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검단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검단산

검단산

0m    58815     2019-08-01

경기도 하남시 천현동

* 가족 나들이 산행으로 좋은 산, 검단산 *
하남시청 동쪽에 위치한 높이 657m로 하남시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유명하다. 백제 한성시대 하남 위례성의 숭산(崇山), 진산(鎭山)으로서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산으로 전해진다.
검단산 정상에서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양수리와 하남시는 물론이고 서울과 양평 일대, 팔당호 주변의 경관도 감상할 수 있어 서울 근교의 하루 등반 코스로 각광 받고 있다.
서울 근교에 있고 교통이 편리하며,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코스도 그다지 어렵지 않아 일일 산행으로 가족 나들이하기에 좋다. 산행은 하산곡동의 산곡초등학교 쪽과 팔당댐 건너 아래배알미쪽 등산로를 이용할 수 있는데 전자가 교통이 더 편리하다. 이밖에 창우동의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방면에서 시작되는 현충탑 등산로도 있다.
하산곡동에서 출발하는 산행은 처음에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지만 산 중턱에는 노송이 길을 덮어 쉬어가기 좋다. 넓고 평평한 정상에 서면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 줄기가 한눈에 보인다. 동쪽으로는 팔당댐이 보이고, 남쪽으로 뻗은 능선에는 용마산(龍馬山)이 솟아 있으며, 서쪽으로는 중부고속도로가 힘차게 달린다. 본래 세종대왕의 능을 이곳에 쓰려다 여주로 옮겨가게 되어 닦아 놓은 능터가 지금도 남아 있어 역사를 말해주고 있으며,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兪吉濬)의 묘가 있다.

* 검단산의 유래 *
백제 때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이곳에 은거하였다 하여 검단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높이는 관악산(冠岳山:629m)과 비슷하지만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서 광주목의 진산(鎭山)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산세가 특이하다. 가파른 경사를 지나 능선에 올라서면 사방의 전경이 시원하게 열리고, 서서히 정상에 이르는 길이 매우 다채롭다.

곱돌광산약수터

곱돌광산약수터

2.1 Km    22767     2019-12-20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031-790-5150

* 검단산 산행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곳, 곱돌약수터 *
곱돌약수터는 하남시 검단산 내에 위치한 약수터이다. 검단산 산행시 목라름을 해소할 수 있는 약수터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검단산은 하남시청 동쪽에 위치한 높이 657m로 하남시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유명하다. 백제 한성시대 하남 위례성의 숭산(崇山), 진산(鎭山)으로서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산으로 전해진다. 검단산 정상에서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양수리와 하남시는 물론이고 서울과 양평 일대, 팔당호 주변의 경관도 감상할 수 있어 서울 근교의 하루 등반 코스로 각광 받고 있다. 서울 근교에 있고 교통이 편리하며,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코스도 그다지 어렵지 않아 일일 산행으로 가족 나들이하기에 좋다. 산행은 하산곡동의 산곡초등학교 쪽과 팔당댐 건너 아래배알미쪽 등산로를 이용할 수 있는데 전자가 교통이 더 편리하다. 이밖에 창우동의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방면에서 시작되는 현충탑 등산로도 있다. 하산곡동에서 출발하는 산행은 처음에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지만 산 중턱에는 노송이 길을 덮어 쉬어가기 좋다. 넓고 평평한 정상에 서면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 줄기가 한눈에 보인다. 동쪽으로는 팔당댐이 보이고, 남쪽으로 뻗은 능선에는 용마산(龍馬山)이 솟아 있으며, 서쪽으로는 중부고속도로가 힘차게 달린다. 본래 세종대왕의 능을 이곳에 쓰려다 여주로 옮겨가게 되어 닦아 놓은 능터가 지금도 남아 있어 역사를 말해주고 있으며,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兪吉濬)의 묘가 있다.

호국사(경기)

호국사(경기)

2.7 Km    23129     2019-09-11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로146번길 240

* 검단산에 위치한 사찰, 호국사 *

호국사는 하남시 검단산 내에 있는 사찰이다. 검단산은 하남시청 동쪽에 위치한 높이 657m로 하남시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유명하다. 백제 한성시대 하남 위례성의 숭산(崇山), 진산(鎭山)으로서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산으로 전해진다.검단산 정상에서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양수리와 하남시는 물론이고 서울과 양평 일대, 팔당호 주변의 경관도 감상할 수 있어 서울 근교의 하루 등반 코스로 각광 받고 있다.서울 근교에 있고 교통이 편리하며,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코스도 그다지 어렵지 않아 일일 산행으로 가족 나들이하기에 좋다.

산행은 하산곡동의 산곡초등학교 쪽과 팔당댐 건너 아래배알미쪽 등산로를 이용할 수 있는데 전자가 교통이 더 편리하다. 이밖에 창우동의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방면에서 시작되는 현충탑 등산로도 있다.하산곡동에서 출발하는 산행은 처음에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지만 산 중턱에는 노송이 길을 덮어 쉬어가기 좋다. 넓고 평평한 정상에 서면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 줄기가 한눈에 보인다. 동쪽으로는 팔당댐이 보이고, 남쪽으로 뻗은 능선에는 용마산(龍馬山)이 솟아 있으며, 서쪽으로는 중부고속도로가 힘차게 달린다. 본래 세종대왕의 능을 이곳에 쓰려다 여주로 옮겨가게 되어 닦아 놓은 능터가 지금도 남아 있어 역사를 말해주고 있으며,《서유견문》을 쓴 유길준(兪吉濬)의 묘가 있다.

현충탑(하남)

현충탑(하남)

2.9 Km    20421     2019-09-11

경기 하남시 창우동

*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현충탑

검단산 등산로에 자리잡고 있다. 하남시민들의 뜻과 정성을 모아 2001년 7월 11일에 건립하였다. 전체 높이 20m 규모의 조형물로서, 검단산을 조형화한 삼각의 구도 위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의 거룩한 뜻을 기리는 높이 9m의 대형 청동상을 세웠고, 좌우로는 자유와 평화를 추상화한 조형물을 배치하였다. 청동상은 영령들의 승천과 영생복락을 바라는 마음을 철학적,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며, 탑 좌우 끝부분에 있는 반추상의 군상 조각은 넋을 달래는 진혼곡을 연주하는 이미지를, 삼각 구도 중앙에 있는 4개의 선은 하남시의 발전과 시민의 화합을 상징하였다. 조각은 이일영, 글은 한운사가 썼으며 이병태가 글씨를 새겼다. 매년 새해와 현충일에 이곳에서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린다.

마방집

마방집

3.5 Km    16637     2020-01-23

경기도 하남시 하남대로 674
031-791-0011

옛날 한양을 드나드는 나그네와 말이 쉬어가는 곳이라는 의미의 마방집은 80년동안 내려오는 된장과 간장이 이곳의 역사를 말해준다. 대표메뉴인 정식 상차림에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된장찌개와 10여가지의 나물 등이 제공된다.

춘궁동 한식마을

춘궁동 한식마을

4.1 Km    18133     2019-09-16

경기도 하남시 이성로 57

자연경관과 음식을 즐거운 조우, 춘궁동 한식마을북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면적의 절반이 남한산성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백제의 도읍터 이전에는 이곳에 사람도 많지 않고 농토가 별로 없어 봄이 되면 마을에 기근이 들어 춘궁리(春窮里)라고 하였다. 그러나 백제의 온조왕의 궁이 자리잡게 된 후에 춘궁리(春宮里)라고 불리게 되었다. 동 이름은 춘궁리에서 유래한다.조선 말기에는 광주군 서부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광주군 서부면 춘궁리로 되었다. 1989년 광주군 동부읍·서부면,중부면 상산곡리가 병합하여 하남시로 승격되면서 하남시 춘궁동으로 되었다. 행정동인 이 동은 법정동인 교산동·춘궁동·상사창동·하사창동·항동을 관할하고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궁안·법동·춘장·되촌말·벌말·오야곡· 황토골·시암골·나무길·버구리 등이 있다.

궁안은 백제의 온조왕이 하남에 도읍터를 정하여 이곳에 궁을 건조했다고 하여 궁안 또는 궁촌이라고 불리고 있다. 춘장은 봄이 일찍 오고 늦게 간다 하여 춘장(春長)이라 불렸다. 버구리는 모든 규율을 관장하던 관리가 살았던 곳이라 하여 법동이라고 하는데, 법우리가 버구리로 변했다.중부고속도로와 판교-구리 간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하남분기점이 있다. 대부분이 산지인데다가, 남부지역은 남한산성도립공원에 포함되어 있어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문화재로는 광주 춘궁리 오층석탑(보물 12), 광주 춘궁리 삼층석탑(보물 13), 태평이년명마애약사불좌상(보물 981), 하남 춘궁동 동사지(桐寺址:사적 269), 광주향교(경기문화재자료 13), 하남시 상사창동 연자마(경기문화재자료 82), 남한산 법화사지 및 부도(경기문화재자료 86) 등이 있다.

* 춘궁동 한식마을에 대하여 *

2000년대 사적 제422호로 지정된 화강암으로 쌓은 S자 모양의 포곡형 산성인 이성산성 자락에 위치한 한식마을은 손두부, 오리탕, 한식 등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다.

소나무집

소나무집

4.1 Km    21820     2020-03-27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로 342-13
031-795-6677

잔치국수, 엄나무 누룽지 백숙 전문점으로 1, 2층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1층은 국수, 2층은 엄나무 누룽지 닭백숙을 판매한다.

사충서원

956m    17921     2019-06-11

경기도 하남시 하남대로232번길 89-8

1725년(영조 1) 노론 4대신인 김창집(金昌集)·이이명(李頤命)·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를 제향하기 위하여 노론계 관료와 유생이 추진하고 국가의 보조에 의하여 경기도 과천에 건립되었다. 이들 4대신은 경종 때 왕세제(王世弟 : 후일의 英祖)를 책봉하고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는 문제로 소론의 미움을 사서 1722년(경종 2) 노론계의 역모사건(신임옥사)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였는데, 왕세제가 영조로 즉위한 뒤 노론정권이 수립되면서 신원(伸寃)되고 서원이 건립된 것이다. 건립과 동시에 국가로부터 사액을 받았다. 그러나 1727년의 정미환국(丁未還局)으로 소론정권이 들어서서 신임옥사를 역(逆)으로 번복하고 4대신을 다시 죄인으로 만들자 이 서원도 따라서 철폐되었다. 그 뒤 1740년의 경신처분(庚申處分)으로 4대신이 다시 충신으로 판정되었으나, 한동안 재건되지 않다가 소론세력이 완전히 몰락한 1756년에야 서원을 복설하고 사충서원이라 부르게 하였다.

선법사(하남)

2.8 Km    19802     2019-10-07

경기도 하남시 서하남로588번길 125

* 조용한 사사에서 사색을 즐기다, 선법사 *

선법사(善法寺)는 경기도 하남시에 자리한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다.객산의 초입에 자리한 선법사는 풍경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맴도는 조용하고 그윽한 곳이다. 간혹 약수를 떠러 오는 사람들과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려올 뿐 일체의 번잡함은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선법사에 대해 크게 알려진 것은 없다.다만 선법사에는 태평2년(977)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마애약사여래좌상이 있어 최소한 그 이전부터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그런가하면 이곳은 백제시대의 사찰이 있었던 곳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선법사의 모든 것이 세월에 묻히고 역사는 흩어져 버려 온전한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 있는 작은 약수를 백제 온조왕이 마셨다하여 어용샘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이 역사를 잃은 선법사로서는 작은 위안이다.

*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에 대하여 *

질병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해 준다는 약사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바위 남쪽면에 전체 높이 93㎝로 새겨져 있다. ‘태평 2년 정축 7월 29일’이라는 글을 통해 만든 시기가 고려 경종 2년(977)임을 알 수 있다.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고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 표현에서는 가지런함이 엿보인다. 손바닥을 위로 한 왼손에는 약그릇이 놓여져 있으며, 오른손은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고 손가락을 위로 하고 있다.

몸 뒤편에 있는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계단식으로 새기고 있으며, 주위에는 불꽃무늬가 둘러져 있다. 대좌(臺座)는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모양의 하대석 위에 4개의 짧은 기둥으로 이루어진 중대석이 있으며, 그 위에 5잎의 활짝 핀 연꽃이 불신을 떠받치고 있다.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은 이 불상은 만들어진 연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어 고려 초기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의안대군방석묘역

3.2 Km    17678     2020-02-11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엄미길

향로석 좌우에는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동자석(114)이 있는데, 부처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 앞에 민무늬로 단촐한 모양을 한 망주석(215)과 금관조복형의 문인석(177)이 있다. 문인석 앞 중간에는 새로 만든 장명등이 있고, 문인석 옆으로는 각각 마석(96×32×58), 양석(116×40×85), 호석(119×40×76)이 놓여져 있는데 석물들은 그다지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으며 조선 말기의 형태로 추정된다.

광주향교

3.8 Km    2306     2019-06-11

경기도 하남시 대성로 126-13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주심포(柱心包)계통의 맞배지붕인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東廡)·서무(西廡)·명륜당·서재(西齋)·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수복실(守僕室)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송조2현(宋朝二賢) 및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있으며, 1명의 전교(典校)와 수명의 장의(掌議)가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망월사(경기)

4.4 Km    25609     2020-03-17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680

* 조선시대 탄압받던 불교의 부흥의 시발점, 망월사 *

망월사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에 있다. 남한산성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특히 동문에 가까운 급한 비탈면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광주시에 있어 광주시에서 접근이 훨씬 쉬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은 자가운전이 아니라면 오히려 성남 쪽에서의 접근이 훨씬 용이하다. 산성과 더불어 나라를 지킨 절 망월사(望月寺). 망월사는 남한산성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의 중요한 국가방어시설로서 성 안에는 행궁 이외에 여러 방어시설이 건설되었었다. 병자호란 때는 인조가 이곳으로 옮겨와 청나라에 대항하였고, 결국 삼전도라는 치욕을 안게 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남한산성과 이곳에서 있었던 역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남한산성이 스님들에 의해 건설되었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에도 계속 승군이 주둔하였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국가에서는 대단위 토목사업이나 국가적인 건설 사업에 승군의 힘을 빌었었다. 승군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열심히 국가사업에 참여해 임무를 완수했고, 이런 승군을 국가에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초부터 그렇게 탄압하고 억압했던 불교가 다시 세상에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일련의 사건의 한 중심에 망월사가 위치하고 있었다. 남한산성은 국가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많은 역사적 사건을 간직하고 있는 명소들이 산성 안에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남한산성은 사적 이외에 도립공원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그 만큼 다른 곳에 비해 경관이 뛰어나고 자연이 잘 보존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서울을 비롯하여 성남, 하남과 같이 거대한 도시를 끼고 있는 사적으로서, 그리고 도립공원으로서 훌륭한 문화유산과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남한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주위 시민들에게 하나의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유명한 남한산성 안에 위치한 망월사는 경기도 시도기념물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망월사가 자리 잡고 있는 부지는 경사가 심한 지역으로서 사찰을 조성하는데 있어 매우 불리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 망월사가 있는 남한산성 *

남한산성은 1624년(조선 인조 2) 벽암(碧巖) 각성(覺性)이 팔도도총섭이 되어 전국에서 승려를 모아 2년만에 완성한 산성이다. 본래 산성 내에는 옥정사와 망월사 2개의 사찰만 있었으나, 산성 축조에 동원된 승려들의 숙식과 훈련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한흥사와 장경사·천주사·국청사·개원사·남단사·동림사 등 7개의 사찰을 더 지었다.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지은 《가람고(伽藍考)》에는 망월사가 이미 폐사지로 나오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산성 내의 다른 사찰과 함께 의병들의 본거지로 사용되다가 의병 본거지가 탄로나 일제에 의해 모두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 중 망월사와 함께 장경사·국청사·개원사가 복원되었다. 1990년부터 중창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