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Km 2024-11-21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로3길 84 (동소문동4가)
1945년 이승만이 한국에 돌아와 처음 기거했던 사저로 당시 서울시 돈암동 인근에 있다 하여 [돈암장]이라 하였다. 원래 조선시대 의료기관인 동활인서가 있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송성진의 의뢰로 중요무형문화재 대목장 배희한이 궁궐 양식으로 돈암장을 지었다. 쇠못을 전혀 쓰지 않고 나무를 짜서 지었으며 3채의 건물과 700평에 이르는 정원이 조화를 이룬 빼어난 주택이다. 해방 후에는 조선타이어주식회사 사장이었던 장진영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에게 2채를 빌려주어 2년간 거주하게 하였기 때문에 이승만의 거처로 알려진 한국 근대 정치의 역사적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돈암장은 주인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서 증축과 개축으로 원형을 잃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역사적 현장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목조팔작지붕의 한옥 본채 한 동은 2004년 등록문화대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개인 소유로 소유주가 거주하고 있어 방문은 어렵다.
18.3Km 2025-03-25
경기도 파주시 당하동
선사시대의 유적인 고인돌과 지압로등 체육시설, 벚나무길로 조성되어 있다. 동패동 교하중학교 인근 다율동과 당하동, 교하동이 인접한 구릉지대에는 100 여기가 넘는 고인돌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군사시설 조성과정에서 고인돌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20 여기만이 남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 상태가 양호한 6기가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다율동에서 발굴된 고인돌은 이미 훼손된 상태였기 때문에 본래의 하부구조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지만, 탁자식으로 추정된다. 고인돌 주변에서 나온 유물로는 작은 토기조각 등이 있다. 일부의 고인돌은 현재 경기도청, 통일로, 온양민속박물관 등에 이전 복원되었다. 발굴된 당하동 고인돌의 대부분도 제자리를 벗어난 것들이다. 고인돌 가운데는 하부구조가 타원형의 적석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다. 고인돌 주변에서는 간돌검, 화살촉, 숫돌 등이 채집되었다. 당하동 고인돌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청동기시대의 집터가 발굴되었다. 집터는 긴 네모꼴의 움집으로 길이 12.5m, 너비 4m, 깊이 40~80m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터에서 구멍무늬토기(공렬토기), 민무늬토기, 간돌검, 가락바퀴 등이 나왔다. 집터 안쪽에 화덕자리가 두 군데 있다. 이 집터는 고인돌을 축조한 선사인들의 살림살이를 살피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출처 : 파주시 문화관광)
18.3Km 2025-01-07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18 (삼청동)
조선 말기 근대식 무기를 제작하던 기기창 건물로, 강화도 조약이 이루어지고 8년 후인 고종 21년(1884)에 지어졌다. 당시는 무기의 근대화를 위해 새 제도를 마련하고 근대식 군사훈련과 무기제조에 힘쓰던 때이다. 건물의 이름인 ‘번사(飜沙)’라는 말의 뜻은 흙으로 만든 틀에 금속용액을 부어 만드는 것을 말한다. 검은 회색 벽돌로 벽을 쌓았으며 붉은 벽돌로 띠를 두른 후,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을 올렸다. 문은 무지개모양이며 정문은 화강암으로 만들고 옆문은 붉은색 벽돌로 띠를 넣어 장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