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내마을 농촌관광 코스 [웰촌]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비봉내마을 농촌관광 코스 [웰촌]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비봉내마을 농촌관광 코스 [웰촌]

비봉내마을 농촌관광 코스 [웰촌]

14.9 Km    1035     2023-08-10

치즈만들기, 피자만들기, 다슬기잡기 등 우리 조상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자원이 어우러진 시골마을 체험코스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계곡에서 다슬기 잡는 체험에 아이들은 시간가는 줄 모를 것이다. 다슬기로 만든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조명군총

15.0 Km    0     2024-05-31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조명군총은 조선조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당시 선진리성(당시는 신채라고 함)에 포진하고 있던 왜적을 몰아내기 위해 조명연합군이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가 산화한 희생자의 넋이 잠들고 있는 곳이다.무덤의 형태는 사방 36㎡의 방형분묘(네모반듯한 무덤)로서 흔히 ‘당병무덤’이라 일컬었으며, 속칭 ‘댕강무데기’라고도 한다. 해방 전까지는 무덤 위에 [당병공양탑]이라 쓰인 높이 1m 가량의 표석이 서 있었으나 해방 후에 없어졌다. 그러나 이 무덤만은 약 400년 동안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잘 보존되어 왔으며, 지금은 조·명연합군전몰위령비가 무덤 앞에 세워져 있다.

사천선진리왜성

사천선진리왜성

15.0 Km    29887     2023-10-25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사천만에 있는 선진리성은 삼면이 바다에 접한 곳에 위치하여 전망이 매우 좋으며, 봄철의 벚꽃 관광지로 유명하다. 선진리성은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쌓은 성으로, 왜군들이 성 안에 조성한 700여 그루의 오래된 벚나무들이 꽃을 피우면 장관을 이루는 벚꽃 명소 중 한 곳이다. 선진리성의 면적은 약 90,000㎡로 지금은 약석루가 무너졌으나 토성과 문지, 장대지로 추측되는 곳은 흔적이 남아 있다. 선진리성 입구 돌계단을 올라와 마주하는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야외공연장이 보이고, 성문을 지나면 천수각터와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전적기념비(충령비)와 이곳에서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충무공의 사천해전 승첩기념비를 볼 수 있다. * 면적 : 약 90,000㎡

요라파목장 (구 가나안목장)

15.1 Km    6189     2024-05-31

경상남도 사천시 곤양면 고동포로 267

요라파목장(가나안목장)은 넓게 펼쳐진 초지에 젖소를 방목하며 키우는 청정 목장이며, 목장에서 직접 짠 신선한 원유를 이용하여 치즈를 만들고, 이러한 자연치즈를 이용하여 피자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장이다. 요라파목장에는 송아지 우유주기, 젖소 사료주기 등 다양한 낙농체험이 가능하고, 직접 생산한 우유로 만든 치즈와 요거트 등을 판매하고 있다. 사천시 농촌교육농장으로 지정된 곳이다.

선진마을

선진마을

15.2 Km    19640     2024-04-23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이순신 장군이 처음으로 거북선을 이용하여 왜선 12척을 함몰시킨 유서 깊은 선진리는 성내 1천 그루의 벚꽃이 만개되면 은백색의 물결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매년 4월 초순 벚꽃 축제가 개최되는 지역이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의 국난극복을 위해 파병되어 목숨을 바친 명군 전사자의 묘지가 위치하고 있고, 군총옆에는 이총의 원혼을 환국하여 안장하였다.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

15.3 Km    4307     2023-10-17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호반로 1353

임진왜란의 격전지이자 논개의 혼이 서린 남강은 선사 시대로부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넓고 비옥한 충적지를 만들어주었고, 잉여 생산물과 옥을 교역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청동기시대 대평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풍요롭고 번성한 마을을 이루었다. 400 여동이 넘는 청동기시대 집터와 고도의 토목기술과 노동력이 집약된 최대 44,000㎡ 범위의 방어시설, 그리고 국내 최대 규모의 밭 유적을 발굴하였다.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은 상설전시장과 입체상영관, 야외전시장과 수변 산책로를 갖춘 전문박물관으로 청동기시대 번성한 대평 마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학계 자문을 거쳐 국내에서 최초로 발굴 현장과 생활상을 연계하여 재현한 전시를 제공하며, 약 300여 점의 진품 유물과 다양한 실감형 기술로 청동기시대 대평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바반칼(바지락에반한칼국수)

바반칼(바지락에반한칼국수)

1.5 Km    2     2021-06-24

경상남도 진주시 공단로91번길 15
055-763-2878

개방된 조리장과 깔끔한 실내공간으로 카페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여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다.

연화산도립공원

연화산도립공원

15.5 Km    47312     2024-06-07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연화산1로 544
055-673-4101~7

고성읍에서 서북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 있는 산으로, 산세가 연꽃과 닮았다 하여 연화산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원래 이름은 비슬산이었으나 조선 인조 때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으며, 옥녀봉·선도봉·망선봉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높이가 524m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 등 자연경관이 수려해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다. 1983년 경상남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북쪽 기슭에는 670년(신라 문무왕 10) 의상대사가 창건한 옥천사가 있다. 옥천사라는 이름은 이 절의 대웅전 뒤에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솟는 샘이 있는 데에서 유래하였는데, 이 샘의 물은 위장병과 피부병에 좋다고 한다. 1948년부터 샘 위에 옥천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으며, 연화산에 있는 사찰로는 백련암·청련암·연대암 등이 있다. 연화산인근 유명 특산물로는 송이와 산딸기가 유명하며, 계곡에는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다. 주요 문화재로 옥천사 자방루(경남유형문화재 53), 옥천사 대웅전(경남유형문화재 132), 옥천사 임자명반자(보물 495), 옥천사 대종(경남유형문화재 60) 등이 있다.

계승사(고성)

15.6 Km    17846     2023-05-15

경상남도 고성군 영현면 대법3길 236

태고의 신비로움과 암벽의 경이한 모습을 품고 있는 공룡의 나라 고성 금태산 기슭에 자리한 계승사는 시간의 흔적만큼이나 계승사 바위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1억 년 전 이곳이 공룡들의 땅이라고 증명하듯 초대형 공룡발자국을 남겨두었다. 또 거대 암반 위에는 파도가 밀려가면서 모래사장에 만들어내듯 한 물결무늬 화석이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계승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기암괴석은 거북등 모양을 하고 있는가 하면, 태고의 빗방울이 남긴 자국까지, 그야말로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예술품이 따로 없다. 용두봉에서 발원하여 기암괴석과 절벽 사이로 흐르고 있는 석간수는 그 옛날 매일 부처님의 공양미로 올릴 석 되 두 홉의 공양미가 쏟아졌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로 맑고 청정하다. 금태산 계승사에서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삼남도를 내려왔다가 이 절에서 수행하며 조선 창건의 꿈을 키웠다고도 한다. 그리하여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자신의 수행한 산의 이름에 ‘금’자를 붙여 하명했는데, 바로 고성의 금태산(金太山)과 남해의 금산(錦山)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큰 바위를 머리에 이고 조용히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신라 천년 고찰 계승사는 천연 자연림이 그대로 보존되어 그 호젓함을 더해주고 있다. 번잡한 시가지를 벗어나 조용한 여유를 찾고 싶다면 바위 위 계승사 법당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소리와 풍경소리가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다.

응석사(진주)

응석사(진주)

15.6 Km    19303     2023-11-15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응석로 435

응석사는 신라 24대 진흥왕 15년(554)에 창건한 사찰로 무학, 뇌옹, 지공대사 등이 거쳐갔으며, 상량문에는 조선시대 건융원년(1736년)에 상량했고, 광무 3년(1899)에 중수한 기록이 있다. 일주문과 요사채 등 부속건물을 갖추고 사찰 주변을 정비하여 전통사찰로서의 면모와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많은 당우가 불에 탔으나 그 뒤에 중건되어, 대웅전 등은 조선 시대 후기의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근대에 와서는 구산 수련 스님 등 고승들이 머무르며 선풍을 확립하고, 후학들을 지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