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Km 2024-09-09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334
화서문은 수원 화성의 서문이다. ‘화성의 서쪽’이란 뜻이지만 서쪽에는 팔달산이 있어 서북쪽에 문을 두었다. 문밖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높다란 서북공심돈을 함께 세웠다. 조선 시대 건축에는 일정한 위계질서가 있다. 같은 성문이지만 장안문과 팔달문은 높은 격식을 갖춘 반면 창룡문과 화서문은 한 단계 격을 낮춘 형태이다. 석축의 규모도 작고, 1층 문루에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졌다. 화서문은 창건 당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18세기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옹성 안 석축에는 공사를 담당한 감독관과 우두머리 석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서울과 개성, 강화도에서 온 석공이 참여했는데 박상길은 축성이 끝난 후 석공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의 상을 받았다. 현판은 화성 축성의 총책임자였던 채제공이 썼으나 원본이 남아 있지 않다. (출처 : 수원문화재단 홈페이지)
2.9Km 2025-01-07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덕영대로 1485
24시간 운영하여 언제든 방문 가능한 감자탕 뼈해장국 전문점이다. 푹 우려낸 육수와 뼈고기의 고소한 맛이 인기이며 해장은 물론 한 끼 식사로 든든한 감자탕 뼈해장국이다. 망포역과 이마트 수원신동점 가운데 위치하며, 7개의 체인점을 형제들끼리 운영하는 곳이다. 1층부터 3층까지 내부도 크고, 넓다.
2.9Km 2024-11-08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동말로 72 (화서동)
화서시장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위치한 전통시장이다. 1980년에 개장한 이후로 40여년의 시간 동안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시장 안에는 1980년 시장 골목을 배경으로 당시 가게들의 모습을 재현한 추억의 길 벽화가 있으며 청과물, 정육, 어패류 등의 다양한 식품과 물품들이 있다.
2.9Km 2025-01-10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덕영대로1484번길 10-25
방죽공원은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도심 공원이다. 여름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물놀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산책로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곳곳의 어린이 놀이시설이 있으며, 팔각정도 있어 주민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다.
2.9Km 2025-03-25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36-54
봉녕사는 수원시 장안구 우만동 광교산 기슭에 자리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광교산 기슭에 자리한 봉녕사는 수원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고려 시대의 불상인 석조 삼존불과 대웅전 앞뜰에 수령 800여 년의 향나무는 봉녕사의 창건과 더불어 역사를 함께한 산 증거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208년에 원각국사가 창건하여 성창사라 하였고, 1400년 경에는 봉덕사로 개칭하여 오다가 조선 예종 원년 1469년 혜각국사가 중수하고 봉녕사라 하였다. 혜각국사는 세조로부터 스승예우를 받았으며 간경도감의 경전언해에 기여한 큰스님이기도 하다. 봉녕사는 1971년 비구니 묘전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부터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요사와 선원을 신축하고 선원을 개원하였으며, 이후 1975년 비구니 묘엄스님을 강사로 승가학원을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1979년에는 묘엄스님이 주지와 학장을 겸임하였으며 승가대학으로 개칭하게 된다. 현재 절에는 선원과 강원, 그리고 율원을 함께 갖춘 비구니의 수련도량으로써 내실을 다지고 있으며, 절이 위치한 곳이 광교산으로 그 뜻에 걸맞게 널리 가르침을 펼쳐 불성을 연마하고 한국불교의 초석이 되기 위한 수학, 정진에 여념이 없는 곳이다.
2.9Km 2024-07-31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조선 태종 때 도호부로 승격된 수원은 한성 4진의 하나였다. 한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인 광주, 강화, 수원, 개성에 진을 설치하여 수도 한양을 보위케 한 것이다. 그 수원 땅을 지키고 있는 화성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역사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또한 다양한 상설 공연을 진행하고, 매년 가을이면 수원 화성문화제를 개최하여 수원 화성을 알리고 있다. 팔달산(143m)을 중심으로 쌓은 화성(사적)은 총길이가 5,700m에 달한다. 화성은 단순한 하나의 ‘성’이 아니다. 역사적 의미와 함께 건축학적으로도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화성의 축성은 정조의 한과 효심에서 비롯됐다. 1762년 영조 38년 윤 5월 21일 사도세자는 당쟁으로 인하여 한여름 뒤주 속에 갇혀 8일 만에 죽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당시 11세였다.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즉위 13년 만에 부친의 고혼을 위로하기 위해 묘를 양주 배봉산(지금의 서울시 전농동)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수원을 자신이 이상으로 꿈꾸는 신도시로 건설하고자 정조 18년 정월부터 20년 9월까지에 걸쳐 성곽을 축성하였다. 화성은 조선 성곽 제도의 최고 완성형이다. 한국성곽 발달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 성은 석성과 토성의 장점만을 살려 축성됐다. 화성 축성에 매달린 선조들은 한국성곽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국과 서양의 축성술을 본뜨기도 했다. 이 성에 관련된 사항은 ‘화성 성역의궤’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화성의 건축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당시 30세였던 다산은 왕실 서고 규장각에 비치된 첨단 서적들을 섭렵하고 중국에서 들여온 『고금도서 집성』 5,000권을 참조해 새로운 성곽을 설계했다. 정약용은 거중기를 고안하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성에는 성문을 비롯, 48개의 시설물이 있었지만 현재 복원된 것을 포함해 41개의 시설물이 남아 있다. 보물 팔달문을 비롯해 팔달산을 둘러싼 시설 가운데 가장 높은 서장대, 화포를 감춰두고 적군에게 총을 쏘도록 축조된 남포루, 선조들의 정취가 가득한 방화수류정 등 200년 전 건물엔 조선의 문화 향기가 가득하다. 화성은 1997년 12월 4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창덕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