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Km 2025-07-03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호국로 255-41
장흥관광지 인근에 있는 양주 온릉은 조선의 11대 왕 중종의 첫 번째 왕비이자 중종반정 이후 공신들의 반대에 의해 폐출된 단경왕후 신씨(1487~1557)의 능이다. 지금의 온릉은 1739년에 단경왕후로 복위되면서 새롭게 조성된 것으로 묘역의 크기는 약 6만 6천여 평이다. 사적 제210호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며, 방문객들은 단경왕후의 삶을 기리며 역사와 자연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군사시설 보호구역 내에 위치해 있어 일반인에게 비공개였으나 문화재청과 양주시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2019년 11월부터 공개되어 운영 중이다. 단경왕후는 신수근과 청원부부인 한 씨의 딸로 1499년(연산군 5년)에 성종의 아들인 진성대군과 가례를 올렸으나 1506년 중종반정으로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인 신수근의 누이가 연산군의 왕비였고, 중종반정을 반대해 반정 추진파에 의하여 살해당하였으므로 반정 공신들의 압력으로 7일 만에 폐위되었다. 능은 본래 친정 집안인 거창 신씨의 묘역에 묘를 조성하였으나, 1739년(영조 15년)에 복위되어 시호를 단경왕후라하고 신주를 종묘에 부묘하였다. 능호는 온릉으로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여 사후 추존된 왕비의 능제인 정릉[태조비 신덕왕후]과 사릉[단종비 정순왕후]의 예에 따라 새롭게 조성하였다. 진입 및 제향 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능은 정남 쪽을 향하고 있으며 능침은 능 뒤에 곡장을 두르고 문인석,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1쌍과 석호 1쌍을 배치하였다. 일반적으로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르고 석양과 석호는 각각 두 쌍씩 봉분 주위에 둘러 세우는데 온릉이 사후 추봉된 경우이기 때문에 이를 생략하거나 축소해 차등을 두게 된 것이다. 송추IC에서 차량으로 약 4분 소요된다. 인근에 장흥관광지(청암민속박물관, 가나아트센터, 두리랜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송암스페이스센터, 장흥자생수목원 등), 송추유원지, 일영유원지, 북한산국립공원, 국립아세안자연휴양림, 필룩스조명박물관, 회암사지 등이 있다.
14.4Km 2025-06-26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호국로 332
도자기나라는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자기 및 공예체험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방문이 가능한 곳이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신선한 공기와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도자기에 관련된 여러가지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손으로 직접 빚어 만들기, 초벌된 기물에 그림 그리기, 물레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다.
14.4Km 2025-05-08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석모로 67
육가 식당은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석모리에 있는 숙성 생고기 전문점이다. 방송에도 출연한 경험이 있는 김포 맛집이다. 큰 규모의 식당으로 주차 공간도 넓다. 육가 식당은 숙성 생고기 전문점으로 부드럽고 깊은 풍미의 소고기를 맛볼 수 있다. 또한 신선 칸에는 쌈밥을 메뉴로 하는 식당답게 다양하고 신선한 쌈 종류가 구비되어 있다. 셀프 바로 구성되어 있어 고객들이 원하는 만큼 양껏 즐길 수 있다.
14.4Km 2025-05-23
인천광역시 계양구 목상동
해발 395m의 계양산은 강화도를 제외한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에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자생하여 계양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수도권 반나절 산행으로 적당하고 초보 등산객도 쉽게 오를 수 있어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인천지하철 1호선 계산역과 등산로 입구가 가까워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수월하다는 장점도 있다. 등산로는 총 9가지 코스가 있는데, 짧게는 50여 분부터 길어도 2시간 남짓이 걸린다. 주로 연무정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팔각정을 거쳐 산 정상에 올랐다가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하산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주 능선 등산로에 그늘이 없어 여름보다는 봄, 가을철 산행지로 알맞다. 임학공원과 계양산성을 잇는 계양산 무장애길을 이용하면 장애인과 노약자도 쉽게 산을 오를 수 있다. 계양산은 등산과 역사 탐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삼국시대에 축조되어 조선 시대까지 사용된 계양산성, 고려 시대 학자 이규보가 머물던 자오당터와 초정지, 봉월사터, 봉화대의 유적지 등 흥미로운 볼거리가 다양하다. 산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김포공항을 비롯한 서울특별시 전경이, 서쪽으로는 영종도와 강화도 등 주변 섬이 한눈에 들어찬다.
14.4Km 2025-03-14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양산로75번길 26 계양공원관리소
인천광역시 계양산 자락에 있는 계양공원은 규모가 큰 산지형 공원으로 휴게시설, 체육시설 등 다양한 편익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며, 특히, 장미원은 36종 11,360주의 장미가 식재되어 있어 봄철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아울러, 인천의 대표적인 계양산과 계양공원 산책로가 연결되어 도심에서 자연을 느끼고자 하는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공원이다.
14.4Km 2025-04-30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369번길 83
김포시 양촌읍 석모리에 있는 설반은 냉면과 갈비탕이 맛있는 식당이다. 석모리에는 다양한 식당과 카페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설반은 차 없이 방문하기엔 조금 접근이 불편한 곳이다. 이곳은 2층 건물로 1층은 식당, 2층은 카페이고 식당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어 주차가 편리하다. 설반에서는 냉면과 갈비탕, 갈비찜과 갈곱전골 등을 맛볼 수 있다. 그중에 붉은 육수에 푸짐한 왕갈비가 가득 담겨 나오는 매운맛의 신갈탕은 설반의 시그니처 메뉴이다. 가까운 곳에 글린공원이라는 유명한 베이커리 카페도 있어 식사 후 들러볼 만하다. ※반려동물 동반 불가(안내견만 가능)
14.5Km 2025-07-21
서울특별시 종로구 비봉4길 213 (구기동)
승가사는 신라 낭적사의 수태스님이 관음보살의 화신이라고 존경받던 서역 승려인 승가대사의 거룩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삼각산 남쪽 경치 좋은 곳을 골라 암벽을 뚫어 승가대사의 상(보물 제1000호)을 봉안하였는데, 고려시대 이예가 쓴 『삼각산중수승가굴기』에 승가사 창건의 경위가 대략 실려 있다. 또한 고려시대 왕실의 지원을 받아 조성된 절 뒤편 암벽의 마애불(보물 제215호)은 고려 초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나라에 큰 난리나 재해가 있을 때 왕이 친히 이 마애불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특히 불교가 억압당하던 조선 초에는 함허스님이 이곳에서 득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 후기에는 성원스님이 마애불 앞에서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 탐욕·노여움·어리석음을 없애고 깨달음에 이르게 해 달라는 주문)를 꾸준히 외워 득도하는 등 수많은 고승들이 배출되어 중생을 제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수많은 중생의 기도처였던 승가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 하지만 종단정화를 계기로 1955년부터 도원·상륜·정호스님이 연이어 주지를 맡아 도량을 새롭게 꾸며 과거의 명성을 찾아가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14.5Km 2025-05-02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석모로73번길 114-10
김포금쌀밥집 지미재는 석모리에 있는 한정식 맛집이다. 5,000년 전통의 김포 금쌀만을 사용해 지은 밥으로 '한 상 정식' 한 가지 메뉴만을 제공하고 있다. 상차림이 완료된 식탁의 상판이 슬라이딩으로 단번에 서빙되는 시스템이다. 지미재는 한정식 전문점답게 고기와 생선, 전, 나물 등 이십여 가지의 반찬이 한 상 푸짐하게 나온다. 대부분의 반찬은 무한 리필해서 먹을 수 있고, 황태구이, 고등어, 수육은 한 번만 리필할 수 있다. 온 가족이 푸짐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가성비 좋은 한정식 맛집이다. ※반려동물 동반 불가(단, 안내견은 가능)
14.5Km 2025-07-02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장릉로 90
파주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재위 1623~1649)와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씨(1594~1636)의 능이다. 장릉은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으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인조, 오른쪽에 인열왕후를 모셨다. 장릉은 1635년(인조 13) 인열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파주 운천리에 조성되었다. 이때 인조는 자신의 능 자리를 미리 만들었고, 1649년 인조가 세상을 떠나자 쌍릉의 형태로 인조의 능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장릉이 풍수상 불길하고, 화재가 자주 일어나며 뱀의 피해가 잦자 1731년(영조 7)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옮기면서 능의 형식을 쌍릉에서 세종의 영릉(英陵)의 예에 따라 합장릉으로 바꾸었다. 현재 장릉 능침 석물은 옛 장릉의 석물과 옮긴 후 새로 만든 석물이 같이 있어 17세기와 18세기의 왕릉 석물의 형태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