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원주캠퍼스길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연세대 원주캠퍼스길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연세대 원주캠퍼스길

13.7 Km    3     2023-07-03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흥업면 무수막1길 44

연세대 원주캠퍼스길은 원주굽이길 중 하나로 총 거리 5km(흙길 3.71km),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걷기 코스이다. 연세대 원주캠퍼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로 유명한 연세대 원주캠퍼스는 영화 <사랑을 놓치다(설경구, 송윤아 주연, 2006)>의 촬영지이기도 하다.연세대 원주캠퍼스길은 연세스포츠센터에서 시작하여 세연3학사, 매지(연대구내)임도, 학군단과 노천극장을 지나 다시 연세스포츠센터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봄에는 팝콘처럼 하얗게 만개한 벚꽃이 절경을 이루고, 가을에는 단풍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잔디 계단이 층층이 깔린 노천극장은 학생들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개방되어 있어 걷다가 잠시 쉬며 여유로움을 즐길 수도 있다.

들꽃이야기

13.8 Km    1     2023-07-01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성남로 323-12

들꽃이야기는 우리나라 야생화를 테마로 하는 정원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마당에 수백종의 야생화들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여 늘 다른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다. 넓은 마당에 맛있는 차를 즐겨보자.

남한강을 따라 만나는 역사의 향기

남한강을 따라 만나는 역사의 향기

13.8 Km    3854     2023-08-08

충주는 삼국시대 치열한 전장터였던 곳이다. 소백산맥을 넘어 한강을 이용해 한강유역까지 가는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남한강 주변으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역사유적이 남아 있어 문화유산 답사코스로 제격이다.

원주 에브리씽 페스티벌

원주 에브리씽 페스티벌

13.8 Km    2     2024-02-06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흥업면 연세대길 1
033-760-9881~9890

원주문화재단이 주최하여 2023년 새롭게 진행되는 원주 에브리씽 페스티벌이다.
함께 원주의 가을을 즐길 수 있다.귀를 호강시켜주는 아카펠라와 화려한 쇼콰이어, 화려한 라인업의 초청 가수들까지, 무대에 있는 사람만이 노래하는 것이 아닌 관객들도 함께 노래할 수 있는 페스티벌이다.
2023년 10월 8일 일요일부터 10월 9일 월요일까지 양일간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에서 진행된다.

청룡사지

13.9 Km    32693     2024-05-31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청룡사지길 147

청룡사지는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로 창건 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다. 절터 내에 국보 제197호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보물 제656호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 충주 청룡사 위전비,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등의 유물이 있으며 이를 통해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법등이 이어졌던 사찰의 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유물들은 불교 미술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로 특히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은 조선시대의 석조 부도 중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될 만큼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이다.

느티나무카페

13.9 Km    0     2024-06-11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청룡사지길 (5)

산속에 위치한 자연친화적인 카페로서 넓은 정원과 큰 나무들이 있다. 입구 쪽에는 커다라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카페 외부는 규모가 크며 곳곳에 화단으로 꾸며져 있으며 야외에서 커피를 마시기에도 분위기가 좋다. 실내는 널찍하며 층고가 높으며 벽 쪽에는 예쁜 컵들을 전시해 두었다. 식사와 커피를 함께 즐길 수 있게 빵이나 샐러드도 준비되어 있다. 가장 잘 나가는 메뉴는 화덕피자다. 은은한 커피 향을 맡으며 여유롭게 책을 볼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청룡사(충주)

청룡사(충주)

13.9 Km    18772     2024-06-11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청룡사지길 147

충주시 소태면의 청계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창건 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고려 시대의 창건설화가 전래되고 있다. 한 도승이 이 근처를 지날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급히 나무 밑으로 비를 피하는데, 공중에서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땅에 떨어뜨렸다. 한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향해 내려오다 청계산 위로 올라갔으며 여의주는 큰 빛을 내다가 사라지고 용도 함께 사라졌으며 비도 멈추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도승이 산세를 살펴보았고 그곳이 비룡상천형(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의 길지임을 깨달았다. 용의 힘이 꼬리에 있다는 것을 상기한 그 도승은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 암자를 짓고 청룡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청룡사는 옛 터의 북쪽에 있고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삼성각, 요사채가 있다. 옛 절터에는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등과 같은 역사 문화재가 있다.

충주 청룡사 위전비

충주 청룡사 위전비

13.9 Km    15227     2023-12-09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청룡사지길 147

충주 청룡사 위전비는 충주시 소태면에 있는 청룡사 옛 절터에 있는 비석이다. 청룡사지 입구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에 오는 이들에게 사찰 중창과 경영에 필요한 전답을 누가 기증했는지 알리는 공시문 같은 비석으로 조선시대 숙종 18년(1692)에 제작된 위전비이다. 위전이란 사찰이나 관청, 학교 등의 경영에 필요한 토지를 말한다. 조선 초 보각국사 이후의 사실을 이 비의 내용으로써 짐작할 수 있다. 비문에는 이 비를 세운 대표자는 통정대부 숭휘라고 되어 있다. 또한 몇 차례 걸쳐 추가로 기록된 부분도 있어 청룡사가 몇 차례에 걸쳐 보수,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충주 청룡사 위전비는 전체 높이가 2m가 넘는 대형 사면비로, 받침돌은 거북 모양이고 머리 부분은 탑의 옥개석 형태로 되어 있으며 그 마루에는 용이 조각된 점이 특이하다. 귀부에 비신을 세우고 비신 위에 지붕돌을 올린 형태인데 지붕돌 일부가 파손된 것을 제외하면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사원 경제 분야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는 비석으로, 당시의 사찰 경영을 위한 경제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금석문이다. 근처에 여러 가지 불교 문화재가 남아있으며 새로 지은 청룡사가 불사를 이어가고 있다.

목계나루

목계나루

13.9 Km    3216     2023-11-07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동계길 29-1

중원 문화의 발상지 충주는 수운(水運) 교통은 물론, 육로 교통에 있어서도 우리나라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요충지였으며, 그중 수운의 중심에는 ‘목계나루’가 있었다. 목계나루는 이런 과거 목계의 문화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로 설립된 복합 문화공간으로, 강배 체험관과 주막, 저잣거리, 수상 체험 시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배 체험관에서는 그 옛날 목계나루를 가득 메우던 배를 모티브로 강배들을 실제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으며, 소원 종이배 만들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전통을 즐기는 놀이마당인 저잣거리에서는 다양한 전통체험과 먹거리로 옛 목계나루 장터의 분위기를 재현하여 어린이나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체험교육형 관광을 제공하고 있다.

충주 석보군 묘소

충주 석보군 묘소

14.0 Km    15196     2024-06-14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다래월2길 20

석보군 이복생은 조선시대 정종의 9남으로 어머니는 해평 윤씨이다. 그는 효성과 우애가 돈독했으며, 학문에 통달하여 대문장이라 일컬었다. 석보군은 형 수도군과 함께 부왕을 정성껏 봉양했다. 그는 검묵(儉默)을 생활신조로 삼았고, 당시 사람들은 그를 ‘검묵공자’라고 일컬었다. 석보군 묘소는 1447년 경기도 양주군 미아리에 조성하였으나 시가지 확장으로 인하여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로 이장하였다. 마을 인근의 낮은 언덕을 올라 산속에 있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묘역 입구에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인 신도비가 있다. 묘비 1점은 가첨석을 갖추었고, 1964년에 건립한 것이며, 장명등 1점을 제외한 기타 석물은 1990년경 묘소 정화사업을 시행하면서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봉분은 높이 약 160㎝에 지름 450㎝이며 호석 12매를 둘렀는데 그 안에 12 지상을 양각하였다. 이장하여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조선시대 왕실의 매장 풍습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