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전주전동성당

전주전동성당

62283     2022-05-25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 천주교 최초 순교자의 恨 맺힌 사형터 *

전주 전동성당은 사적으로 조선시대 천주교도의 순교터에 세워졌다. 이 건물은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전라북도 전주시 전동 풍남문(豊南門) 밖에 지어진 성당이다. 조선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이 있었으므로 천주교회사에서 전동은 자연히 순교지의 하나가 됐다. 정조 15년(1791)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순조 원년(1801)에 호남 첫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윤지헌(프란치스코) 등이 이곳에서 박해를 받고 처형됐다. 신유박해(1801년) 때는 이곳에서 유항검(柳恒儉)과 유관검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 김유산, 이우집 등이 교수형을 당했다. 이들의 순교의 뜻을 기리고자 1891년(고종 28)에 프랑스 보두네(Baudenet)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성당 건립에 착수해 1914년에 완공했다. 이 성당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으며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에게 설계를 맡겨 23년 만에 완공한 것이다.

*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 *

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은 겉모습이 서울의 명동성당과 비슷하며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국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처음 이 성당은 천주교 순교지인 풍남문 밖에 세웠으나 후에 현재의 자리에 확장해 지은 것이다.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장방형의 평면에 외부는 벽돌로 쌓았으며 중앙과 좌우에 비잔틴 양식의 종탑이 있다. 내부 천장은 아치형이며 양옆의 통로 위 천장은 십자 형태로 교차된 아치형이다. 성당건축에 사용된 일부 벽돌은 당시 일본 통감부가 전주읍성을 헐면서 나온 흙을 벽돌로 구웠으며 전주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에서 나온 돌로 성당의 주춧돌을 삼았다고 한다.

황산사(원주)

황산사(원주)

18262     2022-05-25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미륵산길 202

* 미륵산에 있는 사찰, 황산사 *

황산사는 신라말 경순왕(927~935년)때 서웅대사와 학사대사가 미륵산 기슭에 세운 절이다. 창건 후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연혁은 거의 전하지 않으며, 폐사로 남아 있던 것을 장용기(張龍基)라는 사람이 화주(시주)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법당과 요사채가 있고, 유물로는 옛터에 있던 석탑 부재를 조립하여 세운 삼층석탑과 부도가 있다. 절 안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두 대사의 부도(사리탑)가 있고, 삼층 석탑이 있다. 미륵산 정상에는 마애미륵불상이 있다.

* 황산사가 있는 미륵산에 대하여 *

원주시 남쪽, 충주시 소태면과 경계를 맞댄 귀래면의 미륵산(689m)은 기암 괴봉과 노송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산이다. 미륵산은 정상에 거대한 미륵불상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석처럼 멋들어진 암봉이 12개나 치솟아 독특한 산세를 나타내며 바위틈을 비집고 붙어있는 노송이 그 절묘함을 더한다. 겨울철에는 노송과 암벽에 피어 있는 설화가 일품이다.

독립문

독립문

35812     2022-05-25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1898년 1월 자주독립의 상징물 건립을 위하여 독립협회의 주관으로 이루어졌으며,기금은 협회가 모금한 돈으로 충당되었다. 중국 사신을 맞이했던 영은문 자리에 한국인 기사 심의석에 의해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여 구축한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높이 14.28m, 넓이 11.48m로 프랑스 개선문을 모방하여 만든 건축물이다. 1979년 성산대로 건설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 독립문은 조선 말기 독립협회의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였지만, 일본이나 외세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기보다 주로 중국으로부터의 자주독립을 강조하는 상징물이었다.

송도마을

송도마을

21028     2022-05-25

부산 서구 암남동

* 바다와 송림이 아름다운 어촌마을, 송도마을 *
아미동의 유래가 된 아미골의 남쪽이란 의미에서 이름 붙여진 암남동은 암남반도 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천마산 남쪽 기슭에서 해변까지의 송도(松島)가 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1913년 무렵 한국에서 처음으로 해수욕장이자 관광지로 개발된 송도는 소형 어선을 이용한 어선어업, 마을어업, 양식어업 등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도심형 어촌으로 사계절 싱싱한 수산물이 생산되며, 배를 이용해 가족단위의 선상낚시를 즐길 수도 있다.
* 서구에 자리한 제1호 해수욕장, 송도 해수욕장 *
해수욕장 오른편에 있는 거북섬에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송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거류민이 송도 유원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수정이라는 휴게소를 설치한 뒤 바다 기슭의 사장을 해수욕장으로 개발하였는데, 이것이 한국에서는 처음 개발된 해수욕장이다. 옛날부터 해수욕장으로 이름을 드높였으나 바닷물이 오염되고 백사장이 줄어들어 한동안 송도 해수욕장은 침체를 겪었다. 하지만 5년 여 간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통해 사계절 즐길 수 있는 해변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권관마을

권관마을

27748     2022-05-25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평택호길 159

평택시 현덕면 권관리는 평택시의 휴식공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평택호 유원지는 1973년 평택과 아산 사이에 아산만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만들어진 평택호 주변에 들어선 유원지이다. 호수 주변에 산책로를 잘 정비해서 호수를 따라 산책을 즐길 수도 있고, 보트장이 들어서 있어 보트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야외자동차 전용극장이 문을 열어 한결 다채로운 유원지가 되어가고 있으며, 평택호 유원지는 인근에 밀집되어 있는 횟집들이 유명하다. 권관마을은 주변이 바다과 호수가 연접해 있고, 서해대교 위에 걸쳐있는 낙조가 새롭게 떠오르는 명소이다.

남망산 조각공원

남망산 조각공원

57636     2022-05-25

경상남도 통영시 남망공원길 29

통영이라는 이름은 수군통제사가 머문 통제영이 있던 자리 라는데서 비롯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 경상, 충청 3도를 통괄하기 위해서 수군통제사라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충무공 이순신이 부임했다. 그는 전남여수에 있던 통제영을 통영시 앞바다에 떠 있는 한산섬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일대를 통영이라 부르게 됐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통제영이 옛 충무시로 옮기면서 옛 충무시 일대까지 통영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한산섬의 제승당이나 통영시의 세병관 같은 유적지는 이 일대가 통제영임을 증명해준다. 1995년 1월시군 통폐합때 통영군은 충무시와 합쳐져서 통영시로 확정되었다.세계 10개국 유명조각가 15명의 작품으로 1997년에 조성된 남망산 조각공원은 5,000여 평의 부지에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개성있는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예술적 자극과 상상력, 넓고 확 트인 공간이 주는 시원함이란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기에 충분하다.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

40652     2022-05-25

강원도 춘천시 금강로62번길 9-1

춘천 중심가인 명동에 닭갈비 전문점이 모여 있는 골목. 춘천닭갈비는 1960년대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를 양념에 재운 후 갈비처럼 숯불에 구워 먹으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닭고기에 양배추, 양파 등 각종 채소를 넣고 철판에 볶아 먹는 형태로 변화했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 대학생이나 군인들이 즐겨 찾았고 이때 닭갈비는 ‘서민갈비’, ‘대학생갈비’라는 애칭을 얻었다. 1970~80년대 춘천 명동 뒷골목에 닭갈비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열면서 닭갈비골목이 형성됐다. 현재 150m 정도의 골목 양쪽으로 닭갈비 가게가 늘어서 있다. 이 골목에서 숯불닭갈비와 철판닭갈비는 물론 또 다른 춘천 향토 음식인 춘천막국수도 맛볼 수 있다. 골목에는 춘천닭갈비의 역사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무한도전> 등 매스컴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주요시설&부대시설]
음식점

별망성지

별망성지

21263     2022-05-25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별망성지(別望城址)는 남양만을 연하여 해안으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을 수 있는 요새지를 형성코자 독립봉의 배면 정상에서 해안선를 따라 양쪽골짜기 사이를 돌로 쌓아 만든 해안산성이다. 평지에는 군영지(軍營地)로 보이는 터가 남아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는 1656년(효종 7년)에 이 곳의 초지진을 강화도로 옮겨 이곳을 1초지, 강화도의 것을 2초지라 하였다. 성 가운데에서는 청자 및 도자기 조각들이 출토되었으며, 능선 끝에는 선사 시대의 패총(조개무덤)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곳은 당나라 사신의 왕래가 있었던 곳으로 우리나라의 영접사(손님을 마중하고 배웅하는 사람)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왕조 문종실록에는 이곳에 수군 만호영이 있었으나 갯벌에 밀려 선박의 출입이 어려워지자 사곶(沙串)으로 영을 옮겼다가 조선문종 때에 단종의 어머니 현덕 왕후의 능인 소릉(昭陵)이 인근 목내동에 있고 바다가 다시 깊어져 선박의 출입이 가능해지자 다시 영을 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후 임진왜란과 6.25동란을 거치는 동안 거의 파괴되어 현재는 인근의 목내산성 군자산성과 같이 이 지역이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결쳐 남양만을 방어하는 서해안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복원하여 높이 1.45m, 길이 225m 규모가 되었다.

죽주산성

25225     2022-05-25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양대로 111-71

태평미륵이 등을 기대고 서 있는 매산리 비봉산에 죽주산성이 있다. 죽주산성은 신라 때 내성을 쌓고, 고려 때 외성을 쌓았다. 언제 쌓았는지 알 수 없는 본성은 1.7㎞이고, 외성 1.5㎞, 내성 270m로 세겹의 석성이 지금도 남아있고 보전 상태가 좋다. 죽주산성은 특히 임진왜란 때 격전지였다. 왜군에게 내주고 말았던 죽주산성을 황진 장군이 기습작전으로 탈환에 성공하자 왜군은 더 이상 용인과 이천을 넘보지 못했다. 포루가 만들어진 산정에 올라서면 안성벌, 이천ㆍ장호원이 한눈에 잡힌다. 충청, 전라, 경상도의 삼남과 서울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군사 전략적인 요새였던 이곳을 아군의 기지로 삼으려는 시도는 나라마다, 전시마다 치열하였다.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산성의 내성 곁에는 몽고군을 물리친 송문주 장군의 전공영각과 재실이 있다. 재실을 지나쳐 내려오면 쉼터가 있다. 죽주산성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보다는 산성을 따라 산책하듯 걸어보는 맛이 일품이다.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와 침엽수들이 길동무를 해주어 상쾌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마곡사[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47484     2022-05-25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마곡사 사적입안(事蹟立案)”의 기록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자장(慈藏)이 창건하였으며, 고려 명종(明宗) 때1172년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수하고, 범일(梵日)이 재건하였으며, 다시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수하고, 순각(淳覺)이 보수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려 ‘영산전(靈山殿)’이라고 사액(賜額)을 한 일이 있다.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의 대사찰이었는데, 현재는 대웅보전(보물)·대광보전(大光寶殿:보물)·영산전(보물)·사천왕문·해탈문(解脫門) 등이 있을 뿐이다. 이 밖에 사보(寺寶)로는 5층 석탑(보물)·범종(梵鐘:지방유형문화재), 괘불(掛佛) 1폭, 목패(木牌), 세조가 타던 연(輦), 청동 향로(지방유형문화재)가 있고, 《감지금니묘볍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제6권(보물) 및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이 있다. 금물이나 은물로 베껴 쓴 필사 불경들이 지금도 여러 점 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려후기 불교문화의 대표적 유산이기도 하다. 이 절과 관련해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일대가 조선조 십승지지, 즉 전란기에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특별한 지역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졌다는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마곡사는 임진왜란의 전란을 피하였으며, 한국전쟁 때도 병화를 입지 않았던 것으로 전한다. * 마곡사의 역사 * 마곡사의 이름은 신라 보철화상이 설법 전도할 때 모인 신도가 삼밭의 삼대 같다고 하여 마곡사라 지은 것이라 한다. 절에서 내려오는 얘기로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2년)에 자장 율사가 창건하여 고려 보조국사가 재건하였다 하나, 그 처음 연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고 전하는 연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선덕여왕 12년은 백제 멸망이전 백제 의자왕 2년에 해당한다. 만일 642년 창건이 사실이라면, 의자왕 2년으로 전해져야 하는데 적대관계의 신라 연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 정보] 마곡사5층석탑(보물) / 마곡사영산전(보물) / 마곡사대웅보전(보물) / 대광보전(보물) /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1(보물) /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6(보물) / 천왕문(문화재자료) / 응진전(문화재자료) / 명부전(문화재자료) / 동제은입향로(문화재자료) / 해탈문(문화재자료) / 동종(문화재자료) / 심검당 및 고방(문화재자료) / 국사당(문화재자료) / 세조대왕가마(문화재자료) / 괘불(문화재자료)

안산

    2022-05-25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봉원동

무악산으로도 불리며, 정상에서는 평안도에서 올라온 봉화를 연결하여 남산으로 보냈던 봉수대가 위치하고 있다. 안산자락길을 통해 안산도시자연공원과 서대문독립공원, 홍제천 연계하여 관광 할 수 있다.

내장사(정읍)

35440     2022-05-25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

아름다운 내장산국립공원의 품안에 안겨 있는내장사는 백제 무왕37년(636년)에 영은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한때는 50여동의 대가람이 들어섰던 때도 있었지만, 정유재란과 6.25때 모두 소실되고 지금의 절은 대부분 그 후에 중건된 것이다. 금산사와 함께 전라북도의 대표적인 절이다. 내장산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가운데에 자리잡아 주변경치가 매우 아름다우며, 특히 가을철 단풍이 들 무렵의 절 주변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백양사, 방장산, 장성호, 담양호 등이 주변에 있고 주요문화재로는 내장사 이조등종이 보존되어 있다.
내장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동종으로 고려 후기 동종에서 보이는 일반적 양식을 갖추고 있다. 내장사가 중건된 후 전라남도 보림사(寶林寺)에서 옮겨온 것이다. 일제 말기에는 놋쇠 공출을 피하여 원적암(圓寂庵)에 감추었고, 한국전쟁 중에는 정읍시내 포교당에 피난시켜 보전을 꾀하였다. 높이 80㎝, 종신길이 60㎝, 구경 50㎝의 소형이나 명문(銘文)이 확실한 조선 후기 범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전북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모양은 마치 김치독을 엎어놓은 것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배부분[鐘腹]과 견대(肩帶), 구연대(口緣帶)도 확연하며, 문양대에도 4개의 유곽(乳廓)을 배치하였다.

* 배부분에 비천상(飛天像) 대신 보살상을 양각 *
종정(鐘頂)에는 네 발로 천판(天板)을 딛고 용틀임하듯 구부린 용으로 용뉴를 만든 것이나 그 옆으로 음관을 낸 것도 격식대로이다. 다만 배부분에 비천상(飛天像) 대신 보살상을 양각한 것이 다를 뿐이다. 견대(肩帶)는 두 줄의 띠로 구분하여, 윗띠에는 당초문(唐草紋)을, 아랫띠에는 윗띠의 돌출 부분을 따라 여의두문(如意頭紋)을 배열하였다. 견대 밑에는 24개의 작은 원 문양을 돌리고, 그 안에 범자(梵字)를 양각하였다.

* 영조4년에 주조된 동종 *
유곽은 각각 당초문을 새긴 사각 띠로 둘러싸고, 그 안에 3단 3열의 종유(鐘乳)가 정연히 배열되어 있다. 각 종유 주위는 둥근 연화문(蓮花文)이 받치고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2구의 보살입상을 배치하고, 그 아래 둥근 모양의 꽃무늬 당좌(撞座)가 2개 있다. 당좌 사이에 "乾隆三十三年戊子十月施主趙漢寶全南長興步林寺鑄成(건륭33년 무자10월 시주조한보 전남장흥보림사주성) 云云"하는 종기(鍾記)가 있다. 조한보가 부친의 복을 빌기 위하여 조성하였다는 내용이다. 건륭 33년은 조선 영조 4년(1768)으로, 이 종이 주조된 해를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