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Km 2025-03-21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
진천 이영남 묘소는 임진왜란시 7년 전쟁을 마무리 짓는 최후의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함께 순국한 임란충신 가리포 첨사 겸 조방장 양성 이영남(1563~1598) 장군이 잠드신 유서 깊은 곳이다. 이영남 장군은 1566년 2월 13일 진천군 덕산면 기전리에서 태어났으며, 선조 17년(1577)에 별시무과 병과에 급제하여 선조 25년(1592) 율포권관을 시작으로 임진왜란 때 원균의 막하 장수로써 소비포권관, 강계부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경상우수사 원균이 왜군에 의해 동래성이 함락된 후 도망가려 하자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원병을 청하여 연합함대를 결성하게 되었고, 그 후 옥포·사천포해전, 한산대첩 등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였다. 선조 31년(1598)에 가리포첨사로 이순신 장군과 함께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였다. 장군의 노복이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인 진천 기전리에 묻었으며, 선조 38년(1605)에 절충장군 선무원종일등공신으로 녹훈되었다. 이영남 장군 묘소가 조선시대 묘소의 일반적 형태로 최근에 새로 조성하였으나, 조선 중기 최대의 국난이었던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해전을 통해 나라의 위태로움을 구한 장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하여 지정하게 되었다. 묘소는 원형의 봉분으로 직경 약 600㎝, 높이 약 240㎝로써 둘레를 십이지신상의 호석으로 조성하였다. 묘소 앞쪽에 상석 및 계체석, 정면 좌·우측으로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각각 1기씩 있으며, 우측에 이영남 장군 사적비가 1983년에 세워졌다. 이 석물들의 상태는 량호하나 근래에 건립·조성된 것이다. 좌측으로 말무덤 <애마총>이 자리하고 있다. 이영남 장군 묘소 상단으로는 장군의 부모 <이사종, 광주 진씨> 묘소 <쌍분> 각 1기 및 묘비와 조부 <이극인>의 묘소 및 묘비 1기가 위치하고 있다.
12.6Km 2025-06-27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모래재로 941
꿀벌랜드는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이곡리에 있다. 보광 초등학교 화곡분교를 리모델링해 조성된 곳으로 전시체험 박물관에는 꿀벌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엿볼 수 있고 직접 벌통 안에 살아 있는 벌도 살펴볼 수 있다. 꿀잼랜드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다. 레트로 슈팅, 테이블 하키 등 각종 게임기구들이 갖추어져 있고 카페, 북 카페, 벌꿀 가공공장, 상품 판매장 등 다양한 부대시설이 있다.
12.6Km 2025-01-08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덕리 266-1
대덕숲유원지는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좌구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맑고 깨끗한 구룡천 상류의 자연 발생 유원지다. 한여름에는 햇빛이 들지 않는 울창한 숲과 옆으로 흐르는 맑은 천이 있어 가족 단위의 피서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유원지 주변에는 좌구산 자연휴양림, 도로줌 마을이 있다.
12.7Km 2025-01-14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내로 128
청주 토속음식 전문 마을 안에 위치한 음식점이다. 닭, 오리, 토끼 볶음탕, 더덕구이 등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고 간단한 식사로 청국장, 비지장, 묵밥, 순두부도 맛볼 수 있다. 상당산성을 찾은 등산객이나 산책객들이 출출한 속을 따뜻하게 채워주기에 적당하다. 특히, 정식 상차림을 주문하면 기본 반찬에 도토리 빈대떡, 청국장찌개와 더덕무침이 같이 나와 가성비 좋은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12.7Km 2025-06-24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내로118번길 1
상당집은 청주시 상당산성에 위치한 손두부 전문점이다. 대를 이어 맛을 내는 두부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커다란 가마솥으로 만든 부드러운 두부를 재료로 한 부침과 비지장이 인기가 많다. 또 파와 오징어가 올라간 파전을 두부와 곁들여 많이 찾는다. 밑반찬은 셀프바가 있어 먹을 만큼 가져다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2.7Km 2025-03-13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이상설안길 10
독립운동가 이상설(1870∼1917) 선생이 태어난 생가로 목조초가집으로 안채와 헛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선생은 현 가옥에서 학자이신 이행우의 아들로 태어나 1894년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 교수, 한성 사범학교 교관 등을 역임하면서 영어, 프랑스어 등 7개 국어를 구사하여 신학문을 깨우쳤다. 1904년에는 보안회의 후신으로 대한협동회를 조직하여 민족 운동을 하였으며, 탁지부 재무관 법부협판을 거쳐 1905년에는 의정부 참찬에 발탁되었다. 같은 해인 11월 7일에 수옥헌에서 이또 주재하에 대신회의가 강제 개최되어 이완용 박제순 등의 찬성을 조약체결을 선언하였는바 선생은 대신회의에 실무 책임자임에도 일본군의 방해로 참석하지 못하고 다음날 새벽에 알게 되어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1906년 4월에 국권회복운동에 앞장설 것을 결심하고 이동녕, 정순만과 같이 망명길에 올라 상해를 거쳐 북간도 용정으로 가서 서전서숙을 건립하고 자비로 항일 민족교육을 시켰으며 1907년 6∼7월 헤이그에서 개최하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라는 고종황제의 위임장을 받고 이준, 이위종과 함께 한국의 실권과 국권의 회복문제를 국제여론에 호소하려다 실패한 후 이준은 현지에서 순사 하였다. 선생은 귀국하지 않고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여러 나라로 다니면서 일본의 침략성을 폭로하고 한국의 독립이 동양평화의 열쇠라고 주장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소련령으로 이주, 한흥동의 한인마을을 건설, 민족교육을 시키다 1917년 47세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12.8Km 2025-03-1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이영남로 73
043-536-5191
매년 담그는 김장김치를 토굴 저장고에서 숙성시켜서 항상 똑같은 맛을 내는 묵은지 갈비전골, 묵은지 토종닭볶음탕 등 묵은지 음식 전문점(묵은지 제조에 대한 특허 보유)으로 자체 주차장을 갖추고 있어 개인 및 단체 예약이 가능하고 직접 담근 전통 장, 두부, 장아찌 등과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이용하여 만든 음식으로 토속적인 고향의 맛을 내는 식단을 선보이고 있다.
12.8Km 2025-06-26
충청북도 음성군 원중로1119번길 42 꽃동네학교
‘꽃동네제빵소’는 2001년 장애 학생의 교육을 위하여 개교한 꽃동네학교에서 장애 학생들의 직업 훈련과 자립을 위하여 세워진 꽃동네학교 학교기업(2012 개관: 제과제빵분야)과 연계한 지역주민사업체로 음성군 관광기념품 사업을 신청하여 2021년 음성군 관광두레 주민사업체로 선정되었다. ‘꽃동네제빵소’는 HACCP 시설을 갖추어 60여 종의 제과제빵 제품을 생산하며 꽃동네학교 교사, 재학생, 졸업생, 꽃동네학교 학교기업에 취업하여 근무 중인 근로자(꽃동네학교 졸업생)로 구성되었다. 구성원 간의 활발한 협의를 거쳐 ‘꽃구움’이라는 브랜드명을 개발하였으며 꽃같이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는 제품을 기획하였다. ‘꽃구움’의 대표 상품으로는 당일 로스팅한 신선한 원두로 제작한 드립커피(12g)와 꽃향기가 가득한 원두커피(250g), 무방부제, 무유화제, 무색소 건강한 재료로 만든 쿠키가 있다.
12.8Km 2025-03-16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이상설안길 14
이상설 선생은 현 가옥에서 학자이신 이행우의 아들로 태어나 1894년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 교수, 한성 사범학교 교관 등을 역임하면서 영어, 프랑스어 등 7개 국어를 구사하여 신학문을 깨우쳤다. 1904년에는 보안회의 후신으로 대한협동회를 조직하여 민족 운동을 하였으며, 탁지부 재무관 법부협판을 거쳐 1905년에는 의정부 참찬에 발탁되었다. 같은 해인 11월 7일에 수옥헌에서 이또 주재하에 대신회의가 강제 개최되어 이완용 박제순 등의 찬성을 조약체결을 선언하였는바 선생은 대신회의에 실무 책임자임에도 일본군의 방해로 참석하지 못하고 다음날 새벽에 알게 되어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1906년 4월에 국권회복운동에 앞장설 것을 결심하고 이동녕, 정순만과 같이 망명길에 올라 상해를 거쳐 북간도 용정으로 가서 서전서숙을 건립하고 자비로 항일 민족교육을 시켰으며 1907년 6∼7월 헤이그에서 개최하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라는 고종황제의 위임장을 받고 이준, 이위종과 함께 한국의 실권과 국권의 회복문제를 국제여론에 호소하려다 실패한 후 이준은 현지에서 순사 하였다. (출처: 진천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13.0Km 2025-07-29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내로 70
* 삼국시대 포곡식 석축산성, 상당산성 * 상당산성이란 명칭은 삼국시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된 듯하다. 둘레가 4km를 넘는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상당산성이 처음 축성된 것은 백제시대 때 토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서현(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이후 조선시대 선조 29년 임진왜란 당시 개축되었다가 숙종 때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읍지(邑誌)에 따르면 이 산성은 1716년(숙종 42) 고지(古址)에 의거하여 석축으로 개수하였다고 하며, 남문 등의 성문·성벽에 당시의 공사관계자들의 이름과 관직명 등이 새겨져 있다. 남문의 문루는 1977년 복원되었다. * 상당산성의 구조 및 축조법 * 산성의 면적은 12.6ha, 성 둘레 4,400m이며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석재로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구축하고 그 안쪽은 토사(土砂)로 쌓아 올리는 내탁공법(內托工法)으로 축조하였으며 높이는 4.7m이다. 동·서·남방 3개소에 성문을 두었는데, 남문은 무사석(武砂石)으로 홍예문을 만들고 그 위에 목조 문루(門樓)를 세웠다. 지금은 석축 부분만 남아 있고, 성문의 높이는 3.5m, 너비는 4.2m이다. 동문과 서문도 역시 문루가 있었으며 성문은 무사석으로 네모지게 축조하였는데 높이 2.7m, 너비 2.8m이다. 동문과 남문 부근에 1개소씩의 암문(暗門)이 있고 동남방에 수구(水口)가 있었으나 지금은 여기에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장대(東將臺)와 서장대(西將臺)의 터가 남아 있다. 상당산성은 청주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멀리서 보아도 상당산이 머리에 띠를 두른 듯 또렷하게 보이는 성벽은 위기 때마다 청주 사람들의 울타리가 되어준 파수꾼이다. 상당산 능성 따라 이어진 성벽은 산을 돌아가며 둘레 4.2km, 높이 4~5m의 성곽이다. 임진왜란 때에 일부 고쳤으며 숙종 42년(1716)에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석성을 쌓았다. 성 안에는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공남문(남문)과 미호문(서문), 진동문(동문) 3개의 문과 2개의 암문, 치성 3곳과 수구 3개소가 있다. 조선군이 훈련하던 동장대는 1992년에 복원해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성을 한바퀴 돌고 내려오면 성안에는 전통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는데 전통마을에서 맛보는 전통주와 빈대떡은 산성을 돌고난 고단함을 풀어준다. ※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하여 언제든지 해설을 들을 수가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연인> ‘상당산성’은 <연인>에서 청나라의 침공으로 인해 임금 인조가 피신했던 장소로 남한산성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