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군자마을(오천유적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안동 군자마을(오천유적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안동 군자마을(오천유적지)

14.0 Km    36279     2024-03-06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군자리길 29

500~600년 전 광산 김씨 농수 김효로(金孝盧)가 정착하면서 형성된 이 마을은 안동 부사였던 한강 정구 선생이 [오천 한 마을에는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말에서 연유하여 군자 마을이라는 이름이 지어졌으며 안동댐 건설로 현 마을에서 2km 떨어진 지금의 위치인 안동시 와룡면 오천 리에 옛 마을의 가옥과 정자 등을 그대로 옮겨와 조성한 마을로 오천 유적지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전기부터 끊임없이 많은 학자들을 배출해 낸 군자마을은 그 분위기에 걸맞게 매우 단아한 분위기를 풍긴다. 광산 김씨 종중의 종가인 후조당, 수운잡방(需雲雜方)의 저자인 김유의 고택, 탁청정 등 20여 채의 고택 등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오천유적지의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탁청정을 들 수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등재된 탁청정은 1541년(중종 36) 김수(金綬)가 지은 가옥에 딸린 정자로서 개인 정자 중 가장 아름다우며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고 명필 한석봉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와 함께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소장 고문서(보물),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소장 전적(보물), 후조당 유물(경상북도 유형문화재) 등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유물전시관인 숭원각에는 선대 유물, 고문서, 서적 수백 점이 전시되어 있다. 후조당에서는 고택체험-한옥스테이도 운영한다.

탁청정종가

탁청정종가

14.0 Km    18061     2023-09-07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군자리길 33-6

1541년(중종 36) 탁청정 김수가 건립하고 조선 후기에 화재가 나서 중건한 탁청정종가는 가옥에 딸린 정자로 개인 정자 중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된다.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고 명필 한석봉의 현판이 걸려 있다. 김수는 광산김씨 예안 입향조인 농수 김효로의 둘째 아들로 문무를 겸비하였으며, 조리서 『수운잡방』을 저술하였다. 원래는 낙동강에 인접한 곳에 있었으나 안동댐 수몰로 인하여 1974년 현재의 위치인 군자마을 ‘오천리유적지’로 이건되었다. 군자마을은 500~600년 전 광산김씨 농수 김효로가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안동 부사였던 한강 정구 선생이 "오천의 한 마을에는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으며 조선시대 전기부터 끊임 없이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였다. 마을에는 탁청정을 포함한 광산김씨 종중의 종가인 후조당, 수운잡방의 저자인 김유의 고택 등 20여 채의 고택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이와 함께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소장 고문서(보물),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소장 전적(보물), 후조당 유물(경상북도 유형문화재) 등이 있으며 유물 전시관인 숭원각에는 선대 유물, 고문서, 서적 수백 점이 전시되어 있다. 후조당에서는 고택체험-한옥스테이도 운영한다.

기양서당

14.0 Km    1944     2024-02-02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용계로 1698

이 건물은 회헌 류의손(1398~1450)과 기봉 류복기(1555~1617)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곳이다. 처음에는 기봉 선생이 후손들의 수학과 휴식을 위해 1615년에 지은 것이나 선생이 돌아가신 후, 후손들이 1780년에 사우를 세워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냈다고 한다. 건물은 사당과 강당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당인 추원사는 맞배지붕이고 강당인 역락당은 팔작지붕이다. 원래는 임동면 수곡동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그곳이 수몰됨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안동 군자마을

안동 군자마을

14.0 Km    5     2024-02-27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군자리길 29

600년 역사를 지닌 경북 안동시 군자마을에서는 고택 숙박 체험을 운영한다. 군자마을은 조선 초기부터 광산 김씨 예안파가 20여 대에 걸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마을이다.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영화 <관상>의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군자마을’이란 이름은 조선 중기 대사헌을 지낸 한강 정구 선생이 ‘마을에 군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 산기슭을 따라 200~500년 된 국가민속문화재 고택들이 늘어서 있고, 마을 앞으로는 낙동강 줄기가 흐른다. 이 모습은 1970년대 중반 안동댐이 건설되며 수몰될 위기에 처한 군자마을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재조성한 것이다. 숙박 장소로 개방된 공간은 예안파 종택의 별당인 후조당과 후조당 사랑채, 읍청정, 산남정, 규수방, 군자방, 송죽방 등이다. 후조당과 후조당 사랑채, 읍청정, 산남정은 고택으로 화장실이 외부에 있다. 규수방, 군자방, 송죽방은 새로 지은 한옥으로, 숙박객의 편의를 위해 강당과 샤워실,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퇴계 이황이 쓴 현판을 단 후조당은 툇마루에서 내려다본 마을 전경이 특히 인상적이다. 뒤편으로 소나무숲이 우거져 머무는 내내 솔향기가 은은히 풍긴다. 읍청정은 조선 중기 학자인 김부의 선생의 호를 따 지은 정자로 스승인 퇴계 선생이 이름 지었다. 이 외에도 영남 지방의 개인 정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탁청정이 마을 안에 있다. 우아한 팔작지붕 아래 있는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고, 마루에는 퇴계 이황 등 여러 학자의 시판(시를 새겨 넣은 판)이 걸려 있다. 가문 출신들이 남긴 고서와 문집, 교지 등 각종 고문서를 전시한 숭원각은 요청하면 둘러볼 수 있다. 10인 이상 주문 시 1인당 9000원에 반가의 아침상을 맛볼 수 있다. 다도, 한복 만들기, 떡 만들기, 식혜 만들기 등의 체험은 코로나19로 잠정적으로 운영이 중단됐다. 예약 시 요청하면 국악 공연(비용 별도)을 감상할 수 있다.

전주유씨무실종택

전주유씨무실종택

14.0 Km    19443     2023-12-27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용계로 1714-12

전주 유 씨는 고려 후기 완산백 유습(柳濕)을 시조로 하고 있으며, 퇴계 학통으로 학문적 기틀을 마련하였다. 종택의 ‘기도유업’과 ‘월회당’ 현판은 이곳이 예학의 산실임과 충효·숭조·애족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00년 후기 또는 1700년경의 건축이 아닌가 추측되며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임동면 수곡리 691-1번지에서 1988년 현 위치로 이건 하였으며, 1991년 봄에 사랑채 부분이 화재로 인하여 수리되었다. 이건 전의 이 건물은 마을의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아기산을 의지하고 반변천을 바라보며 서북향 하고 있었다. 토석 담장을 두른 대지의 좌측에 편재하여 대문간채, 몸채 등이 보이고 우측마당에는 텃밭 등이 일구어져 있었다. 텃밭 뒤쪽 철문을 열고 뒷동산으로 20여 m 올라가면 담장 없이 3칸 사당이 있었다. 현재의 배치와는 차이가 있다. * 종택의 구조와 배치에 대하여 * 본채는 정면 7칸, 측면 6칸의 민도리 홑처마 팔작지붕집이다. 부속 건물로 솟을대문, 행랑채와 사당이 있다. 정침은 ‘ㅁ’ 자형이지만 전면 좌측의 사랑채가 돌출한 형이다. 중문 간(中門間)의 우측에 갓사랑방 1.5칸이 놓여 있고, 이 갓사랑방에서 우측으로 돌출한 부분의 전면에는 사랑 마당 쪽으로 개방된 3칸에 길쭉한 사랑 대청을 설치하였으며, 전면에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대청 뒷부분에 2칸을 면하여 2통 칸의 큰 사랑방을 배치하였는데, 두 짝 여닫이문과 삼분합 들문을 각 칸에 달아 대청으로부터 출입하도록 하였다. 갓사랑은 아들이 거처하고 큰 사랑은 아버지가 기거하는 공간으로 삼았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크기로 정면 3칸은 대청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청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대청의 왼쪽 어간 앞에는 안방으로 들어가기 쉽게 댓돌을 놓았다. 대청의 왼쪽에는 안방이 있는데 크기는 2칸이며 2개의 출입문이 있다. 안방 뒤쪽에 조그만 광창도 나 있다. 안방 아래에는 2칸 크기의 부엌이 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부엌 아래의 방 2개를 터서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외의 부속 건물로 행랑채는 솟을대문과 연결되어 있는데 정면 6칸, 측면 1칸의 크기이다. 사당은 월회당의 오른쪽에 있는데, 대문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맞은편에 있는 작은 문으로 출입한다. 사당의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맞배지붕집이다.

초해고택[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초해고택[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14.0 Km    0     2023-10-24

경상북도 의성군 만취당길 17-12
010-2910-2092

"경상북도 의성군에 위치한 초해고택은 풍산류씨 가문의 약 100년 된 한옥이다. 고택이 자리한 사촌전통마을은 600년 안동김씨와 풍산류씨 집성촌으로 전통유교마을이다. 춘양목으로 지어진 한옥은 그 구조가 아름다운데, 특히 짜임새와 문살, 마루 높이는 한옥 건축 전문가들도 칭찬하며 감탄한다."

의성 사촌리 향나무

의성 사촌리 향나무

14.1 Km    17816     2024-01-26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만취당길 12

의성 사촌리 향나무는 만취당 앞 골목에 있는 향나무로 수령은 약 50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수관(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려 있는 부분)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양을 하고 있고 높이는 8m, 줄기둘레는 2.5m이다. 이 나무는 김사원이 후학들을 강학하기 위하여 만취당을 건립할 때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비록 한 그루의 나무이지만 선조들의 식수관과 자연 애호사상을 본받을 수 있는 현장학습자료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뜰에 심어온 정원수 식재의 흐름과 향나무 생태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의성 만취당

의성 만취당

14.1 Km    18409     2023-05-04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만취당길 17

*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의성 만취당 *

만취당은 조선시대 퇴계 이황의 제자이며 부호군을 지낸 김사원(金士元) 선생이 선조(宣祖) 15년(1582)부터 3년간에 걸쳐 완성하였으며, 자신의 호를 따서 만취당이라 하였다. 그 후 숙종(肅宗) 32년 (1711)부분적인 보수가 있었고, 영조(英祖)3년(1727)에는 동쪽 방(복제-復齊)을 동왕 40년(1764)에는 서쪽 방을 증축함으로써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전체적인 형태는 'T' 자형이고 우물마루와 온돌방이 꾸며져 있으며,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국보)과 함께 가장 오래된 사가(私家)의 목조건물로 꼽힌다. 현판의 글씨는 김사원과 동문인 명필가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썼다.

* 만취당의 구조와 배치 *

만취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이다. 창건 이후 줄곧 김씨 종가의 대청 겸 문중 집회소로 이용하다가 1727년(영조 3) 거실로 사용하기 위해 건물 뒤편 서쪽에 1칸, 동쪽에 2칸의 방을 연결하여 지었다. 평면 형태는 복재와 서소익실이 누각 뒤쪽에 동·서로 붙어 있어 전체적으로 T자형을 이루며, 우물마루와 온돌방이 설치되었다. 누각은 기둥머리에 초익공이 짜여진 5량가구(五樑架構)에 팔작지붕이며, 양쪽 익사(翼舍)는 맞배지붕이다.

춘하원(죽헌고택)

춘하원(죽헌고택)

14.1 Km    3     2022-11-04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죽헌길 24
010-5217-2174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로, 경북에서 입구 “ㅁ”자 형태로는 가장 대표적 문화재이다. 역사적인 정신과 정기가 많이 서려있는 유서 깊은 고택이다.

죽헌고택 [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죽헌고택 [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14.1 Km    4     2023-09-05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죽헌길 24
010-5217-2174

죽헌고택은 안동 봉정사 인근에 자리한 고택으로, 1886년 독립운동가 김가진 선생이 지은 가옥을 1890년 죽헌 이현찬 선생이 인수하여 지금까지 재사(제사를 위해 묘소 옆에 지은 집)로 사용하고 있다. 2인실 죽헌갤러리방, 서재방, 엘리자베스방과 4인실인 죽헌동농방이 있다. 초가 형태의 방앗간에서 디딜방아 체험이 가능하고, 봉정사 가는 길에 있는 ‘퀸 엘리자베스 로드’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간단한 무료 조식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