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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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0m    32855     2023-03-14

충청남도 서천군 서인로 89-16 성경전래지 기념관

* 아름다운 포구와 우리나라 최초 성경 전래지가 있는 마을,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전래지이자 서해안 유일의 해돋이와 해짐이를 볼 수 있는 마량포구는 주변에 마량리 동백나무 숲과 해양박물관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해돋이 축제에는 10만 이상의 인파가 몰려드는 서해안의 정동진이다. 또한 마량포구의 해짐이는 서해 어느 곳에서 본 해짐이보다 아름다우며 화려하다. 마량포구는 매년 해돋이 해짐이 축제, 자연산 광어축제 등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축제 기간에도 20만 이상의 인파가 이곳을 찾아들고 있다.

* 한국 성경 전래와 그 의의 *

1. 영국 함선의 마량진(馬梁鎭) 도래와 기독교적·문화적 의의 영국 함선의 마량진 도래와 성경 전수 : 순조(純祖)실록 권 19 [국사편찬위원회 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제 48권], 순조 16(丙子, 1816년)년 7월 19일 병인(丙寅)조에는 충청수사(忠淸水使) 이재홍(李載弘)이 충청도 마량진 갈곶 밑에 이양선 2척이 표류해 온 일을 다음과 같이 장계로서 보고하고 있다. 1816년 9월 4일과 5일(음 7월18일과 19일), 영국의 함선Alceste호(함장 Murry Maxwell)와 Lyra호(함장 Basil Hall)가 비인현 마량진 앞 갈곶에 도착했다. 이 배는 이 해 영국 정부가 중국파견하는 사신 암허스트(Jeffrey William Pitt Amherst)를 태우고 중국에 도착, 이들 일행을 광동에 내려놓고 대기하는 동안 본국 훈령에 따라 조선의 서해안일대를 탐험하면서 해도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이들 두척의 배가 마량진에 도착했을 때 마량진 첨사 조대복(趙大福)과 비인현감 이승렬(李升烈)이 문정(問情)차 두 배에 승선, 검사하고 몇 건의책과 문서를 받았는데 그 받은 책이 가운데 한 권이 성경이었다. 부연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9월 4일에는조대복과 이승렬이 몇몇 종자를 거느리고 리라호와 알세스트호를 차례로 문정하였고, 그 이튿날에는 새벽부터 어제의 그 조대복과 이승렬이 문정했는데 이날 그들은 선실에서 서가에 가득한 책들과 지구의 천구의 등을 보면서 신기한 태도를 보였다. 이승렬은 아담하게 정리된 서가를 보면서 그 중 책한권을 뽑아 갖기를 원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영백과사전 전질 중의 한 권이어서 주지 못하고 그 대신 다른책 한 권을 주었으며, 이승렬은 그 답례품으로 부채를 건네주었다.

해도 작성을 끝낸 이들이 출항하려 할때 첨사 조대복은 며칠 더 기다리면 조정의 답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리라호가 이미 출발했기 때문에 알세스트의 함장 맥스웰은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쉬워하는 첨사에게 맥스웰은 책 한권을 선물로 남기고 떠났는데, 그것이 성경이었다. 조대복은 아무런 선물도 받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영어성경]을 주려 했을 때 거절했다. 그러나 선실을 떠날 때 맥스웰이 다시 권했더니 사양하지 않고 감사한 표정으로 받았다고 한다. 첨사에게 성경을 준 장면에 관해 영국측 기록에는 “그는 어떠한 선물도 받으려 하지 않았지마는 우리의 친절에 무척 기뻐하고 어느 정도 속이 풀렸다. 우리가 성경을 그에게 주었더니 감사한 모양으로 받아 가지고 퍽 우정적인 작별을 고하였다. (한국최초성경유입기념사업회 발기인대회, 성경유입참고문헌 참고)”고 했다. 그러나 충청수사 이재홍의 장계는 그 표현이 다르다. 두 기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조선측 자료는 충청수사 이재홍이 두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이는 것이 책 세 권에 약간의 문서가 있었다고 한듯하다. 그러나 영국측 자료는 한 권의 성경을 당시 조대복에게 준 것으로 밝히고 있다. 당시 영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조선측이 자기들이 받은 것이 성경인 것을 알지 못했지만 영국측 기록에 의해 이 때 받은 것이 성경임을 알게 되었다.

2. 마량진 성경전수의 역사적인 위치

1816년 9월 마량진에 일시 정박한 영국함선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을 전해주고 갔다. 그 성경의 전수가 한국사 및 한국기독교사에서 갖고 있는 역사적인 위치는 어떤 것일까? 이 점은 한국에 기독교의 전래와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마량진 사건 이전에 조선에 성경이 전래되었을 가능성과 실제로 남겨진 기록의 유무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량진사건 이전에 성경이 조선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한다는 것을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성경이 소개되었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연구나 기록의 발견으로 봐서, 마량진 사건은 기록으로 확인된, 한국 최초의 성경전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최초의 이 성경 전수 사건은 그 뒤에 복음전파의 열매를 맺는 과정으로 연결되어 갔는가 하는 점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최초의 성경전수’에 값하는 영예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며, 다만 단회적인 역사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3. 성경 전수와 한국 기독교의 출발

19세기에 들어서서 몇 차례에 걸쳐 유럽 계통의 개신교 선교사가 한국을 찾았다. 1832년 충남 원산도를 찾은 독일인 칼 귀츨라프 목사와, 1865년과 그 이듬해에 조선에 왔다가 죽임을 당한 영국인 토머스 목사가 그 좋은 예다. 귀츨라프는 1832년 충남 원산도에 상륙하여 조선 조정에 교육을 청하였다가 거절당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한역성경을 주민들에게 나뉘주며 기독교를 전파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감자 심는법과 포도 재배법을 가르쳐 주고, 주기도문을 언문 번역하고 약 1개월만에 마카오로 돌아갔는데 이 때의 항해경험을《Journal of three voyages along the coast of China in 1831, 1832 and 1833》으로 남겼다. 그가 한역성경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는 이미 모리슨이 와서 성경을 한문으로 번역 출판했었기 때문이다. 토머스 목사는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천주교박해 정책이 추진되고 있을 때 두 차례나 한국을 방문, 이 땅에서 피를 흘린 영국 선교사다.

그는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중국 상해로 왔으나 그의 아내 캐럴라인의 죽음과 상해주재선교책임자 무어헤드와의 불화로 런던 선교회를 사임, 잠시 해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뒤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윌리암슨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1865년 9월 13일 한국에 와서 2개월 반 동안 한문 성경을 나뉘주고 복음을 전했으며 그 이듬해 1866년 8월에는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에 승선, 향도 자격으로 평양에 들어왔으나 9월5일 27세의 나이로 대동강가에서 피를 흘렸다. 그는 최후의 순간에 그가 가져온 한문성경을 조선인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가 조선에 왔을 때엔 중국에서는 이미 모리슨 역 성경과 문리 역 성경 등 몇종류의 번역성경이 있었다. 그가 죽음에 앞서 남긴 성경이 그 뒤 선교사의 도래 후에 그 자손들에 의해 선교사 마펫과의 접촉을 가능하게 했다는 전언이 있다.

한국의 개신교사가 시작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1865년 4월 5일 부활 주일에 조선에 입국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등 복음선교사들에 의해서라고 이해하고 있다.

서양의 복음 선교사가 도래하기 전에 성경이 조선어로 먼저 번역되고 번역된 성경이 용감한 한국인 선배 신자들에 의해 한반도 안으로 전래되어 개종의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는것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역사는 먼저 만주 지역을 통해 일어났다. 만주지역과 관련해서는 스코틀랜드 연합 장로교회 소속의 선교사였던 로스 목사와 매킨타이어 목사를 잊을 수 없다. 그 중 로스는 처음부터 만주의 우장·영구로 들어왔고 그 뒤에 봉천으로 옮겨 선교활동을 펴면서 조선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갖고자 동만주의 한만국경지대를 순례하기도 했다. 뒤에 매킨타이어와 합류한 그는 1870년대 중반에 만주에 왔던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등 조선인 청년들을 만나 조선어를 교습받은 한편 조선어성경 번역에 동참시켰다

.이어서 1879년에는 네 사람의 의주청년이 세례를 받게 되었으며, 그 뒤 1882년에는 성경번역과 출판에 참여한 김청송과 서상륜도 로스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8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성경번역 사업은 1882년 3월에는 누가복음서가, 5월에는 요한복음서가, 그 이듬해에는 사도행전이 각기 출판되었다.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최초의 성경이었다. 한국 기독교가 세계 선교사상 유례없는 성장과 발전을 하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된다. 바로 그런 역사에 마량진 성경 전수사건은 비록 묻혀 있어 큰빛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거름이 되고 한알의 밀알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전래지이자 서해안 유일의 해돋이와 해짐이를 볼 수 있는 마량포구는 주변에 마량리 동백나무 숲과 해양박물관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해돋이 축제에는 10만 이상의 인파가 몰려드는 서해안의 정동진이다. 또한 마량포구의 해짐이는 서해 어느 곳에서 본 해짐이보다 아름다우며 화려하다. 마량포구는 매년 해돋이 해짐이 축제, 자연산 광어축제 등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축제 기간에도 20만 이상의 인파가 이곳을 찾아들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사가 시작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1865년 4월 5일 부활 주일에 조선에 입국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등 복음선교사들에 의해서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 복음 선교사가 도래하기 전에 성경이 조선어로 먼저 번역되고 번역된 성경이 용감한 한국인 선배 신자들에 의해 한반도 안으로 전래되어 개종의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는것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역사는 먼저 만주 지역을 통해 일어났다. 만주지역과 관련해서는 스코틀랜드 연합 장로교회 소속의 선교사였던 로스 목사와 매킨타이어 목사를 잊을 수 없다. 그 중 로스는 처음부터 만주의 우장·영구로 들어왔고 그 뒤에 봉천으로 옮겨 선교활동을 펴면서 조선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갖고자 동만주의 한만국경지대를 순례하기도 했다.

뒤에 매킨타이어와 합류한 그는 1870년대 중반에 만주에 왔던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등 조선인 청년들을 만나 조선어를 교습받은 한편 조선어성경 번역에 동참시켰다. 이어서 1879년에는 네 사람의 의주청년이 세례를 받게 되었으며, 그 뒤 1882년에는 성경번역과 출판에 참여한 김청송과 서상륜도 로스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8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성경번역 사업은 1882년 3월에는 누가복음서가, 5월에는 요한복음서가, 그 이듬해에는 사도행전이 각기 출판되었다.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최초의 성경이었다. 한국 기독교가 세계 선교사상 유례없는 성장과 발전을 하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된다. 바로 그런 역사에 마량진 성경 전수사건은 비록 묻혀 있어 큰빛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거름이 되고 한알의 밀알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독대섬

독대섬

10.1 Km    20646     2024-04-24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

독대섬은 보령시 독산해수욕장(홀뫼해수욕장) 남쪽 끝에 위치한 바위 섬으로, 붉게 물들며 떨어지는 낙조로 잘 알려진 곳이다. 독대섬을 중심으로 좌우로 갯벌과 모래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섬이면서도 썰물 때에는 육지와 연결되는 특이한 지형이다. 독대섬의 남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갯벌에는 해산물이 풍부하여 맛조개와 돌게, 골뱅이 등이 있고 독대섬 인근에 서식하는 어종도 풍부해 낚시하기도 좋다. 독대섬 앞바다에는 직언도, 황죽도가 일렬로 가지런히 놓여 있다. 평소에는 독대섬까지만 물이 빠지지만, 음력 보름과 그믐 전후로 해서는 직언도까지 물이 빠져 무창포의 석대도와 함께 신비의 바닷길이 연출된다. 독대섬 일부 지역은 군사 지역이라 섬 안까지 출입할 수는 없지만 썰물 때엔 독대섬 해안에서의 산책은 가능하다. 인근에는 펜션, 민박, 캠핑장 등 숙박시설이 밀집해 있다. 독대섬은 국도 21호선, 지방도 606호선에서 지방도 607호선, 죽청로, 열린바다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서해안고속도로 무창포IC가 가깝다. 주변에는 독산해수욕장 외에 무창포해수욕장, 무창포항, 보령죽청리고인돌 등이 있다.

아이사랑캠핑장

아이사랑캠핑장

10.5 Km    0     2023-11-01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사작골길 63-13

아이사랑 캠핑장은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유곡리에 위치한 7000평 규모의 캠핑장이다. 신구 삼거리에서 ‘증산리’ 방면으로 좌회전해 1.5km가량 가다가 ‘사작골길’ 방면으로 접어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캠핑장 입구를 만나게 된다. 캠핑장에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널찍한 마당에 각종 시설들이 자리한 것을 볼 수 있다. 폐교를 개조, 리모델링해 새롭게 재탄생한 약 23,140㎡(약 7,000평)의 부지에는 오토캠핑이 가능한 50여 개 이상의 파쇄석 사이트가 있다. 각 사이트에는 전기시설과 무선인터넷, 소화기가 구비되어 있으며, 남녀 화장실 각 2개소, 남녀 샤워실 각 2개소, 개수대 1개소가 있다. 캠핑장 이름에 걸맞게 어린이를 위한 놀이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다. 야외 놀이시설로는 수영장과 모래놀이장 등이 있고, 실내 놀이시설로는 에어바운스, 놀이방, 탁구장 등이 마련되어 있다. 자체 문화 행사로 핼러윈데이를 운영하고 있다. 캠핑장은 사계절 이용이 가능하다. 캠핑장 주변에는 춘장대 해수욕장, 장안 해수욕장 등이 있어 연계 관광하기 좋다.

독산해수욕장(홀뫼해수욕장)

독산해수욕장(홀뫼해수욕장)

10.6 Km    120596     2023-08-02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열린바다로 585

충남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에 위치한 독산해수욕장은 독대섬 양옆으로 모래사장과 갯벌이 나란히 펼쳐져 있다. 바다에 홀로 있는 섬이라 하여 이름 지어진 독산해수욕장은 홀뫼해수욕장이라고도 불리며, 맑은 해수와 완만한 경사로 해수욕장의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물이 빠져나간 갯벌에는 조개, 맛살, 골뱅이 등이 많아 갯벌 체험의 장으로도 손색이 없으며, 잔잔한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사라지는 낙조는 장관을 연출한다. 모래밭 뒤로는 고운 풀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더욱더 한적하다. 바로 위에는 무창포해수욕장이 있으며, 대천항과도 가깝다. 들어가는 입구를 찾기 힘들어 대천이나 무창포 해수욕장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한적한 편이라 북적이는 인파를 피해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해변에서 약간 떨어진 마을에 민박촌이 형성되어 있다.

다사항

10.7 Km    0     2023-11-03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갯벌체험로944번길 64-12

다사항은 마을 고깃배의 정박지로 어부들이 작업을 끝내고 그물을 손보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공간이기도 하다. 낚시객들은 길게 뻗은 방파제에서 미끼를 던지는데, 노래미를 비롯해 망둑어, 붕장어, 숭어, 우럭 등을 낚을 수 있다. 이곳은 무엇보다 서해에서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모두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덕분에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의 방문이 잦다. 다사항으로부터 북쪽에는 서천 마량포구, 홍원항, 춘장대해수욕장 등 서천의 유명 관광지가 많다.

남당리 행복마을

남당리 행복마을

11.2 Km    23308     2023-11-20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남당길63번길 23-6

서천 비인면에 있는 남당리는 개발되지 않고 자연이 잘 유지된 전원마을로 도시민이 전원적인 농촌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는 팜스테이 마을이다. 그러면서도 도로가 잘 연결되어 있어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도 좋다. 약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편안한 시골 마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마을 안에는 팜스테이 숙소 2동, 세미나실, 조리실, 족구장 등이 있다. 또한 넝쿨 콩 따기, 손두부 만들기, 고추따기 등의 농촌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이 마을에는 신구저수지가 있는데 토종 붕어, 중태기 등 민물고기와 반딧불을 볼 수 있으며, 숲과 어우러져 마치 원시림을 연상케 하는 자연 생태를 체험할 수 있다. 마을 주변에는 월명산, 비인해수욕장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하기 좋다.

무창포카라반파크

무창포카라반파크

12.1 Km    1     2023-11-14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동뒤마을길 49-24

무창포 카라반파크는 충남 보령시 웅천읍에 있다. 보령시청을 기점으로 18㎞가량 떨어졌다. 자동차를 타고 충서로, 무창포로, 열린바다로로 번갈아 달리면 닿는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 안팎이다. 이곳은 무창포 해수욕장과 인접한 곳에 터를 잡았다. 캠핑장에서 해변까지 도보 5분이면 족하다. 이 덕분에 여름철 해수욕과 캠핑을 동시에 만끽하고자 이곳을 찾는 이가 수두룩하다. 캠핑장에는 카라반 9대를 마련했다. 카라반 내부에는 침대, 냉난방기, TV, 냉장고, 취사도구, 조리도구, 화장실, 샤워장 등 일상생활을 해도 지장이 없을 물품과 시설을 갖췄다. 외부 전용 공간에는 바비큐 시설도 완비했다. 사계절 내내 평일 주말 모두 운영하며, 예약은 온라인 실시간으로 할 수 있다. 캠핑장 인근에 무창포 해수욕장, 용두 해수욕장 등 유명 관광지가 있다. 해산물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도 이용할 수 있다.

송석항

12.2 Km    0     2023-10-13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송석리 672

송석항은 가족이나 연인이 들러보기 좋은 곳이다. 아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한적한 편이다.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도 많다. 이곳에서는 항구에 정박 중인 어선과 서해의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특히 해 질 녘 노을에 물든 서해의 풍경이 장관이다. 송석항에서 북쪽 방면으로 올라가면 캠핑을 즐기기 좋은 띠목섬 해변,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하고 주꾸미 낚시로 유명한 홍원항, 서천 대표 관광지 가운데 하나인 춘장대해수욕장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연계 여행에 나서기 수월하다.

무창포 비체팰리스

무창포 비체팰리스

12.3 Km    49339     2023-11-03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열린바다1길 78
041-939-5757

무창포는 용평리조트가 찾아낸 서해안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즈넉한 곳이다. 만리포와 대천, 무창포로 이어지는 서해안에서 그 누구도 쉽게 발견하지 못했던 진주 같은 휴양지이다. 충남 서해안 최고의 리조트인 무창포 비체팰리스는 용평리조트가 처음 개발하는 해양리조트로서의 희소성과 높은 투자가치가 있으며, 모든 객실에서 바다 조망이 가능한 Y자 형태의 설계로 이뤄져 있다. 또한 모든 객실에서 아름다운 무창포의 바다를 볼 수 있다. 객실에는 친환경 마감재로 완성된 고품격 인테리어와 용평리조트만의 30년 노하우로 휴식문화의 차원을 한층 더 높여준다. 다양한 테마풀과 스파 테라피 등 원스톱 휴양이 가능한 부대시설과 컴펙트한 사우나 및 스파 시설과 각종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보령 무창포해수욕장 바닷가에 바로 위치해 현관에 ‘모래를 털고 들어오세요’라고 쓰여 있는 유일한 프라이빗 비치를 지니고 있다.

무창포해수욕장 오토캠핑장

무창포해수욕장 오토캠핑장

12.6 Km    4     2023-04-26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 806-9번지

무창포해수욕장 오토캠핑장은 모세의 기적, 신비의 바닷길로 유명한 무창포 해변 바로 앞에 있어 해변을 보며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캠핑장 옆에 어린이용 미니수영장(유료)이 있으며, 족구장, 매점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변 관광지는 무창포해수욕장, 석탄박물관, 청라 냉풍욕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