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Km 2024-10-31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암로216번길 10-11
062-956-5000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내중심권과 80m 광로로 연결된 지점에 고속도로, 광주공항, 광주역, 송정리역, 고속버스터미널과 5~10분 거리에 교통요지에 자리 잡고 있다. 호텔 주변 50m 이내에 공공기관 및 종합병원, 극장, 아울렛 및 전체적인 금용가가 밀집해 있다. 인근 2km 이내 하남공단, 소촌공단, 평동공단 등이 위치하고 있어 외국 바이어, 엔지니어, 일반 비즈니스맨들의 주 숙소로 활용되고 있다. 호텔 내에는 사우나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주변의 위락시설 및 대형극장 아울렛등이 있어 쇼핑과 비즈니스호텔로써 적절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
7.4Km 2025-10-23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아로 460 (흑석동)
유애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 이신의(1551~1627)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지어졌으며, 삼문 양편에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담한 공간이다. 1754년 이신의의 충절을 기려 호남 유림이 건립했다가 1868년 훼철됐다. 이어 1919년 경장각을 짓고 2000년 사우를 마련해 서원으로 성균관에 등록했다. 유애서원의 경장각에는 서적과 석탄금(거문고), 선조가 쓴 당 오언시를 목판에 새겨 찍은 여덟 폭 병풍(인조의 하사품) 등 유품을 보관했으며, 선무원종공신녹권을 비롯한 130여점의 고문서는 광주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석탄 이신의 이신의는 한성에서 태어나 고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형조판서 이원손이며, 어머니는 정종의 현손이다. 일찍 어버이를 여의고 형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도라산 숲속에 서실을 지어 공부하는데 물이 바위를 굽이쳐 흐르는 것을 보고 여울의 탄을 넣어 호를 석탄(石灘)이라 했다. 서경덕의 문하인 초당 허엽과 행촌 민순을 사사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석탄은 의병 300여명을 결집해 고양에서 창의했다. 고향을 지키려는 이 작은 부대는 왜적이 쳐들어오자 혁혁한 공을 세운다. 1596년 서얼 이몽학의 난이 일어나 고을 수령들이 줄줄이 도망해 여러 현이 함락됐다. 이 와중에 석탄은 천안군수 정호인과 8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이어 괴산·임천 군수, 홍주·해주목사를 거쳐 광주목사를 역임하면서 목민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1617년, 영창대군이 참살당한 이후 광해군은 인목대비를 폐하기 위해 문무백관의 의견을 듣는 수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그 부당함을 지적하는 항론을 올린다. 이 일로 이듬해 2월 함경도 회령으로 유배를 간다. 1623년 광해군의 폭정에 서인 일파가 정변을 일으키니 인조반정이다. 석탄은 5년의 귀양을 마치고 형조참의로 조정에 복귀한다. 광주목사에 이어 형조참판에 오른다. 1627년 정묘호란때 석탄은 노구를 이끌고 인조 호종을 위해 강화도로 향했다가 병을 얻어 77세에 수원의 어느 여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우국일념이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정이다. 고양의 문봉서원, 괴산의 화암서원, 그리고 광주의 유애서원에 제향됐다.
7.4Km 2024-01-05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정공원로60번길 4
약 20여 년 동안 국내에 입국한 수많은 고려인들이 자리 잡은 광주광역시의 고려인 마을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 전통음식이지만 중앙아시아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들, 중앙아시아 음식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우리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들이 어우러져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맛을 느낄 수 있고, 이곳에서 파는 음식들을 통해 먼 곳으로 이주해야 했던 우리 조상들의 역사와 아픔까지도 헤아리게 된다.
7.4Km 2025-05-13
광주광역시 서구 송풍로17번길 15 (풍암동, 수정빌라)
062-384-8808
금당은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중식 전문점이다.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짬뽕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차돌짬뽕이 대표메뉴이며, 간짜장, 금당특밥, 탕수육, 유린기 등이 인기 메뉴이다. 넓은 홀과 개별 룸 시설이 완비되어 있어 각종 단체 모임을 하기 좋으며 개별 룸은 예약으로만 이용이 가능하다. 주차는 불가능하므로 인근 공영주차장 이용 후 매장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7.4Km 2025-07-02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로 218
광주 남구문화예술회관과 남부경찰서 사이 큰 사거리에 위치한 민속촌은 주차장이 넓어, 단체모임을 하기에도 적합하다. 평일은 인원수 관계없이 예약할 수 있고 주말에는 6인 이상 예약할 수 있다. 창문 밖으로 가벼운 분수 물줄기가 시원스레 흘러내려 물소리와 함께 아늑한 분위기에서 고기를 즐길 수 있으며 조명으로 기와집 분위기를 내 외관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정감이 있다. 홀이 넓고 룸이 개별적으로 마련되어 있어 단체로 회식하거나 가족 모임을 하기 좋다. 남구문화예술회관이 근처에 있어 연계 관광하기 수월하다.
7.5Km 2025-01-15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정공원로59번길 10
광주광역시 산정동에 있는 하남꽃게장백반은 가성비 좋은 게장 백반 전문점이다. 꽃게장 백반 단일 메뉴로 인원수에 따라 공깃밥과 반찬이 추가되는 형식이다. 커다란 쟁반 하나에 간장게장, 양념게장, 옛날 소시지, 어리굴젓, 어묵 간장 볶음, 두부조림, 오이무침, 김 등이 9첩 반상이 차려진다. 칼칼하고 진한 국물의 알탕까지 저렴한 가격에 완벽한 식사 한 끼를 할 수 있다. 양념이 짜지 않고 매콤 달콤하여 양념만 밥에 비벼 먹어도 맛있다. 일정 요금을 내면 게장이나 알탕을 추가할 수 있고 양념 꽃게장, 간장게장, 알탕, 어리굴젓은 모두 포장이 가능하다. 전용 주차장이 없기 때문에 주변 골목길에 주차하거나 도보나 대중교통을 추천한다.
7.5Km 2025-09-12
전라남도 장성군 불태3로 138-59
넓고 쾌적한 카페로 알려진 아트리움은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에 있는 디저트 카페다. 넓은 잔디밭 위에 감각적인 건물을 세워 지역 주민들뿐 아니라 광주 지역민들도 드라이브 삼아 즐겨 찾는 곳이다. 잘 꾸며진 실내와 건물 주변의 조경이 카페의 분위기를 살려준다. 대표 메뉴는 크림라떼이고 바닐라라떼, 흑임자라뗴도 크로플과 함께 먹으면 일품이다. 다양한 스무디와 주스, 에이드와 차도 준비돼 있다. 데이트 코스로 주목받는 곳으로 젊은 커플들이 즐겨 찾는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주변에는 고산서원, 진원성, 청계정, 진원박씨제각, 진원리 5층석탑, 꿈엔들 농촌교육농장 등 유적지와 볼거리가 많다.
7.5Km 2025-03-21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금당산 맨발로는 1구간 벽진서원~인공폭포 700m, 2구간 인공폭포~원광대 한방병원 3,400m로 총 3,470m의 마사토 맨발로이다. 마사토 맨발로는 피부를 자극하여 혈액 순환 개선 및 근육이완, 치매 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 금당산 맨발로는 황토를 좋아하는 관광객을 위한 황토탕,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장이 구비되어 있다. 또한 유아숲체험원과 연계한 맨발쉼터가 마련되어 있어 숲내음을 즐기며 맨발 힐링이 가능한 곳이다.
7.5Km 2025-01-02
광주광역시 동구 의재로 130
062-223-5540
무등산국립공원 증심사지구 입구에 위치한 식당이다. 고속도로 진출입로에 근접하고 내·외국인 고객이 많이 방문한다. 내부는 쾌적하고 넓으며, 단체석도 분리되어 있어 회식, 모임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또한 식당 앞 넓은 주차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대표메뉴는 유니짜장이며 그 외에 짬뽕, 볶음밥, 마파두부덮밥 등 다양한 중식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무이다.
7.5Km 2025-09-01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안길 19
조선시대 문신 조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유허비로 광산구 비아동에 위치한 조형어린이공원 내에 있다. 유허비는 선현의 자취를 기념하고자 세운 비를 말한다. 취병조형유허비는 조형의 6대손 조운한이 광주목사로 부임하여 선조인 조형(1606~1679)을 기리기 위하여 조형이 태어난 옛터에 1873년(고종 10)에 세운 비석이다. 비의 형식은 화강석 1매에 비의 지붕과 몸체를 함께 조성하였고 기단은 별개의 돌이다. 특징은 높이보다 너비가 긴 가로형태의 양식인 점이다. 즉 비의 총 높이 95㎝, 너비 120㎝, 두께 28㎝이며 문기는 모두 346자로 음각문이다. 현재 유허비는 원래 있었던 곳에서 택지개발 때문에 북동쪽으로 50여 m 옮겨진 것이다. * 한일관계사의 주요 자료 부상일기의 조형 선생 조형(1606∼1679년)은 조선시대 현종 때의 문신으로 자는 군헌, 호는 취병이며 본관은 풍양이다. 1630년(인조 8년) 명경관에 급제하여 사국에 재임할 때 허목의 사건에 관련되어 부여에 귀양 갔다. 1655년 대사간 겸 통신상사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와 병조참판, 경기도 관찰사, 도승지, 대사헌을 역임하였으나 1675년 장열대비의 복제문제로 인하여 경기도 양주에 추방되었다. 1665년에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와 《부상일기(扶桑日記)》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17세기 한일관계사의 중요 자료이다. 광주 출신으로서 여러 역사서에 기록된 인물도 흔치 않고, 또한 광주시 일원에는 학술적 가치를 가진비는 더욱 없으므로 이 비는 취병선생에 대한 연구와 지방사 연구, 금석학 관련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