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Km 2025-03-19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남악로162번길 80
매일 새로움과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는 롯데아울렛 남악점이다. 패션부터 식당가, 키즈카페, 펫부티크 등 한 번에 여러 가지 쇼핑이 가능한 지역 최대 쇼핑 공간으로 단지 내 롯데마트가 함께 있어 더욱 편리하다. 판매품목 : 해외패션, 아동/유아, 레져/스포츠, 남성패션, 화장품, 패션액세서리, 영패션, 여성패션 등
17.3Km 2024-06-17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장강로 804-6
남도답사 일번지인 전라남도 강진군의 옛 조선시대 전라병영-병마절도사영, 16세기 네덜란드 선원 하멜 일행이 7년간 머물던 병영의 시골마을에서 수집된 생활 민속용품 3,000여 점과 어려웠던 지난 시절들을 추억하며 감상할 수 있는 옛 물건들이 가득한, 전국 최초 사투리 박물관이다. 와보랑께 박물관장(김성우)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이곳은 1997년 병영성 복원 사업이 시작되면서 병영성과 함께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모으기 시작한 60~70년대 생활 민속품들을 공개하게 된 것이 박물관을 개관하게 된 동기라고 한다. 동시에 이곳은 시와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는 시골의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관장이 개발하여 그리고 있는 사투리 그림을 전시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있다. 이곳 박물관에서 출발하는 '와보랑께 해찰길'이 개발되어 있어 걸으며 농촌의 풍경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이미 수십 회 여러 방송과 잡지, 신문에 소개되었으며 인근 15km~20km 안에 있는 강진의 다산초당, 청자도요지, 영랑생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월출산, 수인산을 등반할 수 있다.
17.3Km 2024-12-03
전라남도 무안군 남악4로 53
챠밍 팩토리는 돌잔치 전문점으로 전라남도 무안군 남악리에 있다. 30명부터 50명, 70명까지 보증 인원이 가능하고 인원이 더 많을 경우엔 중앙홀까지 사용할 수 있다. 세련된 한복 외에도, 트렌드에 맞는 드레스, 턱시도 등 다양한 의상도 준비되어 있다. 테이블 사이 간격이 넓어 혼잡하지 않고 여유로우며 유모차를 가지고 온 손님도 편하게 다닐 수 있다. 수유실, 아기침대, 아동용 자동차 등 여러모로 편의성이 잘 갖춰졌으며 기념에 남을 돌잔치 스냅도 챠밍 팩토리에서 준비해준다. 현장에서 바로 조리하는 150여 가지의 음식들도 신선하고 라이브 뷔페 형식이라 그때그때 신선한 재료로 손님을 대접할 수 있는 원스톱 돌잔치 전문점이다.
17.4Km 2025-03-31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남악로162번길 34
남악수변공원은 무안 남악 쪽에 위치한 공원으로 영신강 강변에 자리하였다. 이곳은 길 따라 흐드러진 갈대를 옆에 두고 유유자적 흐르는 강물 따라 걷는 산책로가 아름다운 곳이다. 강물 위에 거위들이 한가로이 유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수변공원 근처 붉은 풍차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또한 쉬어갈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정자와 쉼터가 설치되어 있다. 남악수변공원은 옥암수변공원과 이어져 있어 다양한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17.4Km 2024-11-15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남악로 222
남도소리울림터는 연습실과 사무실, 자료실, 휴게실, 장비 보관실로 이루어졌다. 건물의 외관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최대한 살려 아름다운 한옥의 요소들을 활용한 기와지붕과 나무 기둥의 3층 건물로 전통미와 현대미가 잘 어우러져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바로 옆 한옥 지붕의 도립 도서관과 함께 남악신도시의 문화관광 명소이자 학문과 예술의 중심센터로 자리 잡고 있다. 남도소리울림터는 상설 국악 전문공연장으로 매주 다채로운 공연과 체험행사가 마련되어 있어 인근 지역민들이 가까이 문화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에는 전남도립국악단의 토요 상설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국내외 유명 공연예술과 예술인 대상으로 대관하여 수준 높은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17.4Km 2024-12-05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5
영랑 김윤식 선생은 1903년 1월 16일 이곳에서 김종호의 2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채준으로 불렀으나 윤식으로 개명하였으며 영랑은 아호인데 문단활동시에는 주로 이 아호를 사용했다. 영랑 선생은 1950년 9월 29일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80여편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60여편이 광복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쓴 작품이다.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거한 후 몇 차례 전매 되었으나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관리해 오고 있는데 안채는 일부 변형 되었던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하였고, 문간채는 철거 되었던 것을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에 복원하였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규모 : 생가일원(5,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