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8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로37길 39-3
고산서당은 처음에 서재(書齋)로 건립되었다가 서원과 서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이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 교육 기관이자 선현을 제향(祭享)하는 공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곳이다. 건립된 시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과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가 이곳에서 강론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50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고산(孤山)’이라는 이름도 퇴계에게 요청하여 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 서당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강학 공간으로써의 역할을 해오다가 숙종 16년(1690)부터 퇴계와 우복을 배향하는 서원이 되었다. 이후 영조 10년(1734)에는 강당과 동재·서재를 새로 지어 서원으로서의 완전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서원 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다가 고종 16년(1879)에 강당만 재건되면서 고산서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1964년에 강당 건물을 중수하였고, 2020년에는 사당과 삼문, 담장을 세워 옛 서원의 모습을 다시 갖추고, 동고 서사선(東皐 徐思選)을 함께 배향하게 되었으나 2021년 12월 20일에 화재가 일어나 강당이 불에 타고 말았다. 사당 담장 안에 세워져 있는 강학(講學) 유허비(遺墟碑)와 강당 뒤편의 두 그루 정자나무는 이 서당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 행복수성 문화관광)
2025-07-18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길 89 (도봉동)
도봉서원은 조선 전·후기의 가장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조광조와 송시열을 배향(配享,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냄)한 사액서원(賜額書院, 조선시대 국왕으로부터 편액·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 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으로 백사 이항복 등 저명한 시인 묵객들이 시문을 남긴 오늘날 서울 지역 내 가장 대표적인 서원이다. 비록 1871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유적의 대부분이 멸실되었으나 서울 지역 내 다른 서원과 달리 사당의 기단과 옛 사료상의 도봉서원 유적으로 소개된 각석군(刻石群)이 서원 터 앞 계곡에 대부분 원형대로 남아 있어 유적의 경계를 비교적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들 유적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각종 문헌이나 시에서 오랫동안 경치가 아름다운 것으로 손꼽히던 경승지(景勝地)에도 해당하므로 보존가치가 크다. (출처 : 국가유산청)
2025-08-14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향교길 17-3
합천향교는 조선 세종 때에 유학자의 위패를 봉안 및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881년(고종 18)에 수해로 인해 합천군청이 야로면으로 이전되자 향교도 같이 이건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출입문인 영귀루,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 사당인 대성전과 동·서무가 있다. 대성전에는 5성, 10철, 송조 6현, 우리 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배치는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형이다 경내에는 이 고장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목숨을 걸고 향교를 지킨 정씨 부인의 사당이 있으며 명륜당 대청에는 각종 현판들이 걸려있어 향교에 관한 좋은 연구자료가 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2025-03-16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교촌3길 18-4
초계향교는 조선 인조 6년(1628)에 세워졌으며, 1800년대 초반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 밖의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남아있는 건물은 출입문인 풍화루,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 사당인 대성전과 동·서무 등이 있다. 건물의 배치는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2024-04-30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의안로59번길 6
창원 향교의 최초 창건은 조선 전기 태종 때인 것으로 추정되며 1748년(영조 25)에 태을산 아래의 남향으로 바라보이는 곳에 터를 정하고, 부사 이윤덕이 공론을 모아 1749년 정월에 옮겨 세웠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대성전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장 전적 가운데 <조선청금록>·<향리약법>·<계약장정>·<청금록>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2025-03-19
경상남도 진주시 향교로 99-3
진주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며 지방 백성들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기 위해 지은 국립지방교육기관이다.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성종 6년(987) 지금의 의곡사 계곡에 향학당으로 처음 세워진 후 조선 태조 7년(1398) 문묘를 지으면서 향교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명종 13년(1558) 현 위치로 옮겨졌으며, 교관과 교수 등은 성균관으로부터 직접 파견되었다.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타 없어졌다가 여러 차례의 공사를 거치면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동서방향의 급경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명륜당을 비롯한 교육공간이 앞에 있고 대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공간이 뒤에 위치한 전학 후묘의 배치형식을 하고 있다. 또한 대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건물들이 일직선 위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현재 대성전, 동무와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와 서재, 풍화루 그밖에 부속건물이 있다.
2025-03-16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의병로15길 30
의령향교가 세워진 시기는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원래 의령읍 동동에 있던 것을 조선 선조 15년(1582년) 현감 이함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그 후 여러 차례 보수했다. 각 건물들은 급경사지에 세워졌는데 여러 개의 가파른 계단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있다.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가 앞쪽에 자리하고 있고, 사당인 대성전이 뒤쪽에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로 이루어져 있다. 대정선의 좌우 공간에 동·서무를 세울 수 있었음에도 세우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2023-01-09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로21길 41
1701년(숙종 27) 지방유림의 공의로 박맹지(朴孟智)·양관(梁灌)·표연말(表沿沫)·강한(姜漢)·양희(梁喜)·하맹보(河孟寶)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 훼철되었다. 그뒤 후손들이 불망계(不忘契)를 조직, 구천재와 유허비를 세워 헌례(獻禮)를 올려오다가, 1983년 복원하고 양홍주(梁弘澍)를 추가 배향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24-06-19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원교길 46-7
함양향교는 덕곡 조승숙 선생의 명륜당 문기에 의하면 조선 태조의 문묘 창설 당시인 태조 7년(1398)경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된 것을 후에 대성전을 중수하고, 동재, 서재와 문루를 건립하였다. 건물구성은 대성전, 동무,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태극루, 전사제기고 등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건물 배치 형식은 경사지에 일축 선상으로 전학후묘의 직렬형 배치를 하였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축과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축이 꺾여져 있다. 문묘부에는 중국 5성과 우리나라의 18현을 모시고 있다. 함양읍 북쪽 산록 원교 마을 내에 있어 접근이 용이하여 많은 문화유적 탐방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태극루의 현판은 1881년(고종 18)경에 당시 명필가인 박문회가 쓴 것이다.
2024-06-14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향교길 82
통영향교는 1900년 진남군이 고성현에서 분리됨에 따라 이 고장 유림들이 지방민들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1901년 고성향교에서 분리하여 창건한 교육기관이다. 죽림마을의 평지에 세워진 통영향교는 대성전, 동무, 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제기고, 내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앞쪽에는 학교, 뒤쪽에는 문묘를 배치하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며, 대성전과 명륜당을 연결하는 중심축의 연장선상에서 풍화루는 약간 비틀어 배치하였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위시한 오성의 위패를, 동·서 양무에는 우리나라의 18현을 모시고 있다. 명륜당은 삼강오륜과 윤리규범의 덕목을 강의하던 강당이며, 동·서 양재는 학생을 가르치던 교실이었고,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 석전제만 봉행하고 있으며, 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