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Km 2023-08-08
유서깊은 사천의 문화유적을 따라가보는 코스다. 다솔사는 신라의 불교가 꽃피던 시절 생긴 고옥한 사찰이라 그 아름답기가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는 최고의 미를 자랑한다. 특히 가을의 절경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구계서원, 사천읍성 등 오래된 옛 문화의 자취가 남아 있는 문화를 따라가다 보면 누가 알겠는가! 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을지...
18.4Km 2025-04-02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용산리
봉명산(408m)은 시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울창한 숲과 수려한 경치, 잘 조성된 산책로와 등산로 덕분에 삼림욕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신라 지증왕때 창건한 다솔사와, 보안암석굴, 이맹굴, 서봉사지 등이 있어 고고학계의 발길이 잦을 뿐 아니라 300여 미터인 봉암산, 천왕산 등을 연결하는 산책로는 등산코스로도 좋으며 정상에 서면 한려해상 국립공원인 다도해를 관망할 수 있어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이 찾고 있다. 봉명산은 지도에는 ‘이명산’, 현지 다솔사의 입구 입석에는 ‘봉명산’이라 되어 있고, 시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상에 오르면 남으로 금오산, 다도해, 서쪽으로 백운산, 서북으로 지리 능선, 웅석봉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행 기점은 봉명산 자락의 다솔사이다. 다솔사는 응진전, 극락전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샘물이 맛이 좋아 진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물을 길러 오기도 한다. 다솔사에서 보안암으로 빠지는 고개를 통과해 20분이면 봉명산 정상이다. 정자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북쪽으로 2m 정도 가면 잘 닦인 산책로가 나타나는데 보안암까지 20분 정도 걸린다. 보안암에서 좌우 능선으로 조그만 산길이 나 있다. 암자에서 뒤쪽 봉우리까지 10분이면 되고 서쪽 이명산을 오르는 깨사리고개까지는 10여분 더가면 된다. 깨사리고개에서 정상까지는 30여분 걸린다. 정상에는 원래 용지라는 못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정상에서 탁 트인 조망은 일품이다. 아래 등산로에 시루떡을 닮은 바위가 셋이 있는데 제일 위의 시루떡 바위에 불상이 새겨져있다. 정상에서 이곳으로 내려오면 서쪽으로 200m 오다 갈림길에서 남쪽의 보다 뚜렷한 산길을 택해야 한다. 마애불에서 곧장 능선 아래로 내려오면 작은 고개가 나타나는데 북쪽으로 뻗은 능선을 20분 오르면 계명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동북으로 20분 내려서면 계산마을이고 이 곳에서 북천역까지는 지척이다.
18.5Km 2025-07-30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이명골길 14-28
이병주문학관은 작가 나림 이병주의 창작저작물과 유품을 상설 전시하는 문학기념관으로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80여 권의 방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의 균형성 있고 총체적인 시각을 느낄 수 있는 문학 현장이다. 이병주문학관은 2,992㎡의 대지에 504.24㎡의 연면적 규모로 세워진 2층 건물로, 전시실과 강당 및 창작실을 갖추고 있으며, 총 연면적은 134,535㎡이다. (출처 : 이병주문학관)
18.6Km 2025-04-02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남명로 137
남명 조식(1501∼1572)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그가 학문을 닦던 곳에 세운 서원이다. 조선 선조 9년(1576)에 지었고, 광해군 원년(1608)에 사액서원이 되어 나라의 공인과 지원을 받았다. 고종(재위 1863∼1907)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30년대에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로는 사당, 신문, 강당, 동재와 서재, 외삼문 등이다. 공부하는 공간이 앞쪽에 있고 사당이 뒷쪽에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서원의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18.6Km 2025-03-19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금곡로 197-24
고려의 문신인 하공진 선생과 조선 전기의 문신인 하윤 선생을 모시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산이 평지와 만나는 끝자락의 완만한 경사지를 이용하여 경인사, 강당, 외삼문을 남북 축 선상에 일렬로 배치하고, 강당 오른쪽 뒤편에 경충문을 배치하였다. 앞은 교육시설인 강당을 뒤에는 제향 시설인 사당을 마련한 전학후묘의 배치 형태를 하였다.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전면에만 퇴를 둔 전퇴집이다. 실의 배열은 전면 반 칸을 뒤로 물려 내루를 마련한 방-방-방으로 배열되어 있다. 외벌대 기단 위에 원형 초석을 놓고 전면에만 원형 기둥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방형 기둥을 사용한 홑처마 팔작 민도리집으로 슬레이트로 지붕을 마감하였다. 경인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측면으로 보아 앞쪽 한 칸은 개방된 툇간을 이루었다.
18.6Km 2025-08-06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호암로701번길
선사시대의 유적인 ‘선돌’을 비롯해 천년의 풍상을 이겨온 석탑이 아직 남아 있는 단속사지, 6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매화나무가 봄이면 꽃을 피우고 혹독한 시집살이를 못 이겨 죽고만 어느 여인의 한이 맺힌 삶이 아직도 고갯마루에 돌무덤으로 서 있는 계곡이 청계계곡이다. 볼거리가 많고 사연이 많은 계곡답게 차로 한달음에 찾아갈 수 있게 잘 개발되어 있으며 청계, 단속 등의 이름에서 벌써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계곡이 얼마나 맑았으면 청계라 했나 싶고, 골짜기가 얼마나 깊으면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는 단속이라 했을까 싶다. 들머리에 해당하는 남사마을부터 고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목화를 처음 재배한 배양마을에서 중산리 방면으로 4㎞ 거리에 있는 남사마을에 들어서면 정감 있는 토담집 앞에 우뚝 솟아있는 솟을대문 그리고 고졸한 멋이 느껴지는 40여 채의 기와집과 동네를 뒤덮고 있는 숲에서 조선시대 양반들의 품위를 느낄 수 있다. 남사마을을 지나 입석마을에 접어들면 산청선비학교(구.입석 초등학교) 교정에는 높이 약 2m의 선사시대 유적인 선돌이 있으며 선돌은 청계계곡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유물인 셈이다. 입석마을을 지나 청계저수지에 다다르면 청계계곡이 시작되며 여름이면 사라진 절의 흔적인 양 바위 틈새를 비집고 서 있는 소나무 그늘을 의지한 텐트들이 들어서는 곳이다. 널따란 계곡과 잔돌로 이루어진 공터가 있고 물도 맑은 데다 깊이도 어른 무릎 정도라 물놀이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18.7Km 2025-07-28
경상남도 사천시 곤양면 향교길 43-31
곤양향교의 창건연대는 명확하게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곤양군이 세종 원년(1419)에 군으로 승격되었음을 상기할 때 향교도 세종시대에 창건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중종(中宗) 25년(1530)에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곤양군조에 의하면 "관원은 군수·훈도 각 1인씩이다."라는 기록을 보아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득강이 곤양군수로 부임한 후 그의 많은 업적 가운데 특히 향학에 힘써 많은 유생)을 길러 내었다 한다. 그 후 명종 1년(1546)에 군수 노진이 부임해 와서 처음으로 정동)에 터를 잡아 문묘를 지었다 하였으므로 이 향교 역시 전학후묘형의 소설위 향교임을 알 수 있다. 현종 4년(1663)에는 군수 박영계가 범동으로 옮겼고, 순조 7년(1807)에는 군수 신오가 부임해 와 다시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대성전, 대성문,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등 9동의 건물을 세웠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대성전 좌우에 동·서 양무가 없고, 대성전의 위치 또한 명륜당 뒤의 오른쪽에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어 두 영역이 완전히 분리된 배치를 보이고 있다.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가 앞에 있고, 사당인 대성전과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해 왔으며, 문묘의 위차위패를 모시는 순서)나 향사 등은 모두 사천향교와 같다.
18.7Km 2024-06-24
경상남도 산청군 둔철산로 680-6
대성산은 고요하고 유서 깊은 정취암을 품은 산이다. 대성산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정취암으로 해서 전설을 두 가지나 갖고 있다. 이웃 정수산에 있는 율곡사를 창건한 원효대사와 함께 종종 도력을 겨뤘다고 한다. 정취암의 의상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음식을 먹으며 수도를 하고 있는데 하루는 점심때에 맞춰 율곡사에서 보리죽을 먹고 있던 원효가 밥을 얻어먹으러 왔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하늘에서 음식이 내려오지 않는지라 원효는 돌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원효가 돌아가자 선녀가 음식을 가지고 내려오는지라 의상이 까닭을 물으니 원효를 호위하는 여덟 신장이 길을 막아 내려오지 못했다고 하자 의상은 깨달은 바가 있어 이후부터 음식을 사양했다고 한다. 원효와 의상의 관계를 상징하는 말로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같은 길을 걷는 도반끼리의 우정을 느낄 수 있다. 또 하나는 고려말에 내한(內翰)이라는 벼슬을 한 문가학이 등과하기 전에 정취암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정월 초하루가 되자 스님들이 모두 피신을 가는 것이었다. 가학이 이유를 물은 즉 설날 밤이 되면 요물이 나타나 나이 어린 상좌를 잡아간다는 것이다. 가학은 피하기보다 술과 안주를 마련하고 요물을 기다리니 이윽고 여인이 나타나는지라 술을 먹여 잡고 보니 늙은 여우였다. 여우는 잡힘을 알고 둔갑술의 비법이 적힌 책을 주는 조건으로 풀려났는데 도망가면서 몸을 완전히 감추는 부분을 가져가 버렸다고 한다. 가학은 그 후 벼슬길에 나아갔다가 역모를 꾀하다 적발되자 몸을 감추지 못해 잡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대성산 깊숙이 자리한 지리적 환경과 울창한 숲, 거대한 바위 더미들로 인해 생겨난 전설로 인물 많은 산청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출처: 산청군청]
18.7Km 2024-12-13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오율길 5
약 500년 전 임진왜란 때 양 씨와 이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피난하러 와 살면서 터를 잡았다고 전해지는 마을이다. 양 씨가 먼저 들어오고 이 씨가 나중에 들어왔다고 한다. 마을의 높은 봉우리는 양이터재인데 이 재를 넘으면 나본마을로 갈 수 있다. 임도와 산길, 우거진 대나무 숲, 낙엽길과 산짐승들을 만날 수 있는 청정 오지 마을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해 김해 분성산까지 이어지는 낙남정맥이 지나는 곳으로 이곳을 기점으로 수계가 섬진강 수계로 달라진다.
18.7Km 2025-04-04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오율길 5
오율마을은 밤실, 여차골, 불당골, 시양골, 오대 등 여러 작은 동네들이 모여 이룬 마을을 일컫는 이름으로 옛 오대산 절터의 유적이 있는 마을이다. 닥나무가 많아 지금도 일부 마을에서 품질 좋은 한지를 생산하고 있다. 예부터 오율마을의 남산 산발치에 연못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덤불이 우거져 샘물이 솟고 있음에도 형체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옛날 오대사가 망할 때 절의 보물들을 이 연못에 던져 넣고 갔다고 전해진다. 시양골에는 양봉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