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Km 2025-01-15
광주광역시 북구 송강로 49
광주광역시 금곡동에 있는 얼씨는 '자연과 함께 힐링함'을 모토로 운영하는 디저트 카페다. 유리 하우스 안에서 무등산의 경치와 얼씨만의 커피 맛을 즐길 수 있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 내부와 외부 모두 포토존이 많아 사진 남기기 좋고 잘 손질된 정원을 바라보며 편안한 휴식과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반려동물 동반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고 무등산이 가까이 하산하는 등산객들도 들러가는 코스이다. 밤이면 조명을 밝혀 아름답고 날씨가 좋은 날엔 야외 테이블도 이용할 수 있다.
8.8Km 2024-04-08
광주광역시 동구 남문로 614
막동이회관은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소개된 맛집이다. 현지인들이 인정하고 추천하는 식당으로, 안심추리, 안창살, 꽃등심, 갈비살 등의 한우 구이와 한우 생고기, 삼겹살, 목살 등의 돼지고기구이, 다양한 식사메뉴를 맛볼 수 있는 한식당이다. 또, 양념에 재워둔 한우 불고기와 버섯, 시금치 등의 채소와 당면을 넣어 끓여 낸 불고기 백반도 단골손님들이 즐겨 찾는 메뉴이다. 돼지 내장에 고사리와 비법 양념을 넣어 끓인 내장탕도 있다. 단체석도 마련되어 있어 모임 장소로도 추천할 만하다.
8.8Km 2025-02-06
광주광역시 북구 풍암제길 14
무등산 북쪽 충효동에 자리잡은 가마터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상감청자·분청사기·백자를 굽던 곳이다. 가마의 구조는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시설·도자기를 집어넣는 번조실·굴뚝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둥근 무덤 형태가 연결된 모양으로 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과 출토유물의 연도를 통해 1430년을 전후해 만들어지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후 약 70∼80년간 자기 제작이 지속되다가 16세기 초에 중단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초기에는 분청사기만 만들다가 백자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같이 제작했으나, 분청사기의 무늬가 조잡해지면서 생산량이 줄어들었다. 반면 백자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질이 좋아지고 생산량도 늘어 분청사기가마에서 백자가마로 성격이 바뀌었다. 백자는 크기가 작은 것이 주를 이루는 데 비해 분청사기는 크고 작은 것 모두 있고, 종류도 접시·종지·잔·병·항아리·벼루·제기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분청사기에 주로 사용된 무늬는 국화·나비·물고기·게·구름무늬 등이며 여러 무늬를 조합하여 그리기도 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운영되었던 곳으로, 청자부터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로 넘어가는 과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출처: 광주광역시 북구문화관광홈페이지)
8.8Km 2025-04-30
광주광역시 북구 풍암제길 14
무등산은 중생대 화성활동에 의해 형성됨에 따라 이 충효동 도요지 인근은 마그마가 굳어 만들어진 암석이 풍화된 토양(풍화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 가마터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의 도자기가 생산되었던 곳으로, 함께 발견된 3m가량의 도자기 파편층이 분청사기부터 백자까지 6단계의 변화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으며, 또한 이 지역에서 출토된 도자기를 지질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주변의 화강암 풍화토를 이용했음이 밝혀졌다. 이처럼 무등산 분청사기의 제작과 발달과정에는 무등산의 지질학적 특성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어 이곳을 무등산권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명소로 지정하였다.
8.8Km 2024-06-12
광주광역시 북구 송강로 13
원효사로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배재에 이르면 왼편에 잘 가꾸어진 묘소와 함께 충장사의 우람한 건물이 바라다 보인다. 이 충장사는 무등산이 낳은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모신 사우로 1975년에 세워졌다. 경내에는 김덕령의 영정과 교지가 봉안되어 있는 사우 충장사, 동재와 서재, 은륜비각과 해설비, 유물관, 충용문, 익호문 등이 세워져 있다. 유물관에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김덕령 장군 의복과 장군의 묘에서 출토된 관곽, 친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사당 뒤쪽 언덕에는 김덕령의 묘와 묘비가 있으며 가족묘도 조성되어 있다. 충장사로 향하는 길은 광주 사람들에게 드라이브 코스로 사랑받는 길이다. 봄이면 노란 개나리가 길섶을 수놓고, 여름이면 신록이 우거져 터널을 이루며, 가을이면 빨간 단풍이 숲을 물들이고, 겨울이면 나무마다 눈꽃이 피어 설원에 온 듯 장관을 이룬다.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광주 사람들이 즐겨 찾는 길이다. * 김덕령 장군에 대하여 김덕령 장군은 광주시 충효동에서 1567년 광산 김씨 가문 붕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글을 배워 장성하면서 우계 성혼의 문하에서 송강 정철과 함께 수학하였다. 1592년(선조 25년)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덕홍과 함께 의병활동에 참가하였다. 이 때 형 덕홍은 의병장 조헌이 이끈 금산싸움에서 전사하였으며, 장군은 담양부사 이경린과 장성 현감 이귀등의 천거로 선조로부터 형조 좌랑의 벼슬을 받았다. 1593년 담양지방에서 의병 5,000여 명을 이끌고 출정하니 나라에서는 장군을 선전관으로 임명하고 익호장군의 호를 내렸다. 1594년 권율장군의 휘하에서 진해, 고성에서 왜군을 방어했으며, 장문포 싸움에서는 충무공 이순신과 수륙연합전으로 왜군을 크게 물리쳤다. 1595년에는 고성에 상륙하는 왜군을 기습 격퇴하여 큰공을 세우니, 선조로부터 충용장이란 군호를 받았다. 1596년 이몽학의 반란을 토벌하던 중 모함으로 투옥돼 갖은 고문 끝에 그 해 9월 15일 29세의 나이로 결국 김덕령은 감옥에서 고문을 받다가 장독으로 옥사하였다. 나라를 위해서 수많은 공을 세우고도 억울하게 죽은 김덕령을 더욱 떠받들어 그의 생애와 도술을 묘사한 작자 ·연대 미상의 전기소설 《김덕령전》이 있다. 1661년(헌종2년)에야 공의 억울함이 조정에 알려져 관직이 복직되고, 1668년 병조판서에 가증, 영조 때 의열사에 제향되었으며 1788년 정조는 장군께 충장공의 시호를 내렸으며, 장군이 태어난 마을 석저촌을 충효의 고을이라 하여 충효리로 바꾸도록 하였다.
9.0Km 2024-07-11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세량리
미국의 유명한 뉴스 채널 CNN이 [한국에서 가봐야 할 곳 50곳]에 선정할 정도로 빼어난 경치를 간직하고 있다. 또한 화순 8경 중에 제8 경이며 둑을 의미하는 세량제라고도 불린다. 세량지는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1969년 준공되었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면 잔잔한 호수에 비친 산벚꽃과 초록의 나무들이 수면 위에 거울에 비추듯 그대로 투영되어 이국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국의 수많은 사진작가가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매년 봄 화순을 찾고 있다. 여름이면 세량지를 물들인 짙푸른 녹음을 감상하며 평화로운 물가를 호젓하게 즐기기 적당하고 가을이면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든 산과 어울려 그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세량지는 봄부터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까지 계절을 초월해 경치를 즐기며 산책하기 좋은 힐링 장소이다. 세량지로 향하는 길목에 습지원이 있고 둘레길과 세량 누리길이 조성되어 있다.
9.0Km 2024-09-04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물염로 161
중종 명종대에 성균관 전적 및 구례, 풍기군수를 역임한 홍주 송씨 물염 송정순이 16세기 중엽에 건립한 정자이다. 후에 외손 금성 나씨 나무송, 나무춘 형제에게 물려주었고, 그 후 수차례 중수와 함께 1966년, 1981년에 중수하였다. [물염]은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뜻이다. 화순적벽에서 3km 상류에 위치한 물염정은 방랑 시인 김삿갓이 경치에 반해 자주 찾았던 정자로, 정자 옆에는 난고 김병연의 시비와 동상이 있다. 병풍처럼 둘러친 물염적벽의 기암절벽과 소나무 숲의 운치, 그리고 깊은 계곡과 단애의 풍치를 정자 위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신선이 노닐던 선경 속으로 빠져들게 할 만큼 멋진 절경을 연출한다.
9.0Km 2025-03-17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적벽로 630-1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에는 약 7km에 걸쳐 수려한 절벽 경관이 발달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동복댐 상류에 있는 적벽(노루목 적벽)과 보산리, 창랑리, 물염적벽 등 4개의 군으로 나뉘어 있다. 적벽은 수려한 자연경관이라든가 웅장함 그리고 위락공간으로서 주변의 적절한 자연조건 때문에, 동복댐이 만들어지기 직전까지 옛날부터 널리 알려진 명승지이다.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에 유배 중이던 신재 최산두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의 소동파가 선유하며 그 유명한 적벽부를 지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적벽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깎아 세운 듯한 수백 척 단애 절벽의 절경에 젖어 방랑 시인 김삿갓(김병연)도 이곳에서 방랑을 멈추고 생을 마쳤다. 그러나 김삿갓을 비롯한 많은 시인, 묵객들이 좋아했던 상류의 노루 목적벽은 85년 동복댐 준공을 계기로 수몰되어 25m 가량 잠겨버렸다. 또한 1807년(순조 7년) 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회동면에서 출생하여 전국을 떠돌다가 이곳 적벽에 매료되어 1863년 4월 29일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김삿갓의 초분지(初墳地 - 3년 후 차남이 고향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에 모심)가 보존되어 있다. 그가 생전 동복에서 고향 영월을 바라보며 그리워하였을 자리에 망향정(望鄕亭)을 건립하였다.
9.0Km 2025-03-19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월송길 62-30
동복향교는 화순 월송마을 뒤편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 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1444년 동복현감 하강지가 현 위치에 처음 건립하였다. 이후 1568년 현재의 위치에서 교촌마을로 이건하였으며, 1655년에 객사에 불이 나 전패(고을의 객사에 봉안되었던 국왕을 상징하는 위패)가 소실되자 동복현이 폐현 되면서 향교도 폐하였으나 1664년 복현 되면서 향교도 복교되었다. 1713년 현의 남쪽으로 향교를 이건하였다가 1756년에 현재 위치인 월송마을 뒤 구릉으로 이건하였다. 동복향교는 명륜당, 경모재, 양사재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명륜당, 경모재, 양사대 모두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삼문은 대성전의 정문으로 솟을대문이며, 막돌 초석 위에 방주(사각기둥)를 세우고 납도리(들보에 직각 방향으로 걸어 처마 지붕을 꾸미는 것)를 이용한 판장문(널빤지로 된 문)이며 위로는 홍살을 꽂았다.
9.0Km 2025-03-19
전라남도 화순군 연곡길 137 도원서원
도원서원은 동복 고을과 연고를 맺고 유학 진흥에 크게 이바지한 최산두, 임억령, 정구, 안방준을 모신 서원으로 현종 9년(1668) 지역 유림이 뜻을 모아 창건하였다. 숙종 14년(1688) 도원이란 사액을 받으면서 도원서원으로 불렸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으나, 최산두의 후손들에 의해 1975년 유허비가 세워졌으며 1977년 사당, 1978년 동서재가 복원되었다. 경내의 구성은 크게 4위를 배향하는 사당과 강학을 위한 동재인 숭의재와 서재인 집성재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바깥출입을 위한 외삼문인 건공문과 사당으로 연결되는 내삼문인 발일문이 있는데, 두 문 모두 맞배지붕 솟을대문이다. 해마다 음력 3월 10일이면 춘향대제를 지낸다. 서원과 직접 관련된 유적과 유물은 전해지지 않지만, 중종이 최산두에게 하사한 옥대가 전라남도 지방 유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도원서원에서, 차량으로 20분 거리에 화순적벽, 물염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