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5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향교길 68
문경향교는 조선 태조 1년(1392) 처음 지은 것으로 보이며,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후 다시 세운 것이다. 뒤로 높아지는 지형에 대지를 3단으로 마련하고 앞쪽에는 교육 공간을, 뒤쪽에는 제사 공간을 배치하였다. 정문격인 외삼문을 통과하여 교육 장소인 명륜당을 지나면 앞면 3칸·옆면 2칸의 대성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소박한데 전체적으로 장식적인 요소가 거의 없는 간결한 모습이다.
2025-08-04
경상북도 김천시 김산향교1길 2-19 (교동)
김산향교는 공자와 여러 유교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 지방민을 대산으로 교육과 교화를 하기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 기관이다. 이곳에는 원래 고산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관아에서 향교를 짓기 위해 그 절을 허물고 향교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진 것을 1634년(인조 12)에 조마면 출신 진사 강설·강여구 부자가 다시 세웠다. 건물은 외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동무, 대성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송조 2형, 동국 18현 등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1895년(고종 32)에 을미사면과 단발령에 분노한 유생들이 1896년(고종 33)에 전국적인 의병 봉기를 일으켰는데, 김산향교는 이때 김산 의병을 일으킨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2024-11-04
경상북도 경산시 향교길 14-19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경산향교는 고려 공민왕 2년(1390) 옥곡동에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여러 차례 다시 세웠는데 조선 숙종 7년(1681) 신교동을 거쳐, 현재의 위치로 이건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향교에 모시던 위패가 위험해지자 향교의 종이었던 강개명이 성암산 동굴로 옮겨 놓아 무사했다고 한다.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앞에 두고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뒤쪽에 둔 전묘후학의 배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2025-08-04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1길 78-27
개령향교는 1473년(성종 4)에 관학산 밑에 처음 지었는데, 광해군(재위 1608~1623) 때 동쪽으로 옮겼다가 1837년(헌종 3)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폐교되어 금산향교에 합쳐졌다가 1946년 복원하였고,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문인 외삼문을 들어서면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그 뒤에 있는 내삼문을 통해 들어서면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배치하였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앞면 4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짠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2025-05-07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교촌3길 13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연기향교의 처음 위치는 연기리 서쪽이었는데 이후 1649년 연기현의 남쪽으로 옮겼다가, 1684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제기고, 전사청, 내삼문, 동협문 등이 있다. 대성전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고, 명륜당은 교생들이 학문을 배우고 토론하던 장소이다. 연기향교에는 지방관의 공적,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도 세워져 있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 1명과 장의 수명이 담당하고 있으며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향교 유생들의 명부와 향교 교육 관련 규정인 절목, 그리고 17세기 연기의 향안과 향약 자료 등이 보존되어 있어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2025-03-16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읍 서촌길 54-11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지도향교는 조선 후기 행정 개편으로 건양 원년(1896) 지도군을 새로 설치하면서 1군 1 향교 원칙에 따라 지은 향교이다. 이후 1947∼1948년 명륜당을 다시 지었고, 1966년 대성전 수리, 1968년 명륜당을 수리하여 지금과 같은 규모를 갖추고 있다. 봉정산의 완만한 경사지를 2단으로 하여 앞쪽에 교육 공간을 두고, 뒤쪽에 제사 공간을 두는 전학 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로,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반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그 외 건물로는 양사재와 내삼문, 외문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2025-03-16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죽청길 94-73
완도향교는 광무 1년(1897)에 향토 유사 김광선이 향교 건립을 추진하여 지었다. 1896년에 완도가 설군 되고, 그해 5월 15일에 군민대회가 열려 향교의 설립과 양사재의 설치가 결의되었다. 군 초창기에는 재정의 곤란으로 착수할 수 없었으나 당시 탁지부와 제도의 도움으로 건설하게 되었다. 1903년에는 유생의 강학을 위한 양사재를 군수의 도움으로 건설하고, 향안을 작성하였다. 1934년 향교 중수, 1942년 대성전과 명륜당, 그리고 1947년 동재를 중수하였다. 건물 배치는 전학후묘 형식을 따르고 있다. 3층 계단식으로 맨 아래에는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 그다음에 학생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맨 위쪽에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은 새로 벌목한 목재를 사용하여 짓고, 동재는 고금에서, 사재는 신지에서, 명륜당은 노화에서 가져온 목재를 사용하여 각각 지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명륜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었다.
2025-03-16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향교길 32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지어진 영광향교는 선조 15년(1582)에 수리되었다.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복원하였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동재·서재 등이 있다. 앞쪽에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사공간을 두고, 뒤쪽에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배움의 공간을 두고 있어, 향교 배치의 일반적 형식인 전묘후학을 따르고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정종 2년(1400)에 불에 탄 서울 문묘를 복원할 때 이 향교의 배치를 참고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제사만 지낸다. (출처 : 국가유산청)
2024-12-10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교촌길 43-11
창평 향교는 조선시대에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설립 연대는 미상이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 뒤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대성전과 명륜당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 송조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받아 교관 1인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소장 전적은 중 [유안], [향중삼규], [존성계속수안], [현후사마선생안]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이곳에서 차량 이동 10분 거리에 창평 슬로시티가 있어 슬로시티 내의 한옥과 남극루를 방문할 수 있다.
2024-06-14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옥과7길 13
1392년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치 않다. 창건 당시 오산면 연화리 부근 황산에 있었으나 1649년 율정으로 옮겼다. 영조 31년(1755) 설산 아래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정조 20년(1796)과 1898년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3칸의 대성전, 5칸의 명륜당, 각 3칸의 동재와 서재, 3칸의 육영재, 3칸의 전사실, 1칸의 장판고, 제기고, 고사, 내삼문, 외삼문, 고직사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4현, 우리 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제를 지낸다. 곡성에는 곡성향교와 옥과향교 이렇게 두 개의 향교가 있다. 옥과향교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장전적으로는 판본 30종 128책, 사본 10종 10책 등이 있다. 전남 과학대학에서 약 150m 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