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식고택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장현식고택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장현식고택

장현식고택

10.5Km    2024-12-24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119-6

장현식 선생은 전북 김제에서 만석군의 아들로 태어나 항일 독립운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독립운동가로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제2대 전북도지사(1949.8.17~12.14)를 역임하였다. 장현식 고택은 일찍이 여관과 호텔이 없었던 조선시대에 남원 호음실의 박씨 집과 함께 여행객들이 부담 없이 여장을 풀고 쉬어 가는 만석꾼 부잣집이었다. 거의 사흘마다 소 한 마리를 잡아서 과객 접대에 힘써 그들 사이에서 “노자돈 떨어지면 서도 장씨 집에 간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장현식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등 4동을 전통방식으로 지었는데 근대 한옥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건축물이다. 목재 가공의 수준이 아주 정교해 전통한옥으로서 건축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건축의 선율

10.5Km    2024-12-18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최명희길 11-3 (풍남동3가)
0507-1367-7653

[건축의선율]은 전주 한옥마을의 고택에 새로운 선율(Melody)를 더하여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습니다. 건축과 음악이 서로 닮아 있다는 것과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며 멋진 추억을 만들어가는 한옥 마을의 감성적인 독특한 한옥스테이 입니다.오직 한 팀 만을 위한 '건축의선율'입니다. 화기애애(전체독채), 도란도란(주중독채), 알콩달콩(커플독채)로 구성하여 오롯이 예쁜 한옥을 누구의 간섭 없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동락원

동락원

10.5Km    2025-03-20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은행로 33-6

동락원은 전주한옥마을 내 600여년 된 커다란 은행나무 옆 골목에 위치한다. 과거에 한국은행 관사로 사용되던 한옥을 기전대학이 보수해 일반인들을 위한 한옥체험관으로 활용하고자 동락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동락원은 숙박과 가든대여, 노천족욕카페, 썬베드와 피크닉 테이블 대여를 하는 한옥 호텔이다. 도보로 4분 거리에 동락원 1호점과 2호점이 있다. 숙박은 행랑채 4곳, 사랑채 3곳, 안채 2곳, 별당채 2곳, 한옥1호~8호까지 있으며 부대시설로 프라이빗한 숲속 이색 휴식공간인 야외에서 즐기는 족욕카페가 있다. 동락원 입구에 들어가면 잉어들이 헤엄치는 사각형 연못이 먼저 눈에 띈다. 작은 객실이 있는 행랑채와 항아리와 어우러진 사랑채 사이를 지나면 안채와 200여평의 마당을 만날 수 있다. 사랑채 벽에는 야생화가 그려진 기와를 걸어둬 멋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200여평의 잔디마당에는 데크와 함께 그 위에 파라솔과 탁자, 의자가 자리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식사를 한 후 동락원 마당에서 커피 한 잔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동락원 잔디마당에서는 종종 스몰웨딩이나 스몰파티가 열린다. 사랑채 항아리가든과 잔디마당 사이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방문 기념식수가 심어져 있다. 잔디마당 반대편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문기념 식수가 있는 것도 동락원의 자랑거리다.

전주전통한지원

전주전통한지원

10.6Km    2025-08-05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한지길 100-10 (풍남동3가)

전통 한지 제조 기법이 오롯이 재현되는 전주전통한지원은 천년 정신이 담긴 순수 우리 한지만을 생산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한지의 80% 이상이 일본에 수출되고 나머지는 국내에서 소비되고 있다. 한지는 다른 종이들과는 달리 조상들의 장인정신이 배어있는 소중한 유산으로 한지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다. 이곳에서는 한지 뜨기, 무늬 넣기, 말리기 등의 한지 제작 과정을 배워볼 수 있다. 도보 5분 이내에 전주한옥마을역사관, 전주자수박물관, 전주부채문화관이 있어 전주전통한지원과 같이 방문하기 용이하다.

동문헌책도서관

동문헌책도서관

10.6Km    2025-03-17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동문길 51 (풍남동1가)

전주한옥마을 안에서 만나볼 수 있는 헌책 도서관이다. 헌책의 가치를 나누고 재조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총 3개 층으로 조성되어 있다. 총 4,000여 권 이상의 책들이 비치되어 있어 다양한 장르의 도서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지하 1층은 실제 만화방을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로 만화책과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이루어져 있고, 지상 1, 2층은 독서와 노트북 사용이 가능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른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추억의 옛날 영화와 애니메이션도 DVD로 감상할 수 있다. 시대별 베스트셀러부터 과거 금서로 지정되었던 책 등 역사를 지닌 자료도 살펴볼 수 있고, 다양한 공간을 무료로 즐길 수 있어 가족, 친구, 연인 등과 함께 방문하기 좋다.

한옥 어사화[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10.6Km    2024-12-10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한지길 106-1
0507-1383-3344

전주한옥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어사화는 전주경찰서장 관사로 지어진 곳으로, 한옥 틀이 높고 정남향의 모습을 지닌 한옥스테이다. 온돌이 익숙하지 않은 손님을 위해 침대를 갖췄고, 좁은 한옥방의 불편을 보완하기 위해 방 2개를 터서 침실과 거실 공간을 마련하였다. 숙박객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조식을 제공한다. 전주한옥마을 주요 관광지 및 식당들이 인근에 있어 여행에 편리하다.

서로

서로

10.6Km    2024-12-13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한지길 100-12
010-4033-2610

서로는 전주한옥마을 중앙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매우 좋다. 오목대관광안내소, 공용주차장, 경기전,오목대, 한지체험관과 가까워 전주한옥마을에서 마음껏 걷고 먹고 즐길 수 있다. 고급복재, 황토로 지은 전통 한옥으로 건강한 방에서 쉼을 얻을 수 있다. 툇마루에서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 할 수 있다. 밤하늘에 별들을 한아름 담아놓은 집이다. 전 객실에 뽀송한 침구를 준비했다. 매일 소독을 통해 청결을 유지하고 있다.

동락원

동락원

10.6Km    2025-03-05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은행로 33-6
010-4951-9300

동락원은 한옥마을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변 관광지를 여행하기에 최적의 장소에 위치해있다. 한옥마을 최대규모인 약 700여평의 부지로 넓은 정원과 연못을 즐길 수 있다. 정원의 야간조명은 아름다운 야공을 제공한다. 투숙객들은 동락원 내의 족욕카페를 할인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모든 객실 라텍스 침구를 사용하여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한옥미담(전주한옥마을 한옥미담)

한옥미담(전주한옥마을 한옥미담)

10.6Km    2024-11-27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동문길 54-41
010-5600-4008

한옥미담은 본채와별채 두채로 구성된 전통 한옥숙박 체험관이다. 별채 옆에는 카페테리아 "휴"가 있으며 본채 옆으로는 "쉼터"공간이 있어 객실 외에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조식서비스와 한복체험 할인서비스 등이 제공되며 공영주차장 50% 할인권도 준비해 드립니다.

오목대와 이목대

오목대와 이목대

10.6Km    2025-09-09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55

한벽당과 전주향교의 북쪽 4차선 노변, 벼랑같이 솟은 언덕에 세워진 오목대는 고려 말 우왕 6년(1380년)에 이성계가 운봉 황산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돌아가던 중 조상인 목조가 살았던 이 곳에 들러 승전을 자축한 곳으로, 그 후 고종 황제가 친필로 쓴 태조고황 제주필유지비를 세웠다. 여기서 육교를 건너서 이목대가 있는데, 천주교의 성지 치명자산이 있는 승암산 발치에 위치한다. 오목대에서 육교를 건너면 70m 위쪽으로 이목대가 있는데 건물이 있는 80m 아래쪽에 비석과 비각을 세웠다. 이 비 속에는 목조대왕 구거유지라 새겨져 있는데 고종 황제의 친필이다. 목조는 조선조를 건국한 이태조의 5대 조로, 목조가 어릴 때 이곳에서 진법놀이를 하면서 살았던 유적지로 알려져 있으며, 그러한 내용이 용비어천가에도 나타나 있다. 목조가 당시의 전주 부사와의 불화로 이곳에서 함경도로 옮겨간 것이 이성계로 하여금 조선조를 건국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으므로, 이를 하늘의 뜻이라고 여겼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