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송곡서원(서산)

송곡서원(서산)

2025-03-19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무학로 1353-9

서산 정 씨 시조인 정신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정신 보는 원래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나라가 망하자, 고려로 망명한 후 서산에 정착하여 살았다. 숙종 20년(1694)에 세운 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해체되었다가 1910년 유양목 등 유림이 복원하였다. 경내에는 선현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과 기숙사인 동재, 서재, 출입문 등이 있다. 사당은 정신보와 추가로 모신 8분의 유학자(정인경, 유방택, 윤황, 유백유, 유박순, 유윤, 김적, 김위재)를 포함하여 총 9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이 서원은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던 기능은 없어지고, 지금은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세양사

세양사

2025-03-19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칠선로 47

세양사는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는 여산송씨 지산공파 문중 사우로 조선 중기의 문신인 화강 송영귀와 신임 송윤헌을 배향하는 사당이다. 사당의 건축 시기는 1958년으로 상량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1도 주 5량 집 구조이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삼문이며, 3량의 가주 구조를 가진 홑처마 맞배집이다. 사당은 신축 당시의 건축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고 사당 건축물로써의 격식이 잘 나타나고 있다. 사당 전면 하단에 있는 낙육재는 신암 송윤선이 수학하던 곳으로 전해 오고 있으며 현재의 낙육재는 1980년에 지은 건물이다. 주변으로 동절사, 복금저수지, 오덕사, 송정저수지, 부여 청소년 수련원, 서동요 테마파크가 있다.

부산서원

부산서원

2025-03-18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로136번길 11-5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부산서원은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집과 이경여를 추모하기 위해 숙종 45년에 창건한 서원이다. 같은 해에 부산이라고 사액되었으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에 훼철되었다. 그 뒤 군수 정연달을 중심으로 한 지방 유림에 의해 1980년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중앙의 신문과 양쪽 협문으로 된 삼문 등이 있다. 매년 9월 18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유물로는 이경여에게 보내온 효종의 비답을 송시열 글씨로 새긴 부산각서석이 있다. 부산서원은 백마강가의 우뚝 솟은 부산을 뒤에 두고 구릉지에 서원을 배치하였으며 전학 후묘의 건물 배치이다. 이곳에는 부여 동매가 한 그루 심어져 있는데 백강 이강여가 청나라 선양에 억류되었다 귀국할 때 가져와 심었다고 한다. 인근에 자온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군창지, 고란사 유람선이 있어 연계 관광을 할 수 있다.

봉곡서원

봉곡서원

2025-03-16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황화로 290

봉곡서원은 논산시 남부에 위치한 서원이다. 이 서원은 1712년(숙종 38) 현재 논산시에 속한 여산 공촌면 장항리에 창건하였으며,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그 후 1899년 돈암서원 유림의 주도하에 여산향교 유림과 여산부사 윤기진 및 후손의 협력으로 봉곡서원지에 제단을 설치하여 봉곡단소로 운영되다 유림 출연금과 정부 지원으로 1966년에 현 위치에 서원을 건립하였다. 서원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1단의 장방형 기단 위에 주초석을 놓고 원주를 세운 맞배지붕으로 겹처마 건물이다. 1992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논산시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되었다. 봉곡서원은 국도 1호선에서 황화로를 통해 방문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호남고속도로 지선 논산 IC와 논산천안고속도로 연무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육군훈련소, 논산선샤인랜드, 연무안심시장 등이 있다.

동절사

동절사

2025-03-18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내곡리

남면 동절사는 1962년에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내곡리에 있는 사우로 임진왜란 때 수원성에서 왜병과 싸우다 순절하여 병조판서에 증직된 이지시, 이지례 형제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사당은 야산 중턱에 북쪽을 향하여 지어졌다. 입구는 사괴석(벽이나 돌담을 쌓는 데 쓰는 육면체의 돌) 담장으로 둘러 있고 덤벙주춧돌 (둥글넓적한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놓은 주춧돌) 위에 네모기둥을 세워 만든 솟을삼문형의 외삼문이 있다.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된 사우가 나타나는데, 측면 2칸 중 전면 1칸에는 툇마루를, 후면 1칸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2인의 위패를 안치하고 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으나 현재 매우 심하게 변형되었다. 주변 관광 명소는 세양사, 홍산객사, 아홉 살이 관광, 보부상, 홍산동헌이 있다.

동곡서원

동곡서원

2025-03-16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동사리

고려 공민왕 때 회양(淮陽) 부사(府使)를 지낸 조신(趙愼)을 추모·제향 하기 위하여 조선 철종 때 지방 유림의 공론으로 창건하여 위패(位牌)를 모신 서원이다. 조신은 이방원의 어릴 적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박팽년·유성원 등의 학자를 길러냈다. 동곡서원은 조선 철종(재위 1849∼1863) 때 지역 유림들이 지었으나,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30년에 복원하였다. 건물 배치는 ‘ㅁ’자형으로 되어 있는데, 바깥채는 전학당이라 하고 안채는 화수루라고 부른다. 주변 관광 명소는 낭산사, 간곡서원, 칠원서원, 대조사(부여), 부여 가림성이 있다.

도강영당

도강영당

2025-03-18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

부여동헌 옆에 있는 홍가신·허목·채제공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이 건물은 원래 조선말 부여현의 관아 건물이던 것을 1971년 신축하여 이들을 모신 것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영당은 앞면 1칸을 개방하여 참배 공간을 마련하고 뒤쪽은 통 칸으로 3인의 영정을 모셨다. 홍가신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명종 22년 문과에 급제하여 강화부사, 형조참판, 강화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선조 37년에는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청난공신 1등에 책록, 이듬해 영원군에 봉해졌다. 후에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허목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과거를 거치지 않고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까지 벼슬이 이르렀다. 그림, 글씨, 문장에도 능하였으며 특히 전서에 뛰어나 동방 제1인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채제공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35년 과거에 급제한 뒤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영조의 세자 폐위 문제를 죽음을 무릅쓰고 막았는데 이에 따라 영조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 후 병조, 예조, 호조판서 등을 거쳐 영의정, 좌의정으로 행정의 최고 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수원성 건설에도 참여하였으며 경종 내 실록, 영종 실록, 국조보감의 편찬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동강영당 주변으로 부여동헌을 비롯하여 부여관북리유적, 부여객사, 사비도성가상체험관이 있어 연계 방문하기 좋다.

반산서원

2024-12-11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충절로1001번길 28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반산서원은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조박을 주향으로 조견소와 조성복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반산서원의 옛 명칭은 퇴수서원으로, 서원에 배향된 충간공 조성복의 호가 퇴수재였던 것에서 연유한 것이다. 지역의 유림들이 1757년(영조 33) 세도면 동사리에 조성복의 호를 따서 퇴수서원을 세웠다. 그 후 1868년에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57년 다시 세웠다. 이때 조성복의 조부 조현소와 증조부 조박의 위패를 함께 모셨고, 1969년에는 규모를 늘려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조박을 주향 인물로 모셨다. 이처럼 추배과정에서 주향이 바뀌게 된 것은 추배된 인물인 조박은 조성복의 증조이고, 조견소는 조성복의 조가 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서원의 명칭도 주향이 바뀌면서 조성복의 호에서 연유한 퇴수서원이라 할 수 없게 되어, 이건 후 서원의 명칭을 건립한 곳의 지명이었던 반산에서 연유하여 반산서원이라 하게 되었다.

명탄서원

2025-03-14

충청남도 공주시 명탄서원길 48

1490년(성종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명성(李明誠)과 이명덕(李明德)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연기군 금남면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창건과 동시에 ‘명탄(鳴灘)’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731년(영조 7)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으며, 광복 후 1955년 후손들이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8칸의 재실 겸 강당, 6칸의 수호사, 중앙의 신문(神門)과 양옆 협문으로 된 정문 등이 있다. 사우에는 이명성과 이명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재실 겸 강당은 유생들의 회합과 제향시 제관들의 숙소로, 수호사는 제구의 보관 및 관리인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매년 3월 5일과 9월 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7 변(籩) 7(豆)이다. 재산으로는 논 1,800여 평, 대지 1,300여 평 등이 있다.

노강서원(논산)

2025-01-21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길 56-5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노강서원은 1675년(숙종 원년)에 윤황의 학문과 덕을 추모하기 위해 김수항 등이 세운 서원이다. 1682년(숙종 8)에 사액서원으로 승격되면서 윤황 외에도 윤문거를 추가로 모셨고, 1723년에는 윤선거와 윤증을 추가하여 모두 4인의 위패를 모셨다. 노강서원의 구조는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을 남북의 일직선상에 놓고 강당 앞쪽으로 유생들의 거처인 동재·서재를 대칭이 되도록 배치하였다. 강당은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로 현존하는 서원의 강당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노강서원은 창건 이후로 단 한 차례도 옮겨 짓지 않은 상태의 수수하고 검소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17세기 말 서원 건축의 시대적 특징을 오롯이 지녔다고 평가된다. 또한 옛적 질서에 충실한 전학후묘 형식의 건축 양식을 지니고 있어서 기호 지역 서원 건축이 지닌 배치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