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3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원앞길 7
반암서원은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원전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이다. 반암서원은 정종의 별묘(別廟)였다. 처음에 정구는 1777년 정충사(靖忠祠)에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와 함께 모셔져 있었으나 1794년 정충사에서 다른 분을 추향 하게 되어 그 해 9월에 이곳으로 이봉(移封)하면서 반암서원이라 현판(懸板)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서원이 철폐(撤廢)되었으며, 이후 반암서당으로 현판 하였다가 건물이 노후하여 1994년에 확대 개축하였다. 서원에는 강당인 반암서당과 뒤쪽에 사당인 세덕사가 있어 전학 후묘(前學後墓)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사당인 세덕사(世德詞)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 맞배지붕 형식이다. 전면에 반 칸의 툇간을 구성하여 의례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사당으로서는 보기 드문 다포 형식을 보인다. 어칸에는 2구의 간포, 좌우 협칸에는 1구의 간포를 얹었다. 강당인 숭덕재(崇德齋)는 전체 5칸 중 중앙 2칸에 마루를 두고 좌·우로 온돌방을 설치하였다. 무익공(無翼工) 형식의 건물로 3량 구조이나 방 전면에 툇간을 구성하기 위해 중간에 사잇기둥을 놓았다.
2025-03-15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남방길 37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창평리에 있는 문양서원은 1793년(정조 17) 이언을 모시기 위하여 건립되었으며,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72년에 복원되었다.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세력을 형성해 온 흥양 이씨 문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사당인 경현사와 강당, 외삼문인 회진문, 동재 등 총 4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나, 서재의 경우 시멘트로 수리·보수되어 과거의 구조 형식을 알 수 없다. 서원에 배향된 인물인 이언은 1458년(세조 4) 남원진병마절제사와 남원도호부사를 역임하고, 1461년(세조 7) 중추우부사로 전주부윤에 제수되었다. 그 뒤 1464년(세조 10)에는 청백리에 녹선 되었다.
2024-11-01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유학길 334-32
문산서원은 세덕사에서 노수함과 노경필, 노경필 등 경주 안강 노씨를 모시고 있다. 1792년(정조 16) 창건되었으며, 1868년(고종 5) 서원 훼철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이후 1986년 현 위치에 중건되었다. 외삼문인 상지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문산서원 현판을 단 4칸의 이학당이 보인다. 그 양옆으로 각각 역락재와 시습재가 자리 잡고 있으며, 별도로 배향 인물을 모시는 사당인 세덕사가 있다. 마당 한쪽에 문산서원 사적비와 문산서원 기공비가 늘어서 있다. 매년 음력 10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2025-07-10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2길 13
문곡서원은 고려 때의 충신 산화 이견간을 주벽으로 하여 이대와 이군상을 봉향한 서원이다. 1750년(영조 26)에 사림이 건의하여 문곡사로 건립하였고,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문곡서당으로 이어 오다가 1983년에 후손들이 문곡서원으로 복원하였다. 본당과 동재인 근독재, 서재인 존성재, 대문간이 열린 口자형을 취하고 있다. 본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앙 대청 2칸을 중심으로 양측에 1칸 반의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이다. 본당의 좌측 후면의 별도 곽내에 사당인 현덕사가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다포 맞배집 구조이다. 문곡서원의 왼쪽 뒷마당에는 산화 이견간의 신도비가 있다. 이견간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두견시를 잘 지어 산화 선생이라고 불릴 만큼 문장이 뛰어났으며, 또 유학의 도를 좇아 학문을 익히고 바른 성품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2024-11-04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효령로 152-26
무원 서원은 문효공 경재 하연과 정경부인 성주 이씨의 부부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서원이다. 서원은 1630년(인조 8)에 영천 유림에 의해 창건되었으나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지금으로부터 대략 70년쯤 전에 복원하였다. 전면에 강당이 있고 뒤편에 사당이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형태를 가지고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민도리 양식으로 팔작지붕 홑처마 건물이다. 가운데 2칸에 마루를 두고 양 옆에 방을 둔 일반적인 평면 형식이다. 강당과 사당은 별도의 담장을 형성하여 일곽을 이루고 있는데, 강당의 영역 앞에 동재와 서재를 별도의 영역을 따로 구성하여 배치하고 있다. 동·서재 앞에 외삼문이 있다. 동재와 서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우진각 지붕이다. 홑처마에 민도리 양식을 하고 있다. 무원서원은 현존하는 건축물로는 사당인 숙청각과 강당, 동재, 서재, 문간채 등 5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재의 경우 관리자가 거주하기 위하여 편의상 입식 구조로 변경하였다. 무원서원은 사당과 강당 및 동·서재, 내외삼문 등 서원의 격식을 갖춘 서원이나 강당만을 따로 공간 구성한 수법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2024-11-05
경상북도 안동시 옹정골길 56
명호서원은 1790년(정조 14)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이원과 이주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처음에는 청도군 매전면 온막리의 자미산 아래에 있었고 서원명도 명계서원이라 불렀다. 그 후 1837년(헌종 3)에 정상동으로 이전하여 명호서원이라 개 칭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으나, 매년 9월 중정에 설단으로 향사를 올리고 있다.
2024-06-18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국만리길 72
묵계서원은 조선시대 학자 보백당 김계행(1431년~1517)과 응계 옥고(1382∼1436)를 봉향하는 서원으로, 1687년에 창건되었다. 이후 1869년 훼철되었다가 후에 강당과 문루인 읍청루와 진덕문, 동재 건물 등을 복원하였다. 서원 옆에는 후대에 세운 김계행의 신도비와 비각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기와로 된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6칸을 마루로 꾸미고 좌우에 방을 들였다. 묵계서원에서 즐길 수 있는 체험으로는 [꼬마도령의 놀이터 묵계서원]이 있으며, 체험을 통해 전통악기, 서원 의복, 다례 등을 체험할 수 있다.
2024-06-14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2길 54-7
매림서원은 1707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조선시대 의학자인 곽수강과 학자 오선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었으나, 그 뒤 1981년에 복원하여 오늘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매림서원은 크게 사당, 강당,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구에 풍방루를 비롯하여 서원 내에 비각과 육각형의 정자가 배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입구를 들어서면 서당이 있고 서당의 양쪽에 동재·서재가, 뒤쪽에 사당이 위치한다. 사당인 숭경사는 강당의 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 건물이다.
2024-06-19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남천로 780-15
동산서당은 고려 후기 문신 정연을 추모하기 위해 1814년에 동산사로 처음 건립되었다.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1938년 후손들에 의해 현재의 위치로 이건 및 동산서당으로 재건되었다. 1988년 사당인 상례사가 건립되었다. 동산서당의 중심 건물은 서당과 사당인 상례사이다. 사주문을 지나면 서당이 동향하여 위치해 있다. 서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기와 건물이다. 시멘트 몰탈로 마감된 낮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전면에만 둥근기둥을 사용하였다. 평면은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2칸의 온돌방을 두고 우측에는 1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건물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설치하고, 나머지 3면에는 쪽마루를 둘렀다. 가구 형식은 종량 위에 키가 큰 마룻대공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 한 5량가이다.
2024-05-23
경상북도 구미시 수출대로 327-13
조선 인조 때의 학자 여헌 장현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낙동강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장현광은 인조 때 의정부 우참찬을 역임한 문관으로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를 모아 전장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동락서원이란 동방의 이락이라는 뜻으로 이락이 주자학의 상징인 것처럼, 동락서원이 조선 성리학의 근원이자 상징이 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선생이 서거하자 효종 6년(1655) 장현광 선생의 제자들이 선생이 학문을 가르쳤던 부지암정사에 묘우를 지어 서원 체제를 갖추고 위판을 봉안해 부지암서원이라 개칭했다. 이후 숙종 2년(1676)에 나라에서 동락서원의 현판을 받고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8년(1871)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32년 묘우를 복원하고 1971년 서원 건물 전체를 다시 세워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경내의 건물로는 묘우인 경덕묘, 강당인 중정당, 동재 윤회재, 서재 근집재, 외삼문인 준도문이 있다. 이중 중정당은 중앙에 마루를 두고 양쪽에 방을 두었는데 마루를 회합장소로 썼다고 한다. 준도문 바로 앞에 400여 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는데 장현광 선생이 직접 심은 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