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Km 2025-03-14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로 434-1
도선굴은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에 위치한 자연동굴로 도선 대사가 도를 깨우쳤다고 전해지는 장소다. 통일신라의 승려인 도선은 풍수지리설을 처음 도입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도선굴은 고려의 대각국사와 야은 길재 등이 찾아와 은거할 만큼 절경이지만, 오랜 세월 오르는 길이 없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1937년에서야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당시 구미 면장과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통로를 내고 동굴 입구 벽에 기록을 남겨 두었다고 한다. 금오산 도립공원에서 출발해 50분 남짓이면 도선굴에 이를 수 있는데, 오르는 길이 매우 가파르고 미끄러워 주의가 필요하다. 도선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멀리 구미공단과 낙동강, 해평면 냉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굴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28m 높이의 대혜 폭포가 시원스럽게 물줄기를 쏟아낸다.
15.5Km 2025-08-11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로 434-1
영남의 명산 금오산에도 곳곳에 전설과 일화가 얽힌 유적과 절이 있어 사시사철 사람을 불러 모은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이었으며, 중국의 오악 가운데 하나인 숭산에 비겨 손색이 없다 하여 남숭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금오란 이름은 아도화상이 이곳을 지나다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 곧 태양 속에 산다는 금오(金烏)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산이라 하여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금오산 중턱에 구름도 쉬어가는 해운사가 있다. 해운사는 대혈사라는 이름으로 신라말 도선(827∼898)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모든 건물이 소실되어 오랫동안 폐사되었다가 1925년 철하스님이 복원하였는데 이때 절 이름을 해운암이라고 바꾸었다. 1956년 대웅전을 신축하였으며 이후 꾸준히 불사를 진행하면서 다시 절 이름을 해운사로 바꾸었다. 해운사 바로 위에 구미시를 향해 큰 입을 벌리고 있는 도선굴이 있다. 고려 말에 길재(1353∼1419)가 이 절과 절 뒤에 있는 도선굴에 은거하며 도학을 익혔다. 그는 고려가 망하자 고향인 선산군 해평면 금오산으로 숨어들어 학문을 익혔고 훗날 영남학파의 주춧돌이 되었다. 약사암, 마애보살입상 등 금오산에 산재되어 있는 불교유적지들을 비추어 볼 때 그 깊은 불사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주차장에서 해운사까지 걸어서 한 시간 거리이나 지금은 금오산 케이블카가 개통되어 도착 지점이 해운사와 연결되어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15.6Km 2024-01-08
경상북도 구미시 1공단로7길 86-9
동광알탕은 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자리 잡고 있다. 한식 전문점으로 대표 메뉴인 알탕으로 유명하다. 알, 홍합, 두부, 각종 채소 등을 넣은 얼큰한 알탕 외에도 불고기덮밥, 우동, 새우튀김, 복어튀김 등을 맛볼 수 있다. 메밀국수는 여름철에만 맛볼 수 있다. 구미 IC와 가깝고, 인근에 금오산도립공원, 금오랜드가 있어 연계 관광이 수월하다.
15.6Km 2024-12-03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리 1218
김천시 남면 오봉리 금오산 아래에 위치한 오봉저수지는 구미, 대구, 김천 방면으로 통하는 진입도로와 작은 하천을 끼고 이어지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산책로가 있어 누구나 쉽게 저수지를 둘러볼 수 있고, 중앙에 위치한 정자에서 저수지의 시원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인근에 오색테마공원 등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명소와 어울려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15.7Km 2024-11-04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선상서로 1975
상주 오작당은 조선시대 의병장 조정이 지은 가옥으로 원래는 40여 칸이었는데 1781년에 부분적으로 헐어내고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집안에 설치하는 사당인 가묘가 남아 있다. 상주 양진당에서 조금 떨어진 남쪽에 뒷산을 등지고 장천과 주변의 넓은 밀밭들을 향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의 왼쪽에 중간 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중문간채와 사랑채가 있는데, 앞면 7칸, 옆면은 2칸과 2칸이다. 사랑채 뒤로는 앞면 5칸, 옆면 2칸에 정지, 안방, 대청, 건넌방으로 구성된 안채가 있다. 안채 뒤편 좌측 담장 모서리에는 가묘가 있고, 맞은편 담장 밖에는 조목수 불천위 사당이 있다. 안채는 각 방이 앞뒤로 배치된 구조이고, 부엌 위에 각종 집안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고방을 두었다. 네모기둥의 모서리를 깎아 둥글게 다듬은 기둥머리 위에 연꽃봉우리 조각재로 대들보를 받쳤다. 옛날 방식으로 만든 문과 창문 등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진당의 건축적 특징과도 유사한 점이 많아 그 가치가 높다.
15.7Km 2025-01-10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물량리 산65
나각산은 산 전체가 소라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40m로 높지 않은 산이라 3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엔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각각 전망대가 있어 낙동강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고 그 사이로 30m 길이의 출렁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산을 오르다 보면 소원바위, 마귀할멈 굴 등 전설이 담긴 특이한 모양의 자연 조각상을 만날 수 있어 소소한 등산의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며 특히 산의 정기와 강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마귀할멈 굴에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높지 않은데 경치가 좋아 백패커들의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15.7Km 2025-08-12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도립공원 내에 있는 해발 976m의 험준한 금오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금오산성을 처음 쌓은 연대가 문헌상에 있지 않아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고려 후기 왜구들이 내륙 깊숙이까지 빈번히 쳐들어와 인명을 살상하고 노략질을 일삼자, 인근 선산, 인동, 개령, 성주 백성들이 금오산에 피난하여 왜구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쌓고 군병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이곳에 군량과 무기를 비축하는 군창까지 두었다고 한다. 내성은 정상부에 테를 두른 모양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10리나 되며 험한 절벽에는 따로 성벽을 쌓지 않았다. 외성은 계곡을 감싼 둘레가 5리이며 내·외성벽의 길이는 6.3㎞나 된다. 조선 태종 10년(1410)에 국가적 계획으로 성을 크게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때 이 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이 인식되어 선조 28년(1596)에 다시 고쳐 쌓았다. 인조 17년(1639)에 외성을 쌓는 확장 공사가 시행되어 이중의 산성이 되었고, 고종 5년(1868)에 새로 고쳐 쌓았다. 기록에 의하면 성 안에 1개의 계곡과 여러 개의 연못, 우물이 있었으며 대혜창과 내성창이라는 창고, 군기고, 진남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내·외성의 문터, 적이 알 수 없게 만든 작은 성문인 암문의 형체, 건물 터들이 남아있다. 한편 성 안에는 고종 5년(1868) 무렵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금오산성 중 수송 공비가 성을 쓸쓸히 지키고 있다.
15.8Km 2024-08-01
경상북도 김천시 대성지1길 165
우리동네 캠핑장 (허브하우스 금오산 오토캠핑장)은 경북 김천시 아포읍 대성리에 자리 잡고 있다. 김천시청을 기점으로 19km가량 떨어져 있다. 자동차를 타고 영남대로, 오봉로, 우장길을 차례로 달리면 닿는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25분 안팎이다. 파쇄석으로 이루어진 오토캠핑 사이트 21면과 데크로 만든 오토캠핑 사이트 11면이 마련되어 있다. 사이트 면적은 대형 텐트를 설치하기에 무리가 없다. 카라반과 트레일러 출입이 가능하며, 반려동물과 동반 입장이 가능하다. 식품과 장작 등을 파는 매점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트램펄린 등도 갖추었다.
15.9Km 2025-07-02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27-4
조선시대 문신 검간 조정이 1626년 지은 가옥인 상주 양진당은 종도리(용마루 밑 서까래를 거는 도리)기록에 의하면 1807년(순조 7)에 중수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1966년 대홍수 때 사랑채가 훼손되고 안채 23칸만 남았으나 1981년 전면 해체, 복원하였다. 원래 정면 9칸, 측면 7칸의 규모의 ‘ㅁ’자형 맞배지붕 건물인데 지금은 퇴락하여 좌우가 약간 다른 ‘ㄷ’ 자형으로 남아 있다. 특이한 것은 대지가 약간 경사져 있기 때문에 건물 바닥을 지면에서 1미터 이상 높게 마련한 고상형 구조로 이 구조는 남방식 가옥의 특징 중 하나이다. 뜨거운 여름 지열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는 장점과 낙동강과 가까운 저지대에 위치하여 하천이 범람할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상형 구조 중 보기 드물게 구들을 설치한 점은 한겨울 외부의 차가운 공기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한 북방식 구조이다. 이처럼 남방식, 북방식의 특징을 고루 갖추었다는 점에서 조선 중기 주거유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로 볼 수 있고 방이 두 줄로 나열되는 겹집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과 기둥은 굵은 부재를 사용하면서도 모서리를 접어서 투박하게 보이지 않게 하는 기술적 성숙도에서도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건물로 평가된다. 툇마루에 매달려 있는 종은 이곳이 일제 강점기 학교 역할을 했음과, 한국전쟁 후 현 낙동초등학교 분교 역할을 했음을 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