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Km 2024-11-04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
달성태고정은 조선 성종 10년(1479) 박팽년의 손자인 박일산이 세운 별당건축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불타서 일부만 남았던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지은 것이다. 항상 바르고 올곧게 살자는 뜻에서 일시루라고도 한다. 대청에는 윤두수의 한시를 새긴 현판과 정유재란 후 이곳에 온 명나라 선무관이 남긴 현판 등이 걸려 있다 네모난 모양의 단 위에 서 있으며 앞면 4칸 ·옆면 2칸 크기로, 동쪽 2칸은 대청마루이고, 서쪽 2칸은 방으로 꾸몄다. 대청 앞면은 개방되어 있는데 옆면과 뒷면에는 문을 달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청 앞 기둥 사이에는 2층으로 된 난간을 설치하였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가구나 세부 가공이 정교할 뿐만 아니라 초익공계의 정교한 가구 구성을 갖추었기에, 건축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로 평가되고 있다. 태고정 주변으로 도곡재와 육신사, 충효당이 있으며 사육신기념관을 방문하여 사육신과 박팽년에 대한 전시 및 영상 자료를 관람할 수 있다.
16.0Km 2025-08-25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
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 사육신으로 일컫는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처음 사당을 지을 때는 박팽년(醉琴軒 朴彭年) 선생만을 모셔 제사 지냈으나, 선생의 현손인 박계창이 선생의 기일에 사육신이 사당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로 나머지 5위의 향사도 함께 지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1691년 낙빈사를 지어 이들을 봉안하고 제사 지냈으나, 서원 철폐령으로 낙빈사가 서원과 함께 철거되었으며,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면서 위패를 다시 봉안하게 되었다. 1974년부터 1975년 사이 '충효 위인 유적정화사업'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 육신사로 이름을 붙여 재건하였고, 2003년부터 2011년에 걸쳐 충절문을 세우고 건물을 복원하였다. 이후 향사는 육신사에서 지내고 있다. 현재 육신사에는 숭정당, 숭절당, 사랑채, 외삼문, 내삼문 등의 건물과 달성 태고정과 태고정 안채 등이 남아 있다. 달성 태고정은 1479년 박일산이 태건립한 것으로 종택에 딸린 별당 건물이다.
16.0Km 2024-01-25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로 597
김태희옛날손국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비슬산 자락에 있다. 예스러운 외관과 깔끔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가지기 좋다. 매일 아침 보존제나 면 강화제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밀가루와 콩가루만을 배합해 숙성시킨 반죽으로 직접 면을 뽑아 사용한다. 대표 메뉴는 손칼국수이며, 얼큰 해물칼국수, 칼제비, 들깨칼국수, 묵밥, 잔치국수, 수육 등도 맛볼 수 있다.
16.0Km 2025-07-21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
팔공산은 공산, 부악, 중악, 천왕봉이라고도 부른다. 팔공산이 하나의 맥을 이루므로 이 자체를 팔공산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구분지의 북쪽을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고 있으며, 남동쪽의 초례봉(635.7m)에서 시작하여 환성산(672.1m), 노적봉(886.9m)을 지나 팔공산, 북서부 쪽의 가산을 연결하면서 팔공산맥을 이룬다. 팔공산의 최고봉인 비로봉과 동봉(1,168m), 서봉(1,150m)은 양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한 형상을 보여 주고 있다. 팔공산의 서쪽 자락에 파계봉, 파계재가 있고 파계재의 남쪽 방면에 파계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곳을 팔공산자연공원 파계사지구라 하여 특히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이 선경을 이루고 있다. 팔공산의 자연을 그대로 즐기기에 더욱 알맞은 장소이며 주변에는 파계사를 비롯하여 수태골 등 계곡과 오토캠핑장인 파계야영장이 있다. 파계사는 신라애장왕 때 심지왕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파계란 호칭은 절 주변으로 흐르는 9개의 물줄기를 모은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영조임금의 도포를 비롯한 원통전등 문화재를 여러 점 보존하고 있다. 영조 때 왕실의 원찰이기도 하여 영조와의 설화를 뒷 받침하는 문화재가 발견된 바 있는 곳이기도 하다. 팔공산자연공원 내 파계사지구에서는 팔공산의 진매력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다.
16.1Km 2025-07-21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로 967-28
부인사는 팔공산 남쪽 중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 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부인사에 관한 개창시기나 연혁은 잘 알려지지 않아 부인사의 창건연대와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편이다. 7세기 초 창건으로 전해오고 있는 현 부인사에는 신라 선덕여왕 어진을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보름에 신무동 주민과 사찰 측 및 경주 김 씨 종중에서 선덕여왕 숭모재를 지내는 것에서 부인사의 내력을 짐작할 만하다. 옛 절터가 지금은 포도밭으로 변해 있지만 현 사찰에서 200m 남쪽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고 팔공산 순환도로 남쪽으로 금당좌가 연접하고 있어 옛날 번창기의 사역 범위를 보여주고 있다. 현 부인사는 6.25 동란 때 불탄 것을 1959년 중건한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승시장이 부인사에 개설될 정도로 아주 번창했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도전의 송화암종사우운시서의 기록 중에도 부인사가 팔공산에 위치한 거찰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인사는 고려 초조대장경의 판각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현종 4년(1013) 경부터 조각되기 시작하여 숙종 4년(1099)에 완성된 총 1만여 권의 초조대장경은 처음 여왕사, 개국사 등에 봉안하였다가 그 후 이곳 부인사에 봉안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여러 번의 인간이 있었다. 초조대장경은 해인사 팔만대장경, 즉 재조대장경을 만들기 전에 고려에서 처음 판각했던 대장경을 말하며, 대장경이란 불교의 경장·율장·논장을 모두 합친 것을 이른다. 송 태조의 칙명으로 간행하기 시작한 것이 최초의 한문대장경인 개보칙판인성대장경으로 줄여서 개보대장경이라고 부른다. 1010년(고려 현종 1)에 요나라가 고려를 침입하였을 당시 부처의 힘으로 요나라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고려 조정에서 국왕과 신하들이 대장경 제작을 발원하여 만든 것이 바로 초조대장경이었다. 이때의 초조대장경은 총 6,000여 권으로 개보대장경의 총 5,048권을 능가하였으며, 당시 동아시아 최고의 대장경이었다. 대장경판은 처음에 흥왕사 대장전에 보관하였지만, 거듭되는 북쪽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해 개경 근처에 보관하하다가, 여기 팔공산 부인사에 옮겨 봉안하였다. 하지만 1232년(고려 고종 19)의 몽고 침입으로 경판은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당시 강화도에 있던 고려 조정은 현종대에 부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쳤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대장경을 판각하여 몽고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으로 재조대장경을 판각하였다. 이것이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판이다. 초조대장경판은 몽고의 침입으로 모두 소실되었지만, 그 대장경판으로 인출한 대장경의 일부가 남아 있다. 그 중에 일본 교토의 난젠지에 1,876권, 대마도에 617권이 보관되어 있고, 국내에 약 300권의 초조대장경이 전하고 있다. 국내에 전하는 초조대장경 가운데 24권이 국보로 지정되었고, 11권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이런 자료들을 종합하여도 부인사의 창건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사찰의 위치가 지금의 영천 근방으로 팔공산 동화사와 인접해 있었고, 거찰로서 고려 초조대장경을 보관하여 외침을 극복하려 했던 호국사찰임을 알 수 있다.
16.1Km 2024-08-14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로3길 14
슈츠는 경북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에 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이곳의 대표 메뉴는 아메리카노다. 이 밖에 에스프레소, 라테, 콜드브루, 아몬드크림라테, 뱅쇼 에이드 등을 판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카페는 다부IC 와 가깝고, 주변에 팔공산이 있다.
16.1Km 2025-08-08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길 24
큰 나무집은 궁중약백숙으로 유명한 맛집이다. 30년 넘는 경력을 지닌 주방장이 만드는데 20여 가지 한약재, 찹쌀, 인삼, 대추 및 16가지의 다양한 잡곡을 넣어 요리한다. 게다가 토종닭을 사용하여 육질이 쫄깃하다. 궁중닭백숙 외에 능이백숙, 전복백숙, 스페셜백숙, 오리백숙 등도 맛볼 수 있다. 큰 나무집의 모든 음식은 화학조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오로지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고유의 비법과 정성을 다하여 만든다.
16.1Km 2023-08-23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금호로1길 2-25
054-972-2237
국악 유림 공예는 국악기 생산 경력 30여 년 된 업체로서 제14회 전국 공예품 대회 입선, 제15회 경북 공예품 대회 장려상, 97년 농림부 수산 식품 대축제 공예부분 은상을 받았으며 94년 농림부 농어촌 특산 단지로 지정받아 현재 국악기, 장고, 북, 절북, 단층 북 등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국악 유림 공예에서 민속공예품을 연구, 개발, 생산하고 있다. 정성스러운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야만 북이 울릴 수 있듯이 국악기 생산 경력 30년 노하우로 조상의 얼이 깃든 제품을 연구, 생산하고 있다. 국악 유림 공예의 대부분은 풍물에 사용되는 악기이며 현재 해외 교포들로부터 주문량이 쇄도하는 세계적인 공예사이다.
16.2Km 2025-08-25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달성 삼가헌은 사육신의 한 분인 충정공 박팽년의 자손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는 박씨마을 묘골과 낮은 산 하나를 경계로 하여 자리 잡은 조선시대의 주택이다. 넓은 터에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별당, 연못이 배치되어 있다. 박팽년의 11대 손인 성수가 1769년에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신의 호를 현판으로 걸어 삼가헌이라 이름 지었으며 그 뒤 그의 아들 광석이 1783년 이웃하고 있는 묘골에서 현재 위치로 분가한 다음 1826년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이며, 안채는 사랑채를 거쳐야 출입을 할 수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대략 트인 'ㅁ자형'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안채로 드나드는 중문채와 곳간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서쪽으로 장독대, 곳간채, 안변소가 자리 잡고 있다. 삼가헌의 백미, 별당인 하엽정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으로 1826년 집을 지을 당시 많은 흙을 파낸 자리에 박광석의 손자 규현이 1874년에 연못으로 꾸며 연을 심고 파산서당을 앞으로 옮겨 지으면서 누마루를 한 칸을 늘여 현재의 모습으로 건축하였다. 원래 서당으로 쓰던 곳이라 하엽정이라는 현판과 함께 방앞 처마에는 파산서당 편액을 같이 볼 수 있다. 연못은 앞쪽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이고 가운데 원형 섬을 두고 섬까지는 외나무다리가 있다. 여름철 연못에 연꽃이 피고 주변 배롱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풍광이 삼가헌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전체적으로 조선 중기에 건축된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남긴 주택이다.
16.2Km 2024-11-04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남하새마을길5길 59-13
남호서당은 1786년(정조 10)에 병자호란 때 공을 세운 김시성(1602∼1676)을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남호사라는 사우로 처음 건립되었다. 1855년(철종 6)에 남호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1928년에 남호서당으로 다시 복설 되었다. 서원은 강당인 금포당과 사당인 충렬사로 구성되어 있다. 금포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홑처마 집으로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마루를 두었으며,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구성되어 있다. 충렬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에 홑처마 민도리집이다. 김시성은 본관이 청도로 1636년(인조 14) 무과에 급제하고 이듬해에 익찬으로 임명되었다. 익찬 재임 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시종하여 무사히 심양에 다녀온 공로를 인정받아 귀국 직후인 1646년(인조 24) 황주판관에 임명되고, 이후 용천부사·강계부사·삼도통제사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