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Km 2024-02-19
경상북도 경주시 보불로 299-5
산드레는 경상북도 경주시 하동에 있다. 고풍스러운 외관과 깔끔함이 돋보이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대표 메뉴는 수제 떡갈비, 튀김, 삼백초 보쌈, 두부강정, 잡채, 전, 샐러드 등이 나오는 우슬초 정식이다. 이 밖에 금은화 정식, 백복령 정식, 하수오 정식 등을 맛볼 수 있다. 단품 요리로는 버섯탕수 등이 있다. 개인 솥 밥에 밥을 퍼내고 물을 부어두면, 누룽지를 후식으로 즐길 수 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가지기 좋다. 프라이빗한 룸도 준비되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인정한 안심식당이다. 예약은 안되고 선착순 입장이다. 남경주IC에서 가깝고, 인근에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다.
10.1Km 2025-01-08
경상북도 경주시 하동분접안길 14-13
경주 보문단지에 위치한 글램핑장이다. 넓고 푸른 잔디정원이 있는 풍경으로 자연 속에서 힐링할 수 있다. 또한 워터슬라이드 수영장, 키즈테마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어 가족, 연인이 함께 즐기기에도 좋다. 가까운 거리에 경주월드, 불국사, 첨성대, 황리단 길 등이 있어 주변 경주 유명 관광도 즐길 수 있다.
10.1Km 2024-11-06
경상북도 경주시 조양동
경주시 조양동에 있는 신라 제32대 효소왕의 능으로 크기는 지름 10.3m, 높이 4.3m, 둘레 57.5m이다. 외부 모습은 흙으로 덮은 원형봉토분이며 묘제는 굴식돌방무덤이다. 밑 둘레에는 40∼50㎝의 자연석을 사용하여 왕릉을 보호하기 위해 둘레돌을 1m 정도 쌓아 올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 둘레돌이 대부분 묻혀 있고 아무런 표식물이 없다. 능묘 제도의 발달 과정으로 보아 선대인 신문왕릉보다는 발달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 왕릉은 매우 초기적인 형식이다. 재위 시기는 신라가 3국을 통일한 후, 안정과 번영으로 향하던 때여서 비록 특기할 만한 치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능이 빈약하다. 기록에 의하면 망덕사 동쪽에서 효소왕의 장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현재의 위치로 보아 효소왕릉임은 분명하다. 왕릉은 1929년 4월, 1969년 11월에 도굴 당했다. 특히 두 번째 도굴로 돌방의 규모가 드러났는데, 길이 3m 너비 150㎝ 높이 150㎝의 크기이고 돌방에 사용된 돌은 화강석이며 돌방 안에 부장된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10.2Km 2025-03-11
경상북도 경주시 조양동
둘레돌의 형식이 크게 발전하였고 능의 네 귀퉁이에는 돌사자를, 그 전방에는 석인(石人)을 배치하였으며, 전방 좌측에는 능비(陵碑)를 세웠다. 이 가운데 둘레돌은 판석(板石)으로 세우고 갑석(甲石)을 덮었는데, 판석은 탱주(撑柱)로 고정시키고 탱주에는 다시 삼각형의 석주를 세워 보강하였다. 둘레돌 앞에는 원각(圓刻)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세웠고, 그 밖으로는 수십 개의 석주를 세웠으며, 석주 사이에는 상·하 2개씩의 관석(貫石)을 끼워 출입을 못 하게 하였다. 봉토 정면에는 전후에 2좌씩, 좌우에 1좌씩의 안상(眼象)이 있는 우수한 석상(石床)을 안치하였다. 능 앞에는 문인석(文人石)·무인석(武人石) 각 2구를 좌우에 세웠으나, 지금은 파편이나 대석(臺石)만 남아 있다. 돌사자는 능 뒤에 좌우로, 능 앞 석인 밖에 좌우로 모두 4구를 배치하였다. 돌사자에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석비가 있었으나, 지금은 이수(首)와 비신(碑身)을 잃고 거대한 귀부(龜趺)만 남았다. 이들 표식물의 조각수법은 매우 건전하고 웅대하다. 십이지상은 수수인신(獸首人身)이며 갑주를 입고 무기를 들고 직립하였다. 석인은 파손이 심하여 세부적인 것은 알 수 없으나 무인석은 갑주의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다. 또한 돌사자의 표현도 자세·안면·체모(體毛) 등이 매우 정제(整齊)되었고 착실한 표현이다. 삼국통일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능묘제로는 십이지를 비롯하여 석인·석수를 갖춘 한국 최초의 예로서 주목된다.
10.4Km 2025-06-26
경상북도 경주시 하동공예촌길 33
신라역사과학관은 민족 과학의 뿌리를 알리고 탐구하기 위해 1988년에 개관한 사설 박물관으로 신라부터 조선 세종 때까지의 과학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3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년의 고도 신라 경주에 남아 있는 수많은 과학 유적들을 외적으로 관람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옛 선조들의 지혜와 과학적 원리를 알 수 있도록 분석하고 고증한 유물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물의 일부만 남아있는 과학 문화재를 복원해 제작 원리를 탐구하고, 유물의 구조와 미를 분석하는 점에서 교육현장의 기능도 하고 있다. 지하1층 전시실은 석굴암 모형을 통해 과학적 원리로 석굴암의 석실을 분석하고, 현재 보존방법의 문제점을 재조명한다. 1층 전시실에서는 [하늘에는 천문도. 땅에는 왕경도]를 주제로 전시가 있으며, 2층 전시실에는 오대산 상원사 동종의 실물 모형과 종의 주조과정, 백제 장인들의 조각 예술과 한국의 고대 인쇄 기술사, 하이테크 문화의 산실인 세종 때의 과학문화재, 한국의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무늬 등을 전시했다.
10.6Km 2025-03-25
경상북도 경주시 하동공예촌길 78
054-772-0130
경주민속공예촌에 위치한 갤러리 가람에서는 다양한 도자기를 만날 수 있다. 다기와 머그잔, 찻잔, 그릇 등 다양한 상품이 있으며 아기자기한 도자기소품들이 인상적이다. 넓은 주차장 또한 구비 되어 있다.
10.6Km 2025-06-26
경상북도 경주시 하동공예촌길 12-5 (하동)
054-746-5279
경주 민속공예촌 내에 위치한 보산토기는 3대째 가업으로 운영되고 있는 전통 도자기 가게이다. 도자기 명장 91-9호인 배용석 명장과 가족이 운영하는 곳으로 신라토기를 직접 제작 및 판매하고 있으며 현재는 국내 유명작가들의 작품들을 함께 전시, 판매하고 있다. 민속공예촌은 불국사 보문단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으며 35년전 공예인들이 모여 조성된 단지로 도자기 공예뿐만 아니라 목공예, 금속공예 등도 볼 수 있다. 각종 공예 체험과 경주의 전통문화를 느낄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10.6Km 2024-05-28
경상북도 경주시 보불로 230
경주민속공예촌은 1986년 신라시대의 공예기술을 보존하고 개발하기 위해 토함산 기슭에 조성한 마을로 전통 민예품을 재현하고 민속공예를 계승, 발전하기 위해 흩어져 있던 경주 지역 장인들을 한곳에 모은 촌락 형태의 민속품협업단지이다. 옛 모습을 지닌 전통 골기와집과 초가 45동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전통가구와 토우를 비롯하여 신라금관, 불상, 칠보 등의 금속공예품, 청자, 백자, 토기 등 도자기공예품 및 목가구, 목불상 등 목공예품과 죽세공예품, 보석공예품 등을 옛날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재래식 생산과정과 장인들의 솜씨를 관광객이 직접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생산품을 전시, 판매하는 현대식 종합전시장도 있다. 공예촌에는 신라역사과학관이 있어 석굴암(국보 24) 석굴의 신비를 밝히는 석굴 모형도와 해부도 및 경주 첨성대(국보 31)를 통하여 관측한 천문도, 서라벌의 옛 모습을 재현하는 왕경도(王京圖)를 제작, 전시하고 석굴암 석굴 모형도를 제작하여 석굴의 과학성을 설명하였다. 보문단지와 불국사를 연계하는 관광코스로 한옥과 어우러진 마을의 풍경이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10.7Km 2025-07-30
경상북도 경주시 보불로 216-8 (하동)
불국사와 멀지 않은 곳에 아버지, 어머니 대의 역사를 담은 근대사 박물관 추억의 달동네가 있다. 추억의 달동네에서는 1970~80년대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지금은 쓰지 않는 낡은 라디오, 그것을 고치는 전파상, 골목 점방, 초등학교 아닌 국민학교 교실까지, 근래 반세기 우리네 생활상을 그대로 옮겨 두었다. 추억의 간식 달고나 체험, 추억의 교복체험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10.8Km 2024-11-11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백운대길 101-388
서남산의 최고봉인 고위산(高位山) 정상 부근에 자리한 천룡사는 신라시대 때 천녀(天女)와 용녀(龍女)라는 두 딸을 가진 부모가 딸들을 위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천룡사는 지리적으로 큰 역할을 하는 사찰이었다. 그것은 이 절이 계림(鷄林) 땅을 흐르는 한 줄기의 객수(客水)와 한 줄기의 역수(逆水)의 근원지에 있으면서 객수와 역수의 조화를 유지시키는 위치에 있고 그 일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리를 아는 당(唐)의 사자(使者) 악붕귀(樂鵬龜)는 “이 절을 파괴하면 나라가 망한다.”라고 했다. 신라 말기에 와서 어느 사이엔가 절이 폐사가가 되고 과연 나라도 망하고 말았다. 이처럼 신라시대에 천룡사는 없어지면 나라가 망한다고까지 존숭되고 석가 만일도량(萬日道場)이 열릴 정도로 중요한 사찰이었다. 천룡사에서 열렸던 석가 만일도량에 관해서는 고려 때 최승로가 지은 글이 남아 있는데, 10,000일이면 거의 30년에 해당하는 셈인데,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이 법회가 열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신라의 대표적 사찰 가운데 하나인 천룡사가 언제 폐허가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고려의 재상 최승로의 아들 최제안이 천룡사를 중건한 이야기가 전하므로 고려 후기까지 법등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지만 그 뒤의 역사는 전혀 전하는 것이 없어 아쉬움을 준다. 현재 유일하게 옛 터에 남아있는 천룡사 삼층석탑은 본래 무너져 있던 것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에서 발굴 조사하여 1991년 9월 25일에 복원하였으며,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폐석탑이었던 이 탑이 복원되는 데는 용성(龍城) 스님의 유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용성 스님은 호국호법도량 천룡사가 흥할 때 국가도 흥했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우리나라 8백 년 국운과 불법 중훙을 위해 천룡사 복원을 제자 동헌 스님에게 부촉했다. 그리고 동헌 스님으로부터 이 부촉을 이어받은 도문 스님은 20여 년에 걸쳐 농가로 변한 천룡사지 6만여 평을 구입하였다. 축대석, 초석, 석당(石幢)의 귀부, 맷돌 등과 함께 폐탑의 부재들이 산재해 대가람이었음을 보여주는 빈터에서 석탑만이라도 먼저 복원하여 옛 모습을 찾기로 하고 동국대 경주캠퍼스 박물관이 주관하여 90년 11월 탑지 주변을 발론하고 91년 8월~9월에 복원 완공했다. 이 탑에는 정영호 박사가 기증한 4과의 세존 진신사리를 순은으로 된 2중 원통형 사리 병과 백자로 된 사리함에 모셔 봉안했고, 호국호법 삼부경과 그 외 경전과 소탑 및 순은 판에 쓴 석탑 복원 연기문을 함께 모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