하천의 수위를 재게하고 외국의 역법(曆法)을 참작하여 역서와 천문도를 제작했다. 이리하여 천문·지리 등 과학기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4) 외치와 국방
대왕은 역대로 신사상과 신기술의 통로였던 중국의 명나라와의 교류정책을 적극 펼치는 한편 바다를 건너와 백성을 괴롭히는 왜구를 응징하여 이종무 로 하여금 대마도를 정벌하는 한편 3포를 개항하여 일본과의 선진관계를 도모하였다. 북방으로는 최윤덕으로 하여금 평안도의 야인을 평정케하여 4군을 설치하고 김종서로 하여금 함경도에 6진을 개척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우리나라의 국경을 확정시키는 등 국력을 강하하였다.

5) 음악의 정리
조선 초기 까지의 음악은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던 음악과 중국음악이 서로 혼합되어 무질서한 상태였으나 세종대에 이르러 정리하였는 데, 이는 아악의 부흥과 향악의 창작이었다. 대왕은 박연 등으로 하여금 각종 악기를 만들게 하고 특히 편경과 편종을 새로 제작하였으며, 악곡·악보 등을 종합 정리하여 바로잡아 아악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묘, 효종대왕릉
영릉(寧陵)은 17대 효종(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1618∼1674)의 무덤이다. 처음엔 건원릉의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현종 14년 (1673)에 여주 영릉 동쪽으로 옮겼다. 영릉은 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하지 않고 아래·위로 만든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이고, 경종과 선의왕후의 무덤인 의릉(懿陵)도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 효종대왕릉의 형태
조선왕조 왕의 무덤배치에 하나의 전환기가 된 형태로 무덤에는 병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왕릉 바깥쪽으로 나지막한 담을 쌓았고, 봉분을 감싸고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다. 돌 난간의 기둥 사이를 받치는 동자석(童子石)에는 십이방위 문자를 새겼다. 조선시대 왕릉의 형태를 보면 세조 때부터 병풍석을 세우지 않는 전통이 있었으나, 성종의 무덤인 선릉(宣陵)부터 십이지신상을 새긴 병석을 설치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영릉(寧陵)에서 다시 사라져 왕릉 배치에 있어 또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능에 갖추어진 석물은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2쌍, 상석 1좌, 망주석 1쌍,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 장명등 1좌, 무인석·석마 각 1쌍이다. 왕비릉에는 곡장만 없을 뿐 다른 배치는 왕릉과 똑같이 구성되어 있다.

* 대동법과 상평통보, 효종에 대하여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1619년(광해군 11) 5월 22일 태어나 1626년(인조 4) 봉림대군에 봉해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로 8년간이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그 후 풀려 나와서 1646년(인조 23) 소현 세자가 변사하자 뒤를 이어 왕세자에 책봉되고 1649년(인조 27) 5월 13일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효종은 즉위 후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화폐를 널리 보급하였다. 조선왕조가 당한 굴욕을 씻고자 청나라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659년 5월 4일 재위 10년 만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

남한강을 따라 흩어진 역사의 향기

0m    2934     2023-08-10

여주 남한강변을 여행하는 것은 긴 세월에 걸친 역사와 조우하는 일이다. 그 만남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운치 있어 더욱 오래 마음에 남는다.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무덤인 영릉과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또 다른 영릉, 남한강변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영월루와 신륵사, 고달사지와 파사성에 이르며 남한강변의 아름다움도 함께 누린다.

하이트진로 이천공장

하이트진로 이천공장

10.0 Km    3770     2024-01-08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중부대로1707번길 13

하이트진로 이천공장은 이천시 동부에 위치한 주류공장이다. 이 공장은 국내 최대 주류기업 하이트가 운영하는 공장으로 1일 최대 600만병의 참이슬 소주를 생산하고 있다. 단일 제품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내부 시설 견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공장 내에서는 원료를 정제, 발효, 첨가, 정제, 블랜딩을 거쳐 제품으로 완성되는 소주 생산 공정을 알아볼 수 있다. 또한 과거에 쓰이던 추억의 소주병도 둘러볼 수 있고, 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움직이는 초록 소주병의 물결도 장관이다. 주변에는 서희테마파크, 이천시 종합운동장, 이천환경테마공원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이포보오토캠핑장_양촌지구

이포보오토캠핑장_양촌지구

10.1 Km    1     2023-11-06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여양로 1935-177

이포보 오토캠핑장은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에 자리했다. 광주원주고속도로 대신 IC에서 양평, 여주 방면으로 5분가량 거리에 있다. 차단기 앞에서 버튼을 누르고 예약을 확인하면 차량과 함께 내부로 진입할 수 있다. 잔디밭과 함께 오토캠핑장 75면으로 조성돼 있는 이포보 캠핑장은 화로 사용이 가능하다. 식료품과 일반 잡화를 판매하는 매점이 있으며 관리소 주변으로 화장실, 샤워장, 개수대가 자리 잡고 있다. 포토존에서의 기념사진 촬영이 가능하고 캠핑장 바로 옆으로 남한강 자전거길이 있어 매점에서 자전거를 대여한다면 캠핑과 함께 라이딩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경기순대국

경기순대국

10.1 Km    0     2024-02-19

경기도 여주시 삼군2길 27

경기순대국은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에 있는 순댓국 전문점이다. 깔끔한 내부에 손님이 많지만 회전율이 빠르다. 경기순대국의 순대는 찰순대가 아닌 아바이순대이다. 순대 주문 시 백순대와 일반순대 2가지로 나온다. 대표메뉴는 사골순대국과 시골순대국이다. 사골순대국은 하얗고 뽀얀 사골국물을 기본으로 한 순대국이다.담백한 국물에 부드러우면서 쫀득한 머리고기가 푸짐하게 들었고 아바이순대와 찰순대가 같이 들었다. 시골순대국은 붉은색을 띤 국물에 곱창, 선지, 우거지, 순대가 들어간 순댓국이다. 곱창은 손질이 잘해서 냄새가 없고 선지는 먹기 좋은 크기로 들어있다. 우거지가 들어가므로 국물이 진하면서도 구수하다. 순댓국은 모두 내용물의 양이 넉넉하다. 김치 밑반찬 외에 다진 마늘이 따로 나오는데 마늘을 넣으면 깔끔한 맛이 더해지고 풍미가 좋아진다. 메뉴들은 포장할 수 있다. 단, 순댓국 포장은 비조리 상태로 밥을 제외하는 대신 고기양을 더하여 준다.

중암리손두부집

중암리손두부집

10.1 Km    1     2024-02-23

경기도 여주시 당전로 345-24

중암리손두부집은 경기도 여주시 중암리에 있는 두부요리 전문점이다. 40년 전통을 이어오며 국산콩으로 매일 새벽 손수 두부를 만든다. 옛날 집에서 두부를 만들어 먹던 시절부터 두부 맛집으로 소문이 났고 동네를 넘어 여주 명물로 통하다가 가정집을 식당으로 용도 변경하며 본격적으로 손두부식당으로 개업했다고 한다. 대표 메뉴인 두부찌개는 얇게 썬 두부가 듬뿍 들어가 있고 매콤하면서 시원하고 개운한 국물맛이 두부와 잘 어우러졌다. 들기름에 구워낸 두부구이는 두부 자체의 고소함에 들기름 향이 입혀져 구수한 맛을 더한다. 직접 빚은 손만두도 인기인데 양이 푸짐할 뿐만 아니라 들기름 향이 은은히 풍기며 매콤한 맛을 내는 김치만두로 감칠맛 나게 입맛을 돋운다.

두리캠핑장

두리캠핑장

10.1 Km    0     2023-11-01

경기도 여주시 흥천면 이여로 778-10

여주에 있는 두리캠핑장은 깨끗하게 관리된다고 입소문이 난 곳으로, 서울 인근에 있어 접근성도 좋다 보니, 예약이 쉽지 않다. 파쇄석 16개와 데크석 7개가 있고, 일부 사이트는 타프도 설치되어 있다. 당일 피크닉용 사이트도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브런치, 고구마, 김치를 비롯 음식 예약도 가능하다. 지정된 사이트의 경우 애견 동반도 가능한데, 2회 이상 캠핑장을 이용한 경우에 한해 예약할 수 있다. 동절기에는 장박 위주로 이용 가능하다.

흥왕사

10.2 Km    19959     2023-03-17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당전로 345-4

* 소달과 고달 형제의 전설이 있는 사찰, 흥왕사 *

흥왕사는 신륵사 하구로 흘러 내리는 금당천과 중암리를 가로 질러 흐르는 완장천 사이에 자리한 고려시대 사찰로 나지막한 야산에 그 터를 잡고 있다. 고려 초 소달(蘇達)이 창건했다고도 하고, 고려 말 혜근(惠勤:1351∼1374)이 세웠다고도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흥왕사는 여주의 명찰 고달사와는 형제와 같은 절로 그 옛날 소달과 고달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고달과 소달은 형제지간으로 각기 뜻을 품어 부처님 전에 그 몸을 귀의하여 승려가 되었다. 하지만 각기 뜻을 품은 바가 달라 고달은 국가에 도움을 주는 절을 세웠으며, 소달은 사찰을 진리의 도량으로 생각하며 오래도록 중생을 교화하는 절을 세웠다. 한때 고달이 세운 고달사는 고려의 명문사찰로 명성을 떨쳤지만 일찍히 폐사되었고, 소달이 세운 상왕사는 조용히 은둔하며 그 법을 이어나가 아직도 법등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소달산 흥왕사는 자그마한 암자의 모습으로 중생을 교화하고자하는 진리의 도량 모습을 품고 있다. 극락전과 삼성각이 사찰 가람의 전부인 흥왕사지만 따뜻하게 가람을 품은 소달산의 지세와 사찰의 수호신장처럼 사찰을 수호하는 보호수의 모습은 현재 폐허가 된 고달사의 쓸쓸함 보다 우리에게 정겨운 모습은 아닐까 생각한다. 동시대 같은 형제들에 의해 창건되었지만 부귀를 위한 사찰과 부처님의 법을 잇기 위한 사찰의 또 다른 운명을 그들 형제는 알고 있었을까.

* 흥왕사의 창건배경 및 역사 *

연혁 소달산(蘇達山) 중턱에 자리한 흥왕사는 사찰의 창건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봉은사본말지(奉恩寺本末誌)』에는 소달화상(蘇達和尙)이 창건하여 흥왕사(霜旺寺)라는 사명(寺名)으로 불려졌으며, 1892년 독성탱 화기에도 상왕사(霜旺寺)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19세기말까지 그 이름을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1905년 창석산인(蒼石山人)이 쓴『상왕사법당중건상량문(霜旺寺法堂重建上梁文)』에는 고려 공민왕대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창건한 고찰로 기록되나 그 시대의 유물이나 기록이 없어 단정할 수 없다.

흥왕사의 역사는 나옹과 소달 두 화상의 창건설을 지니며, 19세기말까지 상왕사로 불려지다가, 1905년 돈묵스님이 법당이 퇴락됨을 안타까워하여 절의 사세를 일으키기 위해 흥왕사라는 사명으로 개명한 듯하다. 1892년 대대적인 탱화의 불사 이후 급격히 쇠락한 흥왕사는 돈묵스님이 탁발하여 법당을 비롯한 삼성각의 칠성탱과 산신탱, 보조국사진영(普照國師眞影)을 조성하였으며, 가람을 정비하여 그 사세를 단장하였다.그 뒤 1922년에 주지 성묵스님이 법당을 중수하고, 1931년 나옹화상이 봉안한 아미타여래좌상을 개금불사 하였으며, 1932년 윤익(潤益) 스님이 대방을 중수하였다.

그 후 1933년 동요사(東寮舍)를, 1938년 서쪽 요사를 건립하였으며, 1943년 법당을 중건하여 현재 가람의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옛 가람이 부분 적으로 소실되었으나, 1966년에 장지윤(張智潤)스님이 칠성각을 단청하고 대방을 보수하여 사찰의 명맥을 이어갔으며, 1968년에는 사찰 진입로를 정비하여 도량을 일신하였다. 1974년에는 성진(性眞)스님이 부임하여 가람을 정비하였으며, 1992년에는 선과스님이 취임하여 기존의 전각을 헐고 대웅전ㆍ삼성각을 신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현재 흥왕사는 선과스님이 조성한 전각을 바탕으로 단청을 비롯하여 가람의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근래 주지로 부임한 영정스님의 정진불사 노력으로 극락전을 비롯하여 삼성각, 범종각, 요사채 2동이 근래 조성되어 옛 가람의 모습을 복원되고 있다.

이태리회관

이태리회관

10.2 Km    0     2024-01-11

경기도 여주시 이여로 990

여주시 문장리에 있는 이탈리아 음식점이다. 이태리회관은 한남동에서 운영하던 매장을 여주로 옮겨 운영하고 있다. 단독 건물이며, 넓은 마당에 펼쳐진 잔디와 다양한 조형물들이 마치 외국에 온 느낌이 드는 음식점이다. 특히 어린이들과 함께 오기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마당에는 2층 높이의 나무집, 오두막집, 그네, 해먹, 모래놀이까지 다양한 놀거리가 있다. 식당 내부에는 대형 어항이 있어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주메뉴는 등심 스테이크와 파스타이다. 해산물 토마토 파스타는 뚝배기에 담아 나오므로 먹는 내내 따듯하게 먹을 수 있고, 맵기 조절을 할 수 있다. 가까운 곳에 야외 생태 놀이터인 예크 생물원이 있어 하루 나들이 코스로 좋은 곳이다.

한얼테마과학·박물관

한얼테마과학·박물관

10.3 Km    33545     2023-03-20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대신1로 298
031-881-6319

여주 대신면 옥촌리 폐교된 분교터에 자리잡고 있는 한얼테마과학·박물관은 지하철 1호선 안에 유물 보관작업을 시작해 과학문화관, 전적유물관, 고문서유물관, 카메라유물관, 의학유물관 그리고 산업디자인유물관 총 7개의 박물관으로 이루어진 세계최초의 박물관 단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