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Km 2024-09-05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나루길 407 (망원동)
070-8018-5936
‘2024 어쓰런 : 커피똥의 부활’은 커피박 폐기 문제를 알리기 위해 커피박을 재활용하고 있는 마포구 50개 카페, 500여명의 건강한 시민들과 함께하는 러닝, 플로깅, 환경봉사, 축제이다. 에스프레소 코스, 아메리카노 코스, 초코라떼 코스 총 세 가지 코스를 선택하여 신청할 수 있다. 망원동의 멋진 카페들을 방문하여 커피박을 수거하고 서울함공원에 모여 퍼포먼스와 부스,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참여혜택] 1. 플로깅백 제공 2. 타투스티커 3. 참여카페 커피쿠폰(미션완료시) 4. 자원봉사 시간인증(1365) 5. 업사이클링솜으로 채운 햇살이 쿠션 DIY키트(스프링샤인) 6. 멸종위기동물 메모리게임(스프링샤인)
7.8Km 2025-07-29
서울특별시 마포구 포은로6길 27 (망원동)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망원시장은 다양한 먹거리가 가득한 서울의 전통시장 중 하나이다.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문화 활동을 위한 지하복합문화공간과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한 망원동에 거주하는 신혼부부 및 싱글을 겨냥한 신메뉴와 변화를 추구하여 젊은 소비자들이 증가하였다. 전통적인 먹거리뿐 아니라, 개성있는 카페, 디저트 가게들이 속속 생겨나며 현대적인 분위기를 더하고 있는 매력적인 시장으로 외국인 관광객까지 방문하는 시장이다. 망원시장은 배달 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유입과 만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7.8Km 2025-03-27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산성로 178
1544-5292
나루터는 경기 고양시에 위치하고 있다. 볼거리가 많아 눈이 즐겁고, 맛깔난 재료와 메뉴들로 입을 즐겁게, 라이브 음악 비디오 상영 등으로 눈이 즐겁게, 그리고 부대시설(노래방, 족구장, 탁구장 등) 및 편의시설(무료 셔틀 왕복 버스, 라운지에서의 후식 제공)이 잘되어 있다. 또한 초대형 외식 테마타운 나루터는 제1관 안채, 제2관 전망대, 제3관 사랑채, 제4관 컨벤셜홀로 구성되어 있으며 컨벤션 센터는 각 기업체의 워크숍, 강연회, 세미나를 치를 수 있는 곳으로 각종 기자재(무선랜, 200인치 스크린, 4000안시 프로젝트)를 마련해 놓고 있다.
7.8Km 2021-03-11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6길 12, 지상1층 101호
02-333-9286
동해안에서 직접 받은 자연산 해산물로 요리를 하는 곳이다.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있는 한식 전문점이다. 대표메뉴는 생태 매운탕이다.
7.8Km 2025-04-21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호수로71번길 4 (토당동)
서궁은 다양한 요리를 맛보실 수 있는 일산 한정식 전문점이다. 전통 한식의 깊은 맛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하여, 신선하고 건강한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연령층과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전골을 더한 한정식 코스가 준비되어 있고, 따뜻한 조명과 아늑한 분위기의 새련된 인테리어로 다양한 규모의 모임에 적합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행주산성, 일산호수공원, 일산킨텍스와 멀지 않아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
7.8Km 2025-01-21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209 (동교동)
홍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반려견 출입이 가능한 카페이다. 특유의 개성 있고 트렌디한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커피, 차, 스무디 등을 판매하며 사이즈는 그란데만 선택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1대 밖에 없는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체석이 있어서 모임을 하기 좋다. 독특한 아날로그 감성의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근처에 경의선숲길 공원이 있어서 커피를 마시며 산책하기 좋다.
7.8Km 2025-03-17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현저동)
서대문독립공원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수많은 애국지사와 1960년대 정치적 변동을 겪으면서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던 서울구치소가 있었던 곳이다. 서울구치소가 1987년 11월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감에 따라 감옥 7동, 사형장, 지하여자감옥 등을 복원하고 탑골공원에서 3·1운동기념탑을 이전하였으며, 1992년 영은문 주초와 연계하여 1992년 8월 15일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서대문독립공원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거하다 옥고를 치렀던 애국지사의 자주독립 정신을 후손에게 기억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동안 독립공원은 공원입구에 주택과 상가지역이 무질서하게 자리 잡고 주요 시설이 산재되어 있어 시민들의 공원 이용에 불편이 많았으나 2007년 4월 16일부터 추진한 독립공원 재조성 사업을 통해 2009년 10월 28일 재개장하여 독립문, 역사관, 독립관, 순국선열추념탑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함과 동시에 시민이용에 불편을 초래했던 노후한 공원시설을 정비하여 공원을 방문하는 학생, 관광객, 시민고객들의 편의를 최대화하였다. 특히, 독립문은 그동안 시민들의 접근을 제한하였으나, 서대문독립공원 재조성 사업으로 인하여 112년 만에 시민들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공원 내에는 독립협회에서 1895년에 건립한 독립문(사적)이 있으며, 독립문 바로 앞에는 영은문주초(사적)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중국사신들을 영접하던 독립관(당시는 모화관이라 하였음)을 1996년에 복원하여 그 내부에 순국선열위패 2,327위가 봉안되어 있다. 그 외 순국선열추념탑, 3·1독립선언기념탑, 서재필박사 동상 등이 있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신 애국지사들의 고귀한 넋을 기리고자 서대문구에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별도로 관리·운영하고 있다.
7.8Km 2025-07-14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현저동)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들은 서울 중심지 인사동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삼창함으로써 거족적인 3.1독립만세운동의 봉화를 올렸다. 3.1독립선언기념탑은 이날로부터 시작된 전 민족적인 항일 독립운동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8월 15일에 당시 재건국민운동본부 주관으로 온 국민의 성금을 모금하여 또 하나의 중심 현장이었던 탑골공원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1979년 탑골공원의 정비사업으로 철거되어 방치되었다가 복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1992년에 항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탄압과 고귀한 순국의 현장이었던 서대문 감옥 가까운 곳인 서대문 독립공원에 옮겨 세우게 되었다. 탑의 뒤에는 3.1독립선언문과 손병희 등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판각되어 있다.
7.8Km 2025-03-17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현저동)
서대문 독립공원에 있는 독립관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던 옛 독립협회 사무실로 쓰던 독립관을 고증에 따라 복원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원래 중국 사신 방문 시 접대를 하던 공간인 영빈관으로 사용하던 모화관 건물을 청·일 전쟁 이후 독립협회에서 사용하던 건물이다. 1894년 이후 서재필이 발의하고 독립협회에서 주도하여 개수한 후 독립관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이곳에서 애국토론회를 개최하여 자주·민권·자강 사상을 고취하는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독립문과 함께 독립사상을 표현하였으나 일제에 의하여 철거되었다. 독립관은 지상 1층 한식 목조건물로서 정면 6칸, 측면 4칸, 7량 팔작지붕 구조였으며, 원래 위치는 동남쪽으로 약 350m 지점이었다. 서대문독립공원 조성사업계획에 의거 전문가의 고증 자문에 따라 지상층은 당초대로 한식 목조건물로 복원하여 순국선열들의 위패봉안 및 전시실로 사용하고, 지하층은 행사 및 유물 보관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1996년 서울시에서 건립하였다.
7.8Km 2025-06-11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현저동)
전남 보성 출신 개화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건립된 동상이다. 송재 서재필 선생은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다. 윤치호, 이상재 등의 협력을 얻어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종래 중국을 사대하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국민의 성금을 모아 한국독립의 상징으로서 독립문을 세웠으며, 종래의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고치고 독립협회의 집회장소와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또한, 토론회를 통해 시민들을 모아 나라의 독립과 개혁에 대한 토론을 시키고 만민공동회를 조직하여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 조차[租借] 요구를 반대하는 등 국민의 독립사상과 민권사상을 크게 신장시켰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워싱턴에 구미위원회를 설치하자 그 위원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의 경비에 바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셨으나 1951년 1월 5일 미국에서 87세의 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