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무형문화재 토요상설공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진주 무형문화재 토요상설공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진주 무형문화재 토요상설공연

진주 무형문화재 토요상설공연

0m    8927     2021-09-01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문화예술과 055-749-5312

<진주 무형문화재 토요상설공연>은 진주 무형문화재의 전승 및 보전을 위한 상설공연으로 진주삼천포농악, 진주검무, 진주포구락무 등 진주를 상징하는 전통 및 문화예술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이다. 단순한 관람에 멈추지 않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진주 무형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나아가 보다 풍성한 공연을 위해 타 지역 무형문화재와의 교류도 기획 중에 있다. 이를 통해 진주 시민을 포함한 국내외 관광객에게 진주 무형문화재의 특색 및 매력을 알려 진주의 대표 문화관광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자 한다.

진주 논개제

진주 논개제

0m    43124     2021-05-03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055-746-5081

천년고도 진주는 예로부터 북평양 남진주라 불릴 정도로 전통예술이 뛰어난 고장으로 유명하다. 진주의 뜻있는 문화예술인들은 지역의 훌륭한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서 순국한 논개를 비롯한 7만 민, 관, 군의 충절과 진주정신을 포괄하면서 시민들이 동참할 수 있는 전통예술축제를 창제하기로 하고 <진주논개제>를 개최하였다. <진주논개제>는 매년 5월 넷째 주 금, 토, 일 3일간에 걸쳐서 호국충절의 성지 진주성에서 개최되며, 1868년 당시 진주 목사 정현석이 창제한 것으로서 제향에 악, 가, 무가 포함되고 여성들만이 제관이 될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의 제례인 의암별제를 서막으로 진주오광대를 비롯한 민속예술과 진주기생들이 남긴 교방문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통문화와 여성을 테마로 한 축제이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다. 모름지기 진주논개제는 어느 지역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진주만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재로 하기 때문에 세계적 축제로서 발전을 기대하며 또한 전통예술 위주로 봄에 열리는 논개제는 순수예술 중심으로 가을에 열리는 개천예술제 및 진주남강유등축제와 함께 진주를 문화예술의 고장이란 명성에 걸맞은 축제의 도시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논개의 충절정신과 전통문화의 올바른 계승보존 및 복원, 의암별제와 탈춤 한마당을 통해 진주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전통문화를 토대로 한 새로운 지역축제의창조, 지역주민이 주도적으로 참가하는 축제전형을 제시하며 지역의 다양한 전통예술을 총망라하여 진주의 독자적인 전통문화 예술제이다.

진주성

진주성

76m    62444     2021-07-30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 19_20 한국관광 100선 ※ 진주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은 많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 임란 때의 논개의 순국,1862년 전국적인 농민항쟁의 시발점이 된 진주농민항쟁 등 큰 사건만 해도 부지기수이다. 진주성은 삼국시대 거열성(居列城), 고려시대 촉석성 (矗石城)으로 불렀던 것으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진주성으로 개칭되었다. 석축 된 성의 둘레가 약 1,760m(4,359척), 높이는 약 5~8m(15척)이며, 성 안에 우물과 샘이 각각 3개 있고,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선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하륜(河崙)(1347~1416년)의 성문기(城門記)에 보면 성이 옛터만 남아 언제 쌓은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고려 우왕 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중광에게 석축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 때 성의 둘레는 800보이고, 성의 높이는 세길을 넘으며 의정문(서쪽), 지제문(북쪽), 예화문 (남쪽)이 있고, 성 밖은 서쪽으로 청천(靑川)이 남쪽에는 긴강(남강)이 흘렀으며, 북쪽에는 못이 있는데 성과 못 사이에는 참호를 팠다고 했다. 이처럼 고려 말에 왜구방어의 보루로 고쳐 쌓은 이 성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적을 막는 관문이 되었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제1차 진주성싸움을 드는 것은 3,800여명의 군사로 10배에 가까운 왜적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이 성을 지킴으로써 곡창지대인 호남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1593년 제2차 진주성싸움에는 민.관.군 7만여명이 왜군 10만여명을 맞아 11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모두 순의하였고, 이 때 논개가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충절을 다한 곳이기도 하다. 성내는 촉석루, 김시민 전성각적비, 의기사, 서장대, 북장대, 창열사, 국립진주박물관, 호국사,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 의기사(義妓祠)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호 의기사는 임진왜란 당시(1593년)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논개는 진주성이 함락되자 성민과 나라의 원한을 갚기 위하여 왜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유인한 후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의기사는 그 의로운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16년(1740년)에 경상우 병사 남덕하(1688~1744년)가 창건한 이래 두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6년 의기창열회가 시민의 성금을 모아 중건한 것이다.

[명예대표축제]진주 남강유등축제

[명예대표축제]진주 남강유등축제

76m    685507     2021-09-23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055-755-9111

가을밤을 아름답게 수놓는, 진주대첩의 역사와 함께 이어져온 유등축제
진주남강유등축제는 특별한 역사와 함께 이어져 내려오는 빛축제이다. 임진왜란 당시 벌어진 진주성 전투에서 적군이 강을 건너려고 하자 강물 위에 유등(기름으로 켜는 등불)을 띄워서 이를 저지했다고 한다. 진주남강유등축제에서는 유등띄우기의 전통을 이어받아 등을 활용한 다채로운 전시와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낮에도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등불이 켜지면서 본격적으로 축제가 진행된다. 남강의 잔잔한 물결 위해 용, 봉황, 거북이, 연꽃 등 다양한 모양의 수상등이 전시되며 수상 불꽃놀이와 워터라이팅쇼 등이 펼쳐져 화려한 볼거리리가 제공된다. 그 중 각자의 소망을 적은 등을 남강에 직접 띄워 보내는 유등띄우기 체험은 축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저마다의 소망이 담긴 유등이 하나 둘 모여 별처럼 반짝이는 풍경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축제TIP] 진주대첩이란?
진주대첩은 임진왜란이 한창인 1592년 10월, 충무공 김시민장군이 이끄는 3,800여 명의 병사들과 진주성의 백성들이 2만이 넘는 적군을 크게 무찔렀던 전투이다.

촉석루

촉석루

183m    44694     2021-07-30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남강(南江)가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높이 솟은 촉석루는 영남(嶺南)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임을 자랑한다. 고려 고종 28년(1241)에 창건하여 8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던 이 누각은 진주성의 남장대(南將臺)로서 장원루(壯元樓)라고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향시(鄕試:初試)를 치르는 고시장(考試場)으로 사용 되 었다. 6.25때 불탄 것을 시민들의 힘을 모아 진주 고적 보존회를 만들어 1960년에 복원하였는데 건물은 팔작지붕에 다락루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누각 밑의 돌기둥은 창원의 촉석산에서 채석하였고 목재는 강원도 오대산에서 가져왔으며 루에는 4개의 현판과 시인 묵객들의 시판이 걸려있다. 매년 가을 진주성에서는 '진주남강유등축제'가 개최되어 독특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의기사와 의암

의기사와 의암

246m    27118     2021-09-02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이곳은 제2차 진주성 싸움 뒤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사적인 진주성내에 있으며 경남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계사년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자 논개는 이 자리에서 왜장을 강가 바위까지 유인하여 껴안고 물에 뛰어들었는데, 그 바위가 바로 의암이다. 논개사당은 조선 영조 16년(1740)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건립했는데 1960년 의기창열회에서 재건하였다. 김은호 화백이 사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목조 기와집이고 지수문이라는 정문을 갖추고 있다. 논개사당에는 다산 정약용의 의기사기와 매천 황현의 시판과 기생 산홍(山紅)의 시판이 걸려 있어 한층 뜻이 깊다. 매년 제향과 별제를 드린다.

국립진주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

340m    35943     2021-08-24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

국립진주박물관은 1984년 11월 2일 '가야문화연구의 중심기관'을 표방하며 문을 열었다. 1998년에는 임진왜란 전문 기관으로서 특성화하였고 2008년, 2018년 두 번에 걸친 전시개편작업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재단장했다. 지역민과 함께하는 박물관으로서 임진왜란과 관련된 동아시아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연구∙전시하고 있는 한편 박물관 교육, 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절경을 만나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절경을 만나다.

340m    2462     2017-09-15

관광지로서의 ‘사천’은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말로 사천을 방문해 본 여행객이라면 이런 말은 쏙 들어갈 것이다. 아름다운 바다와 수많은 역사 유물을 간직한 사천. 그 비경을 감상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큰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국립진주박물관 설맞이 문화행사

국립진주박물관 설맞이 문화행사

340m    5696     2021-02-25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
055-740-0693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우리 고유명절인 설날을 맞이하여 진주시민과 관람객들을 위한 설맞이 문화행사를 진행한다. 올해는 비대면행사로 진행되며, 체험키트를 받아볼 수 있다.

유정장어

57m    21439     2021-05-14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로 2
055-746-9235

천년의 역사와 함께 흐르는 남강변에 위치한 유정장어는 40여 년 전통의 장어구이 노하우가 있으며, 진주시 선정 향토음식점이기도 하다. 유정장어의 메뉴는 바닷장어구이와 민물장어구이 그리고 기타 식사류로 민물장어곰탕과 낙지볶음, 조선냉면 등이 있다. 바닷장어의 경우 청정해역인 남해, 그것도 삼천포 인근에서 잡아 올린 신선한 장어만 엄선하여 사용한다. 근해에서 잡은 바닷장어가 원양어선에서 잡아 올린 장어보다 맛이 더 고소하기 때문이란다. 유정장어에서는 원재료인 장어도 중요하지만 장어소스로 쓰이는 간장을 더 중요시한다. 기본적인 것에 소홀하면 다른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맛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직접 메주를 띄워 장을 담근다. 이곳의 장어요리가 느끼하지 않고 뒷맛이 개운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닷장어구이의 경우 초벌구이로 기름기를 제거한 장어에 40여 년 전통이 담긴 매콤하고 달콤한 양념을 발라 양파와 함께 연탄불에 다시 굽는다. 겨울철에는 장어의 기름기가 덜해 가을에 장어를 사서 초벌구이로 기름기를 제거한 다음 얼렸다가 해동해 다시 연탄불로 굽는다. 민물장어구이는 당일 직송한 싱싱한 국내산 산 장어를 고집하며, 초벌구이로 흙내음 등 민물장어 특유의 냄새를 제거하고, 3일에 걸쳐 정성으로 달인 특제소스를 6~7회 덧발라 한 번 더 굽는다. 장어요리 외에도 진귀한 수석과 박제들이 내부 곳곳에 전시되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진주성을 따라 임진왜란을 생각하다

76m    4038     2016-09-27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인 진주대첩이 펼쳐졌던 역사의 현장이다. 진주성에는 임진왜란 전문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을 둘러본 뒤 진주성 곳곳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뛰어내린 촉석루 아래 의암도 꼭 찾아봐야할 진주성의 명소다. 진주성과 가까운 진양호공원은 남강댐을 만들면서 생겨난 인공호수로 진양호 전망대에서 보는 호수 위 일몰과 지리산 전망이 으뜸이며, 주변에 상설 소싸움이 열리는 소싸움경기장도 들러보자.

청계서원(진주)

108m    3883     2020-10-13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청계서원은 1833년(순조 33)에 건립되었으며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은열공(殷烈公) 정신열(鄭臣烈)과, 고려 말 물레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따뜻한 목면(木棉, 목화) 옷을 입게 한 문충공(文忠公) 정천익(鄭天益)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이다. 두 분은 각각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 진양군(晋陽君)에 봉해졌다. 본래 대평면 마동에 건립되었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된 것을 1961년에 지금의 자리에 복원하였다. 1961년 후손들이 이곳에 복원사업을 시작하여 경덕사와 정교당을 건립, 봉남서당이란 이름으로 그 맥을 이어오다가 1986년부터 1993년까지 숭은사와 진사청을 재건, 청계서원으로 복원되어 매년 음력 3월 15일 사당에서 제향을 올리고 있다.