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Km 2024-12-26
서울특별시 성동구 고산자로10길 18 (행당동)
어린이꿈공원은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위치한 어린이 맞춤형 놀이공원으로, 다양한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다. 짚라인, 트램펄린, 모래놀이터, 암벽타기, 물놀이 시설 등 아이들이 창의력과 모험심을 키울 수 있는 공간으로,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적합하다.
13.9Km 2025-07-18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수지로342번길 42 (풍덕천동)
탑골순대국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국물 진한 순댓국 전문점이다. 대표 메뉴인 ‘정식’을 주문하면 순댓국과 머리 고기를 함께 즐길 수 있다. 간과 다양한 부위가 함께 나오는 머리 고기는 촉촉함이 살아있다. 푸짐한 건더기와 시원한 국물 덕분에 손님이 많아 평일 식사 시간에는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 맛집으로 인기가 높으나 주차 시설이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지하철 신분당선 수지구청역에서 도보로 7분 정도 거리에 있다.
13.9Km 2025-07-30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61 (장충동2가)
장충단공원은 항일운동과 관련된 애국충정이 깃든 민족공원이다. 남산의 동북쪽 기슭에 있는 이 공원은 조선 영조 때 도성의 남쪽을 수비하던 남소영이 있던 자리이다. 1895년 8월 20일, 명성황후가 일본의 자객들에 의해 경복궁에서 시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궁내부 대신 이경직, 시위대장 홍계훈 등 많은 장병이 일본인들을 물리치다가 죽음을 맞았다. 이에 고종 황제는 그들의 영령을 위로하고자 1900년 11월 장충단이라는 사당을 짓고 1908년까지 매년 춘추로 제사를 올렸다. 원래 장충단은 지금의 신라호텔 영빈관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사당은 한국전쟁 중 소실되었고 장충단에 세워졌던 비만 남아 1969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1919년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박문사라는 절을 세우고 장충단 자리에 공원을 조성했는데, 광복 후 모두 철거되었다. 1984년 9월 22일 근린공원이 된 장충단공원은 자연공원인 남산공원의 일부로 흡수, 합병되었다. 나머지 구역은 장충단공원이라는 예전의 이름 그대로 불리고 있다. 장충단공원 일대는 장충단비, 수표교, 승정전, 관성묘, 와룡묘 등 문화재를 비롯하여 3·1운동 기념비,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만해 한용운 시비와 유관순, 이준, 김용환 선생 동상 등이 있다.
14.0Km 2024-12-20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111 (구로동)
구로미래도서관은 구로구 주민들의 지식 탐구와 문화 향유를 위한 새로운 공간이다. 단순한 도서관을 넘어, 미래 지향적인 시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사회의 문화적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구로구를 더욱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14.0Km 2025-04-24
경기도 광명시 범안로 857 (하안동)
경기 광명에 위치한 양평신내서울해장국은 밤일마을에 위치한 해장국 맛집이다. 양도 푸짐한데 신선도 높은 내장과 선지를 사용하여 잡내가 없고 칼칼하고 개운한 국물이 일품이다. 대표메뉴인 해장국 외에도 하얀 국물의 내장탕과 내장이 많이 들어 있는 해내탕이 있어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다. 24시간 운영하며 넓은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어 주차와 접근이 용이하다.
14.0Km 2025-04-24
경기도 광명시 밤일안로14번길 1 (하안동)
아프리코는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밤일마을에 있는 디저트 카페이다. 대표메뉴인 스콘을 비롯하여 다양한 수제 디저트를 판매하고 있다. 디저트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음료도 다양하다. 카페 전용 주차장이 있어 편하게 주차할 수 있다. 아프리카 조각품을 전시하고 있어 볼거리도 가득하다.
14.0Km 2025-07-11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1가
성재이시영선생동상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치신 김구선생동상과 함께 남산공원 백범광장 내에 세워져 있다. 성재 이시영 선생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전 재산을 바쳐 투신한 명문가의 다섯째 아들로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냈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당시, 형 건영, 석영, 철영, 회영, 동생 호영과 함께 6형제가 전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에 투신한 명문가 출신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선생은 일찍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국권이 피탈당하자 형제, 가족과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을 진흥하고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하여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1919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법무총장, 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1945년 해방 시까지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켰다. 광복 후 환국하여 신흥무관학교의 건학이념을 계승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1947년 성재학원 신흥대학(현 경희대)을 설립하였다. 1948년 7월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독재 정권에 항의하며 1951년 5월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통령직을 사임하였으며, 1953년 피난지인 부산 동래에서 서거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